현준 교수는 최근작 <공간이 만든 공간>에서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가장 영향을 받을 분야는 유통 상업 분야와 더불어 ‘종교 분야’일 것이라고 썼다. 옆에서 설교자를 열심히 쳐다보면서 앉아있는 사람이 없는 인터넷 예배는 같은 내용이라도 무게감이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교는 항상 모이기를 힘쓰고, 공간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이슬람의 기도처럼 시간이라도 맞춘다는 것이다. 전염병이 있어도 마지막까지 모이려는 곳은 종교 공간일 것이라고 예측했다. 흑사병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졌던 중세 교회가 힘을 잃고 르네상스라는 인문 개혁이 일어났다는 설명과 함께.

고밀도의 대도시가 전염병 확산을 불러왔기 때문에 사람들이 도시를 떠날 것이라는 일부의 예측에도 고개를 젓는다. 일부 이사를 가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온라인 공간에서 정보를 얻고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더라도 오프라인 공간에서 추가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면 시너지 효과가 더 커질 것이므로, 대도시를 선호하는 사람은 항상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현준 교수는 “코로나19 이후 쭉정이 같은 가짜 크리스천들은 다 떨어져 나가고, 진짜 크리스천들은 자기에 맞는 말씀을 전하는 분에게 더 집중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터뷰 마지막 편에서는 변하지 않는 진리를 전하고 지키기 위해 교회 공간이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를 계속 질문했다.

건축가 유현준(홍익대학교 교수)
▲유현준 교수는 책에서 새로운 창조를 만드는 요소로 “차이와 융합, 그리고 기술”을 꼽고 있다. ⓒ송경호 기자

어느 때보다 위로받고 싶은 사람 많아… 교회는 ‘최후의 보루’
그러나 예배 형식과 메시지가 이 시대에 맞지 않는 것 아닌가
기존 것들만 고집한다면, 공룡처럼 멸종될 수 있는 위기 상황

-앞에서 말씀하셨듯 코로나19 이후 교회 공간과 구성도 변화가 필요할텐데, 이러한 변화에 있어 교회가 가진 전통이나 생각 가운데 걸림돌이 될 만한 것이 있을까요.

“일단 교회탑 같은 상징물들은 아무래도 걸림돌이 되겠죠. 물론 힘들 때, 그것을 쳐다보면서 힘을 얻으시는 분들은 분명 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봉은사에 가 보면 정원이 아주 좋습니다. 별 생각 없이 편안하게 쉬다가 뒤에 30m 짜리 불상을 보면 ‘뜨악’ 하거든요. 절에 안 다니는 분들은 ‘아 내가 있을 곳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당연히 들지 않겠어요? 그런 것과 비슷하죠.

특정 집단만의 상징물들이 많으면 아무래도 구분된 공간이 되지만, 또 접근이 힘든 공간이 되겠죠. 십자가가 오히려 그런 마음을 줄 수도 있습니다.

창의적으로 생각하면, 공간을 수직적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차피 요즘 예배당에는 기둥이 없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상층부로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하층부에는 소프트한 기능을 넣고 고층부 예배당과 구분할 수 있습니다. 마치 주상복합이 나눠지듯 수직적으로 완전히 분리된 시스템처럼 공간 체계를 만들 수 있겠죠. 아니면 가운데에 정원을 둘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식의 과감한 발상 전환도 필요합니다.”

-본당을 지하에 넣는 경우도 꽤 있습니다.

“쾌적하진 않을 것 같습니다. 건폐율 때문에 지상에는 큰 예배당을 못 만드니, 지하로 두는 것이 가장 크게 예배당을 넣을 수 있는 방법이겠죠. 물론 공사비는 많이 들 것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에 맞는 것인지 의문입니다. 이제 같은 시간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모이지 못하잖아요. 적은 숫자만 모이는데 과연 커야 할까요?

큰 예배당이 모였을 때 동질감과 집중되는 힘, 목회자의 권력 집중과 말씀의 권위가 커지는 등의 장점들이 있어요. 그러나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유지될 수 있을까요?

만약 작은 예배당이라도 아무 때나 방문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시간 맞을 때 방문해서 듣고 싶은 말씀을 들을 수 있다면 어떨까요? 이런 것들이 IT 기술과 융합되면 공간 코기를 적절하게 배열하거나 나눌 수 있으리라 봅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15분 이상 집중을 못합니다. 그래서 유튜브 클립도 대부분 10-15분 이하란 말이에요. 그런데 기독교 예배는 한 시간입니다. 일어났다 앉았다 해야 하고 시간 맞춰서 찾아가야 합니다. 젊은 사람들을 쫓는 구조 아닙니까?”

-교수님은 ‘도시’ 전체의 시스템에 관심이 많으신데, 도시의 여러 건물들 중 교회라는 공간은 시민들에게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이미 성경에 나와 있다고 봅니다. 말씀드렸듯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이 와서 쉴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죠. 각박한 자본주의 상황에서,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곳으로 성격이 명확해지면 좋겠습니다.

이 시대는 어느 때보다 쉬고 싶은 사람, 위로받고 싶은 사람이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예배의 형식과 메시지가 이 시대에 맞지 않게 전파되고 있지 않나 합니다. 저는 잘 모르지만, 공간적으로 봤을 때 그렇게 바뀌면 좋겠습니다.”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 교회를 보신 적 있으신지요.

“아직 특별한 사례를 보진 못했고, 그나마 세종 산성교회가 그렇다고 봅니다(웃음). 많은 교회를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아마 어딘가에는 그런 교회가 있을 것입니다.

저는 잠시 쉬고 싶을 때, 충현교회가 아닌 봉은사에 가서 쉽니다. 거기에는 정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배를 실내에서 드리기 때문에, 교회는 그동안 실내 중심으로 공간을 만들어 왔습니다. 이제는 교회가 그런 공원 같은 쉼터를 만드는 일에도 힘을 쏟아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점점 더 머무를 수 있는 평평한 야외 공간이 귀해지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의교회를 봐도, 1층에 그냥 광장이 아니라 나무를 심는다든지 언덕을 만들었다면, 이 시대에 더욱 필요한 공간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정원을 조성하는 일은 땅이 좁기 때문에 쉽지 않죠. 어느 정도 규모도 있어야겠지만, 뉴욕의 ‘포켓 파크’ 같은 곳을 보면 크지 않아도 임팩트 있게 만들 수 있다고 봅니다.”

건축가 유현준(홍익대학교 교수)
▲유현준 교수의 사무실 책장에는 상장들, 건축을 비롯한 여러 분야의 도서들과 방송 출연 소품 등이 놓여 있었다. ⓒ송경호 기자

-작은 교회들도 그러한 공간 구성이 가능할까요.

“얼마나 퀄리티 있게 꾸미느냐에 따라 다르겠죠. 요즘 을지로를 ‘힙지로’라고 하는데, 가서 보시면 정말 별 것 아닌 공간이지만 사람들이 찾아갑니다. 그 정도로 매력적인 공간이면 된다고 봅니다.

서울만 해도 교회가 천개는 넘지 않겠습니까. 만약 천개의 교회가 매력적인 공간을 각자 하나씩 가지고 있다면 어떨까요? 전국에서 인스타족들이 찾아와 셀카를 찍고 인증을 남기는 것이 유행처럼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것입니다.”

-말씀하셨듯 요즘은 인스타족들이 핫플레이스에서 사진을 찍어 올리면서, 기독교 용어였던 ‘성지순례’라는 말을 씁니다.

“그렇습니다. 매력적인 교회들을 찾는 것도 일종의 성지순례나 순례길이 될 수 있습니다. 좁은 공간이라도 분명히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지금이 기회일 수 있어요.

예전에는 거룩한 공간을 만들려면 1천명씩 모이는 엄청 넓은 공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런 공간은 아무 때나 가도 됩니다.

주일날만 예배드리는 것이 아니라 일주일 중 아무 때나 와서 예배드리고 가라고 한다면, 작은 교회들도 묵상이 가능한 정말 매력적인 공간을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 목사님 말씀이 아니어도 됩니다. 대신 어느 때든 일주일에 한 시간 정도는 하나님과 일대일의 시간을 가지세요.’ 이렇게 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올 것 같아요. 불교에서는 하다 못해 ‘코끼리 명상’ 같은 것도 하지 않습니까. 그런 것들이 많은 부분에 있어 사람들의 영성을 깨울 수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방금 하신 말씀에 대해 받아들이기 쉽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교회와 예배가 너무 유행과 편리만을 추구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올 것입니다.

말씀드린 것 같은 극단적인 교회까지, 여러 형식들로 다양한 시도를 해야 한다고 봐요. 그리고 그 중 살아남는 시스템이 다음 세대로 전달될 것입니다. 방금 같은 교회 형태를 장로님들이 들으면 ‘웬 미친 소리냐’ 하실 거예요.

‘그게 무슨 예배냐? 힘들고 희생하고 불편해야 예배지, 목사님은 하나님을 대신하시는데 절대 권력자여야지’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마르틴 루터가 가톨릭에 대항해 종교개혁을 했을 때만큼의 저항이 있으리라 봅니다.

그 정도의 변화가 없고서는, 20년 뒤 대한민국 기독교 인구는 5% 이하로 줄어들 수도 있습니다. 모든 걸 깨뜨린다 해서 다 좋은 건 아니지만, 기존 것만 고집한다면 공룡처럼 멸종될 수 있는 위기 상황으로 보시면 좋겠습니다.

자녀들을 보면서 많이 느낍니다. 고등부 교사를 했을 때, 수련회에 창조과학 강사가 설명을 하는데 우리가 보통 배우는 과학적 상식으로는 말이 안 되는 강의를 했습니다. 아직도 그런 것을 교회에서 가르치면 사람을 쫓는 것입니다.

최신 현대 물리학이나 양자역학 같은 과학 이론으로도 우리보다 높은 존재나 차원에 대한 부분을 과학적·수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텐데,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정말 시대에 뒤떨어진 것입니다.

말도 안 되는 것들을 믿는 종교들도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그런 것들을 보면서 어이없어하는 것처럼,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그렇게 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진짜 진검승부를 해야 합니다. 말씀에 힘이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꼭 지금 같은 형식이 아니라도 되는 것 아닐까요? 그 형식이 아니고서는 먹히지 않는다면, 말씀에 힘이 있다는 말이 아니라고 인정해야겠죠.”

건축가 유현준(홍익대학교 교수)
▲유현준 교수는 최근 SBS ‘나의 판타집’에서 자신의 ‘건축학개론’을 펼치면서 시청자들에게 건축과 공간, 창조에 대한 시야를 넓혀주고 있다. ⓒ송경호 기자

-<알쓸신잡2> 출연 중 자녀에게 선물해 주고 싶은 책 한 권으로 ‘그림책 성경’을 꼽으신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교수님께서 성경과 현실 사이 틈이 생겼을 때, 계속 생각하고 고민하면서 그 틈을 메웠다고 하셨는데요. 아무리 생각해도 설명하기 힘들었던, 메워지지 않았던 ‘틈’은 없으셨나요.

“설명이 안 됐던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어느 정도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조금은 불가지론자(사물의 본질이나 궁극적 실재의 참모습은 사람의 경험으로는 결코 인식할 수 없다고 믿는 사람 -편집자 주)에 가까운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는 분명 있습니다. 그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을 누군가는 신의 영역으로 볼 것이고, 누군가는 팔자로, 과학자들은 우연으로 말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가지 설명 중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겠죠.

어느 정도까지가 과연 문화사적 영향이고, 어느 정도까지가 신의 영역인가? 저는 그런 고민을 많이 합니다. 마치 사시미 뜰 때 뼈와 살을 발라내는 것처럼, 그 둘을 발라내는 작업을 죽을 때까지 할 것 같아요.

제가 ‘상가 교회 때문에 부흥한 것 아냐?’라고 말하는 이유도, 환경적·문화적인 것들과 진짜 기독교에 대한 것을 구분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코로나 때문에 힘들어하는 청년들에게 격려나 위로의 말씀을 전해 주십시오.

“인류 역사 5천년간 전염병은 늘 있어왔고, 놀랍게도 인류는 전염병을 다 극복하면서 성장·발전해 왔습니다. 때문에 그 부분은 우리에게 견뎌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사실 인생이 원래 힘들잖아요? 인생은 사실 안 태어나는 게 가장 좋죠(웃음). 저는 솔로몬의 이야기에 적극 공감합니다. 이미 시작한 인생이니 사는 겁니다. 힘들기 때문에 견뎌야 하는 것 같습니다.

청년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있어요. 저희 세대보다 기회가 줄어든 세대이기 때문입니다. 약간의 기득권과 운이 좋았던 선배로서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인생은 항상 차선이 모여서 최선이 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도 밖에서 보면 되게 잘 풀린 사람으로 보이실텐데, 아이러니하게도 제가 계획했던 대로 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저도 중고등학교 때부터 이렇게 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을 것 아닙니까? 대학 시절도 직장 생활도, 지나고 나면 다 합력해서 선을 이루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경적으로 말씀드리자면 믿는 자 안에서는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룬다고 해석할 수도 있고, 보편적으로 말씀드리면 차선이 모여서 최선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의 인생의 계획을 내가 세울 수 없습니다. 이걸 또 신앙적으로 ‘그분이 다 계획하신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도 있지만(웃음), 다르게 보면 나에게 좋은 것을 내가 모르기 때문에 여유 있는 마음을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인생을 미분으로 보지 말고 적분으로 보시라는 말씀도 드리고 싶습니다. 미분으로 보면 해당 그래프의 기울기만 계산하지만, 적분으로 보면 누적된 총 면적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인생을 미분적으로 봤을 때는 잘못 되는 것 같아도, 적분적으로 보면 이 길이 옳았구나 항상 생각하게 됩니다.

제가 ‘자기 합리화의 달인’이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100세 시대로 인생도 늘어났으니 여유 있게 생각하시면 좋겠습니다. ‘정신승리’도 필요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