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캐니언, 오래된 지구의 기념비
그랜드캐니언, 오래된 지구의 기념비

캐럴 힐 외 | 노동래 역 | 새물결플러스 | 266쪽 | 25,000원

1970년대 중반, 아마 중학교 1학년 때 교회 여름 수련회에서 정부 관련 연구기관에서 근무하시던 중등부 선생님의 특강을 듣게 됐다. 그 주제는 창조론과 노아 홍수에 관련된 것이었다. 그때, 선생님이 낸 퀴즈를 맞혀서 받은 100쪽이 채 안 되는 책이 생명의말씀사에서 나온 크리스챤 서적 시리즈 중 하나였던 H. M 모리스의 '진화론과 현대 기독교'였다.

고등학교 때인가 모리스를 '신앙난제 백문백답'이란 책으로 다시 만나게 됐다. 선생님의 강의는 사실 그 책의 내용을 그대로 강의했던 것인데, 그 책은 당시로서 내게 상당한 충격과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었고, 1980년대 후반 기독교 세계관을 알게 되고 공부해 가면서 창세기를 통해 기독교 세계관과 창세기 1-11장을 통한 세상의 형성 과정을 개인적으로 나름 체계를 잡아가게 됐다.

기독교 세계관으로 내가 살고 있는 세상과 학문을 재해석하고 정의내리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었고, 1980년대 후반 치열했던 한국 사회와 정치를 바라보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고민하고 신앙인으로서 개인적인 답과 방법을 찾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면서도 매번 고민한 것은 기독교 세계관은 '관(觀)'일 뿐이지 그것이 정의나 결론일 수 없고, 또 올바른 세계관이 그 사람의 영성과는 거리가 있을 수 있음이었다.

또 그 세계관과 학문이 얼마나 세상에서 받아들여지고 세상과의 접목을 이루어 내는가도 중요한 부분이었다. 굳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창조과학 자체가 그러한 기독교 세계관을 통해, 과학이라는 학문에 부딪힌 그리스도인으로서 답을 찾아가려는 하나의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중학교 때 접했던 그 얇은 책자는 내게 다른 의미로 유익했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더 이상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와 노아 홍수에 대한 것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고, 지구 역사에 대해서나 진화에 대해 온전한 동의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내가 과학자도 아니고-부끄러운 이야기지만 학창시절 지구과학이나 생물 같은 과목을 무척 못했다-전문적인 지식을 논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기에 단지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놓을 뿐이고, 그 결론이 어떻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결론을 어떻게 내리느냐 하는 것이 신앙과 연관성이 없다고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내게 본질적인 문제는 될 수 없다.

문제는 중학교 때 읽고 배웠던 창조과학이 그 상태에서 머물고 일종의 교조화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아직도 그 수준에 머무는 논리가 절대화돼 그것에 대한 문제제기와 반론은 곧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믿음을 버린 것과 동일시되고, 진화에 대한 부분적 수용조차 곧 무신론으로 귀결되는 듯한 양상이 벌어지는 면이 있다. 이러한 행태는 교회 내 청소년들에게도 이어져, 이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학문과의 충돌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는 듯하다.

이것은 무신론적 진화론자와도 상당한 대립적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들 두 부류는 상대에 대한 극단적 무시와 경멸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일부 진화론자들은 창조론 학자들의 여러 변화된 시도조차 학문적 논의 자체를 거부하고 평가절하하며 일절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

창조론자도 진화론자들의 주장을 거부하고 비판할 뿐, 신앙보다는 자신들의 논리를 더 수호하는 듯 하거나 동일시하는 문제를 범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 속에서도 지금까지의 기독교 내의 학문적 태도를 반성하고 보다 객관적인 접근을 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번에 <그랜드캐니언, 오래된 지구의 기념비>는 보수적 창조론자들의 입장에서 이단과 같은 책처럼 비쳐질지 모르지만, 저자들의 면면을 보면 전통적 신앙의 배경을 가진 이들이다. 그랜드캐니언이 노아 홍수의 증거인 것처럼 절대화시키는 일부 창조론자들에 대한 반론과 같은 책이다. 아마 그런 방향으로서는 기독교계에서는 독보적인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그랜드캐니언을 노아 홍수의 증거로 교계에서 미국 투어를 가는 모습들을 종종 본다. 이 책은 존 레녹스의 책 <최초의 7일>을 번역한 역자를 통해 깥은 출판사인 새물결플러스에서 번역됐는데, 상당한 양의 올 컬러 사진과 도표, 그림들이 들어간 양장판으로 고급지게 출간됐다.

그럼에도 가격도 2만 5천원이라는 착한 가격으로 낸 무모함을 저질렀다. 심지어 책의 작은 인쇄 잘못을 간지로 대치하는 것이 아니라 후원독자에게 책을 재발송하는 또 다른 무모함을 보이기까지 했다.

이 책은 고급화에만 공을 들인 것이 아니라, 내용에 있어서도 아주 알차다. 이 책은 그랜드캐니언이 노아 홍수의 증거가 아니라는 것을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과 노아홍수에 대한 믿음이 그것과 별개의 문제라는 것을 전제한다.

이 책은 그랜드캐니언을 토대로 지질학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만이 아니라 화석, 침식 등에 대한 과학적 정보를 읽는 독자들에게 쉽고 흥미롭게 전달한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상당하다. 또한 이 책은 이러한 과정 속에서 홍수지질학의 단편적이고 불균형적 학문적 주장을 비판함으로써, 기독교인으로 올바른 창조과학에 대한 올바른 접근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다.

창조과학을 하는 이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자신들의 전제를 증명하기 위해 과학적 증거를 취사선택하는 경향이 짙다. 그러다 보면 듣기에는 옳아 보이고 타당해 보이지만, 그에 반하는 증거가 더 많거나 편향적이고 왜곡된 사실이 등장하다 보니, 지지자들의 동의는 얻을지 몰라도 반대편이나 사회적 동의는 얻지 못할 때가 많다.

저자들은 각 파트에서 이런 문제를 지적하며 독자들에게 그 시야를 넓혀준다. 이번 출간은 기독교 출판으로서 기념비적이고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소장할 가치로도 높은 책이다.

문양호 목사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함께만들어가는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