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서균석 목사(한국히브리신학원 학장).

맥(잣대)에 의한 번역:

‘그러므로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의 본체인 너, 네가 판단하는 자로 존재하고 있는 사람의 세운 자야 너는 누구로 존재하고 있느냐 스스로 벗어 버리고 건짐을 받는 것이 너에게 없느니라 너의 어두움인 무지를 잘라내고 생명으로 결합한 친구의 본체를 네가 판단하는 것은, 너의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의 생명의 정신의 본체를 너 스스로 빚을 갚아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니라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의 본체인 네가 판단하는 자인 것은, 네가 그(친구)가 행하는 대로 행하고 있기 때문이니라’
 
본 절에서 ‘무론’,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정죄함이니’라고 된 한글성경은 오역이다. 한글성경은 하나님의 잣대가 적용되어 번역이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현상적인 문자 개념으로만 읽고 이해할 수밖에 없다. “남을 판단하고 있는 너는 아무 핑계를 댈 수 없느니라 남을 판단하는 내용인 죄를 네가 범하고 있어서, 그 죄를 범한 내용으로 네가 정죄를 당하고 있다”라는 것이다. 왜 그러한가? ‘네가 정죄하고 있는 사람’이 범하고 있는 죄를, 네가 똑같이 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무엇이라고 핑계를 댈 수도 없이 그대로 정죄를 당하게 된다는 말이다.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명사·여상·단수가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인 하나님이 근본 의도하신 높은 뜻과 계획을 말하고 있는 것인데, 문법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분들은 이 비밀을 열지 못하기 때문에 모르고 있다.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가 무엇이냐고 질문을 하는 분들이 너무나도 많다. 설명을 해도 이해가 안 간다고 한다. 생각을 바꾸면 간단하게 이해가 되는 내용인데, 생각의 머리를 바꾸지 못하고 있다. 창세기 1장의 천지만물을 창조한 6일을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라고 말하는 것이다. 천지만물을 창조한 6일이 아니고, 사람(아담)의 속사람을 개간하고 계몽하여 양육해 나가게 하여 하나님의 형상으로 이끌어 올리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성경이 기록된 이래로 온 세계 거민들이 창세기 1장의 6일은 천지만물을 창조한 6일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에, 확인도 할 것 없이 6일 창조가 옳다고 하는 데에 있다. 정치는 다수결의 원칙을 따르지만 진리는 그렇지 않다. 진리이기 때문이다. 진리는 비진리와 타협을 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잣대인 좁은 길로 가는 자는 적고, 사람의 잣대인 넓은 길로 가는 자는 많은 것이 현실인데, 진리를 확인해 보지도 않고 사람의 잣대를 따라 가겠다는 것인가? 하나님의 잣대인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는, 하나님께서 기초로 세워 놓으신 비밀이다. 그래서 성경이 기록된 이래로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는 하나님의 잣대라고 하는 말이 나온 적이 없다. 비밀로 해놓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잣대 속에 기초를 놓으신 것을 비밀로 해놓지 않고 문자로 된 글씨로만 성경이 기록되어 보존되어 내려 왔다면, 성경을 거역하는 세력들에 의해 성경은 수억 번 난도질당하고 변개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의 모든 비밀을 하나님의 잣대 속에 숨겨 놓으셨기 때문에, 성경은 절대로 변개될 수 없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잣대인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에 의해 열리고 해석되게 구성돼 있다. 이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로 시작되고, 진행하여, 결론이 나는 것이 성경이다.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의 본체가 그리스도 예수시다. 그리스도 예수는 비밀이다. 그리스도 예수로 시작되고, 진행되어, 결론이 나는 것이 성경이다. 성경의 문자인 글씨는 얼마든지 변개할 수 있겠지만 그리스도 예수는 변개할 수 없다.

“하나님의 잣대인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인 좁은 길을 익히고 적용하며 결어가고 있는 너인데, 너는 판단을 하는 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잣대에 의해서 세워진 자가 아니라 사람의 잣대에 의해서 세워진 자”라는 말씀이다. 판단은 ‘둔()’인데 판단하다, 판결을 내리다, 심판을 하다는 뜻이다. 판단하다라는 말은 옳고 그른 것에 대해서 판단하는 단순한 개념이 아니고, 심판을 해서 판결문을 작성하는 것까지의 무서운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너는 지금 어떤 존재로 있느냐, 심판하는 자리에서 서 있지 않느냐, 네가 하나님 자리에 올라와 있지 않느냐”는 말씀이다. “너 자신이 교만의 사람의 잣대·자리에서 회개하고 그 자리를 벗어나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조짐이 보이지 않고 있다”고 책망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심각한 것은 한글성경에는 “남을 판단한다”고 번역이 되어 있는데 ‘남’이 아니고 ‘하발()’, 친구·동료다.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 안에서 어두움인 무지를 잘라내고 생명으로 결합한 친구다. 하나님의 잣대에서 벗어나서 사람의 잣대로 빗나가 있는 자가 아니라, 동일한 하나님의 잣대 안에서 걸어가고 있는 친구를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먼저 간 자가 나중 되고 나중에 가는 자가 먼저 되는 것이 천국 가는 길이다. 먼저고 나중이고를 따지지 않고 똑같이 걸어가는 길이 좁은 길이다. “그런데 같이 길을 걸어가면서 판단하는 너는 누구냐? 판단하는 너에게 책임이 있다”는 말씀이다. 판단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왕국은 토끼와 거북이의 경쟁이 아니다. 마음땅 안에, 말씀이 육신의 몸을 입으신 그리스도 예수의 몸을 세우면서 가는 길이다.

서균석 목사는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
하늘교회(통합) 담임목사 은퇴
한국히브리신학원 학장

문의: 010-3728-0245
홈페이지: http://www.koreahebre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