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 에프렘 시리아 고대 정교회.
▲모르 에프렘 시리아 고대 정교회. ⓒAA제공
이스탄불시리아고대재단은 현대 터키 공화국에 세워진 최초의 교회인 ‘모르 에프렘 시리아 고대 정교회’(Mor Efrem Syriac Orthodox Church)가 거의 완공돼 2달 안으로 문을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교회의 기초는 지난 2019년 2월 이스탄불 예실코이 구역에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참석한 기념식 당시 놓였다. 

데일리 사바(Daily Sabah)는 사이트 수신(Sait Susin) 재단 이사장의 말을 인용해 “터키 공화국 최초의 교회를 열기 위해 마무리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했다.

수신 이사장은 “건물의 1층은 교인들이 세례, 조문, 혼인 등의 예식은 물론 각종 모임과 간담회를 여는 문화홀이, 2층은 기도와 예배를 위한 공간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 외 주교의 거실, 객실, 주차장이 있다. 

수신 이사장은 터키의 아나돌루 에이전시와의 인터뷰에서 “터키 공화국 시대 교회가 있지만, 모르에프렘시리아고대정교회는 현대 터키에서 맨 처음부터 지어진 최초의 교회”라며 “교회가 공식적으로 세워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큰 자부심을 준다”고 말했다.

수신은 “아시리아 공동체가 인구밀도가 높은 이스탄불의 예실코이, 바키르코이 및 플로리아 지역에 교회가 필요하다”고 했다.

아나돌루 에이전시는 “시리아 내전으로 터키에서 소수 시리아 기독교인이 증가한 것이, 터키가 새로운 교회를 짓기로 동의한 주된 이유 중 하나”라며 “교회가 완공되면 이스탄불에 거주하는 약 17,000명의 시리아정교회 신자들을 섬기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터키 당국은 과거 시리아 기독교인을 위해 최대 4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난민 캠프를 세운 바 있다.

AFP통신에 따르면, 새로운 교회에 대한 계획은 2015년에 처음 공개됐는데, 이는 오스만 제국에 이어 1923년 현대 공화국이 수립된 이후 처음으로 건축된 교회가 될 전망이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에르도안 대통령 집권 기간 종교의 자유에 대해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2016년 정부는 전쟁으로 피폐해진 남동부 도시 디야르바키르에 남아 있는 마지막 기독교 교회 6개를 압류하고 국유화했다.

이 결정은 아르메니아, 시리아, 칼데아 공동체와 여러 교회 재단에 분노를 불러일으켰고, 이들은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10월, 터키 남부의 한 시리아 수도원은 터키군에 점령당해 군병원으로 탈바꿈한 뒤 감옥과 창고로 사용된 지 약 100년 만에 신자들에게 문을 재개방했다.

터키군은 제1차 세계대전 도중 수도원을 점령했고, 전쟁이 끝난 후 건물은 기독교 공동체에 잠시 반환됐다. 그러나 몇 년 후 수도원은 군병원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결국 감옥이 됐고, 나중에 창고로 개조됐다.

많은 시리아 기독교인들은 여전히 ​​예수님이 사용하신 언어에서 나온 신아람어를 사용하며, 기독교의 첫 세기부터 터키 남부에서 살아 왔다.

추산에 따르면,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수십만 명의 아르메니아인, 그리스인 및 기타 기독교인들이 터키 당국에 의해 살해됐으며, 오늘날 시리아 기독교인은 터키 인구의 극히 일부를 구성하고 있다.

2020년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스탄불의 랜드마크이자 교회로 변신한 박물관인 하기아 소피아를 모스크로 개조했다. 그 또 다른 고대 정교회인 코라에 있는 ‘성스러운 구세주 교회’(‘카리예 박물관’으로도 알려짐)를 모스크로 바꾸라고 명령했다.

서기 537년에 그리스정교회로 지어진 이스탄불의 하기아 소피아는, 15세기 술탄 메흐메드 2세가 도시를 점령해 오스만 제국의 모스크로 개조하기 전까지 900년 동안 동방 기독교의 중심지였다. 934년 현대 터키의 건국자인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는 하기아 소피아에서 예배를 금지하고 박물관으로 지정했다.

원래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4세기 초에 지은 홀리 세이비어 교회는 1453년 오스만 투르크가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한 지 약 50년 후에 카리예 모스크로 개조됐다. 이후 1945년에 이 건물은 터키 정부에 의해 박물관으로 지정됐다. 이 박물관은 미국 미술사가들이 원래 교회의 모자이크 복원을 도운 후 1958년 공개 전시를 위해 문을 열었다.

많은 사람들은 에르도안 대통령이 야당의 조기 선거를 요구에 따라 그의 보수적 기반의 지지를 얻기 위한 시도로 하기아 소피아를 모스크로 바꾸기로 결정했다고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