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규 교수(총신대 신학대학원 명예교수)
▲총신대가 120주년을 맞아 개최한 학술세미나에서 박용규 명예교수(총신대 신학대학원)가 “120년의 역사는 한 마디로 영광과 질곡의 역사”라고 말했다. ⓒ송경호 기자
총신대학교가 120주년을 맞아 개최한 학술세미나에서 박용규 명예교수(총신대 신학대학원)가 “120년의 역사는 한 마디로 영광과 질곡의 역사”라며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교회 중심의 전통적인 칼빈주의 장로교 목회자 양성 기관으로 흔들리지 않고 자리를 잡았다”고 평했다.

박 교수는 “성경의 무오성과 복음전도와 해외선교의 기치를 강하게 내걸고 민족복음화와 복음주의 해외선교운동을 주도하였다”며 “총신처럼 120년 동안 처음 가졌던 본래의 신앙을 아름답게 계승해 온 신학교의 역사도 현대에 찾아보기 힘들다”고 논했다.

그러면서도 “신앙의 순결을 강조하고 정통 보수신앙을 강조한 나머지 사회 문화적 책임을 게을리하고, 이원론적 시각이 강해 신앙과 삶이 괴리됐다는 평가를 받았다”는 지적도 했다.

교리·사변주의로 흐르지 않고 성령 역동성 존중
개혁주의 전통, 복음주의 유산 견고히 계승 발전

박 교수는 14일 총신대 사당캠퍼스에서 ‘총신 120년의 역사, 신앙, 평가: 평양장로회신학교부터 총신대학교까지 1901-2021’을 주제로 한 발제에서 “평양신학교부터 내려온 120년의 총신의 역사는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교회 중심의 전통적인 칼빈주의 장로교 목회자 양성 기관으로 흔들리지 않고 자리를 잡았다. 신학교가 교리주의나 사변주의 신학으로 흐르지 않고 성령의 역동성을 존중하고 인정하며 성령충만한 목회자 양성을 언제나 강조하였다”고 말했다.

이어 “한편으로 자유주의를 경계하고 다른 한편으로 극단적인 근본주의 분리주의를 경계했다. 한 마디로 1979년 총신의 신학적 입장에서 밝힌 대로 ‘개혁주의 전통과 복음주의 유산을 물려받은 총신’의 신앙 전통을 견고하게 계승하고 발전시켜 왔다”고 했다.

그는 “한국에 파송된 초기 개척 장로교 선교사들은 19세와 20세기 초 영미에서 일고 있던 학생자원운동과 복음주의 해외선교운동 영향을 받고 내한한 선교사들이었다”며 “출신국가와 출신학교가 어디든지 네비우스선교정책에 근거한 성경중심적인 선교와 신앙교육을 실시하였다. 평양신학교 설립은 사경회의 연장선이었다. 그 때문에 처음부터 평양신학교는 교회를 위한 신학을 중요한 신학교육의 목적으로 삼았다”고 했다.

박 교수는 “평양신학교는 실천적인 목회자를 양성하였고, 신학교육과 목회현장이 전혀 괴리되지 않아 긴밀한 유대관계를 가졌다. <신학지남>은 재학생들과 졸업생들의 목회의 길잡이였고 안내서였다”며 “신학교 교장 마포삼열이 총회장이 되었고, 신학교 교수 남궁혁이 총회장이 된 것도 총회와 신학교가 긴밀한 유대관계를 잘 반영해 준다”고 했다.

민족대표 33인중 5명 배출, 민족운동 구심점
민족복음화와 복음주의 해외선교운동 주도

총신대학교 120주년
▲총신대학교의 120주년을 기념하는 깃발 배너가 사당캠퍼스에 걸려 있다. ⓒ송경호 기자
이어 “평양신학교는 한국교회 부흥운동의 발흥과 저변 확대의 주역이었다”며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이 장대현교회에서 시작되었고, 그 성령의 불길은 곧 평양장로회신학교와 평양 전역으로 확산되었으며, 길선주를 비롯한 평양신학교 재학생들은 그 불길을 전국으로 가지고 달려갔다”고 전했다.

또 “평양신학교는 민족운동의 구심점이었다. 33명의 3.1운동 선언서 서명자 가운데 16명이 기독교이었고 그 중 7명이 장로교인이었으며 이들 중 5명이 평양신학교를 졸업하였거나 재학한 인물이었다”며 “평양신학교 출신들이 기독교민족운동만 아니라 물산장려운동을 비롯한 사회계몽운동을 선도했다”고도 했다.

박 교수는 특히 “성경의 무오성과 복음전도와 해외선교의 기치를 강하게 내걸고 민족복음화와 복음주의 해외선교운동을 주도하였다. WCC 에큐메니칼 노선의 교단들이 하나님의 선교를 외치며 교회 중심의 미전도종족의 선교를 게을리할 때, 총신 출신의 선교사들이 한국교회 해외선교운동을 견인했다”며 “그 결과 1970년대 대중전도운동을 견인하고 1984년 한국선교 100주년대회 그리고 이후 진행된 놀라운 해외선교운동에 총신 출신들이 중요한 리더십을 발휘했다”고 평했다.

신앙의 순결 지나친 강조, 분리주의 세계관 심어
성경을 표준 삼아 복음주의 전통 계승해 나가야

하지만 박 교수는 지나친 보수신앙과 분리주의적 교회관으로 인한 해결 과제도 제시했다. 그는 “1959년 예장통합과 분열된 후 예장합동은 선교회의 도움 없이 세계교회와의 교류를 단절하고 독자적으로 자생의 길을 찾으며 교회를 성장시키고 한국교회 안에 세계선교운동을 견인하였다”며 “분리주의적 교회관은 신앙의 순결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분리주의적 세계관을 심어주어 총신 안에 역사적 칼빈주의 신앙의 유산을 폭넓게 계승하고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도전을 주는 데 큰 장애물이 되었다”고 전했다.

더욱이 “신앙의 순결을 강조하고 정통 보수신앙을 강조한 나머지 사회 문화적 책임을 게을리하고 성속의 이원론적 시각이 강해 신앙과 삶이 괴리되고 윤리적 수준이 낮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신앙의 순결을 앞세운 분리주의적 시각은 사회와 문화 변혁을 강조하는 역사적 개혁주의 전통과는 전혀 다른 것이며, 그런 경향 때문에 개혁주의를 강조하고 표방하면서도 정작 비개혁주의적인 현상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 것”이라며 “이것은 총신과 예장합동이 극복해 나가야 할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120년의 총신의 역사는 주권적인 전능하신 하나님의 특별한 간섭과 섭리의 역사였다. 구 프린스턴신학교와 몇몇 학교를 제외하고 총신처럼 120년 동안 처음 가졌던 본래의 신앙을 아름답게 계승해온 신학교의 역사도 현대에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 의미에서 총신 120년은 분명 자랑스러운 역사요, 아름다운 신앙의 역사”라고 평했다.

그러면서 “설립 120주년을 맞는 총신은 성경을 신앙과 신학의 정확무오한 표준으로 삼고 극단적인 방향으로 나가지 않고 역사적 칼빈주의 노선에서 화란개혁주의, 미국 구학파 장로교 전통, 역사적 복음주의 전통을 존중하고 계승해 나가야 할 것”이라며 “자랑스럽고 아름다운 신앙 전통을 계승하면서 새로운 120년의 역사를 만들어 가기 위해 한국교회와 세계교회의 미래의 지도자들을 양성하는 일에 더욱 더 힘을 쏟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