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봉독>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오늘 말씀의 제목은 “사명”입니다. 한번 따라해 주세요. “사명”, (사명). “사명”, (사명). 출애굽기 3장의 말씀을 중심으로 사명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눕니다. 사람이 한 평생 살아가면서 분명한 삶의 목적과 꿈을 가지고 계획을 갖고 살아가면 그 삶이 의미 있고 보람되고 행복한 삶이 됩니다. 그러나 삶의 목표가 분명하지 않는 사람은 그 삶 자체가 힘들고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꿈과 목표가 있으면 어떠한 어려움도 참고 견디고 이겨나가는데 꿈이 없고 목표가 없으니 늘 방황하는 삶을 살면서 낙심하고 상처받고 문제와 어려움에 갇혀 사는 그러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감사한 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하나님의 은혜로 살게 되었는데 우리 각자 각자에게 하나님께서 사명을 주시고 그 사명을 이루어나가도록 우리를 이끌어나가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사명이라 함은 굉장히 그 단어가 거창한 것 같고 또 내게 큰 부담을 주는 것 같은 그런 단어라고 생각되지만은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정말 내가 주님을 위해서 기쁘게 감당하는 것, 그것이 사명입니다. 빵을 만드는 사람이 ‘빵 만드는 게 너무나 좋아서 이 빵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준다. 그게 사명이에요. 사업을 하는 사람이 그 사업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끼치고 그것을 통해서 또 얻어 들이는 수입으로 선한 일을 행한 것이 너무 기쁘고 즐거운 사명입니다.

어떤 분은 너무나 공부 하는 게 좋아서 앉기만 하면 몇 시간 동안 자리에 일어나지 앉고 책을 읽고 공부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또 그게 사명이에요. 병든 사람을 돌보고 고치는 것 그것이 너무나 기쁘고 좋아서 전문의의 길로 간다면 것이 사명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주님 안에서 가장 기쁘게 할 수 있고 감당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야 됩니다. 그것이 사명입니다.

예수님의 때에 우리 모두에게 재능을 주시고 사명을 주셨는데 우리가 그 사명을 이루어 나가는 주님의 귀한 자녀들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은 모세가 사명을 받는 장면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살펴보기 원합니다.

1. 삶의 결단

우리가 먼저 사명을 받기위해서는 우리의 삶에 결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겠다. 새로운 삶의 결단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양을 치다가 호렙산 근처까지 왔을 때에 가시떨기에 불이 붙었는데 가시 떨기는 타지 아니하고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고 놀라서 이 어찌 된 일인가 그 앞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출애굽기 3장 5절에,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그곳이 바로 거룩한 곳입니다. 예배드리는 이곳이 바로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이기 때문에 이곳이 바로 거룩한 곳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우리를 다스리시고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는데 하나님과 함께하는 그 자리가 어느 곳이든간에 그곳이 바로 거룩한 땅이 되는 것입니다. 내 일터가. 학생들은 학교가. 주부는 가정이. 주님의 임재가 있을 때 거룩한 땅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임재를 체험하려면 내 삶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신을 벗으라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신은 땅을 밟고 다니는 것입니다. 신을 신고 밖에 나가 다니다보면 땅의 먼지가 묻고 더러운 것이 묻게 되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죄악세상을 살다보면 알게 모르게 더러운 죄의 때가 묻게 되는 것입니다. 생각하는 것, 보는 것, 듣는 것, 말하는 것이 죄일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청소년들의 범죄 대부분이 모방범죄라고 합니다. 누가 죄를 짓는 것을 보고, 그냥 따라하기 때문에 죄를 짓는다고 하는데, 청소년뿐 아니라 어른들도 너무나 죄에 쉽게 물들기 쉬운 그러한 시대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이 시대를 본받지 말라고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로마서 12장 2절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가기 위해서 죄의 때로 얼룩진 그 신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환상 가운데, 하늘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보고 자신의 죄를 고백합니다. 이사야 6장 5절에, “그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야훼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기 전까지는 자신이 그렇게 죄인인 것을 몰랐어요. 자기는 늘 의롭게 살고 있었고, 선지자로서 백성들에게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그러한 지도자인 것만 알았는데, 직접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나니까 ‘화로다, 망하게 되었도다.’ 내가 죄인중의 또 죄인의 모습으로 살고 있었구나 라는 것을 그는 알고 깨닫고 고백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의 죄를 고백할 때, 하나님께서 화로에서 숯불을 가져다가 천사를 통하여 그 입술에 대므로 그 죄를 사하여 주신 장면이 나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거룩하지 못한 우리가 나갈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예수의 보혈로 씻음 받아 정결한 모습이 되어 주님 앞에 나가야 합니다.

사도행전 3장 19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할렐루야. 우리가 죄와 불의에서 떠난 정결하고 깨끗한 모습으로 바뀌어 질 때 하나님 앞에 귀하게 쓰임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모세에게 신을 벗으라고 했는데, 모세가 신고 있던 신은 어떠한 신이었습니까? 모세가 40년 동안 애굽에서 왕자의 신분으로 살고 있었을 때 신었던 신은 왕자의 신인데 그 신이 바로, ''내가 최고다.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내가, 내가.'' 라고 하는 그러한 모습이 담긴 교만의 신이었습니다. 얼마나 교만했는지 자기 스스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애굽 사람을 쳐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살인자가 되었고, 도망자가 되었습니다. 왕자의 신분으로 자라서 한없이 교만했던 그가 사람을 쳐서 죽인 그 순간, 그의 신발이 살인자의 신이 된 것이고, 광야로 도망가 40년 동안 사는 동안 그의 신은 도망자의 신이요, 패배자의 신이 되었습니다.

모세는 40년 동안 그 신을 신고 광야에서 양을 치면서 한없이 좌절하고 낙심했습니다. 이제 내 인생은 이렇게 이 광야에서 사라져 버리는구나. 나의 젊었을 때 모든 꿈은 사라지고 이제 나는 여기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겠구나. 그의 나이 팔십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한 달도 아니고 일 년도 아니고 사십년을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광야에서 양을 치는 그 모세의 모습은 어떠했겠습니까. 모세의 마음은 무너지고 또 무너지고 또 무너졌을 것입니다. 한때 그가 신었던 교만과 야망의 신이 이제는 절망과 자포자기의 신으로 바뀌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와 같은 절망의 신을 신고 오는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신을 벗어라.'' 다시 말씀하신 것은, 그 말씀 속에 담겨있는 뜻을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너는 과거의 신을 벗어라, 옛사람의 모습을 벗어버려라. 더 이상 절망의 신을 신고 있지 말라.'' 하나님 앞에 쓰임을 받기 위해서는 우리는 결단해야 됩니다. 이것은 과거의 모든 것을 단절하고 새롭게 변화된 모습으로 주님 앞에 나가는 것을 말씀합니다.

너도 나도 신고 있는 우리 삶의 죄의 신을 벗어야 합니다. 절망의 신, 원망 불평의 신, 부정적인 생각의 신, 교만의 신을 벗어야 되는 것입니다. 위선의 신, 탐욕의 신, 남에게 상처를 주는 강한 자아의 신, 남을 용서하지 않고 남을 늘 정죄하고 남을 비판했던 그러한 비판의 신도, 음란과 방탕과 세상 쾌락에 빠졌던 죄악의 더러운 신도 주님 앞에서는 다 벗어버려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위기입니다.

에베소서 4장 22절로 24절은 말씀합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

할렐루야. 우리가 하나님 앞에 쓰임받기 위해서 사명자로서의 삶을 살기 위해서 결단해야 됩니다. 죄의 모습을 청산해야 됩니다. 이 더러운 신발을 벗어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더러운 옷을 벗어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리처드 백스터 목사님은 진정한 회개에 대해서 이와 같이 말씀하십니다. “회개는 ‘마음의 경향’과 ‘삶의 풍조’를 완전히 ‘변화’시키고, 이전에 ‘육신의 행복’을 위해 취했던 모든 것을 전격적으로 ‘폐기’하는 것이다. 또한 ‘전과 같은 목적으로 사는 것’과 ‘이전에 추진하던 꿍꿍이와 속셈과 계획’을 즉시 중단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회개는 이 말씀 그대로 되는 것이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아멘.

여러분 주님 앞에서 사명자로 쓰임받기 위해서 오늘 결단하고 과거의 모든 절망과 상처와 고통과 괴로움을 담았던 그 부정적인 신들을 주님 앞에 다 벗어 놓으시기 바랍니다.

또 신을 벗는다는 것은 권리 포기를 의미합니다. 나의 모든 권리를 포기합니다. 하나님,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는 이제 과거의 신을, 절망의 신발을 다 벗어 버리고 내 권리를 포기하고 주님께 모든 것을 맡깁니다. 주여, 내가 주 앞에 왔사오니 나를 주님 써 주시옵소서. 이 순간 내가 지금까지 신고 살았던 교만과 탐욕과 강한 자아의 모습이 담긴 이 신발을 다 벗어놓고 새로운 모습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기 원합니다. 이러한 결단이 여러분의 삶을 하나님의 큰 은혜와 축복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2. 하나님의 음성

둘째로 우리는 모세에게 들려진 하나님의 음성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 신발을 벗고 엎드려 두려워 떨고 있는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출애굽기 3장 7절에, “야훼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말씀 가운데 이 동사 셋을 주목해야 됩니다.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의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할렐루야. 하나님은 왜 나를 이렇게 내버려 두셨습니까.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데 왜 나를 그대로 내버려 두시고 나를 돕지 않으십니까. 이렇게 너무 힘들어서 부르짖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절대로 여러분을 외면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 순간도 여러분을 지켜보고 계신 것입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그런 부르짖음이 허공에 외치는 메아리 같아도,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이 그 부르짖음을 듣고 계십니다. 너무 힘들어서 차라리 이렇게 세상을 떠났으면 좋겠다는 그러한 극한 고통과 괴로움이 다가왔을 때에 아무도 나를 돌보지 않는다고 생각한 그때에, 주님이 우리의 심령을 아시고 우리를 그 사랑의 품에 품으시사, 우리를 어루만져 주시는 것입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놀라운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그때까지 절대 포기하지 말고, 물러서지 말고, 주님 앞에 부르짖고 또 부르짖고 또 부르짖으시길 바랍니다. 주님이 보시고 들으시고 아시고 응답하실 것입니다. 시편 40편 1절에, 성경은 말씀합니다. “내가 야훼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들으셨도다 들으셨도다(할렐루야)”.

주님이 보시고 들으시고 아시는 그 순간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을 때 마다 미국 워싱턴에서 교회를 섬기면서 건축할 때의 모습이, 그때의 일이 늘 기억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땅을 한 3,000평을 사서 교회 건축이 시작되었습니다. 1989년도에 건축이 시작되었는데 그때 출석 교인들이 삼백 명입니다. 그런데 건축을 계속 진행하기 위해서 매달 그 당시 기준에 14만 달러 약 일억 오천만원. 지금 한 이십오, 육년 전이니까 지금으로 말하면 훨씬 더 많은 금액이겠지요. 그런데 매달 십사만 불 이상 있어야 건축이 진행됩니다. 그런데 삼백 명 교인이 매달 그렇게 헌금을 한다는 게 쉽지가 않습니다.

미국이라고 하는 이민사회의 삶이 어떻게 보면 한국의 삶보다 훨씬 더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 당시 한 달 나가서 열심히 일을 하고 세탁소 일을 하고 해서 얻는 수입이 천불정도 밖에 안 되는 분이 많았어요. 한 달에 백만 원 정도 밖에 수입을 못 얻고 있는 그 때에 매달 삼백 명 정도의 성도가 일억 오천만원씩 헌금을 해야 한다는 것은 그것은 보통 힘들고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공사가 오 개월, 육 개월쯤 지나고 나니까 건축비를 더 이상 줄 수가 없어서 건축비가 한 달, 두 달 밀립니다.

어느 주일날 저녁인데 공사 현장에 트레일러에, 제가 그날 저녁 예배 준비하느라고 혼자 책상에 앉아서 성경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문을 두드리더니 누가 문을 탁! 하고 열고 들어옵니다. 미국 현장 감독하고 거기 공사반장하고 세 사람이, 덩치가 이렇게 큰 사람이 탁하고 들어왔어요. 그런데 얼굴이 막! 울그락 붉그락. 화가 나서 들어오면서, 그때 모습을 전 잊지 않습니다.

저를 탁!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저한테 소리치기를 “PastLee! You are the liar. We gonna sue you.” 당신 거짓말쟁이요, 우리가 당신 고발하겠소. 이달 말까지 밀린 공사비 안 주면 우리가 공사 장비 다 철수하고 그리고 당신을 법적으로 고발을 할 테니까 이달 말까지 공사비 해결하시오. 그리고 나가버렸어요. 그 상황에 아무 생각도 안 나더라고요. 어디다가 돈을 빌려달라고 얘기할 데도 없고, 돈을 빌려달라고 할 엄두도 나지 않고. 그냥 뭔가 쾅! 하고 한데, 이게 망치로 맞은 거 같아서 그 자리에서 가만히 있었어요. 암말도 못하고.

그 분들이 나가고 난 다음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주님, 보셨지요? 주님, 아시지요?” 그 말 외에는 제가 드릴 수 있는 기도가 없었어요. 다음 날 새벽이 되었는데요. 답답하고 힘들고 어려워서 “주님, 보셨지요? 주님, 아시지요? 주님, 보셨지요? 주님, 아시지요?” 한 시간 내내 그 기도만 했어요. 다른 말, 아무 말도 할 말이 없었어요. 누가 옆에서 제 기도를 들었으면 무슨 기도가 저런가. “보셨지요? 아시지요?”

다음 날 또 새벽에 나와서 기도를 하는데 똑같은 기도예요. “주님, 보셨지요? 주님, 아시지요?” 누구에게 이 사실을 말할 수도 없고. 주님이 보시고 주님이 아시니까 주님께 그냥 매달리는 겁니다. “주님, 보셨지요? 주님, 아시지요?” 왜, 성도들도 너무나 힘들게 이민 생활하면서 열심히 옥합을 깨트려 헌금을 해가지고 그렇게 한 달 한 달을 지내고 있는데 강대상에서 그런 교회 어려운 이야기를 할 수가 없어요. 교회 건축하는 동안 단 한 번도 건축헌금에 대해 얘기한 적도 없고 어렵다는 얘기한 적이 없습니다. 성도들이 다 힘든 이민생활하고 있는데 어떻게 강대상에서 건축헌금을 해달라고 부탁을 합니까? 그저 그냥 주님 앞에 매달리는 거예요. “보셨지요? 주님, 아시지요?”

요즘 제가 여의도교회를 섬기면서 느끼는 것은 전 세계에서 말이죠, 어렵기만하면 달려오든지 편지를 보내갖고 “목사님, 이렇게, 이렇게 해서 얼마가 필요하오니 기도하는 가운데 목사님 제가 요청합니다. 꼭 들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전 그때 여의도교회로 달려올 생각을 못했어요. 전 어떻게 제자가 스승한테 어려울 때 도와 달라 그러나, 제자의 도리가 아니다. 그래서 손을 벌려본 적이 없습니다. 단 한 번도. 그런데 요즘은 너도 나도 그냥 어렵기만하면 금액도 천문학적인 숫자가 막 올라옵니다.

그런데 수요일 날이 되었습니다. 수요일 날 아침에 새벽에 기도하는데 한 시간 내내 “주님, 보셨지요? 아시지요? 보셨지요? 아시지요?” 누구에게도 얘기를 못하고 주님 앞에서 소리도 못 지르고 그냥. 옆에서 다 들을까봐. 주님 앞에 내 마음을 토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아침 9시쯤 전화가 왔어요. 사무실로. 사무실로 왔는데 전화가 온 분은 우리교회 교인이 아니고 이웃교회 미국성결교회에 다니는 미국 성도인데 이분은 조용기 목사님 테이프를 듣고 은혜 받아가지고 절 찾아왔더라고요. 그래서 기도를 가르쳐 달래요.

기도는 가르쳐 주는 게 아니라 와서 하면 된다고. 우리교회 새벽 기도 나오라고 하니까 그때로부터 새벽기도를 하루도 안 빠지고 나와요. 미국교회는 새벽기도가 없으니까요. 저희교회를 이분이 교회 짓는 2년 반 동안 하루도 안 빠지고 새벽기도를 나와 가지고. 제가 밤 열한시 열두시 심방 갔다 와가지고 한 두시에 잠이 들어도 그분 때문에 또 기어서라도 나가야 돼요. 하나님이 이년 반 동안 기도하라고 보초를 세워놓으셨어요.

그런데 이 분이 연락이 왔어요. 갑자기 절 보자고요. 그래서 점심때 식당에서 만났는데 흥분해서 오셨더라고요. 무슨 일인가 했더니. “목사님, 목사님. 제가 오늘 주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래요?” “제가 오늘 주님 음성을 들었는데 이영훈 목사가 어려우니 도와주라고 하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저는 이웃교회 교인이기 때문에 단 한 번도 건축에 대해서 도와달라고 한 적도 없고 그냥 기도만 해달라고 그랬지요. 그런데 저 분한테 조르니까 그쪽을 누르셔가지고. 그런데 그 다음에 이 분이 아침에 기도한 내용을 말씀하는 겁니다.

“그런데 저는 회사를 경영하기 때문에 돈이 없습니다.” 현금이 많지 않다고 제가 하나님께 “하나님, 그런데 제가 현금이 별로 없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네가 가진 전 재산을 다 갖다 줘라” 그러시더래요. 내가 갖고 있는 전 재산이 뭔가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자기가 살고 있는 집, 그리고 자기가 집 두 채 더 사놓은 거. 집 세 채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 날 집 세 채 문서를 저한테 가지고 왔어요. 목사님, 목사님한테 드리니까 이거가지고 목사님 건축할 때 필요한대로 쓰십시오. 자기 살고 있는 집까지 가지고 왔어요.

그러면서 한마디 덧붙여서 말했습니다. “목사님 부탁이 있는데요.” “네” “절대 이것은 무명으로, 제 이름 알리지 말고, 아무도 모르게 교회 헌금해주세요.” 그래서 지금도 워싱턴 순복음교회 교인들은 누가 헌금했는지 모릅니다. 집 바쳤는지 몰라요. 어느 이름 없는 사람이 집 세 채 바친 걸로 알고 있어요. 어! 그러고 나서 제가 아침에 기도 응답받았으니까 빨리 드린다고. 목사님, 마음 바뀌기 전에 빨리 가져가시라고. 그래서 얼른 받았지요. 할렐루야.

주일 날 제가 간증을 했습니다. 우리 교회 건축이 지금 어려운 상황인데 어느 이름을 밝히지 않은 분이 집 세 채를 냈다고. 성도들이 감동해서 ‘아멘, 아멘하고 할렐루야 하고, 박수치고.’ 그다음 옥합을 막 깨트리는데 그때로부터 교회 지을 때까지, 준공할 때까지 단 돈 1원도 빚지지 아니하고 건축을 마무리했습니다. 할렐루야. 1년 6개월 동안 하나님께서 매달 꼭 필요한 금액을 채워주셔서 다 건축을 하고 조용기 목사님 모셔서 헌당예배를 92년도에 드리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하니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셨기 때문에 이 아름다운 교회가 지어지게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이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우리 기도를 듣고 계십니다. 우리의 모든 형편과 처지를 알고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반드시 응답해주시고 우리 모두에게 기적을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낙심하지 마십시오. 포기하지 마십시오. 뒤로 물러가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그 일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십시오.

출애굽기 3장 8절에,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내가 너희 기도를 들었다. 너의 그 고통을 내가 알았다. 내가 내려가서 너희를 건져내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여 내리라. 할렐루야.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이고 축복입니다. 세상의 음성을 듣지 마십시오.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사야서 41장 10절 말씀. 우리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이사야서 41장 10절 말씀을 다 같이 고백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아멘)”.

3. 사명을 주시는 하나님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사명을 주신 하나님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기 원합니다. 출애굽기 3장 9절로 10절에,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아멘. 아멘. 하나님이 사명을 주셨어요. 그런데 모세가 얼마나 깨어지고 낮아졌던지 40년 전에는 ‘내가, 내가’ 하던 모세가 대답하는 거 보세요. 출애굽기 3장 11절에,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내가’가 다 사라졌어요. “내가 누군데 이런 일을 할 수 있습니까?” 다시 주님 말씀하십니다.

출애굽기 3장 12절에,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이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하리라. 그리고 이곳에서 나에게 예배를 드리게 될 것이라. 할렐루야. 하나님이 약속하십니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하리라. 반드시 너와 함께하리라. 반드시 너와 함께하리라. 세상 끝 날까지 너와 함께하며 내가 너에게 약속한 모든 것을 이루어 줄 것이라.

여러분 오늘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을 향한 주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 사명을 깨달아 알아서 반드시 우리와 함께하셔서 그 사명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나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어려운 형편을 보시고 우리의 부르짖는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의 아픈 마음, 고통을 아시는 주님, 그리고 우리를 건져내서 인도해주시는 주님의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한번뿐인 인생을 살아 갈 때 우리 각자 각자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깨달아 알아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저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은혜 내려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2015. 3. 22. 주일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