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봉독>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오늘 창세기 50장 19절로 21절 말씀을 가지고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 이와 같은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함께 따라하시겠습니까?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우리가 한 번 뿐인 인생을 살아가는데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하고 어렵게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누구는 물질의 문제라고 얘기할 수도 있고 육신의 질병을 얘기할 수도 있고 사람과의 관계를 얘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와 어려움은 어디 있느냐? 내 마음 속에 있습니다. 내 마음 속에 있는 절망, 상처, 내 마음 속에 있는 미움, 증오심, 이러한 것들이 늘 우리를 힘들게 하고 어렵게 만듭니다. 이러한 것들을 다 털어 내버리고 잊어버리고 앞을 향해 달려가면 참 좋겠는데 우리가 연약하기 때문에 늘 상처의 지배를 받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처가 대부분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 다가오는데 참으로 힘든 것은 이러한 상처가 내가 믿고 의지했던 사람들, 신앙생활 할 때 나보다 먼저 예수를 믿은 사람들, 또 가까운 가족, 친척으로부터 오는 상처가 됐을 때는 참 그 어려움을 이기기가 힘듭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이 아픔과 상처는 다 지나가는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 아픔, 이 상처가 전부라 생각을 하고 거기에 둘러싸여서 늘 괴로워하고 슬퍼하고 아파하며 고통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조금 내가 약해지기만 하면 또 과거의 상처가 나를 붙잡아서 또 나를 절망하게 하고 또 나를 좌절하게 만드는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 이제부터 우리가 상처를 바라보는 우리의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이 상처는 나를 온전케 만드시는 하나님의 훈련이다. 할렐루야. 신앙인의 눈으로 상처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절대로 상처가 여러분을 절망 가운데로 몰아넣고 주저앉히려고 여러분에게 다가온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하여 하나님이 나를 다듬으시고 깨뜨리시고 낮추셔서 모든 면으로 부족함이 없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시고 나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믿음으로 바라보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이 세상 살아가는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가 없으면 아무것도 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우리가 어떤 문제와 어려움을 당했든지 간에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어려움을 극복하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1. 우리를 둘러싼 대적들

먼저 우리를 둘러싼 대적들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모든 사람에게 다 사랑받고 인정받고 존귀하게 여김을 받고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이유도 없이 우리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들도 있고 또 더 나아가서 근거 없는 비방, 인신공격으로 우리를 쓰러뜨리려고 모함하는 그러한 악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우리를 대적하는 사람들이, 내가 모르는 사람이면 좋은데 때로 가까운 사람의 경우에는 큰마음의 상처를 남게 됩니다.

구약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의 경우가 그러했습니다. 요셉의 형들이 아주 극도로 동생 요셉을 미워한 것입니다. 그의 형들은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한 그 요셉이 미웠습니다. 아버지가 또 자기들과는 다르게 동생에게 아름다운 채색 옷을 지어 입힌 것에 대해서 심히 못마땅했습니다. 그 옷을 볼 때마다 마음속에 시기와 질투와 미움이 솟구쳐 올랐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아도 미운데 이 요셉이 자기들의 잘못한 것을 아버지에게 가서 이릅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요셉이 야단맞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그래서 동생임에도 불구하고 형들의 마음속에 미움과 분노가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요셉이 와서 말하기를 "형님들, 형님들. 내가 꿈을 꾸었는데 글쎄 밭에 내 곡식단이 서있는데 형님들의 곡식단이 내 곡식단에 다 절을 하더라고요."

장차 자기가 높은 사람이 되어서 형들이 자기 앞에 절하게 된다고 하는 그런 얘기를 할 때 미움이 변하여 분노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심부름을 하기 위해서 요셉이 형들을 찾아왔을 때 달려들어서 그 채색 옷을 벗겨버리고 요셉을 물 없는 웅덩이에 집어 던집니다. 조금 있다가 보니까 상인들이 지나가는데 그들을 불러 세워서 요셉을 노예로 팝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제발 나를 살려달라고 형님들 그러지 말라고 애걸복걸해도 형들은 듣는 척 하지 않았습니다. 먼 훗날 그들이 요셉 앞에 서게 되었을 때 그때의 일을 기억하고 후회하는 장면이 창세기 42장 21절에 나옵니다.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양심을 주셔서 선과 악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왜 죄를 짓느냐? 양심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을 하는데도 양심의 소리를 듣지 않고 죄와 타협하고 죄의 길을 가기 때문에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형들의 마음속에 한편 마음에는 동생에 대한 좀 괴로운 마음이 있었어요. 이렇게 까지 해야 되겠나? 동생인데 이렇게 노예로 팔아서 되겠는가? 그러면서도 양심의 소리를 듣지 않고 노예로 팔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원수가 가까이 있는지도 몰라요.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 성군으로 불리웠던 다윗도 그러했습니다. 다윗이 불레셋 장수 골리앗을 무너뜨린 다음 모든 백성들이 그를 칭찬하자 사람의 마음속에 시기와 질투와 미움이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저 녀석이 머지않아 내 자리를 차지하겠구나. 그런데 사울왕이 그를 자기의 사위로 삼아서 딸을 주었거든요, 자기 사위인데도 극도로 미워해서 그를 죽이려고 군사를 풀어서 한때는 3천명이나 풀어서 그가 어디 있는지 추격해서 그를 죽이라고 했습니다. 거기에 창을 던져 죽이라고도 했습니다. 어떻게 사위가 장인과 대결할 수가 있겠습니까? 다윗은 민족의 영웅에서 하루아침에 도망자 신세가 되었습니다.

사울왕이 진노해서 말합니다. "빨리 다윗을 잡아와라. 잡아서 끌고 오든지 아니면 그 자리에서 죽여버려라." 아마 이런 명령을 내렸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오랜 세월동안, 오랜 시간동안 이 곳 저 곳을 떠돌아다니는 그런 도망자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의 말년에는 자기가 낳은 아들 압살롬이 아버지를 대적해서 그의 칼을 겨누었습니다. 한밤중에 모든 걸 다 내버려두고 도망가는 또 도망자의 신세가 되어야만 했습니다. 그때의 지은 시편이 시편 3편인데 3편 1절에 이런 고백을 합니다. “야훼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 일생동안 대적이 많았어요. 골리앗 장수를 무너뜨린 이후로 말년에 이르기까지 많은 대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가깝게 지내고 존경하는 목사님은 큰 대학을 설립하신 그러한 분이신데 어느 날 고발을 당해서 검찰 조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자기가 20년 이상 가까이 데리고 있던 가장 믿었던 사람이 자기를 고발한 거예요. 내부 고발자에 의해서 말할 수 없는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 분이 그러더라고요. 내가 그 사람을 그렇게 믿고 맡겼는데 날 고발했다고.

여러분 이러한 일을 당할 때 여러분의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미움과 분노가 그 마음을 뒤덮으면 그는 그 어려움을 이겨내지 못합니다. 여러분 이런 일을 만날 때 요셉 같은 절대긍정의 믿음으로 문제를 풀어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하신다. 아무리 내가 힘들고 어려워도 주님이 나를 도와주신다. 시편 3편 5절로 6절에 말씀을 봅니다.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야훼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할렐루야. 다윗이 피난길에도 편안히 잠을 잘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천만인이 나를 치러 대적한다 할지라도 주님이 나를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실 것이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여러분 늘 믿음의 사람으로 사십시오. 아무리 많은 대적이 몰려와서 나를 에워싸고 나에게 상처를 주고 나에게 고통을 가져다준다 할지라도 나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주님이 나와 함께해주시기 때문에 나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염려하지 않습니다. 낙심하지 않습니다. 포기하고 주저앉지 않습니다. 주님만 믿고 의지하고 나아갑니다. 할렐루야.

사도 바울도 예수를 만난 이후 주님의 사도로 남은 인생 바쳤는데 많은 대적들이 그의 일생을 따라다녔습니다. 그의 동족 유대인들이 그를 죽이려 했습니다. 한때는 40명의 결사대를 만들어서 죽이려고 길목에서 지키고 있기까지 했습니다. 그가 당한 핍박과 고난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을 맞고, 태장, 몽둥이로 세 차례를 맞고 돌로 그가 맞아서 돌에 맞아 피투성이가 되어 정신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가 죽은 줄 알고 그를 끓어다 밖에 내다 던진 그러한 일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많은 환난과 핍박에도 사도 바울은 좌절하거나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아니하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 비결이 어디에 있습니까?

로마서 8장 37절로 39절에 그는 설명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할렐루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끊을 수 없으리라)”.

할렐루야.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부터 나를 괴롭히고 힘들게 하고 어렵게 하는 사람들을 바라보지 말고 내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상처와 쓴 뿌리를 바라보지 말고 나를 온전케 하시고 모든 문제와 어려움을 이기게 하시는 우리 주님만을 바라보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유명한 강해자 찰스 스윈돌 목사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셉은 그에게 일어난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쓴 뿌리’를 갖고 살지 않았다. 그는 그의 삶에 닥친 모든 역경과 불행에도 불구하고, 쓴 뿌리에서 자유로웠던 것이다, 요셉처럼 ‘하나님’을 모든 상황 속에서 ‘신뢰’하자. 오랫동안 우리를 포로로 사로잡고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방해해온 모든 존재들로부터 ‘자유’로워지자. 우리의 남은 생을 요셉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 주위의 사람들에게 ‘안도감’을 심어주면서, ‘은혜’라는 전염성 강한 매력을 퍼뜨리면서 그리고 ‘소망 가득한 하나님의 약속’을 주장하면서 보내자!”

할렐루야. 여러분 오늘 이 시간이 모든 마음의 상처, 고통, 아픔과 괴로움을 십자가 앞에 다 내려놓으시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 하나님이 나를 돌보신다. 하나님이 나의 일생을 인도하신다. 절대긍정의 믿음으로 전진해 나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
둘째로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에게 아무리 많은 대적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만들어 주시고 악을 선으로 바꿔주십니다.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노예로 팔았지만, 악을 행했지만 하나님께서 그 악이 변하여 선이 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창세기 50장 20절에 요셉이 고백합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요셉은 믿음의 고백을 한 것입니다. 형들이 나에게 악을 행했지만, 나를 노예로 팔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어떠한 악한 계획도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셔서 선으로 바꿔주시고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 다가오게 만들어주십니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노예로 팔아버리면 더 이상 요셉으로 인해서 마음고생을 안 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전에도 함께 하셨고, 노예로 팔려가서도 함께 하셨고, 노예로 가서 생활하는 동안 그곳에도 함께 하셨고 억울하게 모함을 받아 감옥에 들어갈 때도 그 곳에도 함께 하셨고 결국 그를 때가 되매 높이시사 애굽의 총리 대신이 되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사도행전 7장 9절로 10절에 이와 같이 설명이 나옵니다. “여러 조상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았더니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셔 그 모든 환난에서 건져내사 애굽 왕 바로 앞에서 은총과 지혜를 주시매 바로가 그를 애굽과 자기 온 집의 통치자로 세웠느니라”.

아멘, 할렐루야.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그를 높이셨다. 여러분 그 하나님이 바로 여러분의 하나님입니다. 우리 모두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요셉을 노예로 팔았을 때가 열일곱 살입니다. 그런데 13년 후에, 서른 살에 애굽의 총리대신이 됩니다. 그리고나서 7년간 큰 풍년이 오고, 그 다음 7년에 큰 흉년이 오는데 그 흉년은 그 이전에 그와 같은 것을 볼 수 없었을 정도로 아주 극심한 흉년이어서 애굽 뿐 아니라 온 인근 나라들이 다 흉년으로 인해서 고생을 당하게 되었을 때, 2년째 되었을 때 요셉의 형들이 곡식을 사러 옵니다. 그래서 13년 플러스 7년 플러스 2년 하니까 22년 만에 요셉이 꿈을 꾼대로 형들이 다 그 앞에서 절을 합니다.

요셉이 22년 만에 완전히 달라졌죠. 총리의 옷을 입고 위엄을 갖추고 앉아있으니 고개도 들지 못하고 그냥 넙죽 엎드렸을 것입니다. 보통사람 같으면 나를 노예로 판 못된 형들이 왔구나. 22년 동안 내 마음속의 겪었던 이 마음고생 이제부터 하나둘씩 다 갚아가야 되겠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어디에도 요셉이 분노해서 복수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진짜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분노하고 미워하고 복수하는 그러한 삶을 살지 않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악을 멸하시고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이루어 주기 때문인 것입니다. 오히려 고난이 심할수록 더 높여주시고 위대하게 더 여러분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주셔서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쓰임 받게 만들어 주신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8장 28절의 말씀을 함께 고백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아멘.

이 말씀을 고백하고 또 고백하고 또 고백하고 또 고백하십시오.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다가올 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몸이 아플 때,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문제를 만났을 때 고백하십시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할렐루야. 할렐루야.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예수님을 못 박아 죽인 사람들에게는 완전한 승리로 생각했지만 그 순간이 완전히 실패하고 마귀의 모든 괴계가 꺾어지는 순간이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그 고난은 위대한 부활의 승리로 바뀌어지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 23절로 24절에 베드로의 설교에 이와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할렐루야. 할렐루야. 주님 말씀하십니다. 다 이루었다. 십자가에서 구원의 놀라운 역사가 완성된 것입니다. 요한복음 19장 30절에,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시는 그 순간 죄와 사망의 권세가 꺼꾸러진 것입니다. 질병과 고통을 주는 모든 흑암의 권세가 물러나게 된 것입니다. 가난과 저주를 불러왔던 모든 어둠의 세력이 떠나가게 된 것입니다. 예수를 믿기만 하면 이와 같은 놀라운 은혜가 임합니다. 고난의 절정의 순간이 바로 축복으로 바뀌는 기적의 순간인 것을 잊지 마십시오. 밤이 깊으면 새벽이 밝아오는 것입니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나면 따뜻한 봄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왜 내게 고난이 끊임없이 다가오는지요. 저는 고난 속에 살다가 고난 속에 죽을 모양인 것 같다고 말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겨울이 길다고 겨울이 겨울로 끝나지 않습니다. 반드시 봄은 다가옵니다. 아무리 고난의 밤이 깊어도 반드시 희망의 새벽은 밝아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주님만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나아가십시오. 아무리 악한 사람들이 여러분 주변에서 날뛰고 여러분을 힘들게 해도 여러분 결과는 이미 주님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시편 1편 6절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야훼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여러분이 의의 길을 가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평생 동안 여러분의 길을 인도해주실 것이요 악의 길을 가는 자는 망하게 될 것입니다. 시편 37편 39절로 40절에 고백을 봅니다. “의인들의 구원은 야훼로부터 오나니 그는 환난 때에 그들의 요새이시로다 야훼께서 그들을 도와 건지시되 악인들에게서 건져 구원하심은 그를 의지한 까닭이로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그러므로 세상이 악하다고 세상에 대해서 원망하고 비평하지 말고 여러분을 괴롭히는 악한 이웃들에 대해서 상처받고 분노하지 말고 절대긍정 절대감사로 내게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하나님께서 복의 복을 더해주신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로마서 12장 21절에,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할렐루야. 선으로 악을 이기는 삶이 진정한 승리의 삶입니다.

3. 용서와 사랑의 삶
그와 같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셋째로 용서와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요셉의 형들이 두려워했던 것은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는 요셉이 우리를 봐줬지만 아버지가 죽고 나면 복수하지 않을까 두려워 떨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죽자마자 몰려와서 그 동생에게 사정을 합니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우리를 용서하라고 했으니 우리를 용서해주시오. 그때 요셉이 말합니다. 창세기 50장 21절에,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아멘.

형들을 용서할 뿐 아니라 형들의 자녀까지 돌보겠다는 사랑을 형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용서는 사랑의 실천으로 이어질 때 하나님의 축복을 동반하게 되는 것입니다. 용서가 육체적, 정신적 건강에 어떠한 영향력을 미치는지 전문적으로 연구한 위스콘신대학교의 교수이며 심리학자인 로버트 D. 엔라이트 박사가 용서에 대해서 정의합니다.

“용서는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선택’이고, ‘가해자’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선물’이며, ‘가해의 피해’에서 해방되어 내 자신의 삶을 회복할 수 있는 ‘자유로움의 선언’이다.”
할렐루야. 여러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모든 것을 이루어주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억울한 일을 당한다고 힘들고 고통스럽고 괴롭다고 그것에 대해서 너무 상처받고 낙심하고 좌절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우리 삶 가운데 좋은 일이 이루어지도록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7절에,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고 말씀합니다. 왜? 우리는 갚을래야 갚을 수 없는 사랑의 빚을 진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신 이 구원의 축복, 영생의 축복을 받았기 때문에, 값없이 받았기 때문에 이제 우리도 용서하고 사랑하며 살아야 됩니다. 절대로 마음속에 미움과 분노를 담고 살지 말게 되기를 바랍니다. 미움과 분노가 여러분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31절, 32절은 이와 같이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마태복음 18장 35절, 우리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여러분, 여러분 마음속에 미움, 분노, 섭섭함, 상처를 다 내려놓으십시오. 미움은 미움을 낳고 복수는 복수를 낳고 증오는 증오를 낳게 되는 것입니다. 다 내려놓으십시오. 형들이 그렇게 자기를 힘들게 하고 어렵게 했지만 형들을 다 용서할 뿐 아니라 형들의 자녀까지도 사랑으로 돌본 요셉처럼 이제 우리를 괴롭히고 힘들게 한 사람들을 다 용서하고 더 나아가서 그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는 주님의 귀한 자녀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에베소서 5장 1절로 2절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 희생하신 예수님처럼 이제 우리도 우리가 갖고 있던 미움과 섭섭함과 원한과 상처를 다 내려놓고 우리 자신을 주님 앞에 드려 우리 주님이 기뻐하시는 주님의 일꾼으로 쓰임 받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는 용서할 수 없어요. 왜? 상처가 너무 깊으니까.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사랑할 수 없습니다. 왜? 내 마음속에 미움과 분노가 떠나지 않으니까. 그러나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십자가에 달려서 자신을 못 박는, 그 원수를 다 용서하신 예수님 같이 여러분에게 돌을 던지고 상처 입힌 사람들을 이 시간,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시기를 바랍니다. 손에 들었던 돌들을 다 내려놓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저 마음 어두운 구석에 누가 울고 있어요. 가만히, 가만히 다가가 보니까 과거에 상처받은 나의 모습이, 나의 그 상처받았던 그때의 모습으로 울고 있는 거예요. 평생 동안 내 마음속에, 어둠속에 울고 있는 이 자신을 이제 놓아주세요. 자유롭게 해주세요.

예수님의 사랑으로 용서하고 사랑하고 치료받고 회복되어서 이제부터는 변화 받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주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무거운 짐을 다 내려놓고 두 팔 벌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찬송가 377장에 이런 고백이 있습니다.

(찬 377장)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근심에 싸인 날 돌아 보사 내 근심 모두 맡으시네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불쌍히 여겨 구원해 줄 이 은혜의 주님 오직 예수

할렐루야.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불쌍히 여겨 구원해 줄 이 은혜의 주님 오직 예수.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내 힘으로 감당하지 못합니다. 주님이 도와 주셔야 합니다. 내가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고 나면 사람을 누구도 믿지 못하게 되요. 그렇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하고 대화가 단절되고 소통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불신 때문에. 여러분, 다 내려놓으세요. 이제부터 마음에 자유함을 받고 사랑하고 용서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원수의 관계에서 친구가 된 아주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911테러사건 여러분 기억하실 것입니다. 미국 전체를 큰 공포에 몰아넣었던 이 테러 사건으로 인해서 3천명 이상의 많은 희생자가 났습니다. 뉴욕 월드트레이드 센터, 세계 무역센터 빌딩이 비행기에 충돌해서 무너지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됐습니다. 이때 뉴욕에 사는 로드리게스(Phyllis Rodriguez, 72세)씨의 외아들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당시 31살이었던 아들은 세계무역센터 103층의 한 증권회사 부사장이었는데 그날 아침에도 별일 없다고 전화통화하고 주고받은 것이 끝으로 더 이상 연락을 할 수 없게 되었고 시신조차 찾지 못하게 됐습니다.

아들이 떠난 지 오래되었지만 그 외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마음은 여전히 아들이 그립고  사진을 볼 때마다 너무나 마음이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이 아들의 사진 옆에 웬 중년 여성의 사진이 있습니다. 그 사진은 누구냐 하면 그 아들을 죽음으로 내 몬 911테러 가담자의 어머니 아이사 엘와피(Aicha el-Wafi, 68세)라고 하는 여인의 사진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게 되었을까? 처음 로드리게스씨는 외아들을 잃은 그 슬픔과 분노로 실어증에 걸릴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신문을 통해 테러 가담자로 종신형을 선고받은 ‘무사위‘라는 청년의 어머니의 기사를 읽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아들이 종신형으로 감옥에 가게 되고 자기는 아들을 잃었는데 둘 다 다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마음을 갖고 고통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2002년도 함께 만나는 기회를 갖게 됩니다. 그 가해자의 어머님 엘와피가 먼저 입을 엽니다. 제 아들이 직접 테러에 가담하지 않았지만 미국 사회에 증오 분위기를 만든 데 대한 책임은 져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대화를 나누면서 이 여인의 기구한 사연을 듣게 됩니다.

그녀는 모로코 출신의 여성으로 14살의 어린 나이에 시집을 와서 15살 때 첫 아이들 낳고 16살 때 둘째 아이가 죽는 아픔을 겪었는데 프랑스에서는 청소부로 일했으며 자녀 4명과 함께 정신이상인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더러운 아랍인의 아들이라는 조롱을 받으며 자란 무사이가 결국 이슬람과격주의에 빠져서 테러에 가담하고 종신형을 선고받게 된 것입니다.서로의 사정을 알게 된 두 어머니가 이후로 전화와 이메일을 통해서 소식을 교환하면서 친구가 됩니다.

또한 이 두 분은 친구가 된 이후, 그 무사위에게 사형이 선고되었을 때에도 미국정부에 반대하는 의사를 펼칩니다. 로드리게스 내외분이요. 이 소식이 소개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큰 감동이 임했습니다. 독일에서 이분들에게 상을 주기도 했는데요. 로드리게스씨가 이렇게 말했습니다.“둘 다 ‘아들’을 잃었는데, 나는 ‘동정’이라도 받지만, 엘와피 씨는 동정조차 못 받지 않습니까? 처음에는 아들을 죽인 테러범을 용서하지 않겠다고 수없이 다짐했습니다. 지금도 테러 행위는 용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그런 행위를 하게 됐는지 과정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용서가 가능해집니다. 용서는 다른 사람을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자신을 위한 행동’입니다. 가슴을 짓누르던 ‘분노와 증오’를 걷어가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진정한 용서는 내 마음 속에 있는 미움과 증오와 복수와 원한의 칼을 뽑아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먼저 자유함을 받게 되고 내 자신이 주님의 사랑으로 다시금 변화되어서 남을 사랑할 수 있는 그러한 사랑의 자녀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와 같은 사랑을, 그와 같은 용서를 이미 예수님께로부터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나에게 상처 준 사람을 용서하지 못합니다. 이해하지 못합니다. 미움과 증오로만 우리 마음을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 예수님 바라보면서 모든 마음의 상처, 미움, 증오, 복수, 원한의 마음을 내려놓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랑과 용서로 변화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순간부터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과 축복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과 용서로 변화되어서 앞으로 남은 여생,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지금까지 우리가 미워하고 우리가 마음속에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아왔던 연약한 모습을 주님, 용서하여 주옵소서. 오늘 이후로 사랑하며 용서하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015. 2. 15. 주일설교
이영훈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