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일꾼들 1] 기억 속의 아버지, 그리고 교회

입력 : 2018.02.07 08:52

3G테크놀러지
어린 시절 저에게 교회란 아버지가 무척이나 싫어하시는, 문턱도 밟아선 안 될 곳이었습니다. 아버지의 "교회 가지 마라, 안 좋다"는 반복된 경고가 어린 시절 제겐 너무 무섭게 다가와 깊이 각인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친한 친구들이 성경학교에 가자고 해도, 저는 교회 근처에도 안 가려 했던 기억이 많습니다. 아니 아예 제 기억 속에서 교회는 일부러 잊고 살았습니다.

지금은 이북 땅인 강원도 철원 회양군이 고향이신 아버지는 6.25 전쟁 때 나라를 위해 싸우시고 홀로 남하하셔서 정착하셨습니다. 아버지는 매사에 무섭고 엄격했고, 어머니에게 화를 자주 내셨습니다. 제 기억 속 아버지와 함께하는 식사 시간은 종종 밥상이 하늘로 올라가곤 하는 불안과 초조함, 긴장과 압박감이 가득한 순간으로 남아있습니다.

어머니는 한때 교회를 다니셨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제 돼지저금통을 교회 헌금으로 가져가셔서 그 사실을 알고 아버지가 노발대발하셨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우리 집에 '교회금지령'이 떨어졌습니다. 아버지의 말씀은 곧 법이었고, 어머니와 누나, 저는 그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도 어린 마음에 교회는 돈을 갖다 주는 곳이라는 부정적인 선입견이 생겼습니다. 어머니께 여쭤볼 생각도 못 했고, 그저 교회에는 돈을 갖다 줘야 하니 아버지께서 금지하시는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중학교 1학년 때 돌아가셨습니다. 지금 아버지의 나이가 되어 보니, 아버지도 하나님 없이 사는 인생이 얼마나 고통스러우셨을지 가슴이 먹먹해질 때가 있습니다.

군대에 가서 저는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좋아서가 아니라 '초코파이'를 먹으러 나갔습니다. 세례를 받으면 초코파이를 더 많이 준다고 해서 세례도 받았습니다. 벌써 20년 전 일입니다. 그 당시에는 믿음이나 신앙생활에 대해 관심이 전혀 없었습니다. 단순히 초코파이로 제 욕구를 채우기 위해 억지로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의 설교 말씀도 하나도 기억나지 않고, 하나님과 했던 약속도 제 기억 속에 전혀 없습니다. 집을 떠나 3G테크놀러지에 입사하기 전까지는 그랬습니다.

김효순 ㈜3G테크놀러지 기술부 차장(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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