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올해의 책 표지
▲책 <겸손한 뿌리>. ⓒ이대웅 기자
겸손한 뿌리

한나 앤더슨 | 김지호 역 | 도서출판100 | 288쪽 | 9,800원

본 서평은 신학서적중고장터의 독서 지원 프로그램에 의해 기록되었음을 알립니다. -편집자 주

Hannah Anderson, Humble Roots: How Humility Grounds and Nourishes Your Soul, 김지호 역, <겸손한 뿌리(서울: 도서출판100, 2017)>

1. 들어가는 말

이 책에서 저자는 그녀의 경험으로부터 겸손이 어떻게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지, 또 교만이 어떻게 자신을 드러내는지를 살펴본다. 일상생활에서 마주하는 소재들과 그에 얽힌 이야기가 책의 주된 내용인데, 저자는 이러한 일상적 이야기를 통해 겸손에 대한 자신의 신학적 성찰을 담담한 어조로 책에 담아냈다.

이 글에서 필자는 책의 내용을 두 가지 주제로 요약해 보려 한다. 하나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있던 저자의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겸손이 이 세상에 사는 인간에게 주는 가르침이 무엇인지에 관한 이야기이다. 필자는 자신의 한계를 절감하고 예수의 겸손을 따르기로 한 저자의 이야기와 더불어, 겸손이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우리 인간에게 주는 교훈을 중심으로 책의 내용을 정리할 것이다.

2. 나의 끝에서 겸손이 시작되다

"나는 끝났다. 나는 한계에 도달했다(17쪽)."

1부를 시작하는 저자의 첫 마디이다. 겸손을 이야기하려는 그녀가 뱉은 이 첫 마디가 필자에게 묵직하게 와 닿았다. 자기 삶을 완벽하게 꾸려보려는 그녀의 열심은, 이전에는 누릴 수 없던 여유와 더불어 불안도 주었다. 여유보다 불안이 커질 때쯤, 그녀는 자신의 삶이 끝났다고 선언하고, 다시 자신의 삶을 돌아보려 한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기 위해 그녀는 "들에 핀 백합화를 보라"는 시골 청년의 말에 머무른다. 이 청년의 머릿속엔 어떤 그림이 들어차 있기에, 이런 소리를 한 것일까?

백합화를 보니, 저자의 눈에 백합화뿐 아니라 그 주변에 널브러진 녹슨 무기들도 들어온다. 보란 듯이 피어난 백합화, 아네모네. 그것은 인간사의 질고 가운데서도 꼿꼿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누군가가 그를 돌보고 있다고 강하게 확신하고 있다는 듯 꼿꼿하게 말이다. "예수께서는 ... 야생에 깃들어 있는 평안에 들어가기 위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던 것들로부터 배우라고 말씀하신다(33쪽)."

저자는 자기 마음의 밭이 꽁꽁 언 땅과 같다고 느낀다. 마음밭이 얼른 녹아야 새싹이 나올텐데, 어떻게 얼어붙은 마음밭이 얼른 녹을 수 있을까? 그녀는 자기가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사실을 받아들임으로써 자기 마음 밭을 일구려고 한다. 온유하고 겸손한 예수의 성품을 따라감으로써, 겸손히 그가 주는 멍에를 메기로 한 것이다. 얼었던 경작지가 녹으며 고개를 든 개나리는 자기 마음 밭을 경작하기로 결심한 저자에게 작은 희망이 아니었을까.

저자의 자기 성찰은 자신과 하나님이 어떤 관계인지 생각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때 포도나무가 중요한 통찰을 던져준다. 병충해로 죽어가는 포도나무는 그 뿌리를 바꾸지 않고서는 결코 살아날 수 없다. 서서히 질식해가는 저자의 삶 역시, 그 문제의 뿌리를 해결하지 않는 한 살아나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찾은 해결방안은 겸손, 곧 자신이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그에 마땅한 자리를 내어드리는 것이다. 우리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돌아보는 일이 겸손의 첫 걸음인 셈이다.

포도나무에 이어, 저자의 남편이 가져온 사과나무도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의 관계를 떠올리게 해준다. 인간의 교만이 시작된 그곳, 최초의 동산에는 사과나무가 있었다고 전해지기 때문이다. '하나님처럼 되리라'는 말에 속아 과실을 따먹었던 인간은, 지금까지도 자기 마음을 충동질하여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한다. 우리는 같은 인간이었지만 전혀 다르게 행동했던 한 청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도 못들은 척 하는 것 아닐까. "하나님께서 여자의 후손이 그녀를 유혹했던 뱀을 부술 것이라고 약속하셨을 때였다. 그러나 그 소문은 성경의 나머지 부분에서도 계속 메아리친다(96쪽)."

3. 유한한 삶에서 겸손을 배우다

저자가 분명히 밝히듯, "우리의 자라남은 예수님의 겸손과 마주하고 배우면서 일어난다(105쪽)." 겸손은 우리 삶에서 계속 체득돼야 하며, 겸손의 회복은 삶에서 마주치는 여러 실패가 아니고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2부와 3부에서 저자는 유한한 삶 속에 사는 인간에게 겸손이 주는 가르침에 대해 말해준다.

먼저, 겸손은 우리 몸이 물질이라는 사실을 귀하게 받아들이게 해준다. 인간이라면 유한한 삶 속에 사는 것이 당연하고, 오히려 인간에게 가장 귀한 일이 그 유한한 삶 속에서 사는 것이라는 말이다. 저자는 자기 일에 정직한 동네 주민들처럼, 외부로부터 오는 어떤 강제력에 신경쓰지 않고 자기에게 정직한 것, 이것이 곧 겸손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둘째, 겸손은 자신의 감정이 곧 실재가 아님을 깨닫게 해준다. 저자에 따르면, 정서적 불안정과 스트레스의 심연에는 교만이 자리잡고 있다. 이 사실을 깨달은 사람은 자신의 감정이 진정한 현실이 아니라, 하나님의 현실이 진정한 현실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겸손은 우리가 감정에 따라갈 필요가 없다고 가르친다. 왜냐하면 중요한 현실은 오직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다(143쪽)."

셋째, 겸손은 우리에게 항상 배울 것이 있다는 믿음 아래서 기다리는 법을 가르쳐준다. 불확실성 속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것, 그것이 겸손인 것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다 알지 못한다고 불편해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들의 이해가 자라나기를 기다리셨다. 이와 같이 우리도 누군가를 기다려주는 것이 필요하다.

넷째, 겸손은 우리로 하여금 받은 것에 대한 감사를 가르쳐준다. 저자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인간이 청지기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과 함께, 청지기는 하나님으로부터 자신이 얼마나 많이 받았는지에 관심을 둔다고 말한다. 이와 관련된 저자의 독특한 통찰 중 하나는 소소한 불평(microcomplaint)을 겸손한 자랑질, 곧 교만으로 본다는 점이다. 따라서, 겸손은 우리로 하여금 받지 못한 것에 대한 불평이 아니라, 받은 것에 대한 감사를 이끌어낸다.

다섯째, 겸손은 우리로 하여금 꿈꾸는 특권을 누리는 동시에 실제로 다스리는 분이 누구인지 놓치지 않게 해준다. 잠언 16장 9절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 "교만은 우리에게 충분히 잘 체계를 세워서, 실제적으로 계획하고 열심히 한다면, 우리의 꿈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 겸손은 우리에게 욕망의 성취가 처음부터 우리 손에 있는 것이 아님을 가르친다(230쪽)."

여섯째, 겸손은 우리로 하여금 불의의 한복판에서 하나님의 정의를 믿게 해준다. 가시덤불과 엉겅퀴 속에서 자란 블랙베리가 저자에게 영감을 주었다. 가시에 손과 발이 긁히며 채집한 블랙베리는 고통과 기쁨이 한데 엉킨 우리 삶을 떠올리게 한다. 겸손한 사람은 고통과 기쁨 중 어느 한 곳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겸손은 고난의 한복판에서 내려오는 은혜를 바라게 하며, 기쁨의 한복판에서 슬피 우는 자를 바라보게 만든다. "겸손한 사람은 이 세상의 고통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 고통에 자신도 가담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262쪽)."

겸손은 이렇게 이 세상 속에서 인간을 끊임없이 가르치고 있다. 끊임없는 겸손의 가르침은 마침내 우리가 죽음 앞에서도 부활을 소망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진정 겸손한 인간이라면, 죽음을 피하려 하지 않고 그것을 관통하는 부활을 소망한다. '아버지, 아버지 손에 내 영혼을 맡깁니다'라고 말했던 예수처럼 말이다. 하나님은 그 겸손한 인간에게 부활로 응답하신다.

십자가 태양 새해 햇빛 햇살
4. 책을 덮으며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필자는 책을 덮으며 들었던 생각을 두 가지로 정리해 보려고 한다.

첫째, 이 책에는 저자의 고유한 삶의 이야기와 색깔이 잘 담겨져 있었다. 자기 삶에 충실한 사람만이 담아낼 수 있는 진정성이 느껴졌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저자는 철학과 신학 등 다소 사변적인 것들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지 않는다. "나는 끝났고, 한계에 도달했다"는 현실적인 문제와 가식 없는 진단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마주 보고 앉아 수다를 한바탕 떨었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도 이것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는 한 사람의 삶이 어떻게 겸손함이라는 일반적인 개념을 모두 담을 수 있겠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저자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리라. "이것은 일상에서 내가 이러한 진리들을 마주하고 있는 방식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예들을 사용하기로 결정하였다(13쪽)."

둘째, 이 책은 필자를 포함한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해주었다. 책을 덮고 맨 처음 든 생각은 '부럽다!'였다. 처음에 필자는 들꽃을 보며 한가로이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는 저자의 삶과 여유가 부러웠다.

그러나 여기에만 머문다면 저자의 이야기를 반쪽만 이해하는 것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저자의 초점은 자신의 삶을 통해 진리를 마주하는 것이었지, 자기 삶 자체를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하나님의 은혜는 저자만 입은 것이 아니지 않은가. 필자에게도 하나님이 비추는 은혜의 해는 비치고 있었고, 필자의 삶을 통해서도 진리는 드러날 수 있는 것이었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니, 이 책이 독자로 하여금 그들 자신의 일상에서 진리를 마주하게 돕는 역할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이 시대를 가리켜 점점 진정한 쉼이 없어지는 시대라고 한다. 그나마 있는 그 쉼도 바쁘게 소비되어야 할 재화가 되어버린 시대이다. 우리는 이 시대에서 자기에게 참된 쉼이 있다고 말했던 예수의 초대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책을 덮으며 고민이 깊어진다. 깊어지는 고민과 더불어 참 겸손, 참 쉼을 향한 소망도 자라나길 바란다.

글: 김종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