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이단자들 최덕성

위대한 이단자들
최덕성 | 본문과현장사이 | 620쪽 | 35,000원

"교회는 종종 상을 받아야 할 위대한 신앙인들에게 벌을 주었다. 진리 파수꾼들을 공격하고 박해했다. 처형, 파면, 정직이라는 끔찍한 고통을 주었다. 로마교회, 로마가톨릭교회, 프로테스탄트교회는 다 마찬가지로 성경과 성경적 진리성이 아니라 힘의 논리와 당파적 시각으로 이단 정죄와 처벌을 하기도 했다. 교회, 총회, 공의회는 실수했고, 범죄를 저질러 왔다. 교회의 이단 정죄는 절대적인 것일 수 없다. 성경과 진리성에 충실한 결정만이 유효하다. 기독인에게는 성경에 명백하게 위반되는 교회의 결정과 가르침에 순복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 이후 '그리스도인'이라 불리는 이들이 생겨났고, 2천 년간 그 역사를 이어오면서 수많은 위대한 '믿음의 선진들'을 배출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기독교 역사서나 신학서, 전기 등을 통해 배우는 그 위대한 인물들은, 당대에 '이단'이라는 꼬리표가 달린 채 멸시받거나 심지어는 죽임을 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도 당대 종교 지도자들에게는 '이단'일 뿐이었다.

기독교사상사를 전공하고 역사신학과 교의학을 가르쳐 온 최덕성 박사(브니엘신학교 총장)가 이런 인물들을 한데 모아 「위대한 이단자들: 종교개혁 500주년에 만나다(본문과현장사이)」를 펴냈다.

아이러니하면서도 눈에 확 들어오는 제목 아래, 이 책은 바울부터 시작해 플라비우스 저스틴, 아타나시우스, 종교개혁기 존 위클리프와 얀 후스, 마틴 루터와 존 칼빈, 20세기의 메이첸과 프린스턴 신학자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의 주기철 목사까지 다루고 있다. 저자는 "장로교회 설립자 존 녹스, 「천로역정」 저자 존 버니언, 독일 고백교회 목사 마르틴 뉘밀러, 신사참배 거부운동의 선두에 선 이기선 목사, 중국의 왕명도 목사 등, 교회사에 등장하는 '위대한 이단자들'의 이야기를 다 담을 수 없어 안타깝다"고 한다.

저자는 자신이 소개한 이들의 특징에 대해 "역사적 기독교 신앙에 굳게 선 정통신앙인들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바르게 살려 몸부림쳤으며, 복음 진리를 고백·파수하려 자기 시대의 신앙적 격랑을 온몸으로 헤쳐 나가면서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았다"며 "정치적 힘에 굴복하지 않고 핍박과 고문을 달게 받다, 맹렬한 불꽃더미에서 재로 산화되기도 했다. 순교자의 반열에 든 이들은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더 좋은 것, 영원한 것, 영광스러운 것을 상급으로 받았다"고 평가한다.

실제로 그랬다. 책에 소개된 '위대한 이단자들' 중 피터 왈도(Waldo of Lyons, 1140-1205)만 봐도, 그리스도의 산상보훈의 가르침에 따라 경건하게 살면서 설교와 전도 활동을 했을 뿐이었다. 재산과 명예를 포기하고 걸식(乞食)하면서 유럽 전역을 다니며 복음 진리를 설교하고, 가난에 찌든 사람들에게 가난의 아름다움과 위대함을 가르치면서 사도적 청빈의 삶을 권장했다.

저자는 교회가 왈도와 와도파를 적대시하고 이단이라 단죄한 이유에 대해 "왈도파 신앙운동의 장점들이 기존 교회의 문제점을 드러내, 체제 붕괴의 위기를 가져와 기득권 유지 구도를 위협했기 때문"이라며 "이단 정죄는 소수 그룹과 다수 집단 사이의 힘겨루기인 경우가 있다. 새로운 신앙운동이 기존 세력과 구도에 위기를 가져오면서 점차 확산되자, 교회 신학자들과 사제들은 왈도와 그의 추종자들의 외침을 억누르려 자신들의 그릇됨을 정당화하는 방어기제를 정교하게 만든 것"이라고 지적한다.

현대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주기철 목사(1897-1944)는 웅천교회 당회장 이기선 목사의 영향을 받아 개혁신앙과 정통신학을 신념체계로 가진 장로교인답게, 성경과 하나님의 절대 권위를 중요시했다. 그는 성경이 하나님 말씀이라는 굳센 믿음과 그리스도의 죽음, 십자가 신학에 근거했기에 결국 순교했다. 그러나 당시 배교자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던 한국교회는, 주 목사가 신사참배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그의 목사직을 파면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악행과 불의, 불법은 나쁜 것들이지만 종종 정의롭고 진실한 사람을 영웅으로 부각시키는 기능을 갖고 있기에, 변절과 배도-배교의 시대는 진리와 정의에 목숨을 걸고 저항한 신앙인을 역사의 무대에 올려놓는다"며 "아이러니하게도 한국교회가 저지른 범죄와 악행은 '이단자' 주기철을 영광스러운 순교자 반열에 올리고 그를 위대한 신앙인으로 등장시켰다"고 분석한다.

최덕성 선교신학연구소
▲최덕성 박사. ⓒ크리스천투데이 DB

결론으로 저자는 과거를 돌아보는 데 그치지 않고, '이단 판별의 주체와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한다. 이에 앞서 "한국교회는 돌연변이를 일으키면서 덤벼드는 이단들의 악의적 공격으로 막심한 피해를 입고 있다"며 "이단 방지 목적의 강력하고 효율적이고 통합적인 대응책이 필요하나, 고조된 이단 시비 과정에서 가라지를 뽑으려다 자칫 알곡까지 제거할 수 있으므로 정치적·교권적·감정적·자파 이기주의적 요인들 때문에 정죄당한 이단자가 없는지 둘러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그러면서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은 시대적 과제'로 정통과 이단을 판별할 '한국교회 신학자회의' 구성을 제안한다. '새 시대를 주도할 위대한 이단자'가 등장하면, 오늘날의 교회는 앞서 '신앙의 용사들'이 나타날 경우 영리한 프로파간다(propaganda)를 내걸고 이런저런 결함을 구실 삼아 또다시 충분히 '이단자로 정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사자와 충분히 의사소통하고 사실 확인을 한 뒤에, 신학적 깊이와 균형을 갖도록 하며 오류나 미숙한 점들을 지적하여 고치도록 사랑으로 지도할 '공의회' 성격의 신학자 기구가 필요하다."

이단 시비와 관련된 한국교회의 최대 현안으로는, '사랑의 태도'와 '이단 판단의 주체다운 권위와 위상을 높이는 일', '이단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범교단 차원의 기구 설립' 등 세 가지를 내놓았다.

'위대한 이단자들'이 아닌 '진짜' 이단 집단이나 사이비 기독교 단체를 향해서는 "이 책의 메시지를 곡해·이용하여 자파의 정당성 변론에 악용하지 말라"며 "이단은 하나님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 회개하고 정통신앙으로 돌아오라"고 당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