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교회라서 건물 꼭 지어야 한다는 건 잘못”

김진영 기자 입력 : 2012.02.20 06:45

[교회건축, 패러다임을 바꾸다] 2-인터뷰

크리스천투데이는 [교회건축, 패러다임을 바꾸다]를 제목으로 한국교회 건축을 새롭게 논합니다. 오늘날 교회들의 ‘건물 짓기’가 본질에서 벗어나 교회 확장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문제의식에서 이 기사는 출발합니다. 과연 교회에서 ‘건물’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지 돌아보고, 교회건축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

지금부터 6여년 전, 김종웅 목사는 개척을 결심하고 경기도 용인시 동백동에 예배처소를 물색했다. 당시 김 목사를 따라 개척에 동참한 인원이 약 50명. 함께 예배를 드리려면 실평수 2~300평의 공간이 필요했다. 임대료와 관리비를 합쳐 매월 2~3천만원은 들겠다는 계산이 나왔다. 결국 건축을 결심했다. 바로 지금의 ‘쉼과회복이있는교회’다. 건평 약 720평으로 완공과 최근 증축에 이르기까지 60억 정도가 들었다. 이 중 은행 대출금이 약 40억. 현재 이 교회가 대출이자로 매월 내는 돈이 2천만원에 달한다. 김 목사는 “임대료와 대출이자가 비슷한 수준이라면 건물을 짓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지금 교회는 주일예배 출석 교인수 500명으로 성장했다.

건축헌금, 처음엔 중직들이 부담… 지금은 ‘오병이어’

▲쉼과회복이있는교회 김종웅 목사. 그는 “교회에서 건물은 비본질인 것”이라며 “만약 건축을 해야 한다면,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진영 기자
-건축에 큰 돈을 들였는데 건축헌금은 받고 있나.

“사실 예배당을 짓고 처음 5년간은 교인들에게 건축헌금 얘길 꺼내지 않았다. 새로 시작하는 마당에 부담을 주기 싫었다. 또 하나는 내 경험 때문인데, 부친께서도 전 재산을 들여 교회를 지으셨지만 먼 훗날 내가 다시 그곳을 찾았을 때 교회는 사라지고 없었다. 허무하더라. 교인들 입장에서도 자신이 헌금해 세운 교회가 그렇게 되면 나와 같은 마음일 거라 생각했다. 건물보다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고 싶었다.”

-그럼 대출이자는 어떻게 감당했나.

“내가 마련했다. 그래서 처음 1, 2년은 힘들기도 했다. 우스갯소리지만, 이자 때문에 이사 여러 번 다녔다.(웃음) 일종의 책임감이랄까. 집으로 치면 내가 가장인데, 가장으로서 마땅히 져야 할 짐이라 생각했다.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말라고 가족들을 안심시키는 게 여느 아버지들의 모습 아닌가. 그런 마음이었다. 교인들은 가능하면 신앙에만 집중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이젠 다 털어놨다.(웃음) 결국은 모두 한 가족이니까. 신기했던 건 건축헌금 얘길 꺼내면서도 전혀 마음에 부대낌 같은 게 없었다는 거다. 그 만큼 교인들 사이에서 ‘우리 교회 목사님과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들이 그 동안 남몰래 헌신해왔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 하나님께 감사했다.”

-건축헌금은 어떤 방법으로 하나.

“오병이어 정신으로 한다. 안드레가 한 아이의 오병이어를 예수님께 보이며 했던 말 기억하나. ‘이게 얼마나 되겠느냐’였다. 즉 오병이어 가지곤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안드레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오병이어로 기적을 일으키셨다. 그와 같다. 교인들도 ‘우리 교회 빚이 수십억인데 내가 몇 만원 헌금해서 얼마나 도움이 되겠느냐’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 걸 끊임없이 알렸다. 가령 매월 1천만원의 이자가 5만원이라면, 5만원만 내도 1천만원 감당하는 것이라고 말해줬다. 그랬더니 교인들에게도 자신감 같은 게 생겼다. 요즘엔 대출이자를 별 어려움 없이 낸다.”

건축에 공감대 형성돼야… 건물은 비본질적인 것

-교회에서 건물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예배당을 하나님의 성전으로 생각하며 건물 자체를 중요하게 보는 이도 있고, 교회는 성도들의 모임이므로 건물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견해도 있다. 대부분 건축은 아마 이 두 극단 사이에 존재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하나님은 성도들의 모임 가운데 거하신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다. 하지만 그런 성도들이 모일 수 있는 안전한 울타리, 곧 건물도 필요하다. 그러므로 건물이 필요 없다는 것도 잘못이고 건물에만 집착하는 것도 바른 모습이 아니다.

다만 분명한 건, 건축의 당위성은 그것이 얼마나 사람들의 공감을 얻느냐에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공감이란 교인들만이 아닌 그 교회를 둘러싼 비신자들의 그것까지 포함하는 말이다. 교인들은 내 교회니까 얼마든지 건축의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그건 객관적이지 않다. 따라서 주변 이웃들의 증거가 필요하다. ‘그래, 저 교회는 건물을 지을 만해’라고 모두가 공감한다면 문제될 게 있을까. 간혹 교회건축이 비판의 대상이 되는 건, 그것이 누군가에게 지나치게 힘을 과시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교회에서 너도나도 목표는 ‘건물 짓기’인 것 같다.

“그야말로 주객이 전도된 현상이다. 건물은 비본질적인 것이다. 예를 들어, 상가교회라고 해서 반드시 건물을 지어야 한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고 본다. 다시 말하지만, 건물은 있을 수도, 또 없을 수도 있다. 본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가교회라도 그 존재이유가 특별한 데 있다면 굳이 건물이 필요 없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반대로 꼭 건물이 있어야 할 이유가 있다면, 건축하면 되는 것이다.

건물에 집착하는 건 대개 세속적 가치 때문이다. 상가교회 목회자니 괜히 자신이 초라한 것 같아서다. 번듯한 건물 하나쯤은 있어야 그래도 고개를 들 수 있을 것 같아서……. 얼마나 비신앙적 생각인가. 상가교회라서 비하할 것도, 교회 건물이 있다 해서 군림할 것도 없다. 건물이 있고 없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 교회가 어떤 교회냐 하는 게 더 중요하다. 그걸 중심으로 목회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상가에 있을 수도 때론 건물을 지을 수도 있다. 그렇게 비천에도 풍부에도 처할 줄 아는 게 곧 그리스도인 아닌가. 사도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교회 건물의 외형도 중요한 문제인가.

“물론 신경 써야 할 부분이다. 교회 건물이 그 지역주민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칠 것인가는, 선교적 측면에서도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은 교회가 처한 시대적·지역적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과거 한국에서 교회는 문화를 선도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자리를 세상에 내주고 말았다. 그러자 교회들마다 예배당을 마치 문화센터처럼 짓기 시작했다. 십자가를 전면에 배치하지 않는 등 가능하면 종교성을 덜어내고 문화성을 강조하려 했던 거다. 하지만 지금 세상 사람들은 문화보다 종교를 찾고 있는 것 같다. 그럼 오히려 종교성 짙은 교회에 더 끌릴 수 있다. 천주교 교세가 커지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고 본다. 만약 다시 교회를 짓는다면 종교성을 보다 더 진하게 드러내고 싶다(웃음).”

-교회건축에 있어 또 염두에 둬야 할 게 있다면.

“다윗을 본받았으면 한다. 다윗은 자신의 시대에 성전을 건축할 수 있었지만 하나님의 반대로 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도전하는 것보다 할 수 있음에도 그것을 내려놓아야 하는 게 더 어려울 수 있다. 다윗이 그랬다. 그는 비록 성전을 짓지 않았지만 늘 그것을 준비했다. 그래서 솔로몬이 했다. 솔로몬의 성전은 알고 보면 다윗이 한 것과 다름없다. 오늘날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이 점을 알았으면 한다. 꼭 내 때에 건물을 지어야 할 필요가 있는가. 꼭 내가 해야 한다는 생각은 욕심이고, 그럼 무리하게 된다. 적당한 때, 가장 필요한 순간 건물이 지어질 수 있도록 준비하고 기도할 수 있는 모습도 필요하다. 그럼 후대가 반드시 기억할 것이다.”

<저작권자 ⓒ '종교 신문 1위' 크리스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