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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관광인가 순례인가

요르그 리거 | 포이에마 | 159쪽 | 9,800원

성지순례나 단기선교를 떠나 본 이들이라면 한 번쯤 스스로에게 던져 봤을 법한 질문이 이 책의 제목이다. 보통 낯선 곳을 향해 떠나는 성지순례는 그 자체가 관광이 되기도 하지만, 요즘은 여행 자체가 삶을 돌아보고 나의 자리를 점검하는 순례의 성격을 지니기도 한다. 스페인 산티아고에서 시작돼 제주도에서 꽃을 피워 전국으로 퍼져나간 ‘올레길’ 열풍이 이를 말해준다.

독일에서 태어나 해방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으로 이주한 독특한 이력의 저자는 여행이 “기독교 전통에 깊이 뿌리박혀 있다”고 단언한다. “기독교는 길 위에서 움직이는 신앙이다(히 13:14). 그러므로 여행은 기독교 신앙에 대한 은유 이상이다. 다음 위치를 정하고 끊임없이 위치를 옮기는 일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핵심적이다.”

오늘날 기독교 신앙의 핵심 활동은 ‘(주일에) 교회 안에 가만히 앉아있는 일’이 되고 말았지만, 성경 속 인물들과 역사를 찾아보면 그렇지 않았다는 것. 따지고 보면 여행 또는 이동 자체가 지금보다 말할 수 없이 어려웠던 당시였음에도, 그 옛날 ‘우리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부터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는 것’으로 믿음의 ‘대장정’을 시작했다. 

그야말로 믿음은 ‘모험’이자 ‘여정’이고, 그리스도인들은 ‘머리 둘 곳 없이 두루 다니셨던(눅 9:58)’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야 한다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저자는 관광이 ‘황금알을 낳는 오리’로 인식되는 상황에서, 난민들 같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과 ‘종교 관광’의 구조적 문제점들을 꼬집어 주고 대안을 제시한다.

지난달 일본 나가사키 일대 천주교 성지들을 돌아보러 갔을 때도 이 질문이 떠올라, 배낭에 이 책을 넣었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떠났지만, 비행기에서 읽은 이 가벼운 책 덕분에 가볍지만은 않았다. 성지순례 또는 올레길 걷기를 계획 중이거나 ‘시야를 넓히려는 목적’의 여행을 준비 중이라면, 더욱 풍성한 경험과 사유를 쌓을 토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