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육체적으로 불편한 것 뿐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데 있어서 장애는 걸림돌이 아닙니다. 오히려 장애가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더욱 간절히 매달려 기도하고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지 모릅니다.”

임마누엘집 장애우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는 김경식 목사.
▲임마누엘집에서 생활하는 식구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는 김경식 목사(오른쪽). ⓒ강혜진 기자

30여년 전 도봉구 안골부락 천막집에서 오갈 데 없는 10명의 장애인들과 함께 시작한 임마누엘집은 현재 2개 법인 산하 11개 기관을 둔 복지재단으로 성장했으며 270명의 직원들이 700명의 장애인들을 돌보고 있다.

특히 송파구 거여동에 위치한 임마누엘집에는 현재 53명의 장애인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임마누엘보호작업시설에서 약 40명의 장애인들이 직업훈련을 받고 있다.

복지 시설은 특성상 대부분 산골짜기나 외곽에 있는 경우가 많은데 임마누엘집은 주택이 밀집된 지역에 들어서 있다. 장애인 시설에 대해 인근 주민들이 거부감을 느낄 법도 한데 오히려 정반대다.

임마누엘집 전경
▲송파구 거여동에 위치한 임마누엘집 전경. ⓒ임마누엘집

보통 지적장애나 중증장애를 앓고 있는 이들은, 훈련 도중 마찰이 생기거나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는데, 임마누엘집에서는 한 번도 소란이 발생한 적이 없다고. 송파구청 관계자들은 “이 곳 분들이 장애인들을 잘 돌보고 있다”며 임마누엘집에 대한 신뢰를 보인다. 실제로 보호작업시설에서 종이백을 만들던 이들을 만나보니 순한 모습에 한결같이 밝은 얼굴이었다.

임마누엘집이 이렇게 성장하기까지 이사장 김경식 목사의 영혼들을 향한 사랑과 믿음의 기도가 있었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김경식 목사는 부드러운 인상에 여느 목사님들과 다를 바 없는 온화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와 인터뷰를 하면서 수 많은 연단을 통해 다져진 강인한 내면과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믿음을 만날 수 있었다. 더불어 장애인들을 향한 깊은 사랑 또한 느껴졌다.

“예수님 다음으로 제일 잘 만난 분은 어머니”

김경식 목사는 전남 진도에서 1남 5녀 중 외동 아들로 태어났다. 아들이 귀한 시절, 부모님과 누나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남부러울 것 없이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7살 되던 해 겨울 소아마비가 찾아왔고, 결국 서지도 걷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 그는 손·발에 신을 신고 기어서 학교를 다녀야했다.

9살 되던 해에는 아버지가 화병으로 돌아가시고, 누나들에게도 귀찮은 존재가 됐다. 어머니가 없을 때면 ‘차라리 죽으라’는 모진 소리도 들어야 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수도 없이 찾아왔지만, 그 어려운 고난과 고통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가 보여주신 믿음의 영향이 컸다. 절망 속에 하나님께 기도하던 중 한 쪽 다리가 기적적으로 회복되는 역사가 있었고, 각고의 노력끝에 목발을 짚고 걸을 수 있게 됐다.

그의 어머니는 한 번도 그에게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하신 적이 없었다. 늦게 장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시면 늘 가장 먼저 “큰 놈아!” 하고 불러주셨다. 크게 될 사람이라고 큰 놈이라 부르셨다고. 어머니는 ‘너는 하나님이 택한 사람이고, 이 세상에서 가장 쓸모있는 사람이다. 너는 성공하고 잘 될 거다. 다른 사람들한테 베푸는 사람이 될 거야’ 말씀하시고, 그를 안고 머리에 기도를 해주셨다고 한다.

“어머니는 항상 ‘장애는 살아가는데 조금 불편할 뿐이다. 네 안에 예수님이 거하기 때문에 넌 축복받은 사람이다. 어디에 가든지 멸시와 천대를 받을 지라도 조금도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말아라. 하나님이 항상 함께 하시면서 너를 도와주신다. 슬픈 일이나 괴로운 일을 만나면 오직 하나님 앞에 매달려 기도하라’고 가르쳐주셨다”고 김 목사는 말했다.

실제로 김 목사는 어머니의 가르침대로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하나님 앞에 ‘대롱대롱’ 매달렸고, 코뿔소처럼 믿음으로 전진해 나갔다.

그는 1983년부터 송파구에 작은 땅을 마련해 10명의 장애인들과 공동생활을 시작했고, 백석신학대에 야간으로 입학했다. 낮에는 기독교 출판사에 찾아가 사정하여 책을 판매하는 일을 시작했다.

목발을 짚은 채로 무거운 책 보따리를 들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가운데 손에 굳은 살이 배겼고, 혹시나 판매에 지장이 될까봐 붕대로 감고 다녔는데 뗄 떼마다 피가 터져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더 아픈 것은 사람들의 편견이었다. 책 판매가 잘 될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4개월을 버텼다. 함께 입사했던 30여명의 동기들이 대부분 그만두고 3명이 남았을 때에도 "최고의 세일즈맨이 되겠다"며 큰소리를 쳤다.

그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 번도 안 된다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다.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위해 포기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기도하며 하나님의 도움을 구한 끝에 목사님들에게 직접 쓴 주보를 전달해 책 판매를 높이는 지혜가 생겼고, 입사한 지 6개월 만에 최고의 매출을 내면서 상무로 승진하게 됐다. 그러면서 지금의 아내도 만났다. 같은 사회복지사인 아내는 어려울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함께 하며 필요한 격려를 아끼지 않고 있다. 그 때 번 돈으로 설립한 복지시설은 90년도 당시 복지 법인을 받지 않은 시설 중 최고 규모가 됐고, 93년도에 김영상 대통령 내외가 방문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당시 영부인은 김 목사의 이야기에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고.

그는 최연소 나이와 10년의 짧은 경력,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장애인 최초로 사회복지훈장인 ‘동백장’을 받았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임마누엘복지재단은 △모든 장애인들에게 복음을 전한다 △무의탁 장애인들에게 새로운 삶의 터전을 제공한다 △교육, 의료, 직업, 재활교육을 통해 사회의 참다운 일원으로 교육한다 △장애인의 자녀와 고아들의 교육 사업을 한다는 설립취지에 맞게 다양한 활동을 진행해오고 있다.

김경식 이사장, 장학금 전달
▲2016년 2월 24일 열린 장학금 수여식 감사예배에서 김경식 이사장이 학생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임마누엘집
김경식 이사장, 임마누엘집
▲2016년 2월 3일 열린 설 명절맞이 사랑과행복나눔잔치에서 김경식 목사가 이웃들에게 쌀을 나눠주고 있다. ⓒ임마누엘집
진도군종합복지관 주최 장애인의 날행사
▲지난 4월 17일 진도군종합복지관이 주최한 장애인의 날 행사에서 김경식 목사가 지역 주민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임마누엘집

지적장애인 생활시설인 임마누엘집을 비롯해 작업활동시설인 임마누엘 보호작업시설, 지적장애인 재활사업인 생수의 집, 장애인주간보호시설인 곰두리두레마을, 장애인지역사회이용시설인 진도군장애인종합복지관, 장애인자립생활체험홈인 임마누엘자립생활체험홈, 지적장애인작업활동시설인 포천장애인보호작업시설을 운영 중이다.

특히 생활시설 거주인들이 시설생활에서 벗어나 지역 주민의 한 사람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자립생활기술훈련과 맞춤형 프로그램을 제공해 완전한 자립이 가능할 수 있도록 지원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이밖에 재가장애인 독거 노인을 상대로 한 ‘사랑의 쌀 나눔잔치’ , 재가장애인 자녀들, 영세 농어촌 목회자 자녀들을 대상으로 한 ‘장학금 지급’은 30년째 진행 중이다. 사회복지사로 일하던 직원을 해외 선교사로 파송해 선교 지원도 하고 있다.

 “장애인들이 예수 믿고 소망과 기쁨 얻을 때 가장 기뻐”

김 목사는 “사역을 하면서, 35년 동안 가장 기뻤던 일은 중중 장애를 가진 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그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용기를 얻고 삶의 기쁨과 소망을 얻게 된 것이다. 그리고 뭐니뭐니 해도 예수를 잘 믿는 것이 가장 기뻤다. 그런데 장애인 복지 선교가 가면 갈수록 영적인 선교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차원의 복지로 진행되는 것을 볼 때 마음이 아프다”고 전했다.

그는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예배의 중심 가운데 이들이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로 해야겠다는 것이 저의 생각이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나아가니까 하나님께서 형통하게 주관하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주께 하듯 하는 마음으로, 이들이 주 안에서 변화될 수 있도록 기도한다”고 했다.

이같은 김 목사의 헌신과 사랑 덕에 이곳 복지재단의 장애인들은 김 목사를 아빠 같이 따르며 좋아한다. 김 목사는 지적장애나 발달장애를 겪고 있는 이들과도 은혜 가운데 대화가 통한다고.

“아빠, 오늘 하루 행복하셨어요?”, “나도 자매님 만나니까 너무 좋았어요”, “목사님, 오늘도 저는 저녁에 기도하고 잠을 잘 거에요”,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행복했습니다”, “하나님 은혜 가운데 신바람 나는 하루였어요.”

대화에는 사랑이 묻어났다. 김 목사는 “식구들과 주로 신앙적인 대화를 많이 한다. 이 땅에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나면 눈물, 슬픔, 장애도 없는 천국에서 영원히 살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식 목사, 임마누엘집,
▲김경식 목사가 임마누엘집 앞에서 식구들과 함께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강혜진 기자

김경식 목사와 대화를 하고 난 후 출애굽기 15장 말씀이 생각이 났다.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행하였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백성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시니 그가 물에 던지매 물이 달아졌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쌔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출15:22~26)

쓴물에 던져진 나무와 같이, 쓴물 만이 나오는 이 죄악된 세상에 던져지셔서 우리 인생들의 죄를 사하시고 단물이 나는 삶으로 변화시켜 주신 예수님.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주의 손과 발이 되어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헌신하는 김 목사의 삶을 통해 쓴물이 단물이 되는 기적이 오늘도 이뤄지고 있다.

‘지극히 작은 자를 가장 귀히 여기자’는 원훈에서 볼 수 있듯이 김 목사의 마음은 오늘도 낮은 곳에서 고통받는 이들에게 가 있다. 아니, 작은 자와 함께 하시는 주님께 가 있다고 하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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