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 가서 먹고 싶은 메뉴 대신 남들 따라 고르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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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팔랑귀

▲수많은 교회들에다 온라인까지, ‘교회’의 선택지가 너무 많아졌다. ⓒ픽사베이

▲수많은 교회들에다 온라인까지, ‘교회’의 선택지가 너무 많아졌다. ⓒ픽사베이

큰딸이 남자친구랑 이야기하면서 자신은 ‘팔랑귀’라고 한다. 그 말을 거실에서 듣고 있던 나는 ‘나와 내 남편도 팔랑귀’라고 거들었다. 그러자 옛날 일이 떠올랐다.

첫 아이를 낳고 시댁에서 함께 살고 있던 시절에 경험이 조금 더 많은 시누이의 조언을 잘 들었다. 당시 시누이는 아이를 분유로 먹이고 있었고 나는 젖을 먹이고 있었기에 경우가 달랐는데, 경험이 없던 나는 젖은 아무 때나 먹여도 된다고 말하는 엄마의 말을 무시하고 시누이의 말을 듣고는 시간을 정해 아이에게 젖을 먹이려 했다. 당연히 아이는 배가 고파 칭얼댔고, 나는 아이를 달래느라 밤새 잠을 못 자곤 했다.

팔랑귀 경험은 쇼핑을 갔을 때 종종 나타나곤 한다. 맘에 드는 옷을 골랐는데 함께 간 친구나 남편이나 친척이 다른 것을 골라 그것이 너무 잘 어울린다고 하면, 맘에 꼭 들지 않는데도 결국 마지막에 주위 사람들이 말한 것을 구입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골라서 집에 오고는 고른 것에 만족하기보다 불만족과 후회의 감정이 마음 한켠에 남아 있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는 비단 쇼핑뿐 아니라 식당에 가서도 적용이 된다. 내가 맛있겠다고 생각한 것을 고르기보다, 남들이 고르고 나면 맛있겠다 생각하고 따라 고르는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다른 것을 먹어볼 걸!’ 하고 후회한다.

이렇게 타인의 말에 영향을 잘 받는 사람들은 왜 그럴까?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자기 소신, 자기 확신, 자기 결정권이 약한 사람들이 타인의 영향을 잘 받는다고 볼 수 있다. 내 자신에게 확신이 없다 보니 타인이 확신을 가지거나 주장을 하면 쉽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어느 10대 아이와 저녁을 먹으러 가면서 “우리 뭘 먹을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아이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떡볶이 부페에 가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옆에 있던 엄마가 아이에게 바로 “떡볶이 같은 분식을 저녁에 왜 먹어! 영양도 많이 부족한데”라고 했을 때, 그 10대 아이는 몇 초도 안 되어 마음을 바꾸고 “그러면 한식을 먹을까?”라고 했다.

결국 저녁으로 한식을 먹었는데, 아이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버스에서 혼잣말로 “떡볶이가 진짜 먹고 싶었는데…”라고 했다. 필자는 그 말을 들으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끝까지 주장하지 못하는 아이도 마음에 걸렸고, 아이의 의견과 생각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엄마도 마음에 걸렸다.

부모 또는 권위자로부터 존중을 경험하지 못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에 확신을 가지기 어렵고, 그것을 주장하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물론 타인의 말에 영향을 받는 데는 기질도 작용한다. 착하고 순한 아이들이 의견을 잘 존중받지 못할 때 ‘착한아이 신드롬’ 또는 ‘아니요’라고 말하지 못하거나 상대방에게 나를 맞추려고 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Edge Hill University에서 사람들의 기질과 쉽게 설득 당하는 것의 연관성을 연구한 실험이 있다. 316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두려움을 느끼는 기질의 사람들(fearful)은 권위자들에게 잘 설득당하는 것으로 나왔다. 다른 말로 하면 소심하고 착한 사람들이 권위자의 말에 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악의가 있는 사람들은(malevolent) 자원이나 시간에 제한이 있을 때 설득을 잘 당하고, 관계적 성향이 있는 사람(social apt)은 예전 경험과 연관된 것이 있을 때 설득을 잘 당한다고 한다.

이렇게 타인의 영향을 받는 것은 기질마다 다양한 반응으로 나타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똑같이 엄마 뱃속에서 나온 아이라도 한 아이는 너무나 순종적이고 타인을 배려하는가 하면, 한 아이는 자기 주장이 강하여 자기 것을 아주 잘 챙기는 아이로 자란다.

다음으로 타인의 영향을 잘 받는 사람은 예민한 경우가 많다. 타인의 조금만 슬픈 얼굴을 보아도 타인의 마음이 바로 느껴지고 아주 작은 얼굴 표정 변화를 알아차리면서 상대방 감정을 느끼거나 판단하는 경우,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훨씬 더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옆사람이 괴로운 표정을 지으면 나도 모르게 원인이 혹시 내가 아닌가 생각하고 그 괴로운 표정의 책임을 함께 느끼며 불안해하는 경우다. 또는 내가 ‘아니요’ 또는 ‘싫어요’라고 거절을 했을 때 상대방의 불편해하는 마음이 너무 크게 다가오고 그런 불편한 감정을 함께 느끼는 것을 견딜 수 없어 자신도 모르게 웬만하면 ‘예’라고 해버리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타인과 감정, 생각이 상충될 때 마음이 많이 괴로운 것은 두 마음이 예민하게 느껴져 함께 싸우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것과 주위 환경이나 타인의 소망을 채워주고자 하는 두 마음이 갈등한다. 이런 사람들은 작은 변화도 예민하게 알아차리니, 자신이 결정한 일도 예민하게 금방 다시 생각하게 되고, 타인의 의견도 예민하게 받아들이니 팔랑귀처럼 결정을 번복하기도 한다.

이런 부분이 괴롭다 보니 타인의 영향을 심하게 받는 사람들은 일부러 타인에게 조언을 구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조언을 구하면 왠지 조언을 준 사람의 말을 들어야 할 것 같은 부담 때문이다.

팔랑귀인 사람들은 전혀 남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에 비해서는 태도가 열려 있지만, 자기 확신이 부족하기에 타인에게 결정권을 맡기고 수동적으로 살 수 있다.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덜 지기도 하지만, 반대로 내적 어려움과 외적 결과를 경험해야 하므로 개선이 필요하다.

먼저 자기 확신이나 자기 결정권 향상이 필요하다. 팔랑귀인 사람들은 주위 권유나 의견으로 결정하고는 나중에 후회를 하는 일이 많이 생기므로,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항상 어떤 일의 최종 결정권은 내가 가지는 연습을 하는 것이 좋다.

도움이 되는 것 중 하나는 “후회한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대신 “내가 결정했어”라고 말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러면 훨씬 더 책임지는 삶을 살 수 있다.

예를 들어 남편이 삼시 세끼를 먹어서 힘들다고 매일 불평하는 아내라면, “남편 때문에 내가 삼시 세끼를 차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해서 하는 일이야”라고 말하기를 연습해야 한다. 만약 정말 100% 남편 때문에 억지로 하는 것이라면, 그 행동을 이제 멈춰야 한다. 어쩔 수 없이 한다는 생각도 내려놓아야 한다. 사실 내 삶의 통제권은 타인이 아닌 나 자신에게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결정할 때 질문을 하면 좋다. 이 선택을 하면 내일이나 다음 주에 후회할 것 같은지 아닌지를 자문하는 것이다. 남의 의견을 존중하다 나중에 후회할 것 같으면, 그 선택은 당장 멈추고 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타인보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이 더 중요함을 자신에게 늘 들려줘야 한다. 만약 내 생각과 감정이 중요하지만 확신이 들지 않는다면, 나를 아껴주고 사랑하면서 정직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에게 그 이슈로 이야기를 해보는 것도 좋다. 주위 좋은 상담사나 인생 경험이 많은 어른도 괜찮다. 하지만 자기 주장이 너무 강한 사람은 안 되고, 객관화시켜서 상황을 볼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럴 때 자기 결정권이 손상되지 않는다.

팔랑귀로 인해 소신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융통성은 있으나 자기 결정권을 확실하게 행사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란다. 그럴 때 자신감 있게 삶의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서미진 박사.

▲서미진 박사.

서미진 박사

호주기독교대학 부학장
호주한인 생명의 전화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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