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내 배우자는 변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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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가족 시스템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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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유달리 약 드시길 싫어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나는 약을 안 먹어도 건강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믿음 때문인지, 실제로 엄마는 여든의 나이가 되었음에도 특별한 약 없이도 건강하신 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입버릇처럼 엄마가 하시던 말 때문인지, 이상하게 필자도 약에 대한 거부감이 있습니다. 약을 먹고 나면 건강해지고 회복될거야 라는 믿음이 필요한데, 약을 먹을 때마다 왠지 불쾌감이 있고 긍정적 기대감을 많이 갖지 않으면서 의무감으로 먹게 되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건강식품조차 인상을 찌푸리며 먹는 자신을 보면서, 부모가 준 영향이 얼마나 오래 가고 자녀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주게 되는지를 보게 되었습니다.

결혼 후 많은 배우자들은 상대 배우자를 바꾸려 합니다. 예를 들어 배우자가 컴퓨터 게임을 좋아할 경우, 결혼을 했으니 이제는 컴퓨터 게임을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배우자가 사람을 만나기 싫어하는 경우 어떻게든 주말이 되면 바깥에 나가기를 요청하고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다고 잔소리를 하게 됩니다.

이런 경우 많은 배우자들은 자신이 노력해서 배우자에게 압력을 가하거나 도전을 주면 배우자는 내가 원하는 대로 바뀔 것이라는 믿음을 갖습니다. 그러나 결국 변하지 않는 배우자로 인해 좌절을 경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배우자가 변하지 않을까요?’라고 생각하며 어려움을 호소하는 어떤 사람들은 배우자 변화시키기를 포기했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배우자에게 맞춘다고 말합니다.

혼자만의 삶에서 문제를 고치려고 할 때 노력하면 바뀔 가능성이 있지만, 결혼 후 배우자가 변하지 않는 것을 단순히 내 노력으로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입니다. 단순히 원인과 결과의 공식처럼 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배우자와 내가 만나 한 가정을 이룰 때는 그냥 한 사람과 한 사람의 만남이 아닙니다. 한 사람이 살고 있던 다른 가정에서 형성된 가치, 삶의 습관, 태도, 대인관계 양상 등을 그대로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한 사람과 한 사람이 만난 것이 아니라, 어쩌면 한 가정의 대표와 한 가정의 대표가 만난 두 가지 시스템의 결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족 치료에서 가정은 단순한 가족 구성원의 합 이상이라고 말합니다. 그 가정 안에 형성되는 독특한 상호 작용 패턴이나 규칙이나 의사소통 방식 같은 것들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건강한 것이든 건강하지 않은 것이든 그 가정이 유지되는 방식으로 작용해, 배우자의 변화가 생각보다 쉽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가정의 문제는 나의 배우자 때문이야’ 또는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 때문이야’라고 볼 것이 아니라, 가정 전체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보아야 하고, 그것이 어디로부터 왔는지를 볼 수 있는 눈이 있을 때 가정 문제를 건강하게 해결할 수 있게 됩니다.

예를 들어 가장인 남편이 컴퓨터를 너무 좋아한다고 할 때, 무조건 컴퓨터를 많이 하는 것은 나쁘니까 하지 말라고 하고 고치려 하기 전에, 그 문제가 어디로부터 왔고 현재 가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큰 그림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남편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린 시절 엄마·아빠 간의 갈등을 많이 경험해야 했고, 어떤 때는 부모님 사이에 오가는 폭력까지 경험하는 상황에서 두려움과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컴퓨터 게임에 몰입했다고 합니다.

고통을 이겨내기 위한 도피 수단 또는 고통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컴퓨터 게임을 사용했고 그 컴퓨터 게임이 삶의 즐거움을 주었던 위로였던 것입니다. 그러던 남편이 다시 컴퓨터에 몰입하게 된 것은 아내와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였다고 합니다. 남편은 어린 시절 사용했던 고통 회피 방식을 그대로 결혼관계에 가져와서 사용했던 것입니다.

남편의 컴퓨터 중독의 문제를 고치라고 하기 전에, 남편과 긍정적인 상호 작용을 하는 법을 먼저 익히는 것이 어쩌면 그 가정의 문제를 고치는 해결책이 될 수 있습니다. 비슷한 경우도 많은 가정 가운데 일어납니다.

그래서 가정에서 ‘문제아’라고 불리는 사람은 그 사람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가정 안에 있는 역기능적 시스템의 문제를 보여주는 하나의 창구로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가정 문제를 바라볼 때, 문제 자체를 가진 사람을 바라보기보다 가정 내 상호 작용에서 나타나는 역 기능적 문제를 볼 수 있다면, 훨씬 더 답을 잘 찾을 수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내가 태어난 원가정에서 형성된 규칙이나 삶의 습관 또는 대인관계 패턴을 아직도 가지고 있으면서 은근히 그것을 나 자신과 배우자, 자녀에게 요구하면서 힘들게 하고 있지 않은지 살펴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집안 전체가 명문 대학 출신이라면, 나도 모르게 자녀에게도 그것을 기대하면서 암묵적으로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거나 그런 잣대로 아이들을 평가하고 있지 않은지, 또는 모든 것에 ‘최선을 다해 완벽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져준 엄마의 교육으로 인해, 집안일을 잘 하고 있음에도 더 잘 해야 한다고 자신을 닥달하면서 가족들에게도 완벽한 생활을 요구하고 있진 않은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건강한 가정은 적절한 규칙과 융통성을 가지고 유기체로 성장해 가는 가정입니다. 규칙을 세우지만 융통성 있게 적용할 수 있고, 가족이 발달하면서 바뀔 수 있는 규칙을 적용하는 가정입니다. 그리고 엄마와 아빠로서 기본적 역할들을 수행하지만, 필요하다면 그 역할들을 조정할 수 있는 가정입니다.

아직도 내가 태어난 가정에서 배웠던 방식대로 여전히 살고 있고 배우자에게 그것을 강요하고 있다면, 이제 그것을 내려놓고 새롭고 건강하며 융통성 있는 가정에 맞는 시스템을 세워야 할 때입니다.

▲서미진 박사.

▲서미진 박사.

서미진 박사

호주기독교대학 부학장
호주한인 생명의 전화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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