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옥 박사 기독문학세계] 역사 왜곡, 예술적이면 용서받을 수 있나
축하하지만 우려와 두려움 공존
5.18, 4.3에 대한 작가 인식 분노
작가 역사관에 독자들 영향받아
예술적 표현의 다양성 존중하나
역사적 진실에는 도덕적 책임도
중요한 것은 독자의 비판적 사고
작가의 주관과 역사적 사실 구별
작품 통해 얻는 통찰 가치 평가를
문학에서 역사적 사건이 작가의 주관에 따라 왜곡 표현됐을 때, 이러한 작품을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용서할 수 있을까?
예술의 자유와 표현이라는 관점에서, 작가는 자신의 창작물에서 사건을 선택하고 해석할 자유가 있다. 이 과정에서 주관적 시각이 개입되며, 이는 예술의 본질적 특성 중 하나이다. 해석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도 역사적 사건은 여러 가지 관점에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작가가 독자에게 사실이 아닌 것을 진실처럼 제시한다면, 특정한 이념이나 목적을 위해 사건을 재구성했다는 비판을 면치 못한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역사적 사실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할 도덕적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역사적 사건이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 경우, 이를 왜곡하여 표현하는 것은 국가의 정체성마저 흔들 위험이 있다.
물론 예술의 가치와 의의는 상징성과 은유이다. 때문에 문학은 때때로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상징적이거나 은유적인 방식으로 사건을 다룰 수 있다. 이러한 접근은 역사적 사건의 본질을 탐구하고, 독자가 새로운 통찰을 얻는 데 기여한다. 사건의 감정적·심리적 경험을 전달함으로써 독자가 역사적 맥락을 더 깊이 이해하도록 도울 수 있다는 뜻이다.
‘한국 문학의 위대한 승리’, ‘한강, 2024 노벨 문학상 수상!’ 연일 쏟아지는 한국 언론의 찬사이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는 이러하다. “한강은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 시적이고 실험적인 스타일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가 되었다.”
주말에도 서점마다 작품을 사겠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끝없는 매진 행렬 속에 사인받은 중고 책은 50만 원까지 올랐고, 인쇄소는 연일 밤샘 작업이다.
‘한국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현실과 그에 대한 우리 사회의 반응에 대하여 나도 경이로움으로 축하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려를 금 할 수 없다. 작품을 읽어보겠다고 줄줄이 늘어선 젊은이들을 볼 때, 더욱 우려스럽고 두렵다.
내가 한강 작가의 글과 처음 마주 한 것은 2017년 그가 뉴욕타임스에 보낸 기고문이었다. 기고문 제목은 ‘While the U.S. Talks of War, South Korea Shudders’로, 한반도 전쟁 위협과 이에 대한 남한의 두려움, 그리고 한국전쟁의 역사적 맥락을 다루고 있다.
전쟁 위협과 남한의 두려움에 대해서는 예술의 표현과 자유로 이해할 수 있다. 작가 자신의 사건에 대한 감정적·심리적 경험을 전달함으로써 독자가 역사적 맥락을 더 깊이 이해하도록 하려는 의도도 이해한다. 그러나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술과 그 사건의 맥락에 대한 작가의 인식에는 분노와 우려를 금할 수 없었다.
이 기고문에서 한강은 북한의 남침으로 발발된 6.25 전쟁을 ‘대리전(proxy war)’이라고 규정한다. 원문을 보자. “The Korean War was not simply a war between North and South Korea, but a proxy war fought by surrounding powers on Korean soil….”
나의 부모 세대는 6.25 동란을 직접 겪으셨다. 우리 가족은 부모님을 통해 6.25의 진상을 들었고, 반공의식을 교육받았다. 남편과 나는 직장에서 4.3 사태와 5.18에 대하여 학생들과 많은 토론을 하고 진실을 나눴다. 이 가정교육은 대를 이어가고 있다.
또 다른 문장을 보자. “While the U.S. government speaks lightly of pre-emptive strikes and war, the South Korean people lie frozen in fear.”
이 문장은 마치 미국이 6.25 전쟁의 원인 제공자처럼 표현되지 않았나. 작품 전반에 걸쳐 표현된 한강 작가의 역사에 대한 왜곡(나는 왜곡이라고 분명히 말한다)과 작가의 역사 인식에 내가 분노하는 이유이다.
1989년인가.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 이후 우리 사회는 좌경화로 급하게 달려갔고, 그것이 현실이 됐다. 한강 작품을 읽고 작가의 역사관에 영향을 받을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안타깝고 두렵다.
한강은 한국 사람인가, 아니면 지구 어느 다른 곳의 국민인가. 글은 곧 또 하나의 그 사람 자신이다.
한강의 대부분 작품처럼, 나는 제주 4.3 사태, 5.18 광주 사건, 박근혜 대통령 탄핵몰이 촛불집회, 북한 핵 위협에 대한 태도 등에 대해 작가가 역사적 사건을 주관에 따라 왜곡해 표현한 경우, 그 작품이 예술로서 용서될 수 있는지를 작가로서 고민한다.
예술의 자유와 표현의 다양성은 존중해야 하지만, 작가는 반드시 역사적 진실에 대한 도덕적 책임이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독자가 비판적 사고를 통해 작가의 주관과 역사적 사실을 구별하고, 문학 작품을 통해 얻는 통찰과 감정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송영옥 교수
영문학 박사, 기독문학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