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에서 온 판사: 속은 추악하지만 겉은 아름다운 마귀·악마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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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 <지옥에서 온 판사> (1)

저승 재판관과 최고신 수하 설정
기독교 가르침과 정면으로 상충
한국 저승 신화에는 잘 들어맞아
마귀와 악마에 대한 성경 가르침
반대로 비틀수록 작품 인기 높아
은연중에 악하지 않단 인식 확산

▲인간 세계로 잠시 추방된 지옥의 재판관이자 악마 유스티티아의 이야기를 다룬 판타지 드라마 &lt;지옥에서 온 판사&gt;.

▲인간 세계로 잠시 추방된 지옥의 재판관이자 악마 유스티티아의 이야기를 다룬 판타지 드라마 <지옥에서 온 판사>.

이번 주부터 박욱주 교수님의 칼럼은 SBS 금토 드라마 <지옥에서 온 판사>를 분석합니다. 이 드라마에는 배우 박신혜(강빛나), 김재영(한다온), 김인권(구만도), 김아영(이아롱), 김영옥(오미자), 김홍파(정재걸), 이규한(정태규), 김재화(장영숙), 김혜화(김소영), 김지훈(박동훈), 박지훈(고은섭), 최동구(정선호), 이중옥(김재현), 하경민(문동주), 김광규(안대용) 등이 출연하는 ‘선악공존 사이다 액션 판타지’입니다. -편집자 주

악마에 대한 지식: 성경이 아닌 허구문학으로부터 유래된 악마의 이미지

지난 9월 21일부터 방영 중인 SBS 드라마 <지옥에서 온 판사>는 지옥에서의 불성실한 판결 태도 때문에 인간 세계로 잠시 쫓겨난 정의의 여신 유스티티아(Justitia, 박신혜 분)의 활약을 그린 판타지 연속극이다.

특이한 점은 작중 유스티티아가 인간 세계에서는 정의의 여신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지옥의 악마들 가운데 한 명이었다는 점, 그리고 인간 세계로 쫓겨난 이 악마가 여성 판사 ‘강빛나’의 몸에 깃들어 실제 지옥에서와 마찬가지로 현실 세계에서도 살인자들의 형량을 정하고 집행한다는 점이다.

이 작품의 서사는 전반적으로 치밀함이 떨어지는 편이다. 법조계의 현실이 엉성하게 표현된 데다, 인물 간 관계 역시 억지스럽게 형성되는 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빠른 서사 전개와 주인공 강빛나의 악독한 나르시시스트 연기가 어우러져, 온갖 판타지 요소로 점철된 서사의 허술함과 개연성 부족을 가려주는 식으로 작품의 매력을 부각시키고 있다.

작품의 주요 감상 포인트가 경찰 수사와 사법부 재판 과정의 현실성과 개연성이 아닌 만큼, 서사의 허술함이 작품 인기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이 작품의 감상 포인트는 주인공인 악마 강빛나가 얼마나 특별하고 초월적인 방식으로 악인들을 괴롭히고 살해하는지 지켜보는 데 있다.

현실의 법으로 처벌하기 어려운 악인들을 초자연적 힘으로 처절하게 괴롭히고 압박해 시청자들에게 통쾌한 정의구현의 카타르시스를 안겨주는 것이 이 드라마의 매력이라고 볼 수 있다.

<지옥에서 온 판사>는 현대적이고 서구적인 이미지의 판사 캐릭터를 선보이기 위해 로마 신화의 여신을 등장시켰지만,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지옥과 초월자들은 실질적으로 한국의 무속, 민속신앙, 그리고 불교 내세관이 혼합되어 탄생한 저승과 염라대왕 신화를 각색한 것에 가깝다. 여기에 로마 신화나 한국 민속신앙에서 찾아보기 힘든 악마라는 설정이 추가됐는데, 이는 당연하게도 기독교 교리로부터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일부 설정을 로마 신화에서 차용하기는 했지만, 지옥 형벌의 형량이나 재판 체계, 그리고 저승의 관료체계 같은 핵심 설정은 모두 내세 심판에 대한 한국인들의 전통 민속신앙으로부터 나온 것이라 볼 수 있다. 이 외 죄인의 영혼 이마에 낙인을 새기는 설정도 전근대 중국이나 한반도에서 자주 시행되던 묵형 혹은 자자형을 각색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지옥에서 온 판사>가 작중 한국 민속신앙의 염라대왕 역할을 담당하는 유스티티아를 굳이 악마들 중 하나로 설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를 살펴보기 전에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악마들에 대해 자세히 기술한 대다수 문헌들이 성경 정경도, 외경도 아닌 르네상스 시대 일부 작가나 신학자들에 의해 쓰였다는 점이다.

즉 오늘날 대중매체에서 자주 차용되는 악마에 대한 설정들은 성경의 가르침과 전혀 관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허구적 상상으로부터 나온 것들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간혹 성경 외경으로부터 유래된 내용도 있으나. 이 역시 정통 조직신학 범주에 들어가지는 않는다. 이 외에도 전근대 무슬림들의 악마에 대한 교설 또한 현대 대중문화 속 악마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일정부분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중세 마도서 &lt;솔로몬의 열쇠&gt;(Clavicula Salomonis)의 한 페이지. 성경에는 없는 마귀에 대한 허구적 지식이 기록되어 있다. ⓒbooksofmagick.com

▲중세 마도서 <솔로몬의 열쇠>(Clavicula Salomonis)의 한 페이지. 성경에는 없는 마귀에 대한 허구적 지식이 기록되어 있다. ⓒbooksofmagick.com

악마에 대한 인식: 마귀나 악마의 매력을 극대화하는 콘텐츠 흥행 전략

<지옥에서 온 판사>의 주인공이 저승의 재판관이면서 최고 신(神)의 수하로 일한다는 설정은 한국 저승 신화에는 잘 들어맞지만, 타락한 천사들에 대한 기독교의 가르침과는 정면으로 상충된다. 신구약 전체에서 하나님이 타락한 천사를 수하로 사용하신다는 내용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왕 아합을 꾀어 죽음에 이르도록 벌을 내리실 때 한 천사를 부리신 기록(왕상 22:19-23)이 있기는 하나, 이 천사는 ‘하늘의 만군’ 구성원으로서 결코 마귀나 그의 수하라고 볼 수 없다. 또 요한계시록에는 무저갱을 지키는 직분을 맡은 천사 아볼루온(계 9:11)이 등장하나, 이 역시 마귀나 그의 수하가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을 받드는 의의 천사 중 하나다.

즉 <지옥에서 온 판사>의 악마 설정은 애초 한국 민속신앙 안에서 트릭스터 혹은 안티히어로 성격을 가진 염라대왕의 역할을 보다 돋보이게 하려고 새로 창안한 것이거나, 기독교 조직신학 외의 허구 문학으로부터 차용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마귀나 악마에 대한 이런 허구적 설정은 미국 TV 시리즈 <루시퍼>에서 이미 대중적 인기를 끌 수 있는 요소로 입증됐다. <지옥에서 온 판사>의 악마 강빛나 역시 <루시퍼>의 오마주라고 봐도 무리가 없을 만큼 그 설정이 닮아 있다.

▲&lt;지옥에서 온 판사&gt;의 주인공 강빛나의 원형이라고 볼 수 있는 미국의 TV 시리즈 &lt;루시퍼&gt;의 주인공 루시퍼 모닝스타.

▲<지옥에서 온 판사>의 주인공 강빛나의 원형이라고 볼 수 있는 미국의 TV 시리즈 <루시퍼>의 주인공 루시퍼 모닝스타.

최고 신의 명으로 지옥에서 죄인들의 영혼을 형벌하던 천사(혹은 악마)가 인간 세상에 적응하면서 초자연적 힘을 사용하여 범죄를 해결해 나간다는 <루시퍼>의 서사 설정은 이미 <화유기>나 <마이 데몬> 같은 한국 판타지 드라마에서도 비슷하게 차용된 바 있다.

이런 작품들 속에서 악마 역할을 맡은 배우들은 성경에 기록된 마귀의 속성 그대로 지극히 아름답고 매력적인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 힘쓴다.

이것은 거의 전적으로 성경의 가르침에 영향을 받은 설정으로 보인다. 원래 동서양을 막론하고 아브라함의 종교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종교에서는 악신들이 추악한 형상이나 속성을 갖는 것으로 묘사된다.

성경에서도 마귀의 속성은 추한 것으로 규정되지만, 외모와 형체는 지극히 아름다운 것으로 묘사된다. 마귀는 이 아름다움을 가지고 인간을 타락의 길로 유혹하는데, 이런 유혹자로서의 속성이 마귀나 악마를 등장시키는 대중문화 콘텐츠의 매력을 강화하는 데 안성맞춤인 것으로 인식되는 듯하다.

그 결과 현대 대중문화에 등장하는 거의 대부분의 마귀나 악마 캐릭터는 도저히 그 추악하고 저열한 속성을 떠올리지 못하게 할 정도로 아름답고 매력적인 형상으로 묘사된다. 게다가 하나님이나 최고 신에 대해서는 반항적이지만, 인간에 대해서는 우호적이고 친밀한 존재로 묘사되는 것도 이제는 거의 하나의 클리셰로 굳어지고 있다.

▲현대 대중문화에 등장하는 거의 대부분의 마귀나 악마 캐릭터는 도저히 그 추악하고 저열한 속성을 떠올리지 못하게 할 정도로 아름답고 매력적인 형상으로 묘사된다.

▲현대 대중문화에 등장하는 거의 대부분의 마귀나 악마 캐릭터는 도저히 그 추악하고 저열한 속성을 떠올리지 못하게 할 정도로 아름답고 매력적인 형상으로 묘사된다.

마귀와 악마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반대로 비틀면 비틀수록, 작품의 인기는 높아진다. 이런 문화적 조류는 궁극적으로 기독교인들의 영적 원수이자 주적 마귀에 대한 경계심을 허무는 데 일조한다. 마귀나 악마가 허구적 존재라 생각하는 비기독교인이나 무종교인 사이에도 은연 중에 이 타락한 천사들이 생각보다 악하거나 해로운 존재가 아니라는 인식을 퍼뜨리는 것이다.

현대 대중문화에 등장하는 거의 대부분의 마귀나 악마 캐릭터는 도저히 그 추악하고 저열한 속성을 떠올리지 못하게 할 정도로 아름답고 매력적인 형상으로 묘사된다. <계속>

박욱주 박사

연세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객원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 좁은문은혜교회에서 목회자로 섬기면서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 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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