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목회자인재풀센터 대표 박현식 목사
신약성경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에 대한 칭찬과 책망을 보면 교인 수가 많다고 칭찬하거나 교인 수가 적다고 책망한 구절은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부자 교회인 라오디게아 교회는 책망만 들었고 칭찬 한마디 없었으나, 가난한 교회인 서머나 교회는 책망은 듣지 않고 칭찬만 들었다. 교회에 대한 세속적인 성공주의자들의 기준과 정반대된다.
주님께서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가 일곱 교회 사자들에 대한 편지라면, 칭찬과 책망도 목회자들에 대한 칭찬과 책망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큰 교회 목사들은 다 라오디게아 교회 목사들처럼 책망만 받을 목사들이고 작은 교회 목사들은 전부 서머니 교회 목사들처럼 칭찬만 받은 목사들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큰 교회 목사 중에도 훌륭하고 존경스러운 목사님들도 많이 있고 타락하고 부패한 목사들도 있으며, 작은 교회 목사들 중에도 훌륭하고 신실한 목사님들도 있고 악하고 게으른 목사들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예수님께서는 번영복음을 추종하는 타락한 신앙인들의 기준으로 큰 교회 목사라고 무조건 ‘너 성공한 목사구나. 잘했다. 착하고 부지런한 종아!’라고 칭찬만 하고 작고 가난한 교회 목사라고 무조건 ‘너 목회의 실패자구나.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라고 책망만 하지 앟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은 이러한 성공주의 신앙의 가치관을 뒤엎으셨다.
새뮤얼 러더포드는 ‘새뮤얼 러더포드 서한집’을 쓴 청교도 목사이며 저명한 신학자다. 그는 웨스트민스터 총회에 스코틀랜드 교회의 대표 중 한 사람으로 파송됐던 분이다.
20세기의 선지자라고 불렸던 에이 토저 목사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새뮤얼 러더포드 서한집’을 한 번씩은 읽어야 한다고 권면했다.
러더포드가 자필로 쓴 ‘소요리문답’의 초고가 영국 에든버러대학 도서관에 보존돼 있다. 그는 에든버러 대학을 졸업하고 그 학교의 교수로 지명을 받는다. 그러나 교수의 직무를 그만두고 앤워스라는 시골 마을에 있는 교회에서 목회를 했는데, 거기서 그의 부인이 심한 질병으로 고통을 당하다가 하늘나라로 떠났다. 두 아이도 질병으로 죽었다.
앤워스 지역은 교회 가까이에 큰 마을이 없었다. 사람들은 산이 많은 각 마을에 흩어져 있었다. 그 교회의 성도들은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볼품없고 가난하고 초라한 시골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목회자인 러더포드 목사는 그 가난하고 늙고 초라한 시골 사람인 교인들을 목자장이신 예수님께서 극진히 사랑하시는 귀한 양들이기 때문에 돌볼 가치가 있는 양떼라고 여겼다. 러더포드 목사는 에든버러대학을 졸업하고 그 대학의 교수였다가 시골의 작은 교회에 부임했지만, 자신의 학식과 재능이 시골의 배우지 못한 영혼들을 구원하는 데 드리기에는 너무나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앤워스라는 시골 마을이 귀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자기가 수고한 열매를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지정해 주신 지역이었기 때문이었다.
필자가 교단을 초월하여 목회자, 교회 중직자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어느 교회 이야기가 나오면 “그 교회는 교세(敎勢)가 어느 정도 됩니까?” 상대방이 묻는다. “교인이 몇 명이냐?”는 뜻이다. 기독교인들은 만나면 “교인 수가 몇 명입니까?” “교회 예산이 얼마입니까?”라고 묻는 말을 많이 들을 수 있다. 그들은 교인의 숫자나 교회의 예산이 교세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서머나 교회처럼 성도들이 충성되고 헌신된 교회를 ‘강력한 교회’, ‘교세(敎勢)가 있는 교회’라고 칭찬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일제시대에 대도시의 ‘수백 명 수천 명이 모였지만 신사참배를 한 교회’를 보시고 “그 교회 교인들 많이 모였구나… 교세가 크네”라고 인정하시지 않으셨을 것이다.
사람들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 비록 작고 가난한 교회지만 우리가 모두 서머나교회와 같이 영적으로 깨어 있고 충성스러운 교회를 만들어 갈 때 예수님께 칭찬 듣는 교회가 될 것이다.
한국교회 목회자인재풀센터 대표 박현식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