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감한 자는 단 한 번 죽지만, 비겁한 자는 여러 번 죽는다고 합니다.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반드시 있어야 할 사람, 두 번째는 있으나 마나 한 사람, 세 번째는 없어야 할 사람입니다. 필자가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 중 하나는 유다입니다. 유다는 3년 반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수많은 기적과 표적을 직접 목격한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스승인 예수님을 팔아넘겼습니다. 성경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마 26:24)” 이런 사람은 차라리 없어야 할 사람입니다.
반면에 다니엘처럼 반드시 필요한 사람도 있습니다. 다니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 아옵소서(단 3:18).” 이러한 믿음과 신앙의 결과로, 느부갓네살왕이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아래 있는 모든 사람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시며, 영원히 변치 않으실 자시며, 그 나라는 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단 6:26)”라는 말씀이 기록되었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과 사람 모두에게 반드시 필요한 사람입니다.
또한 자신의 소유를 팔아 헌금한 후 거짓말로 인해 죽은 부부가 있습니다. 필자는 이 부부를 늘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행 5:5). 베드로가 말하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였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 하니(행 5:9)”라는 말씀처럼, 작은 욕심 때문에 인생을 망치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요즘 뉴스를 통해 강력 범죄 사건을 종종 접하게 됩니다. 범인들은 잠시 후 자신에게 닥쳐올 가혹한 형벌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듯합니다. 범죄 후 곧바로 주변에 설치된 CCTV에 의해 검거되고, 평생 씻을 수 없는 범죄자라는 낙인이 찍혀 인생을 망치게 됩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인생까지 망치는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필자는 그런 사건을 볼 때마다 “왜 사람들이 저렇게 무지할까” 하는 의문을 자주 갖게 됩니다.
필자는 40년 동안 목회를 하면서 다양한 성격의 신자들과 지도자들을 만났습니다. 특히 NGO 단체를 운영하면서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오늘 칼럼을 통해 이 땅에서 내가 어떤 부류의 사람인지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저는 자신에게 주어진 직분과 은사를 악용해 신자들을 속이는 사례를 많이 보았습니다. 0000기도원에 강사로 초청받아 한 주간 집회를 인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원장님께서 저에게 선교단 장비(드럼, 기타, 오르간)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시며, 헌금을 해 달라고 요청하셨습니다. 집회에 참석한 한 장로님께서 큰 은혜를 받고, 장비 구입을 위해 700만 원을 헌금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원장님은 그 돈을 받고도 장비를 단 하나도 구입하지 않았고, 결국 그것을 유용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그 장로님과의 좋은 관계가 깨지고 말았습니다. 저는 신앙을 빙자해 하나님을 속이고 사람을 기만하는 일들을 많이 보아 왔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들입니다. 특히 거짓말은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경우에서 보듯이 매우 무서운 죄악입니다.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계시록 21:8). “개들과 술객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 그리고 거짓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들은 성 밖에 있을 것이다”(계시록 22:15). 사람은 속일 수 있지만 하나님은 절대 속일 수 없습니다.
결론
저는 종종 이런 말합니다. 저는 착한 사람, 즉 우유부단한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우유부단’이란 결단력이 부족하고 망설이기만 하는 성품을 의미합니다. 특히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주저하는 성향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맺고 끊지 못해 항상 어물쩍거리는 행동을 합니다. 만약 이런 사람이 가까이에 있다면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될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람들입니다.
믿음과 신앙생활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명확히 구분되어야 합니다. 중간지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정말 필요한 사람은 말씀에 순종하는 성도이고, 필요 없는 사람은 말씀에 불순종하는 종교인입니다. 있어도 없어도 그만인 사람은 우유부단한 사람입니다.
비겁한 자들이 누구입니까? 필요 없는 사람이며, 우유부단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로 죽은 양심을 소유한 사람이며, 이로 인해 세상은 늘 시끄럽고, 주변 사람들이 불행해집니다. 반면에 꼭 필요한 사람은 주변을 행복하게 만듭니다. 이런 성도는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어 모든 이들에게 본이 됩니다(고린도전서 11:1). 이들은 욥과 다니엘처럼 불로 연단된 정금 같은 믿음을 가지게 되어 신앙생활이 더욱 견고해집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욥기 23:10). “그러므로 내가 주의 계명을 금, 곧 정금보다 더 사랑하나이다”(시편 119:127).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잠언 3:14). 이런 성도들이 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국제구호개발기구 한국재난구호
이사장 조성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