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콜라 신학서 벗어나려 한 자연주의, 결국 진흙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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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우 칼럼] 르네상스(10)-자연주의

헤겔은 말했다. “세상은 언제나 그 시대를 관통하는 시대정신이 있어,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은 그 시대정신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고. 지금 우리는 극단적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래서 대부분 사람의 생각과 마음에는 물질이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결혼과 자녀 출산이라는 당연한 일도 자본주의 통제 속에 갇혀 있다. 심지어 소명 받고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회자가 된 후 교회의 청빙을 받을 때도, 옛날처럼 감사함으로 응하는 대신 조건을 따진다고 한다. 사례비, 집이나 차를 제공하는 등등.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쓴 막스 베버는 칼빈의 영향을 받은 개신교 사상이 자본주의를 형성했다고 갈파했다. 칼빈이 강조한 잠언서 22:29 “자기 일에 능숙한 사람을 보았느냐 그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 그의 가르침에 크게 영향을 받은 중세 프랑스의 위그노 사람들은 직업의 귀천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직업이야말로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거룩한 소명이고, 그것은 마치 성직과 동등한 것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하나님의 면전에서 일한다는 정신으로 정직하고 근면하게 일했다. 그런 부지런함이 부를 창출하는 결과가 되었다. 그들이 핍박을 피하여 도피한 스위스, 화란, 영국을 자본주의의 꽃을 피우게 했다.

역시 르네상스 시대를 관통하는 사상이 있었는데, 그것은 곧 자연주의였다. 세계의 모든 현상과 그 변화의 근본 원리가 자연(물질)에 있다고 보는 사상이다. 스콜라 철학은 “모든 자연 현상은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은 신의 의지”라고 했는데 중세의 과학자들, 코페르니쿠스나 갈릴레이는 자연 현상은 어떤 목적이나 본질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발생할 뿐이라고 했다. 고대 다신론을 추구하는 헬라의 사상을 수용하여 이성적으로 해석했고, 이를 인문주의라고 칭했다. 의도적으로 신 중심의 스콜라 신학 사상을 건너뛰어 인간의 이성과 지적 능력에 대한 믿음을 강조했고, 인간의 잠재력이 실현될 것으로 믿었다. 더 나아가 이성을 진리의 원천으로 보았고, 이성에 의해서만 참된 진리를 알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자연을 깊이 알기(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진력한 것이 연금술(납을 금으로 만드는)과 점성술(과학까지 포함)이었고, 하늘의 별자리를 통해 미래를 알 수 있다고까지 생각했다. 이런 행위들은 전통적 신을 부정하고 스스로 신이 되겠다는 발상이었다. 그런 발상들은 이미 14세기부터 시작되었다. 즉 단테의 신곡은 지옥과 연옥, 천국을 경험하고 구원을 향한 길을 모색하는 내용이다. 그를 안내하는 자로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와 사랑하는 여인 베아트리체를 등장시킨다. 여기서 베르길리우스는 인간의 이성과 철학을, 베아트리체는 사랑의 의지를 뜻한다. 이 세 가지가 충족되어야 천국에 들어간다는 자연주의적 발상이다.

그런 자연주의 철학적 의미가 예술가들의 생각을 지배하여 조각이나 그림으로 구현되었다. 물론 전격적으로 수용하면 조르다노 부르노(Giordano Bruno, 1548-1600) 도미니코 수도사처럼 화형당할 수 있기에, 도입하는 데 조심스러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즉 미켈란젤로가 인체를 그릴 때 나체를 고집한 이유도 이런 배경이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라파엘이 아기 예수를 평범한 아이로 묘사한 것이나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의 눈빛을 농염하게 그린 것도 그런 영향 때문은 아닌지 모른다.

▲보티첼리의 ‘봄’.

▲보티첼리의 ‘봄’.

또한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그림 중에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1445-1510)의 프리마베라(Primavera: 봄)은 당시의 관습과는 다르게 신화의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삼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그림은 뒤늦게 가치를 인정받아 르네상스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의 삶은 잘 알려지지 않았고, 쓸쓸한 말년을 보냈다고 한다. 그는 한동안 개혁자 사보나롤라의 설교에 심취하기도 했다. 그래서 사보나롤라가 주장했던 ‘허영을 소각하라’는 운동에 동참하여 자신의 그림들을 불쏘시개로 던지려고 했다. 자신이 평생 그렸던 그림들은 신화에서 인용한 것들이 많았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불을 토하듯 외치는 사보나롤라의 설교에 은혜를 받고 가치관이 변한 것은 아니었을까? “내가 이제껏 그렸던 그림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라는 자각이 일어났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이 세상이 변덕스럽고 세월과 함께 가치 기준이 달라져도, 진리는 오직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우리에게 외치고 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너희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된다”(요 8:31-32)고 말이다. 그분을 외면한 삶은 헛되다는 것을 인간은 죽음의 면전에서야 깨닫게 된다. 혹 보티첼리도 그것을 뒤늦게 깨달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자연주의 역시 인본주의에 귀결되고, 그것에서 결코 답을 찾을 수 없다. 스콜라 신학의 전통에서 벗어나고자 한 자연주의는 결국 캄캄한 진흙탕으로 빠져들게 했다.

로마한인교회 한평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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