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마음 문을 열자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요한계시록 3:20)”.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라는 말씀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그리스도께서 찾아오신 죄인들이 당신을 영접해 주기를 기다리신다는 의미이며, 둘째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가까워져 이제 바로 문밖에 이르렀으니 맞이할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는 뜻입니다.
‘누구든지’라는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각 사람에게 말씀하십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개인적 문제라는 것입니다. 주님 음성을 듣고 마음 문을 열면, 그 사람은 하늘나라 시민이 되어 친밀한 교제를 영원히 나누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누가복음 4:24)”.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배척하는 사람들에게 구약의 두 가지 예화를 들어서, 복음이 이방 세계로 전달될 것임을 암시하셨습니다(열왕기상 17:1-24, 열왕기하 5:1-27). 시므온의 예언에서처럼(누가복음 2:34), 이 부분에서는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배척받으실 것임을 보여주십니다.
특히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는 바로 앞 23절의 ‘의사야 너 자신을 고치라’와 함께 당시 널리 알려져 있던 속담이라고 합니다. 이 속담들은 헬라와 로마의 문헌에도 자주 등장합니다. 마태복음 13장 57절에는 계속하여 ‘선지자가 자기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한다’는 속담을 인용하시면서, 자신이 고향에서 배척당하실 것을 공언하십니다.
오늘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께서 고향 나사렛 사람들에게 아무리 하나님 말씀을 들려줘도, 고향 사람들은 마음 문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들에게 들어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마음 문을 열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고 배척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어리석은 고집과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우리 신앙인들의 삶은 어떤지 점검해 보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참 삶의 길, 참 행복의 길,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아무리 전해주고 예수님께서 아무리 우리와 함께 하시려 해도, 우리 신앙인들이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그 말씀이 내 안에 들어올 수 없고 예수님도 내 안에 들어오실 수 없습니다. 결국 예수님과 함께하는 삶이 될 수 없게 됩니다.
예수님은 성경 말씀을 통해, 우리 양심을 통해, 다른 누군가의 입을 통해 당신의 말씀을 전해주시면서 우리 마음 문을 열어 달라고 하십니다. 또 우리와 함께 살아가시기 위해 당신의 몸까지 내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내가 마음 문을 열지 않으면 그 말씀은 허공을 떠도는 말이 될 것이고, 예수님께서 아무리 가까이 오셔도 결코 내 안에는 들어오실 수도 함께 살아가실 수 없습니다. 결국 참된 신앙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도 없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늘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문을 두드리고 계심을 기억하면서, 내 안의 시선을 돌려 예수님을 맞아들여야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말씀을 실천하면서 살아가는 우리, 지금 여기서부터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신앙인들이 되면 참 좋겠습니다.
특히 교회 안에서, 그리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편견과 시기심, 때로 고정관념 속에 빠져 있지 않나요? 내 신앙, 내 방식이 옳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는지, 같은 신앙인이지만 우월감과 시기심으로 편 가르기를 하지는 않는지요?
그런 분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만날 수 없습니다. 어느 순간 신비롭게 다가오는 십자가를 보면, 그릇된 생각이 달아나고 주님을 향한 간절한 믿음의 감동이 피어나기도 합니다. 구원자이신 주님의 은총 가득한 신앙인으로 하루하루 자라나시길 축복합니다.
지금은 지루한 장마의 시기입니다. 짜증나고 귀찮으며 의욕마저 상실되고, 머릿속은 무언가 떠오를 듯 떠오르지 않고 그저 하얗고 멍해집니다.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속히 장마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한때, 마음 속 깊이 자리한 긍정심을 피어오르게 하는 시간을 가지며 지인이 보내온 글을 잠시 소개할까 합니다. 제목은 ‘신분이란’, 노비 머슴으로 신분제 사회에서 주목받던 훌륭한 세 인물 중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평안북도 정주에서 머슴살이를 하던 청년이 있었습니다. 눈에 총기가 있어 동작이 빠르고 총명한 청년이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마당을 쓸고, 일을 스스로 찾아서 했습니다. 아침이면 주인의 요강을 깨끗이 씻어 햇볕에 말린 후 다시 안방에 들여놓았습니다.
주인은 이 청년을 머슴으로 두기 아깝다는 생각에, 평양 숭실대학에 입학시켰습니다. 공부를 마친 청년은 고향으로 내려와 오산학교 교사가 되었습니다. 요강을 씻어 숭실대에 간 그가 독립운동가 조만식 선생이었습니다.
후에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머슴이 어떻게 대학에 가고 선생님이 되고 독립운동가가 되었냐고. “주인의 요강을 세심하게 씻는 정성을 보여라” 고 대답하셨습니다. 남의 요강을 닦는 겸손과 자기를 낮출 줄 아는 아량, 그것이 조만식 선생님, 조만식 장로님을 낳았습니다.
인물은 인물을 알아보는 법입니다. 이 모두는 마음의 문을 열어 얻어지는 쟁취였습니다. 그리고 시간을 잘 활용하고 세월을 허투루 보내지 않으며 진실한 마음으로 주인에게 감동을 선물함으로 얻은 열매였습니다.
고려대 사학과 졸업 후 40여 년 간 제약회사에서 CEO까지 재직 후 말년에 신학대학원을 나와, 현재 대형병원에서 급여 없는 원목으로 헌신하고 있는 이광천 목사의 글도 소개합니다.
22대 국회의원 당선자들
스스로 4번 놀란다.
1. 나같이 형편없는 놈도 당선된다는 것에 놀라고
2. 모든 국회의원들이 나같이 형편없다는 것에 대해 놀라며
3. 이런 놈들이 국회의원을 하는데도 나라가 그럭저럭 돌아간다는 것에 놀라며
4,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놈들이 다음에 또 당선된다는 것에 놀란다.
사법 리스크가 있는 자들이 입법기관인 국회에 들어가 법을 만드는 웃지 못할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도둑놈이 도둑을 정의내리고 절도범을 만드는 것을 상상해 보시라! 일반인들은 상상도 못할 범죄를 저지르고도 억지로 만들었다느니 억울하다느니….
15가지 범죄사실을 법정에서는 인정하다 나와서는 수많은 변명과 거짓말로 자신의 죄를 덮어버리는 자들이 국민의 대표라니…, 대한민국이 무슨 해적선도 아니고…. 이제 대한민국은 어디로 갈 것인가?
이번 총선을 보면서 너무나 한심한 마음에 몇 마디 마음을 전하려고 합니다. 정신문화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쌍욕을 해도, 전과(잡범수준)가 있어도, 여성비하, 거짓말, 음란에 윤리와 도덕에 심각한 흠결이 만천하에 드러났어도 그를 지지하는 것을 보고, 지금 한탄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회창 전 국무총리는 아들이 합법적으로 군을 면제받았으나, 아들의 군 면제 사실을 두고 얼마나 우려먹었으면, 대통령 당선이 유력했던 분인데 여론을 조작 형성하여 물거품이 되는 놀라운 사실을.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도 촛불집회를 이용해 하야시킨 사건은 두고두고 역사에 남을 것입니다.
공무원이나 일반 회사에 취직을 하려 해도 결격사유가 있으면 제외되는데, 어떻게 죄를 지어도 나라의 중대한 일을 하는 국회의원이 되는지,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일 아니겠습니까?
국회의원만 되면 염라대왕도 부러워할 각종 혜택을 누리니, 참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필자 역시 집안 가정사로 인해 입대할 때, 신원조회에 이상이 있어 가지 못할 형편에 처했지만 다행히 입대하게 됐고, 제대 후 항공회사 입사시험은 합격했지만 가정 문제로 하마터면 떨어질 뻔 했습니다.
그런데 어찌 국가의 입법을 맡은 기관이 범죄자들의 집합소로 전략했는지, 참으로 근심이 되다 못해 대한민국 미래가 불투명해 보입니다.
게다가 의원 숫자의 힘으로 탄핵이라는 카드를 내밀어 ‘탄핵 천국’이 되었습니다. 나라가 온통 탄핵의 홍수로 눈만 뜨면 탄핵이니 특검이니 하고 있으니, 국민들이 바라는 정치는 실종된 채 자기들만의 세상을 만들어 버렸으니, 참으로 통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무 잘못도 없는 대통령과 판·검사들을 겁박해 탄핵한다고 으름장을 놓으면서 자신들의 수장을 보호하는데 혈안이 되고 있으니, 이게 진정 나라냐고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민들이 안정과 행복한 문화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어 법을 수정 보완하며, 오롯이 국민 안전과 평화를 위해 최선을 다해도 시원찮을 판국에, 국회를 그들의 오락장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국민들이 뽑아줬으면 국민들의 모든 생활과 질서, 그리고 행복한 삶을 위해 전력을 다하고 국가 외부로부터 위협을 막는 봉사자들이 되어야 하건만. 오롯이 자신들의 이익에만 몰두하고 있으니 이제 국회를 탄핵시켜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국민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주는 긍정의 힘과 행동으로 모범을 보여줘야 하는데, 어두운 그믐달만 제공하고 있으니, 과연 같은 민족 사람들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 땅 5,000년 역사는 국민들의 피와 땀과 희생으로 이뤄져 있는데, 어찌하여 저들은 역사를 잊고 자신들의 춤에만 몰입해 나라를 어지럽히고 있을까요? 더 이상 그대로 둬서는 안 됨을 깨닫고 국민들이 나라를 위해 즉시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이 모든 것이 국민들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내 고집과 아집으로 탐욕이 가득한 마음으로 자신들 마음 속 깊은 내면의 모습을 발견하지 못하고, 마음 문을 닫은 채 계속 사탄의 꾀임에 빠져 국민들을 도탄에 빠뜨리는 일부 국회의원들 때문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의 잘못도 작다 할 수 없습니다. 이 땅에 기독교가 들어올 때의 믿음과 봉사와 희생을 무너뜨린 채, 오히려 세상 사람들보다 더 큰 교만과 아집으로 세상을 전도하려 하니 전도의 문이 쉽게 열리지 않는 것입니다.
이 땅에 예수님의 복음이 들어올 때를 상기하며, 그 시절 그 정신을 계승해 비신자들이 우리를 정의롭고 공정하게 보아야 하고, 예수님 사랑의 정신을 계승 실천함으로써 그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만 보면 행복해 하고 기뻐하는 모습이 가득해야 하겠습니다. 지금 신앙인들은 오히려 비신자들보다 더 악한 모습을 보이는 일이 허다해 가슴이 아픕니다. 주님의 심판 때 무슨 낯으로 변명을 하려는지요.
심지어 최고의 학문과 인격과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의사들의 집단행동이야말로, 어느 시대 사람들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도들이 예수님 품을 떠나면, 고기가 물을 떠나듯 오롯이 죽음만이 기다릴 뿐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의사들은 환자 곁을 떠나 정치 집단들이나 하는 못된 집회를 열고 함성을 지르는 모습에서, 과연 저들이 의사가 맞나 싶습니다. 그들에게 나의 병을 맡겨도 될까 싶을 정도로 의심스럽습니다.
의사들 안에는 분명 크리스천들이 있을 것입니다. 신앙인들이 나라 안 각 기관에서 사명자로서 가장 모범을 보여야 함에도, 강성 지지층들과 함께 고통당하는 환자들을 내팽개친 채 자기들 이익에만 몰입하는 모습이야말로 예수님의 정신에 위배됩니다,
무더운 여름철이 오면 해마다 장로 수련회, 목회자 수련회가 연례행사입니다. 오래도록 이어온 행사이지만, 변하는 것 없어 그저 교인들이 낸 헌금으로 철마다 즐기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수련회에 참석하고 왔으면, 교육받은 내용을 교회에 와서 보고하고 나라와 지역사회를 위해 사용해야 할텐데, 여태 수련회를 참석했던 장로들을 보면 가는 사람이 늘 가고, 변하는 모습은 털끝도 없습니다. 이런 무익한 수련회 대신, 그 경비를 사회에 기부하면 어떨가요.
수련회 참석자들 역시 앉아서 교육만 받을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프로그램으로 바꿔 주님 주시는 사랑의 정신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도록 하는 열린 마음이 더 값진 것 아닐까요?
목사님들께서는 3.1절, 현충일, 6.25,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 등 국경일 근처에는 성경 속 인물들을 동원해서라도 나라와 민족을 위해 올바른 역사관을 성도들에게 심어주는 설교를 하시는 것이 어떨까요? 교회 안에도 좌파나 주사파들이 많은데, 이들을 올바로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요?
이미 닫혀버린 마음의 창문을 다시 열 수 있는 말씀을 준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행히 국가와 민족을 위해 설교를 자주 하시는 주의 종들도 있습니다.
지금 주님께서는 밖에서 대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 소릴 듣고 즉각 마음 문을 열어야 하겠습니다. 옳지 않은 탐욕과 교만, 고집과 아집을 버리고, 주님이 두드리시는 마음 문을 활짝 열고 주님을 기쁘게 맞이해야 할 것입니다.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