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임마누엘과 환대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9-20)”.
‘세례를 베풀고’란,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영접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예수님께 전 인격적으로 바친다는 것을 공적으로 표현하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은 부활하셔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명하신 지상명령과,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는 임마누엘의 약속으로 끝맺고 있습니다.
‘모든 족속으로’라는 말씀은, 이제 복음의 대상이 이방인에게까지 확대됐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가르치신 것처럼, 온 천하의 믿는 성도들을 가르치고 훈련시키라는 뜻입니다. 세례는 하나님께 속한 표시인 동시에, 하나님과 살아있는 관계를 맺는다는 표시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 성도들은 물론 어린아이와 청년들에게도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모든 말씀을 전하고 교육하며 훈련해야 합니다.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이란, 공생애 동안 가르치신 모든 것을 가르치고 지키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배우는 것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그대로 쫓으며 살도록 노력해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복음 선포의 사명을 부여하시며 약속하십니다. 세상의 끝이 다가오는 그 시간까지 언제나 성도들과 함께 있겠다는 약속입니다. 사람들의 약속은 자신의 처지와 환경, 이익과 손해에 따라 안 지킬 수 있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전적으로 반드시 지켜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으로 우리를 창조하셨고, 사랑으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으며, 사랑으로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더 이상 신비가 아닌, 우리 영혼과 삶을 구원하시는 임마누엘로 만나게 됨을 확실히 믿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함께 있기만 해도 아쉬울 것이 없는데, 하나님께서도 사랑하는 우리와 친히 함께 계신다고 합니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진정 이 땅에서 이미 하늘을 살아가며 천국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제대로 믿으려면, 신앙인들은 비신앙인들을 영접하고 최고의 것으로 환대해야 합니다. 신앙인들이 우선 취해야 할 것은 먼저 본을 보이는 것입니다. 신앙인들이 정직하지 못하고 정의롭지 못하고 거짓말과 비신사적 행위와 모습을 보인다면, 제아무리 영접을 잘하고 최선을 다해 환대해도 오히려 역효과만 낳을 것입니다.
영접(迎接)은 ‘손님을 맞아서 대접함’, 환대(歡待)란 ‘반갑게 맞아 후하게 대접하는 것’입니다. 특히 영접 과정은 예수님을 그리스도(구원자)로 믿는 것이 우선입니다.
“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요 4:25)”. 특히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말은 예수님을 그리스도 즉 구세주와 주님으로 영접 한다는 뜻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드디어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깨닫고 영접하며 구원받는 참 믿음을 갖게 됩니다. 우리 신앙인들 역시 예수님을 우리의 주인인 그리스도로 영접하면 참 구원에 이르게 됨을 믿고,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변함없이 신뢰해야 하겠습니다.
창세기 18장 1-16절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행동을 보면, 정말 하나님의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자의 형상으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십니다(창 16:7). 아브라함이 헤브론 근처 마므레 상수리나무 아래 머물고 있을 때, 그에게 다가오는 나그네 세 사람 중 둘은 천사들로서 나중에 소돔을 향해 떠났고, 나머지 하나는 여호와의 사자로서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의문점이 생깁니다. “또 이르시되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출 33:20)”. 분명 성경에는 여호와의 얼굴을 보면 죽는다고 했는데, 아브라함은 오히려 죽지 않고 더 축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이라 함은,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낸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성품 중 대표적인 것은 거룩 또는 성결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본다는 것은 하나님의 성결을 직면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세 나그네가 서 있는데 그가 몸을 땅에 굽힌 것은 손님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정중하게 맞아들였다는 의미입니다. 발 씻을 물을 내어오고 음식을 대접한 것은 신실한 믿음으로 손님을 대접하는 마음을 잘 드러냅니다. 발을 씻게 한 것은 손님을 깨끗하게 영접했다는 의미로, 메시아가 오셔서 받으실 세례를 예표한 것이기도 합니다.
‘떡을 대접한 것’은 메시아가 베푸실 만찬을 상징하며, 이것으로 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신 진실한 것임을 뚜렷하게 보여줍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나그네들을 신실하게 환대했습니다.
‘환대(HospitalItas)’는 고대 로마 시대부터 최고 미덕 중 하나였고, 나그네를 대하는 관습으로 자리잡았습니다. 호텔(Hotel)과 병원(Hospital)이라는 말도 모두 여기서 유래했습니다.
‘환대’는 성경에서도 나타납니다. 대표적으로 방금 언급한 ‘구약의 아브라함과 세 천사’에서 아브라함이 나그네를 환대하는 모습에서는 몇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먼저 ‘다가감’입니다. 아브라함은 나그네가 구걸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아도 되도록, 먼저 따듯하게 다가가서 그들을 맞이했습니다.
두 번째는 ‘무조건적’입니다. 아브라함은 환대에 어떠한 보상이나 기대를 하지 않았고, 조건 없이 그들을 향해 다가갔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렇게 그들을 환대한 이유는 모두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아들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신앙의 관점에서 환대를 받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모든 이들의 권리이고, 환대를 베푸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이를 대하는 신앙인들의 의무입니다.
신약성경에서 ‘환대’는 예수님의 삶과 사랑의 표현입니다. 예수님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다양한 민족적 배경을 가진 사회 모든 계층 사람들을 찾아 가르치시면서 포용적 제자 공동체를 만드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도 배제하지 않으셨고, 특히 소외된 이웃을 환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 25:40)”는 말씀처럼,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환대는 그들 안에 계신 예수님을 대접하는 영적 환대가 됩니다.
성령의 열매는 첫째가 사랑과 희락과 화평이라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에서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도들이 회개할 때는 울면서 금식하고 슬퍼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 다음에는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삶만이 복음 증거에 아주 필요합니다.
임마누엘 예수님의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은 믿지 않는 자와 소외되고 불우한 자들을 친절하게 최선을 다해 영접하고, 아브라함 같이 무릎을 꿇는 겸손한 마음으로 나그네를 환대하듯 비신앙인들에게 이러한 모습을 보여준다면, 복음은 이 땅에 더 많이 퍼져 나갈 것입니다.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