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을 위한 달꿈학교, 네 명째 학생을 떠나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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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한승의 러브레터] “안녕!”

▲류한승 목사 옆에서 공부하는 모습.

▲류한승 목사 옆에서 공부하는 모습.
1. 사랑의 편지가 참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말도 안 되는 핑계 같지만, 아이 키우느라 그랬습니다.

달꿈학교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이 때론 기적 같습니다. 벌써 네 명의 졸업생이 나왔습니다.

건물이 튼튼하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철근들이 촘촘히 잘 세워져 있어야 하듯, 달꿈학교가 살아있기 위해서는 드러나지 않은 촘촘한 학교의 철학들이 유기체적으로 살아 있어 버텨줘야 합니다.

그 철학 가운데 하나가 ‘양육적 교육’입니다. 품어줌을 경험하지 않은 존재에게 가르침이 우선이 될 때 가져오는 폐해를 경험했기에, 적어도 달꿈학교에 오는 사람은 누가 되건 먼저 품어주자는 뜻에서입니다.

그러니 제 역할은 여기서 여러 가지이지만, 그 중 하나는 어머니 역할일 때가 많습니다. 학교 자립을 위해 카페를 하니 설거지에 음료를 만들고 손님이 오면 대접하고 이야기 나누고, 아이를 학습시키기 전 같이 놀고 이야기 듣고 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갑니다.

2. 아이를 키운다고 회사 일을 포기한 여성들, 어머니들이 참 많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포기가 얼마나 큰 가치였는지는 사회에서 인정하지 않습니다.

남자들은 흔히 ‘내가 벌어다 준 돈’이라고 착각합니다. 아이 보는 일은 가장 힘들어하면서 말이지요. 가사 노동은 노동의 최상위 버전 같습니다. 생명을 키우고 품고 내 경력이 단절되어가는 아픔이 거기 있습니다. 그럼에도 어디서도 노동의 대가로 여겨지지 않는 사회가 이상함을 달꿈에서 배우기도 합니다.

한 명의 아이를 위해 6년간 제 경력은 뒤로해 왔습니다. 제 경력을 위한 일은 아이보다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들과의 사회적 관계망이나 스스로의 커리어를 관리하는 일은 뒷전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이를 등하교시킬 때나 같이 공부를 하고 모든 시간을 함께 있으면서도 참 보람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품 안에 있는 아이가 자라고, 변화하며, 사랑을 주니 울더라도 웃게 되지요. 그것이 어머니 마음이겠지요.

3. 그런데 가장 힘든 순간은 언제나 떠나보낼 때입니다.

얼마전 달꿈학교 네 번째 학생과의 마지막을 보냈습니다. 우리 친구는 8살 엄마아빠의 품에 잠든 채 왔습니다. 벌써 11살이 되었습니다.

3년을 넘게 웃고 울던 날들을 지내고 멋진 졸업식까지 마치고 나서 떠나 보내니, 마음에는 왠지 모를 먹먹함이 머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언제나 경계에 머물고 있는 저를 발견합니다. 기쁨과 슬픔의 경계 말이지요.

한 명만 바라보기 위해 생겨난 학교, 아직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며 스스로를 위안하지만, 벌써 네 명째 이별은 그때마다 참 어색하고 어렵습니다. 기쁘다 슬프다, ‘그래그래 좋은거야 잘된거야’ 하다…, 가슴 속에서 뱃고동 소리가 들립니다.

4. 어쩌면 3년이 넘은 시간이니, 빈 의자와 존재의 상실을 품은 공간은 어색하겠지요.

예수님과 동거동락한 3년 이후, 제자들은 얼마나 존재의 상실 앞에 무력해졌을까요. 왜 베드로가 디베랴로 갔을지, 이맘때면 저는 이해가 갑니다.

저는 늘 이렇게 뒤늦게 깨닫습니다.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한 생명의 가치가 이토록 엄중하며 존엄한 것이었다는 것을 말이지요.

사람이 사람을 만나다 보면 언젠가 이별이 있다는 것이 너무 당연하지만, 당연함만으로 여길 수 없는 슬픔이 있다는 것 또한 사람임을 늘 배우게 됩니다.

‘영원한 공간’. 우리에게는 영원한 공간이 있어야 한다 생각합니다. 이 땅 어디에도 헤어짐이 없을 수 없는, 존재의 상실과 부재가 가져오는 서글픔이 없는 세계, 그 세계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이들에게는 위로가 될 것이 분명하니까요.

그래서 공간, space는 ‘비어 있음’이면서 동시에 ‘우주’라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겠습니다. 누군가 와서 자리에 앉도록 비워두는 자리, 그때 비로소 우주와 맞닿은 하나를 위한 모두, 모두를 향한 하나가 되겠지요.

8살 된 어린아이었던 학생은 이제 우주로 날아갔습니다. 아니 그 자체가 우주였음을 이제 빈 공간을 보고 깨닫습니다.

▲눈사람을 만든 아이.

▲눈사람을 만든 아이.
5. 학교 밖 청소년들만 대상으로 생각했던 제게 어느날 다가온 8살 어린 존재는 달꿈을 정말 모두를 향하는 여정으로 초대했습니다.

전문가의 진단이 필요하다는 생각과 의견들이 있어, 학교의 모든 것을 오픈하고 진단을 받기도 했습니다. 선생님의 진단 평가를 모두 기록해 두고 가끔 봅니다. 평가를 보고 아이를 봅니다.

전문가 선생님의 진단 결과, 언어 부문이 심각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전체적인 널뛰기 현상 때문에 인지적 비효율성이 너무 컸습니다. 자폐로도 연결돼 있고, ADHD 문제는 물론 학습장애도 동반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직전 해 시도했던 점수에서 6점이나 상승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상승했을까요? ‘잠재력만큼 도와줬기 때문’이랍니다. 즉 보이는 영역을 판단하지 말고, 보이지 않는 영역을 도와줘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애들이 많을 때는 전혀 안 된다, 선생님들이 뒤끝이 있으면 절대 안 된다, 콩나물 시루에 물 빠지듯 계속 줘야 한다, 작은 것들을 반복적으로 해야 한다, 아이가 이야기할 수 있도록 선생님이 주도하지 말고 물러서야 한다” 등.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진단만으로는 아이를 다 품지 못함 또한 발견합니다. 아이가 엄청난 변화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으니까요.

컵에다 물을 떠서 가져다 주는 것도 하지 말라고 평가받던 아이는 제 휠체어도 밀어주고, 가방도 들어줍니다.

6. 처음 아이가 왔을때 제 마음은 경계였습니다. ‘이 아이가 잘 적응할 수 있을까?’부터 ‘특수 아동은 내가 할수 없어, 특수학교나 학급이 맞아’라는 생각.

그런데 놀랍게 반대의 생각도 있었어요. ‘이 정도면 일반학교가 괜찮지.’ 심지어 이런 생각도 스쳐갔어요. ‘미국에서 자란 자녀인데…, 더 어려운 아이들도 많은데…, 돈이 좀 있으시면 다른 데가 좋을것 같은데….’

실은 모든 생각이 다 편견이었습니다. 보다 솔직히 말하면, 제 불편함을 투사한것에 불과합니다.

7. 어머님께 두 번이나 아이 입학을 거절하고 나서 부모님이 아이를 품에 안고 오셨던 2020년 겨울, 12월. 아이는 품에 고이 안겨 자고 있었습니다. 그날 끝까지 잠만 잤던 아이를 품에 안고 어머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 저도 교육을 하고 있지만… 교육시켜 달라고 온 게 아닙니다. 한 사람을 위한 학교라고 해서… 아이를 사랑으로 품어줄 곳이 필요해서 왔습니다.”

정신이 들었습니다. ‘여기는 누군가를 가르치는 자리가 아니지, 내가 배운 지식과 경험을 학습시키려는 곳이 아니지, 어떤 상황에도 판단하지 않고 품어주는 것이 우선해야지’.

비로소 양쪽 사람들의 판단의 바람, 경험의 바람, 그 경계에 서 있던 아이의 가정이 보였습니다. ‘양쪽 편에 선 사람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양쪽 바람을 모두 맞아야 했구나’.

그래서 함께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뒤부터 아이와 한 일상은 너무나 평범했습니다. 어쩌면 어머니가 계속 해 오셨던 일이겠지요.

그런 아이와 가정을 향해 저를 포함한 대다수 사람들이 가졌던 자기만의 생각의 바람을 맞게 되었습니다.

다행인 것은 그 생각의 바람이 아이의 가정을 향해서만이 아닌, 저를 거쳐간다는 것이었습니다. 가까운 사람부터 먼 사람, 전문가와 비전문가 모두 각자의 생각과 지식, 경험으로 아이를 봤습니다. 그리고 저를 봤습니다.

‘이 정도면 특수학교가 낫지 않나요?’ ‘이 정도면 일반학교가 낫지 않나요?’

그 바람을 맞고 나니, 비로소 아이 가정이 서 있었던 경계는 밭 네 귀퉁이요 모서리였음을, 사각지대임을 깨닫습니다. 경계에 서 있는 사람은 결국 공동체에서 밀려나 사각지대로 가는구나.

8. 반대로 아이의 가정은 철저히 달꿈을 믿어 주셨습니다.

우리 학교 역시 경계에 있습니다. 한 사람을 위한 학교이지만 모두를 향하고 있는 학교인데, 세상에선 ‘와, 한 명을 위한 학교와 공간이 있네. 그런데 그 공간을 모두가 쓸 수 있구나’라고 말하며 놀라지만, ‘그런데 왜 한명을 위해서 굳이’라는 편견도 갖습니다.

경계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은 ‘자립’이었습니다. 고립이 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연대하며 자립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쿰 카페’를 함께 세웠습니다.

학교가 자립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다른 기관의 지원이 어려운 곳이라면, 스스로 일해서 학교가 일어나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역 주민들과의 연대를 위해 카페가 있습니다. 그러니 제 일상은 아침부터 밤까지 카페 일, 아이와 함께 놀고 공부하는 일 등이 끊임없이 반복됩니다. 그로 인해 수업 자료를 잘 보내지 못할 때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달꿈학교 아이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아이들 가정들은 철저히 저와 학교를 믿어주셨다는 것입니다. 수업 자료를 보내지 못할 때나, 학교에서 갑자기 ‘오늘 어디를 다녀올 예정입니다’라고 해도 아무런 의심도 없었어요.

‘믿어줌’, 그것은 ‘사랑’으로 승화되었습니다. 아니, 승화라는 말보다 ‘연결’이 맞겠지요.

달꿈학교는 그래서 하나인 듯 하지만 모두와 함께하는 공간 안에 있습니다. 경계에 서 있는 사람, 아니 그 어떤 사람이라도 품어줄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어야 해요. 그 많은 사람들이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끌어안게 됩니다.

9. 이제 아이는 졸업 후 캐나다로 떠났어요.

달꿈에 처음 왔을 때는 아버지와 분리돼 있던 가정이 달꿈에서 수 년을 보낸 뒤 아버지가 발령받은 곳으로 가족이 함께 떠날 용기가 생겼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졸업식에 맞춰 아이와 함께 기독교방송(CBS)에 출연도 했습니다. 떨린다고 하자 “숨을 한 번 크게 쉬어보세요”라고 조언도 해줍니다.

어제 아이가 한 기도가 있습니다. “하나님, 로블록스에서도 만나고 캐나다에서도 만나요.” 아이는 기도할 때도 저나 우리를 하나님처럼 여기며 대화했던 것입니다.

“하나님, 학교에 왔습니다.”
“하나님, 주일에 뵈어요.”

비로소 이 말이 하나님에게 한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제게, 우리 선생님들에게도 한 이야기임을 압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어쩌면 이 아이만큼 실천하고 있을까? 제 기도는 언제나 피상적이었으니까요.

앞에 있을 때보다 없을 때 존재의 상실을 늘 그리워하는 아이의 모습은 예수님의 모습과 같습니다.

“왜 OO 선생님은 안 와요? 공연이 바쁜가 봐요?”
“OO 선생님은 왜 안 와요? 키가 작아선가봐요? 키가 더 크면?”
“OO 선생님은 왜 안 와요? 아이가 어려서인가 봐요?”

엊그제 한국을 떠난 우리 아이는 여기 올 때처럼 갈 때도 쿨합니다.

처음과 끝이 똑같은 아이, 우리 하나님도 처음과 끝이 같으신데, 우리는 처음과 끝이 다르지 않나요. 처음은 열심히, 끝은 흐지부지… 그런 내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저는 앞에서는 쿨하지만 뒤에서는 누구보다 그리워하며 눈물 흘릴 따뜻한 아이라는 것을 압니다.

▲아이의 그림. ‘도도새는 살아있다!’

▲아이의 그림. ‘도도새는 살아있다!’
10. 3년 동안 예수님과의 함께함이 제자들의 삶을 바꾸었지요.

아이와의 3년 동안 제 목회의 사고도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달꿈도 달라졌습니다. 멸종된 동물을 그려내던 아이는 전시회날 자신의 방명록에 멸종된 동물들의 년수와 이름을 마구 적더니, 마지막 줄에 선포했습니다.

“살아 있다.”

소름이 돋았습니다. 죽었다고 판정된 동물들을 향해 죽지 않았다고 말하는 아이는 신혼여행지도 정했습니다. 도도새가 살았다고. 하지만 멸종됐다고 말하는 세상을 향해, 모리셔스 섬에 가겠답니다.

달꿈과 저는 아이의 언어로 바뀌었습니다. 피상적 언어가 아니라 아이 언어로 말하는 법을 배우니, 대화가 아름다워집니다.

12. 마가복음 5장을 다시 펴들었습니다.

우리 학교의 정체성 달리다굼이 있는 본문, 그 말씀이 달리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미 죽었다고 판정받은 아이. 사람들은 심지어 예수님도 그 공간에 못오게 합니다.

이상하지요. 소문을 들었다면 어서 오라고 해야 할텐데, 사실 사람들은 생명을 살리는 예수가 내 공간에 오기가 싫었던 모양입니다.

그곳에 예수님이 직접 가십니다.
그리고 선포하십니다.

“죽은 것이 아니라 자는 것이다 일어나라 소녀야(달리다쿰)!”

깨어났더니 12살이라서 사람들이 놀랐답니다.

이전 같으면 이 본문 말씀이 ‘그래, 예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분이야’로만 들렸겠지만, 볼수록 달라집니다.

정말 자는 것이었는데, 죽었다고 판정해 버린 사람들이 가득한 공간. 그러니 나의 경험과 판단이 옳아야 하는 공간. 예수가 와서 내 판단과 경험이 틀렸다고, 정말 자는 것이었으면 어쩌나 싶은 두려움으로 뭉친 세상.

그런데 정말 이 아이는 자는 것이었습니다. 죽은 것이 아니었는데, 그 누구 하나 손을 붙들어주지 않았습니다. 깨워주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우리 사는 세상이 이런 곳은 아닐까요? 내 판단과 경험의 옳음을 주장하기 위해 너를 죽이고, 죽어 마땅하다 여기는 공간 말입니다. 의자를 뺏고 싶어 안달난 공간. 그래서 비워주지 못한 의자로 인해 생기는 전쟁.

그것은 타인을 죄인이라 정죄하며 그를 공간에서 분리시키는 우리 모습입니다. 우리가 그토록 죄인 취급하는 수많은 자들을, 구원시키고 싶은 마음은 없는 건 아닐까요?

그냥 여전히 죄인으로 머물러 있어야 내가 빛난다고 생각하는 우리는 아닐까요? 실은 우리가 죄인인데 말입니다. 빚진 자는 나인데, 우월감을 갖는 우리 모습이 타자를 죽이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13.. 마가복음 5장은 그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열두해 혈루병 걸린 여인은 왜 사람들 뒤에서 옷자락만 잡아야 했을까요? 사람들에게 눈에 띄면 죄인 취급 당하며 죽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여인을 무리 중앙으로 불러내십니다. 살려주신 것입니다.

왜 거라사 지방에서 귀신 들린 청년이 살아난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을까요? 귀신 들린 청년의 목소리에서 나온 “예수여, 나와 상관 마소서”는 귀신들이 돼지떼에게 들어간 뒤에도 여전히 거라사 지방 사람들의 입에서 나올까요? “예수여, 제발 떠나주세요!”

무덤이라는 공간에 머물러 귀신이 들려 있어야 하는 이 청년을 고치신 예수님이 못마땅합니다. 내가 싫어하는 타자를 자꾸 내 앞으로 이끌어내는 예수님이 싫은 것은 아닐까요? 그것이 제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14. 이제 달꿈의 빈 자리가 생겼어요. 누가 올지 모르겠어요. 그러나 준비가 되면 곧바로 채워지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달꿈은 바람을 같이 맞아주는 경계에 있으면 좋겠습니다. 달꿈은 서로가 서로를 온전히 믿어주는 곳이면 좋겠습니다. 한 사람을 위한 모두가 모이되, 그 모두를 향해 가는 하나를 응원합니다.

서로 생각의 다름이 바람이 되어 혼자가 된 사람을 품기 위해, 다른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달꿈이 되기를 바랍니다. 한 사람을 한 사람이 끌어안음으로서는 바람을 막을 수 없거든요. 여전히 달꿈은 ‘한 사람을 위해서 뭐 그렇게까지 해야 해?’라는 생각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라고 한 과목만 가르쳐야되는 것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대부분 1인 가구, 1인 자녀인 세상에서, 달꿈 아이들 역시 그래야 한다는 것을 아는 봉사자를 구하는 것이 힘들기도 합니다. 부디 한 사람을 우주처럼 여기는 생각으로 바뀌도록 기도해 주세요:)

“안녕!”

이 말은 만났을 때도 하지만, 헤어질때도 말하지요. 어쩌면 우리 모든 만남은 이 경계에 있는 건데 말이예요.

“안녕, 목사님!”
“안녕, OO야!”

아이는 엄마 아빠 품에 잠든 채 왔습니다. 세상에서는 안 된다 판정받은 채 말이지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안녕”이라는 인사를 한 아이는 뛰어 갔습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간 아이의 옆에, 더 많은 사람들이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열두살 된 소녀를 살린 이야기가 여백으로 남겨져, “너희들이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류한승 목사
생명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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