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참여, 논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일지도”
들어가는 말
정치사상가 루소(Rousseau, Jean Jacques, 1712-1778)는 인간의 불평등은 정치적 불평등의 문제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하였다. 그는 사회계약론에서 "인간은 원래 자유로운 존재로 태어났다. 그러나 인간은 어디에서나 쇠사슬에 묶여있다"고 했는데, 여기서 '쇠사슬'은 '정치'로 연결되어지고 '인간의 정치참여'라는 명제가 성립된다. 그가 구현한 '평등을 보장해주는 정치체제'는 결국, 프랑스혁명의 정당성 및 이론적 근거를 세워주며 민중의 정치라는 새로운 장을 열어주었다.
대한민국은 헌법 제14조 2항에 개인은 참정권을 제한받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참정권, 즉 정치참여의 기본권의 일종으로 정치참여의 자유권을 법적으로 보장해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어떨까. 북한 헌법에도 북한 주민들의 정치참여와 관련된 조항이 있다.
통일성을 갖춘 집단주의적 정치참여 : 권리가 아닌 의무
북한은 1948년 인민민주주의헌법(제헌헌법)부터 2019년 김일성-김정일헌법에 이르기까지 헌법 본문에 <공민의 권리와 의무>라는 장이 있다. 1948년 제헌헌법 본문에서는 자본주의적 요소(개인소유보장(제5조) 및 시장경제구조(제19조)가 적지 않게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1972년 사회주의헌법이 제정되면서부터 자본주의적 요소는 전면적으로 삭제되었다.
북한헌법(2019 개정헌법) 제67조는 "공민은 언론, 출판, 집회, 시위와 결사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제63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공민의 권리와 의무는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집단주의원칙에 기초한다."라고 규정하였다. 이 집단주의 원칙은 공민들의 기본권의 전체를 아우르는 총체이다. 제81조에서 "공민은 인민의 정치사상적 통일과 단결을 견결히 수호하여야 한다. 공민은 조직과 집단을 귀중히 여기며, 사회와 인민을 위하여 몸 바쳐 일하는 기풍을 높이 발휘하여야 한다."라고 명시했다. 이는 통일성을 갖춘 집단주의적 정치참여를 종용하는 것이다. 즉, 개인의 존엄과 가치가 기본적으로 보장된 자유권의 실종이다. 국가로부터의 자유가 아닌 국가를 통한, 국가를 위한 자유권이다. 국가에 대한 방어적 성질이 아닌, 국가나 사회를 위해 개인의 자유권이 소용(모)된다. 이처럼, 북한 공민들의 정치참여는 우리와는 달리 권리가 아닌 의무로 나타난다.
북한 공민들의 선거권·피선거권: 민심의 풍향계
북한헌법 제66조에 "17살 이상의 모든 공민은 성별, 민족별, 직업, 거주기간, 재산과 지식정도, 당별, 정견, 신앙에 관계없이 선거할 권리와 선거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했다. 공민들의 선거권, 피선거권을 보장해주는 조항이다.
남한의 국회에 해당되는 것이 북한의 최고인민회의이다. 최고인민회의는 북한의 최고주권기관이다(제87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의 구성은 헌법 제89조 "최고인민회의는 일반적, 평등적, 직접적선거원칙에 의하여 비밀투표로 선거된 대의원들로 구성한다"에 의거한다. 대의원은 인구 3만명 당 1명을 선출하는 방식으로 현재 687명의 대의원(5년 임기)이 있다. 대의원 모두는 각자의 선거구를 가지고 있다. 대의원 선출방식은 일차적으로 선거를 앞두고 후보자 추천을 받는데, 단일후보 방식이다. 지방의회(지방인민회의)도 같은 방식이다. 각 도, 시, 군인민회의 는 자체적으로 후보자 추천 및 자격 심의과정을 밟는데, 피선거권 대상은 노동자, 농민, 지식인, 일꾼 등 일반공민들이 해당된다.
선거는 후보자 한 명에 투표는 찬반투표로 진행된다. 2015년 선거 당시, 공민들의 투표 참여율은 99.97%였다. 찬반투표에서 찬성률은 100%였다. 여기서 다시 한번 북한 공민들의 선거권이 권리가 아닌 의무라는 것이 확인된다.
그런데 최근, 2019년 7월 21일에 실시 된 지방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투표율이 72.07%로 나왔다. 적지 않은 공민들이 선거권을 거부한 것이다. 북한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가 없다. 또한, 이번 지방인민회의 전체 대의원 수가 2만 7,876명이었는데 이는 2015년 2만 8,452명 비해 562명이나 감소된 것이다. 선거구가 축소되었든지, 후보자를 내세우지 못했든지 둘 중 하나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좀 더 추적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지방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투표 참여율이 70%를 간신히 넘겼다는 사실은 매우 큰 의미를 부여해준다. 즉, 북한 주민들, 민심의 동향을 읽을 수 있다.
북한 공민들의 정당참여 활동
북한은 당-국가체제로 일당독재시스템이다. 하지만, 북한헌법(2019년 개정헌법) 제67조에 "국가는 민주주의적 정당, 사회단체의 자유로운 활동조건을 보장한다."라고 명시했듯 겉으로는 복수정당제를 도입하고 일부 공민들로 하여금 정당 활동을 하게끔 한다. 물론, 헌법 제11조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조선노동당의 영도 밑에 모든 활동을 진행한다."라고 규정하여 당의 철저한 통제를 받게끔 하고 있다.
명목상으로 다당제를 취하고 있는 북한에 조선노동당 외에 어떤 정당들이 있는가. 이들 정당을 우당, 또는 위성정당이라고 부른다. 북한 조선말대사전에는 우당을 벗으로 되는 정당이라는 뜻으로 설명하며 '로동계급의 당을 지지하며 로동계급의 당과 통일전선을 이룬 단계에 있는 정당'이라고 정의한다. 즉, 조선노동당의 정강, 정책에 전적으로 동조한다는 의미이다. 현재 조선노동당의 위성 정당은 청우당(조선천도교청우당)과 조선사회민주당이 있다. 이 둘은 노동당에 대한 견제가 아닌 보조하는 역할이다.
청우당의 창당배경은 1945년 당시, 다당제를 앞세운 소련군정의 북한주민포섭정책의 결과이다. 당시, 천도교의 교세(북한지역에 2백80여만 명)가 북한지역에서 농촌을 중심으로 급속히 확장되자 소련군정이 이를 포섭, 이용하려는 목적으로 정당으로 공인해준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천도교도들의 요청에 의해 세워진 것으로 비춰진다. 청우당의 당원은 대부분 천도교인들이지만 1993년 규약을 수정하여 천도교인 아니라도 입당이 가능하게 하였다. 천도교의 교세는 2010년대에 평양에 33곳을 포함하여 북한 전역에 8백여 곳의 전교실(예배처)이 있었다. 청우당에 가입된 당원의 수는 2001년 당시 1만 4,000명 가량이었다. 같은 해, 천도교도가 1만 3,500명으로 추산되는 것을 볼 때, 약 500명 정도가 일반 공민임을 알 수 있다. 현재 청우당 당원 수가 정확히 어느 정도 되는지 알 수 없지만 더 증가했을 것이다. 청우당의 강령을 보면, 천도교의 특성에 맞는 것은 전혀 없고, 북한헌법을 준수, 실천하며 노동당의 방침에 철저히 순응한다는 하나의 충성맹세문이다. 정당 활동에서 천도교도의 종교적 성격을 드러내기도 하는데, 대남 통일전선·전술로의 정치적 도구로 활용될 때뿐이다.
'조선사회민주당'의 전신은 1945년 11월 3일 창당된 '조선민주당'으로 조만식 선생을 당수로하는 기독교 세력이 주축을 이룬 민족주의 계열의 정당이었다. 그런데, 1946년 1월, 신탁통치 반대를 이유로 소련군정은 조만식 선생을 강제구금하고 빨치산파로 김일성의 최측근이었던 부당수 최용건을 전면에 내세웠다. 최용건은 2월 5일, '조선민주당열성자협의회'를 개최하여 당지도부를 전면 개편한다. 이후 당 대회를 열어 최용건은 당수가 되었고 당시, 김일성이 이끌던 북조선공산당의 우당으로 변모하였다. 6·25전쟁을 거치고 1950~60년대 걸쳐 조선민주당은 북한의 종교억제정책 여파로 유명무실한 정당이 되어버렸다.
1972년, 7·4남북공동성명 이후, 북한의 종교단체들의 통일전선전술차원의 정치적 활동 재개와 맞물려 조선민주당도 당을 재정비하게 되었다. 1981년 1월에는 제6차 당대회를 열어 당명을 조선사회민주당으로 바꾸었다. 정당의 이념을 민족사회주의로 내세웠고, 당의 과제를 해외동포 대중을 통일을 위한 투쟁대열에 참여시키고 국제무대에서 통일의 지지자들로 선도하는 것이었다. 특히, 당수가 1959년부터 조선그리스도연맹 위원장인 강양욱 목사이었기에 남한 기독교단체 및 해외 기독교 인사들에 대한 통일전선전술 및 대남 비난성명을 내는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나오는 말
현재, 북한권력의 중심부에 있는 조선노동당의 당수(당위원장)는 김정은이다. 전국적으로 당원수는 대략 346만 7천여명(후보당원 20만)이다. 노동당의 당원들은 주체적인 정치활동을 한다기보다 당에 의해 사상뿐만 아니라 그들의 생활 전반을 통제받고 있다. 노동당의 핵심역할 중 하나가 당원들의 사회(집단)통제이다. 당에 의해 강력한 통제 메커니즘이 작동된다. 당뿐만 아니라, 모든 외곽 사회단체 및 근로단체들의 존재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북한에서의 공민은 거대한 기계속 부속품들 중 하나로 김정은이 조정하는 대로 일률적으로 움직인다. 이런 측면에서 북한주민들의 정치참여 및 정당활동에 대해 논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일지도 모르겠다.
오늘날, 우리의 정치참여 및 그 정치적 활동의 현주소는 어떠한가. 왠지, 이 사회 안에도 통제 메커니즘이 작동되고 있지 않는가, 라는 의혹을 떨치기 어렵다.
정교진 박사(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 이 글은 월간 「월드뷰」 11월호에 실린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