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진의 기호와 해석] 문둥병과 한센병
오늘날은 문둥병이란 말을 쓰지 않는다. 문둥(병)이라는 격하된 표현 대신 나병(또는 한센병)이란 말을 선호하지만, 사실 나병을 뜻하는 Leprosy는 ‘계층’을 어원으로 하는 레프라(Λέπρα)에서 온 말로, 문둥(병)보다 더 수치스런 사회적 의미가 담겨 있다.
어떤 종교적 더럽힘이나 부정(不淨)을 뜻하는 피부 껍질(병)을 표지하는 히브리어 짜라(צרע)에서 이행했기 때문이다. 한자어 나병은 두꺼비 ‘나흘마(癩疙痲)’에서 유래.
각기 다른 문화권에서의 한 질병에 대한 이 같은 사회학적 의미의 호환은 그 병에 대한 병리적 규명과는 별개로, 각 사회가 이 질병을 통해 해명하고자 했던 진정한 병리 현상이 무엇인지 엿보는데 도움이 된다.
그 대표적 예가 히브리 경전에 나오는 아람의 장수 나아만(Naaman) 이야기이다.
오늘날 시리아 다마스쿠스 지역에 위치했던 이 고대국가는 기원전 10세기 이스라엘에게는, 마치 일제시대의 우리나라에게 있어 일본과 같은 존재였다. 오랜 세월을 괴롭힌 나라다.
이 나라에서 나아만이 어떻게 실력자가 되었는지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앗시리아 살만에세르 3세를 격퇴시키고 신임을 얻었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견해다. 그런데 그에게는 핸디캡이 하나 있었다. 바로 나병환자였다.
그의 아내에게는 이스라엘에서 잡아온 여종 하나가 있었는데, 그 여종이 지나가는 말로 자기 고향에 가면 나병을 치료할 만한 선지자 한 사람이 살고 있다고 전했다. 일개 여종의 말에 대(大)장군이 움직일 생각을 했으니 그 병이 얼마나 고질적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나아만이 병을 고치러 갈 때 개인적으로 간 것이 아니다. 주군인 왕이 친서와 온갖 예물을 함께 보내, 이스라엘 왕을 먼저 찾아가게 한 대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가 대 국가로서의 방문임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한편 강대국 친서를 받아든 이스라엘의 왕은, 약소국 왕답게 사실관계를 알아보기도 전에 겁부터 먹고 떨기 시작한다. 나병을 고치기 위해 보냈다는 친서의 사연을 침략하기 위한 트집으로 여기고 몸져누운 것이다.
왕이 몸져 누웠다는 소식에 선지자는 나아만을 자기에게 보내라 기별한다. 이 선지자는 바로 엘리사.
그러나 찾아온 나아만에 대한 대접은 그야말로 장수의 자존심을 짓밟는 주문이었다. 문 밖으로 나와 영접하는 것도 아니요, 저 멀리서 오는 장군 일행에게 시종을 보내서는 요단 강에 일곱번 씻고 돌아가라는 처방만 내렸을 뿐이다.
이런 홀대에 누구라도 진노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더구나 강대국 최고의 장수 아니던가. 분노로 가득한 나아만 장군이 그냥 돌아가려 했을 때, 만류한 것은 다름 아닌 그의 심복들이었다. 심복들은 이렇게 말했다.
“장군님. 선지자가 장군님에게 더 큰 일을 행하라 하면 행하지 않으셨겠습니까? 하물며 고작 이 작은 일, 당신에게 물로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하는데 그것을 왜 못하십니까?”
이 오랜 고전의 주제는 언제나 ‘병이 나았다’는 마술적 신비에만 초점이 맞춰져 왔으나, 사실은 이 심복들의 충성스런 태도야말로 이 ‘문둥병’ 이야기의 핵심이 서려 있는 대목임을 유념할 것이다.
나아만이 앓던 ‘나병’이라는 이 고대 질병의 종교적 의미는 이미 사회적으로 ‘교만’이라는 주제 아래 두고 있었는데, 이 심복들은 여기서 그 ‘교만’의 질병이 호전될 수 있도록 조력하는 존재로 종사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장수가 득세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충실하고도 현명한 심복들을 둔 까닭일 것이다.
게다가 심복들의 이 기특한 처신은 정작 이 병을 낫게 한 선지자 엘리사 시종의 태도와 대비를 통해 더 부각된다.
나아만은 심복들의 조언에 따라 요단 강에서 일곱번 씻는 의식을 거행하고서 나병이 씻은 듯이 낫자, 고국에서 싣고 온 온갖 예물을 선지자 엘리사에게 주고 가려고 예를 취한다.
그러나 엘리사는 한사코 받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이 때, 다름 아닌 엘리사의 시종이 마음을 달리 먹은 것이다.
게하시라 불린 이 종은, 나병이 나아 개종했을 뿐 아니라 (선물도 받지 않은 엘리사의) 통 큰 처신에 감동까지 먹고 돌아가는 장수를 쫓아가서는, “아까 주려고 했던 그 선물, 내게 주시오”라며 청구한 것이다.
도무지 기댈 데라곤 없던 약소국 이스라엘이 강대국 실세 장수에게 어떠한 국격과 기품으로 맞서 압도할 수 있었는지를 교시하는 마당에, 이 형편 없는 녀석은 그만 나라 국격을 다 까먹었던 것이다.
(이런 처신으로 게하시는 오히려 자신이 나병에 걸린다.)
바로 이 대목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 뒤집어 쓰인 나병의 실체와 호환되는 대목이다.
고대인들에게 ‘나병’은 무엇이었나.
자고로 나병이란 그 공동체를 괴사시키는 질병이었다. 나병을 빌미로 성원들을 공동체에서 내쫓았다기보다는, 공동체 자체를 괴사시키는 원인이었기에 격리시켜야 할 질병으로 본 것, 이것이 사회적 확진이었음을 이야기가 시사한다.
왜 그런가.
나병은 나아만의 ‘교만’이 꺾임과 동시에 그의 몸에서 떠나갔지만, 정작 그 교만의 핵심인 ‘자기 자신을 속이는’ 행태를 감행한 시종 게하시에게로 옮겨 들러붙고 말았기 때문이다.
게하시가 나병에 들어 쫓겨난 게 아니라, 그의 영혼에 먼저 괴사가 들어 나병이 들러붙은 것이다.
사실 이 고대 약소국의 선지자는 적국 장수에게 오로지 일곱번만 씻게 청구함으로써 국격을 높였다. 우리나라에선 일본으로부터 약 서른 일곱번의 사과를 받아냈다는데...
또한 이 약소국 선지자는 적국 장수의 나병을 고쳐주고서는 치료비도 한푼 받지 않음으로 국격을 높였다. 우리나라는 일본에게서 대체 얼마를 받을 예정인지 그 액수는 아무도 모른다.
‘나병’이 든 지도자는 나아만처럼 심복들이라도 잘 만나야 치유가 가능한데, 우리나라는 요원해 보인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겪는 ‘新 나병’의 학명은 ‘친일파병’인 셈. 이것이 우리의 부분을, 아니 전체를 급속히 괴사시키고 있는 까닭이다.)
※ 나아만 장군 이야기의 가장 오랜 도상 하나 소개한다. 11세기 작품으로 타일 소품인데, 우측에 나아만이 목욕하고 있고 좌측에는 신하 셋이 있다.
하반신은 하나인데 상체는 셋이다. 왜일까. 경전에 기록된 대로 ‘신하’가 아닌 ‘신하들’을 표현한 것이겠지만, 주로 발로 움직일 땐 한 동체라야 효과적으로, 그러나 생각해야 할 땐 다양하게 해야 하는 충복들, 이런 정도의 기호로 이해될 수 있다. 신기하기도 하지, 11세기에 어찌 이런 도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