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을 아무리 연구해도, 교만은 우리 속에 도사리며 언제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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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찬북뉴스 서평] 좀 더 낮은 곳으로, 주님 가신 그 길로

아래로 성장하는 삶
닉 톰슨 | 조계광 역 | 개혁된실천사 | 296쪽 | 19,000원

가장 좋아하는 CCM 가사 중 ‘주님 가신 그 길은 낮고 낮은 곳인데 나의 길과는 참 멀어 보이네 난 어디로 가나’라는 진솔한 고백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은 명백하게 온유하고 겸손한 삶이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마 11:29).

바울이 빌립보 교회 성도 모두에게 품으라고 명령한 그리스도의 마음은 하나님과 본체이신 그 동등함을 스스로 내려놓고 낮고 낮은, 비천한 종의 삶과 십자가 죽음으로 절정에 이르는 겸손한 마음이었다.

분명 예수 그리스도는 아래로 성장하는 삶을 사셨다. 그런데 왜 우리는 아래로 향하는 그 길과 참 멀어 보이는 길로 가려 하는 것일까? 겸손이 아니라 교만의 옷을 입으려 하는 걸까?

<아래로 성장하는 삶: 그리스도를 높이는 겸손에 이르는 길> 저자는 닉 톰슨(Nick Thompson)으로, ‘테네시주 코너스톤 장로교회 목사’라는 소개가 전부일 정도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조엘 비키와 함께 쓴 <비판 속에 있는 목회자들>을 통해 성경의 진리를 실제 삶에 적용하는 탁월한 지혜와 실력을 보여준 바 있다(언약, 2022). 그는 비키와 함께 <창세기 가정예배>라는 책도 공저했다(개혁된실천사, 2022).

개인적으로는 이번 책 <아래로 성장하는 삶>을 통해, 닉 톰슨이 쓴 모든 책에 관심을 갖게 됐다. ‘겸손’이라는 주제를 이토록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설명하면서 실천적 적용을 이끌어내는 능숙한 저자를 발견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 책의 주제는 ‘겸손’이다. 그리고 겸손은 총 다섯 가지 범주, 곧 실존적, 윤리적, 복음적, 교회적, 종말론적 측면에서 다뤄지는데, 다른 말로 하면 우리가 겸손해야 할 당위성을 하나님의 어떠하심, 죄의 참상, 복음의 은혜, 교회라는 은혜의 방편, 종말을 계산하는 지혜 안에서 찾는다고 볼 수 있다.

톰슨이 겸손의 개념을 실존적 측면, 곧 하나님과 하나님이 아닌 우리의 존재론적 차이에서 찾는 것은 정말 예리하고도 흥미로운 접근이었다. 그는 “하나님을 지향하는 자기 인식에서 비롯한 낮아지려는 성향(17쪽)”이라고 겸손을 정의했는데, 사실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지향하는 자기 인식’에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자신의 부패함을 명확한 구분 없이 집어넣으려 한다.

하지만 저자는 먼저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실존적 접근을 한다. 쉽게 말해 범죄 이전에도 피조물에게 겸손이 요구됐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lsquo;겸손&rsquo;을 배울 수 있는 광주청사교회 마룻바닥 영성체험관(위 사진은 본 서평 내용과 직접적 관련이 없음). ⓒ광주청사교회

▲‘겸손’을 배울 수 있는 광주청사교회 마룻바닥 영성체험관(위 사진은 본 서평 내용과 직접적 관련이 없음). ⓒ광주청사교회

사람은 죄의 결과, 그 대가로 겸손의 멍에를 메야 했던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은 그 아래 살아가는 모든 피조물이 자기를 인식하는 올바른 성향, 곧 낮아지려는 겸손의 마음을 불러일으켰다. 타락은 그 성향을 거스른 피조물이 높아지려는 마음을 품은 것으로 촉발됐다.

아래로 성장하는 삶은 타락의 결과가 아니다.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께 의존하고 있는지, 그분이 맺으신 언약 아래 얼마나 큰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는지, 그분은 영원하시고 우리는 일시적인 존재라는 것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묵상하면서, 위에 계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높아질수록 우리는 자신을 낮춘다.

저자는 윤리적 겸손을 다룰 때, 우리의 죄의식을 깨우친다. ‘그렇죠. 하나님 앞에서 모두 죄인이죠’라고 손쉽게 받아들이는 수준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타락하여 스스로 빠져나올 수 없는 절망적인 상태가 됐음을 절실히 깨닫는 자만이 겸손한 마음으로 구원의 은혜를 바랄 수 있다. 바리새인은 자기 의를 자랑하고 세리는 가슴을 치며 용서를 구했던 것처럼 말이다.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는 도저히 자기를 자랑할 수 없게 만든다. 창세 전에 택하신 사랑을 받았으면서, 사랑받을 만한 일을 했다고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하나님의 원수였던 자가 자녀로 입양됐고 이를 위하여 하나뿐인 독생자를 희생하셨다는데, 누가 자신이 그럴 만한 자였다고 교만한 마음을 내비칠 수 있겠는가?

누가 하나님의 거룩하신 심판대 앞에서 자기가 쌓은 공로를 내밀며 무죄 판정을 얻어내려 한단 말인가? 복음은 철저히 신자를 아래로 성장하게 만든다.

겸손을 교회론과 종말론 관점에서 다룬 저자의 의도에 깊은 감사를 표한다. 많은 신자가 하나님의 어떠하심과 자기 죄의 참상, 구원의 놀라운 은혜 앞에 스스로를 낮추려 하지만, 교회 안에서 겸손의 옷을 벗어버리고 높은 마음을 품기가 얼마나 쉬운지 모른다.

예수님은 제자들 사이에 높아지려는 마음을 여러 번 꾸짖으셨고, 서신서에서도 남을 낫게 여기고 먼저 섬기라는 권면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자신을 섬기는 사람이 모여있는 곳, 자신을 사랑해줄 사람이 항상 준비되어야 할 곳, 자신에게 유익을 주는 프로그램과 서비스를 제공받는 곳으로 교회를 오해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교회가 무엇인지(더 정확하게는 어떤 무리인지) 아는 것은 겸손을 실천하는 데 필수적이다. 교회는 불완전하지만 서로 용납하고, 서로에게 기쁨으로 헌신하며, 그리스도의 겸손한 사랑을 세상에 나타내는 선교적 무리이다. 저자가 마지막에 말한 것처럼, “겸손을 소유한 교회는 살아서 활력 잇게 성장할 것이고, 이 덕성을 갖추지 못한 교회는 무기력하게 죽어갈 것이다(295쪽)”.

톰슨은 교만의 종말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그 끔찍하고 참혹한 결말, 영원히 되돌릴 수 없는 운명을 경고한다. 교만의 끝이 지옥이라면, 누구도 그 교만을 손에 쥐고 싶어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반대로 겸손의 종말은 참으로 영광스럽고 아름답다. 자기를 낮추는 자를 높이시겠다고 하신 약속처럼, 겸손은 결국 하나님과 함께 왕 노릇 하는 자리까지 높아진다. 영광의 기업을 물려받고 영원히 하나님과 더불어 사귐을 누리는 영생을 보장한다. 겸손의 끝을 아는 사람은 그 겸손을 결코 손에서 놓고 싶지 않을 것이다.

저자가 책을 마무리하는 모습은 정말 멋지다. 겸손을 주제로 오랜 세월 연구하고 또 이렇게 책을 펴냈다 해서(혹은 읽었다 해서) 겸손을 마스터할 수는 없다고, 그는 겸손히 고백한다.

교만은 우리 속에 도사리고 있고, 언제든 고개를 쳐들 준비가 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주님의 멍에를 메고 그분의 겸손을 배워야 한다.

이 책이 저자의 바람처럼 주님 가신 길과 점점 멀어지는 우리의 길을 계속 아래로 향하게 하는 데 귀하게 쓰임받는 도구가 되길 바란다. 낮고 낮은 그 길로 우리를 인도하여 높으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성도와 이웃을 사랑할 수 있게 되기를 간구한다.

조정의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인
유평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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