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인 그루뎀의 성경과 정치

웨인 그루뎀의 성경과 정치(상)

웨인 그루뎀 | 조평세 역 | 언약 | 736쪽 | 45,000원

웨인 그루뎀은 <조직신학>, <기독교 윤리학>을 통해 복음주의적 교리와 실천을 체계적으로 정립하고 가르쳐온 실력 있는 학자다. 현재 미국 애리조나 피닉스 신학교에서 가르치고 있으며, ESV 성경 번역 감독과 ESV 스터디 바이블 총괄 편집을 하기도 했다.

2010년 그루뎀이 이 책 《Politics - According to the Bible》을 냈을 때, 정말 탁월한 저자라고 생각했다. 복잡하고 다양한 정치 현안에 관해 그루뎀만큼 조직적으로 풀어낼 만한 사람이 없을 것 같고, <복음주의 페미니즘>에서 보여준 것처럼 기독교 내부의 여러 견해를 복음주의 원칙-성경의 권위와 무오성을 온전히 신뢰하는 관점-으로 깔끔하게 정리하여 명쾌한 결론을 독자에게 줄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성경과 정치>는 부제가 말하는 바, ‘오늘날 정치 현안을 성경으로 조명하는 종합 지침서’가 맞다.

그루뎀은 서문 첫 페이지부터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밝힌다: “이 책에서는 ‘리버럴(liberal)’보다 ‘보수(conservative)’로 분류될 수 있는 정치적 입장을 지지한다. 성경이 가르치는 정부의 역할과 성경적 세계관에 대해 내린 결론이 그렇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이 입장이 성경의 가르침에서 비롯된 것임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23쪽).” 진보가 아니라 보수를 지지한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이 책을 진영논리의 희생물로 만든다면, 그 뒤로 이어지는 내용을 전혀 읽지 않거나 반대하는 마음으로 대충 읽어나갈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가 밝힌 것처럼 그는 진영논리에 빠져있지 않다: “이 책의 주된 목적은 진보적 입장이나 보수적 입장, 또는 민주당이나 공화당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정치와 법, 그리고 정부에 대한 성경적 세계관과 성경적 관점을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다”(24p).

그러므로 이 책을 통해 최대 유익을 얻으려면, 저자가 성경을 통해 1-5장까지 세우는 기본 원칙들이 성경의 가르침에 걸맞은지 스스로 검증해 보고, 6-9장까지 구체적으로 다루는 주제별 이슈들과 관련된 정치 현안들을 앞서 구축한 성경적 세계관과 구체적인 성경의 가르침을 기준으로 올바르게 다루고 있는지 생각하며 읽어야 한다.

역사적으로 교회는 정치를 잘못 다루어 왔다. 1장에서 그루뎀이 평가한 것처럼, ①정부는 종교를 강요해야 한다 ②정부는 종교를 배제해야 한다 ③모든 정부는 악한 마귀의 역사다 ④정치하지 말고 전도를 하라 ⑤전도하지 말고 정치를 하라 등, 한쪽으로 치우친 관점으로 많은 실패와 문제를 만들었다. 성경적 관점은 정부에 중대한 기독교 영향력을 미쳐야 한다는 것이다(2장).

오늘날 한국에서 교회가 정치 참여에 주도적 역할을 하고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루뎀이 비판한 다섯 가지 잘못된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국회의사당 여의도 국회 대한민국
▲국회의사당. ⓒ크투 DB

그루뎀은 올바른 방식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목회자의 역할과 개인의 역할을 설명했다: “목회자들은 각 선거에서 중요한 도덕적 문제에 대해 설교하고 가르칠 책임이 분명히 있다. 그들은 각 사안에 해당하는 성경의 도덕적 가르침과 시민 정부에 대한 가르침이 무엇인지 분별하고 결정하는 데 지혜를 구하고, 장로 및 교회 제직회의 조언을 참고하여 성도들에게 충실하게 가르쳐야 한다. 또한 기독교 개개인에게는 최소한 충분히 정보를 습득하고 현명하게 투표할 의무가 있다(167쪽).”

중요한 건 성경의 가르침이다. 성경은 도덕적 중립성을 가진 책이 아니다. 하나님은 선과 악의 분명한 기준을 제시하셨다. 정부는 하나님이 세우신 ‘사역자’이고, 분명히 수행해야 할 역할이 있다. 하나님의 사역자는 하나님의 도덕적 기준을 따라야 한다.

세상은 그 기준을 모르거나 무시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통하여 그 기준을 세상에 가르쳐주고 또 강력하게 제안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정치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방법이다.

안타깝게도 같은 성경을 가지고 같은 믿음을 그 성경의 가르침에 두고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 사이에서 상반된 정치적 견해를 피력하는 일이 숱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세상은 정치 현안에 관해 성경은 중립을 지키고 있거나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할 책임이 있는 교회는 세상에 분명한 기준과 원칙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루뎀은 정말 철두철미하게 절대 변하지 않는 성경의 원칙과 그것을 현실에 적용하는 여러 방식 중 자신이 선호하는 것 등으로 권위를 구분해, 독자가 동의할 수 있고(동의해야만 하고) 다른 방식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분명한 건, 성경을 진지하게 믿고 그 권위에 굴복하기 원하는 참 교회는 그의 주장에 수긍할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이 책을 교회나 교회의 부서, 기독교 단체 등에서 함께 읽고 토론해 보기를 추천한다. 선동과 혼란을 일으키는 기독교 모임이나 강연이 아니라, 건강하고 건전한 성경적 토론이 더욱더 필요한 때라고 보기 때문이다.

기독교 진보, 기독교 보수 등 교단 성격이 다르고, 그것이 정치에 미치는 영향력에 그대로 반영되는 암울한 현실에서(심지어 같은 교회 안에서도 성도가 두 진영으로 나뉜다), 그루뎀의 <성경과 정치>가 성경의 권위 아래 기독교 내부 목소리를 하나로 모으는 하나님의 강력한 도구가 되기를 희망한다. 그것은 세상의 진영논리를 벗어나 성경의 가르침에 적극적으로 순종하려는 우리의 태도를 요구한다.

연말에 ‘하권’이 출간될 예정인데, 두 권의 책을 통해 교회가 베뢰아 사람들처럼 ‘이것이 과연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기를, 그래서 세상과 정부에게 하나님이 당신의 사역자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지 선명한 메시지를 전달해 줄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한다.

조정의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인
유평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