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성경 8-1] 애굽인들은 왜 목축을 가증히 여겼나?
나일강 근처 비옥한 토양 대신 사막 지형 고센 선택
애굽, 나일강 홍수로 매년 풍요로운 수확 예상 가능
애굽인들 세계관, 농업 중시하고 목축 상대적 천시
달 중시했던 메소포타미아 달리, 태양 중심적 역할
1. 들어가는 말
“당신들은 이르기를 주의 종들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목축하는 자들이온데 우리와 우리 선조가 다 그러하니이다 하소서 애굽 사람은 다 목축을 가증히 여기나니 당신들이 고센 땅에 살게 되리이다(창세기 46:34)”.
창세기 46장 34절에 따르면, 모든 애굽인들은 다 목축을 가증히 여긴다고 했습니다. 이는 요셉이 야곱과 70명의 가족에게 왜 고센 땅에서 거주하게 될 것인지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온 이유입니다. 애굽인들은 목축을 가증히 여기기 때문에, 야곱 가족들이 앞으로 목축에 적합한 지역인 고센에서 거주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요셉은 바로에게 설명하기를, 야곱 가족은 대대로 목자 집안이라 농사를 지을 줄 모르기 때문에 가축을 키울 수 있는 고센 지역에 살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요셉이 바로에게 왕궁이나 나일강 근처의 비옥한 토양 대신 사막과 크게 다르지 않는 목축 지대인 고센에서 살게 해달라는, 매우 들어주기 쉬운 부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국무총리 요셉의 권한으로 얼마든지 나일강 근처 비옥한 토양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 수 있게 해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물도 넉넉하지 않은 고센 지역에서 살기를 원하는 것은 우리 상식과 크게 차이가 나는 요청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애굽인들처럼 편하게 농사를 지으며 살 수 있는 곳을 두고, 일부러 풀을 찾아 떠돌아다녀야 하는 곳에서 가족을 살게 하려는 요셉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요?
2. 애굽인들은 왜 목축을 가증히 여겼나?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먼저 왜 애굽인들이 목축을 가증히 여겼는지 알게 되면 우리는 요셉이 무엇을 의도했는지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목축은 농업과 더불어 매우 중요한 생계수단이었는데, 굳이 애굽인들이 목축을 가증히 여긴 것에는 다른 문화에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이유가 무엇인가 있기 때문입니다.
애굽인들이 목축을 싫어하는 것은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세계관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애굽인들의 농업 선호는 조선 시대 직업관과 유사한 점이 있습니다. 유교 사상이 지배하던 조선 시대에는 ‘사농공상’이라는 엄격한 직업상 차별이 있었습니다.
선비로서 유학을 공부하여 벼슬 자리에 나아가는 것이 삶의 목표였는데, 그 뜻을 이루지 못하면 낙향하여 농사를 짓는 것이 조선시대 양반의 최고 가치였습니다.
따라서 농업 이외의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멸시천대를 받았으며, 특히 여기에도 끼지 못하던 백정이나 광대 등은 천민으로서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조선 시대 서적을 읽을 때, 이 계급제도에 대하여 알지 못하면 기록된 문서들에 함축되어 있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조선 시대를 지금처럼 이해하면, 마치 장사꾼들이 큰 대접을 받았을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장사꾼’이라는 단어에는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대한 비하가 포함돼 있음을 현대를 사는 우리도 느낄 수 있습니다.
이처럼 단적인 예이지만, ‘사농공상’이라는 직업관을 모르고 조선 시대 삶에 대하여 논한다면 정말 실소를 금치 못할 결론이 나올 수도 있게 되는 것입니다. 더구나 한국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이 조선 시대 문화를 공부한다면, 잘못된 결론을 내릴 가능성이 매우 커집니다.
똑같은 경우가 성경 해석에서도 발생합니다. 애굽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는 성경에 기록돼 있는 것처럼 왜 애굽인들이 목축을 가증히 여기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 이유를 알게 되면, 척박한 고센 땅을 선택한 요셉의 의도가 훨씬 잘 이해될 것입니다.
애굽에서 국무총리직을 수행해야 하는 요셉이 굳이 애굽인들이 싫어하는 직업에 자기 조상들이 종사해 왔음을 밝힐 필요가 있었을까요? 그렇게 직업을 밝힘으로 하여 얻는 이익이 무엇일까요? 혹시 반대로 애굽인들로부터 더 멸시나 차별대우를 받지 않았을까요?
혹시 목축에서 농업으로 직업을 전환하는 것이 어려웠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그런데 아브라함, 이삭, 야곱도 가나안 땅에서 목축은 물론 농사를 지었습니다.
예를 들면 이삭이 흉년으로 인하여 그랄로 이동하였을 때 그곳에서 농사를 지었는데 백배의 수확을 얻게 됩니다(창세기 26:12). 만약 이삭이 농사짓는 법을 몰랐다면 이런 수확은 불가능하였을 것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모두 흉년이 들어(즉 가뭄 때문에) 가나안을 떠나야 했는데, 가나안에는 가뭄으로 인한 기근이 자주 발생하였습니다.
전통적으로 가나안에서는 겨울철에 비가 내리기 때문에, 겨울 비를 이용하여 밀과 보리를 심었습니다. 따라서 환경이 조금 바뀌었다 해도 야곱 가족이 애굽에서 농사를 짓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3. 애굽 문명에서 나일강이 가지는 의미
애굽인들이 목축을 가증히 여기는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애굽 문명에서 나일강이 차지하는 위치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 역사학자 헤로도토스는 “애굽은 나일강의 선물”이라고 하였지만, 나일강이 없는 애굽은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애굽인들에게 나일강은 단순히 ‘유익한 강’이 아니라 ‘알파와 오메가’입니다. 즉 애굽인들의 삶의 터전이자 문명의 발상지이며, 또 사상의 토대이자 신화의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1) 나일강의 백미는 홍수입니다
나일강에 홍수가 없었다면, 애굽 문명도 없었을 것입니다. 매년 7-10월 정기적으로 발생하는 홍수는 나일 계곡 안에 비옥한 검은 토양을 날라다 줍니다.
이로 인하여 애굽인들은 힘들이지 않아도 매년 풍요로운 수확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퇴비를 주지 않아도 곡식들이 잘 자랐고 또 홍수가 땅을 흠뻑 적셔주었기 때문에 밭을 가는 것이 너무 쉬웠습니다.
또 애굽에서는 홍수가 주는 공포도 없었습니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신화에도 나타나는 것처럼 모든 것을 앗아가는 홍수가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몰라 늘 공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일강을 둘러싸고 있는 계곡은 천연 제방이 되어 홍수가 이 지역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막아 주었기 때문에, 홍수는 공포가 아니라 축복이었습니다.
따라서 나일강의 홍수는 매년 애굽인들이 애타게 기다리는 연례 행사였습니다. 이처럼 모든 농업의 조건이 자연적으로 완벽하게 갖추어진 나일 계곡은 분명히 농부들에겐 천국이었습니다.
때에 맞추어 씨만 뿌려주면 저절로 자라 풍성한 결실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성경도 애굽 땅을 하나님 동산에 비유하고 있습니다(창세기 13:10).
2) 나일강은 애굽의 수상 고속도로였습니다
사막으로 둘러싸인 애굽은 외부 세계와 연결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물살이 거세지 않아 천천히 흘러가는 나일강은 오르내리기가 매우 편리하였습니다.
내려갈 때는 노를 젓지 않아도 강물을 따라 천천히 내려갈 수 있었고, 올라갈 때는 돛을 펴기만 하면 계곡을 따라 부는 바람에 의하여 상류로 쉽게 거슬러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나일강은 애굽인들의 삶에서 떼놓을 수 없는 핵심 역할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애굽인들은 누구나 쉽게 강가에서 자라는 파피루스를 이용하여 배를 만들 수 있었고, 이 배는 애굽인들의 주요 교통 수단이 되었습니다.
시장에 가거나 신전에 가거나 물고기를 잡는데 이 배가 요긴하게 사용되었습니다. 피라미드에 사용되는 석재도 수심이 깊어지는 홍수기를 이용하여 상류에서 파피루스 배에 싣고왔습니다.
3) 나일강은 애굽 문명의 알파와 오메가였습니다
이처럼 나일강이 애굽인들의 일상 생활 속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핵심적인 요소가 되면서, 그들의 사고 방식에도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었습니다.
애굽인들의 세계관과 종교관은 모두 나일강에서 기원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나일강이라기보다는 ‘나일강의 홍수’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홍수가 없는 나일강은 큰 의미를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애굽인들은 우주가 나일강 홍수와 같은 물로 돼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 나일강 홍수는 검푸른 색을 띄고 있는데, 이 색깔은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의 배경 색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따라서 애굽인들은 나일강이 우주에서 흘러 들어온 물이라고 믿었습니다. 또 밤하늘에 떠 있는 은하수는 수많은 섬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섬을 건너려면 나일강처럼 배가 필요하였습니다.
사후 세계로 가기 위해서도 이 배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왕이 묻힌 피라미드에서 실제 사용되는 크기의 배가 발견됩니다.
또 신들이 사용하는 교통 수단도 배라고 믿어, 각 신전에 반드시 배가 준비돼 있었습니다. 이처럼 애굽인들은 나일강 홍수를 통하여 생명을 유지하고 또 이해하였습니다.
4. 애굽인들의 세계관
나일강 홍수로 인하여 풍요로운 삶을 구가할 수 있었던 애굽인들은 그만큼 많은 여가와 부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여유로운 시간들은 대부분 세계관 형성과 사후 세계 연구에 사용되었습니다.
이들이 형성한 사고 체계는 규모와 상세함에 있어 다른 어떤 문명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물론 이 체계의 중심에는 나일강 홍수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1) 원시의 언덕에서 창조신인 태양신의 출현
애굽의 신화는 나일강 홍수에서 출발합니다. 이 세계가 창조되기 전에는 나일강의 검푸른 물만이 존재하였습니다.
이 검푸른 물 속에서 원시의 진흙 언덕이 나타나는데, 이 이미지는 홍수가 발생한 나일강 델타 지역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델타 지역은 홍수에 의해 수시로 물길이 바뀌면서 새로운 언덕이 나타나고 또 기존의 언덕이 사라지기도 합니다.
비옥한 검은 토양이 나일강 홍수에 의해 쓸려 내려와 만들어진 원시의 진흙 언덕에서 세계 창조의 역사가 시작되는데, 창조신인 태양신이 이 언덕에서 홀연히 나타납니다.
달을 더 중요시하는 메소포타미아 신화와 달리 애굽 신화에선 태양이 중심적인 역할을 차지합니다. 태양이 생명에게 필요한 빛과 열을 주는 현상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2) 대기와 질서의 창조
이 태양신이 세계 창조를 시작하는데 먼저 슈(Shu, 대기의 남신)와 테프눗(Tefnut, 질서의 여신) 출생을 통해 세계의 거대한 기초를 놓습니다.
슈는 원시의 물에 공기를 불어넣어 세계의 기초가 될 공간, 즉 대기를 구성하게 됩니다. 이는 마치 물 속에 들어있는 둥글고 거대한 공기 방울 같은 모양으로, 이 대기 안에 세계가 만들어집니다.
그러나 이 대기 안에 형성되는 세계는 임의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테프놋의 질서(Maat)에 따라 만들어지게 됩니다.
슈의 파트너인 테프눗은 대기 안에 창조될 세계가 따라야 할 질서(Maat, 마트)를 관장하는 여신으로, 이 질서에 따라 창조된 세계는 부족함이 없는 완벽한 세계가 됩니다.
이는 태초의 세계를 불완전하고 위험한 것으로 보는 메소포타미아 신화와 반대 되는 것으로, 창조된 세계에 대한 애굽인들의 긍정적인 태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3) 하늘과 땅의 창조
슈가 제공하는 대기 안에 테프눗이 제공하는 마트(질서)에 따라 하늘과 땅이 만들어지는데 하늘을 다스리는 여신은 누트(Nut)이며, 땅을 다스리는 남신은 겝(Geb)입니다.
하늘의 여성성과 땅의 남성성은 다른 문화에서 찾아보기 힘든 매우 독특한 개념인데, 늘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과 사막의 거친 산과 바위 등이 대조를 이루어 생긴 개념입니다.
이 하늘과 땅 사이에 만들어진 공간에서 생명체들이 숨을 쉬며 살아가게 되는데, 이렇게 하여 비로소 하늘, 대기, 땅이라는 세계가 마트에 따라 완벽하게 만들어집니다.
이 창조의 마지막 화룡점정을 태양신이 찍게 됩니다. 태양신이 이 창조된 세계에 빛을 비춤으로써, 마치 스위치를 켠 것처럼 원시의 암흑이 사라지고 모든 것이 완벽하게 작동을 시작합니다.
4) 역사의 시작
세계가 창조된 이후 태어난 신들에 의해 애굽의 신정 정치가 시작되지만, 신들 사이의 갈등으로 인하여 어둠이 완벽하게 창조된 세계에 들어오게 됩니다.
이는 왜 ‘마트’에 따라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창조된 세계에 혼란과 어둠, 무질서 등이 생겨나게 되었는지를 설명하여 줍니다.
겝과 누트 사이에서 오시리스(Osiris)-이시스(isis) 부부와 셋(Seth)-넵시스(Nephthys) 부부가 태어나게 되고, 오시리스와 셋 사이의 싸움은 평화와 혼란이 반복되는 애굽의 역사를 상징합니다. 오시리스의 동생인 셋은 무질서의 신으로, 어머니인 누트의 자궁에서 태어날 때부터 난폭했다고 합니다.
무질서를 추구하는 셋의 등장은 곧 애굽 신정정치의 혼란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는 형이자 애굽의 왕인 오시리스에게 도전합니다.
마침내 오시리스를 죽인 셋은 그 시체를 조각내 미로와도 같은 나일강 델타 지역에 뿌려서, 아무도 시체를 찾아낼 수 없도록 합니다.
그러나 오시리스의 아내인 이시스는 시신 조각들을 모두 찾아내 그 몸을 회복시키고, 그 사이에서 호루스(Horus)가 태어납니다. 호루스는 장성하여 부모의 원수를 갚고, 셋으로부터 왕권을 회복하여 애굽에 평화와 질서를 회복합니다.
그리고 오시리스는 사후 세계를 관장하는 신이 됩니다. 이후 애굽 신화는 인간 역사와 접목하게 되는데, 애굽의 왕인 바로(Pharaoh)는 호루스의 현현 혹은 후손으로 애굽의 질서(마트)를 지키는 임무를 수행합니다. <계속>
류관석 교수
대한신대 신약신학
서울대 철학과(B.A.), 서강대 언론대학원(M.A.), 미국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M. Div.),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 (Th. M. 구약 / M. A. 수료), Loyola University Chicago(Ph. D., 신약학)
미국에서 Loyola University Chicago 외 다수 대학 외래 교수
저서 <구약성경 문화 배경사>, <산상강화(마태복음 5-7장)>, <기적의 장(마태복음 8-9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