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한국교회사 속 조용기 목사의 위치와 그 의의 (2)
한국교회, 외형적으로 장로교회 주도했지만
내용적으로 체험적 신앙, 곧 성령충만 강조해
여의도순복음, 한국교회를 오순절 분위기로
조용기 목사, 현실에서 하나님 축복 누림 강조
조용기 목사 별세를 맞아, 박명수 박사님(서울신학대학교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장)의 글을 소개합니다. 이 원고는 박사님의 <급하고, 강한 바람: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세계 오순절운동>에 수록된 것입니다. -편집자 주
2. 한국 기독교의 신앙형태와 여의도순복음교회
여의도순복음교회는 단지 외형적으로 한국교회 주류에 편입한 것이 아니라, 신앙적 형태에 있어 오히려 한국교회의 주류를 형성했다.
사실 순복음교회의 신앙 스타일은 한국교회에서 약간 경멸적인 대우를 받았다. 하지만 조용기 목사는 줄곧 오순절 신앙을 강조했으며, 그 결과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신앙 스타일은 한국교회의 주요 신앙스타일의 하나가 되었다.
유동식 교수는 한국교회의 신앙유형을 둘로 나누었다. 하나는 부성적 신앙이요, 다른 하나는 모성적 신앙유형이다.
부성적 신앙이란 한국의 유교적인 전통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써 진보적 사회참여의 신학과 보수적 정통신학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들은 다같이 옳고 그름에 대한 생각이 강하다.
여기에 비하여 모성적 신앙이란 한국의 무교적인 전통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서 성령운동이 여기에 해당된다. 여기에는 포용성과 생명력을 특징으로 한다. 한국교회에서 부성적인 신앙은 장로교회가 대표한다면, 모성적인 신앙은 순복음교회가 대표한다고 생각한다.
제도적으로 볼 때 한국교회는 장로교회가 지배한다. 사실 장로 제도는 한국교회가 가장 선호하는 제도이다. 원래 장로 제도가 없던 감리교회나 침례교회조차 장로 제도를 받아들이고 있다.
뿐만이 아니다. 한국에서 장로교회와 관계없는 오순절 교파도 그 이름을 장로교회로 바꾸고 있다. 원래 성결 계통이었던 하나님의 교회 앤더슨 파도 장로교회로 이름을 바꾸었고, 오순절 계통이던 하나님의 교회 클리브랜드 파도 한국에서 ‘대한예수교장로회 한영측’이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하지만 신앙의 내용으로 볼 때, 한국교회는 오순절 신앙이 대세라고 말할 수 있다.
원래 한국교회는 성령 운동을 강조하는 교회였다. 한국교회의 가장 대표적인 신앙 체험이라고 말할 수 있는 1907년 대부흥운동은 2차적 은혜로서 성령충만을 강조하는 성령 운동이다.
한국에 들어온 최초의 선교사들은 세례와 성령세례를 동일시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물세례와 성령세례를 구분하고, 물세례 다음에 성령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한국 장로교 선교사의 대부라고 불리는 사무엘 마펫은 세례를 받은 신자들을 보면서 성령세례를 받기를 간구했다.
뿐만 아니라 한국교회는 신유와 재림의 복음을 강조해 왔다. 길선주 목사는 일제 시대 어두운 현실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을 강조하여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었다.
일제 말 일제의 신사참배 위협에서 몇몇 신자들이 신앙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종말론적 신앙 때문이었다.
김익두 목사는 신유의 복음을 강조하였다. 일제 시대 어두운 상황 가운데 사람들은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증거를 찾았고, 신유는 그들에게 이것을 입증하였다. 김익두 목사의 신유 집회는 한국인들에게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증거를 제시하였다.
한국교회는 외형적으로는 장로교회가 주도하였지만, 내용적으로는 체험적인 신앙 곧 성령충만을 강조하였다. 중생, 성령세례, 신유, 재림은 특정 교파의 주장이 아니라 한국교회 전체의 흐름이었다.
하지만 여의도순복음교회의 등장은 한국교회의 신앙을 보다 더 오순절적인 신앙으로 만들어 놓았다.
우선 방언의 확산을 예로 들 수 있다. 사실 한국교회는 방언에 대해 호의적이 아니었다. 하지만 현재 한국교회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경험하는 종교 체험은 바로 방언이다.
한국교회에 방언이 들어왔을 때 가장 강하게 반대했던 교파는 바로 오순절 교파와 가강 가까운 성결교회였다. 조용기 목사와 함께 여의도순복음교회의 개척자였던 최자실 목사는 원래 성결교인이었는데, 방언을 하기 때문에 서울신학대학교에 입학하지 못하고 순복음신학교에 들어왔다.
1960년대 한국에는 매킨타이어의 국제기독교연합회(ICCC)가 들어왔는데, 이들은 자유주의 신학과 함께 순복음교회의 방언운동을 주요 공격대상으로 삼았다. 방언에 대한 반대 논쟁은 ICCC 계열에서 발행한 <성별> 잡지에 잘 나타나 있다.
하지만 이런 반대에도 불구하고, 성령 운동을 통하여 방언 현상은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것은 교파를 뛰어 넘어 한국교회 전체에 파급되었다. 급기야 장로교 고신 측과 합동 측에서도 방언 문제로 심각한 갈등을 겪었지만, 방언의 확산을 막지 못했다.
실제로 이들 신학교 학생들의 대부분은 방언을 하고 있다. 현재 초교파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알파코스도 방언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필자는 방언은 한국교회 종교현상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방언 못지않게 여의도순복음교회가 한국교회에 영향을 미친 것은 축복의 복음이다.
실질적으로 우리 한국 사람들은 축복을 강조하던 민족이다. 비록 유교가 선비를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가르치긴 했어도, 사람들은 실질적으로는 축복을 사모하였다.
그래서 등장하는 것이 위선이다. 겉으로는 청빈을 말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물질을 탐하였다. 사실 초기 한국교회는 이와 같은 유교적인 전통을 이어받았다.
하지만 조용기 목사의 등장은 여기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그는 미국의 카리스마 운동의 영향을 받아 축복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시작했고, 이것은 일반 대중들의 솔직한 종교심성에 호소하였다.
조용기 목사의 축복의 메시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호소력이 있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그의 메시지는 전파와 활자를 통해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필자의 판단으로 한국교회 강단을 조사해 보면, 가장 보편적인 설교 주제는 어떻게 실패와 가난을 극복할 것인가 하는 것이리라 생각된다. 조용기 목사는 전통적인 내세지향적 설교를 지양하고, 현실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것인가를 강조하였다.
필자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가 한국교회에 미친 가장 큰 영향력은 그의 설교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방송과 TV를 통해 그의 메시지는 전국에 퍼졌고, 수많은 목회자들이 그의 설교를 반복하였다. 실제로 교파와 관계없이 한국교회의 신앙형태는 오순절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순복음의 신앙이 전국에 전파되는 데에 기여했던 오산리금식기도원의 역할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순복음교회 신자들의 교회라면, 오산리금식기도원은 한국교회의 기도원이었다. 여기에는 순복음교회를 넘어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등 한국의 모든 교파의 신자들이 참석하여 은혜를 받았다.
이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방언을 경험하고, 신유를 체험했으며, 절망에서 희망을 얻었다.
특히 이곳에서 강조한 것은 금식기도이다. 절대 절망적인 상황에서 목숨을 건 금식기도는 그만큼 힘이 있었고, 그 결과로 얻어지는 응답은 한국교회 간증의 주류를 이루었다. 오산리기도원이야말로 오순절 신앙을 전파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박명수 박사
서울신학대학교 명예교수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