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적대적인 이방세력 또는
배후 악의 세력들 가리키는 메타포
리워야단, 실제 피조물일 가능성도

리워야단 리바이어던 도레
▲구스타프 도레의 그림 ‘The Destruction of Leviathan(리워야단의 파괴, 1865)’.

구약에는 ‘라합’ 또는 ‘리워야단’으로 불리는 바다 괴물이 등장한다. 구약의 창조 기사를 신화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이 바다 괴물을 바벨론의 창조신화 에누마 엘리쉬에 나오는 바다의 신 ‘티아맛(Tiamat)’과 같은 존재라고 믿는다.

이는 구약의 창조 기사가 바벨론의 창조 신화처럼 ‘싸움에 의한 창조(creation through combat)’라는 신화적 관점을 반영한다는 생각과 연결된다.

바벨론의 주신(主神) 마르둑(Marduk)이 그의 적수 ‘티아맛(Tiamat)’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후 세상의 창조에 나선 것처럼, 여호와께서도 바다 괴물 ‘라합’이나 ‘리워야단’을 물리치신 후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과연 이들의 주장이 옳은 것일까?

구약에서 바다 괴물 ‘라합’이 언급된 곳은 모두 여섯 곳(욥 9:13; 26:12; 시 87:4; 89:10; 사 30:7; 51:9)이다. 그런데 이곳에서 ‘라합’은 원초의 시대에 있었던 어떤 가공의 괴물을 가리킨다기보다, 지상의 한 나라를 가리키는 상징적 어법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 옳다.

예를 들면, 시편 87편 4절에서 ‘라합’은 ‘바벨론’과 나란히 언급된다. “나는 라합과 바벨론이 나를 아는 자 중에 있다 말하리라 보라 블레셋과 두로와 구스여 이것들도 거기서 났다 하리로다”.

이사야 30장 7절은 ‘라합’이 어떤 나라를 가리키는지 구체적으로 언급한다. “애굽의 도움은 헛되고 무익하니라 그러므로 내가 애굽을 가만히 앉은 라합이라 일컬었느니라”.

이사야 51장 9-10절에 사용된 심상들과 시적 표현들 역시 ‘라합’이 ‘애굽’을 가리키는 메타포임을 말해준다. 아래에서 볼 수 있듯이 9절에 언급된 “라합을 저미시고 용을 찌르신 이”가 10절에 묘사된 출애굽 사건과 서로 평행을 이룬다.

“(9절)여호와의 팔이여 깨소서 깨소서 능력을 베푸소서
옛날 옛시대에 깨신 것 같이 하소서
라합을 저미시고 용을 찌르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며

(10절)바다를, 넓고 깊은 물을 말리시고 바다 깊은 곳에 길을 내어
구속 받은 자들을 건너게 하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니이까”.

위에서 인용한 본문들은 모두 ‘라합’이 이스라엘에 적대적인 세상의 어떤 나라들(애굽이나 바벨론)을 가리키는 메타포로 사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경우에 따라 ‘라합’은 창조세계에 속한 바다의 통제하기 힘든 힘을 시적으로 묘사하기 위한 메타포로 사용되기도 한다. 시편 89편 9-10절에서 이런 예를 찾을 수 있다.

‘라합’과 함께 신화적 존재로 간주되는 ‘리워야단’에 대해서도 같은 설명이 가능하다. 우선 ‘리워야단’이 바다의 거대한 생물인 ‘탄닌(Tannin, 히브리어는 맨 아래* 참조, 한글성경에서 주로 ‘용’으로 번역됨)’과 동일시되고(시 74:13, 14; 사 27:1), 나아가 ‘날랜 뱀(the fleeing serpent, 히브리어는 맨 아래** 참조)’으로 불린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사 27:1).

그런데 놀랍게도 이사야 51장 9절과 욥기 26장 12절에서 ‘라합’ 또한 ‘탄닌’과 ‘날랜 뱀’으로 소개된다. 이것으로부터 ‘라합’과 마찬가지로 ‘리워야단’ 역시 이스라엘에게 적대적인 한 국가(애굽이나 바벨론)를 가리키는 메타포임을 추론하기란 어렵지 않다.

물론 ‘리워야단’은 바다나 큰물에 사는 거대한 생명체로서 하나님이 지으신 실제 피조물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욥기 41장 1절과 시편 104편 26절은 ‘리워야단’을 하나님이 창조하신 바다 생명체 가운데 하나로 묘사한다. 그것이 ‘꼬불꼬불한 뱀(사 27:1)’으로 불리기도 하는 까닭에, 뱀과 같이 파충류에 속하는 생물(악어)이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어찌됐건 ‘리워야단’이라 불린 바다/강의 거대 생명체가 하나님께 적대적인 세력을 가리키는 비유로 사용됐고, 이 과정에서 그것은 머리가 여러 개 달린 신비한 괴물로 그려지기도 했다. “리워야단의 머리들을 부수시고(시 74:14, 개역개정에는 단수 ‘머리’로 번역됨)…”.

흥미로운 것은 고대 근동의 우가릿에서 발견된 바알 신화에서도 ‘리워야단’이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이곳에 언급된 ‘로단(Lothan)’은 언어학적으로 ‘리워야단’과 연결되며, ‘로단’이 ‘날랜 뱀’과 ‘꼬불꼬불한 뱀’으로 불리는 것 또한 그것이 ‘리워야단’과 같은 것임을 시사한다.

다음은 해당 바알 신화의 일부를 옮긴 것이다.

“네(바알)가 날랜 뱀 로단을 죽이고 저 꼬불꼬불한 뱀 곧 일곱 머리를 가진 권세자를 끝장내었을 때,
하늘은 힘을 잃고 가라앉았도다.

위 내용은 다음 이사야 27정 1절 내용과 놀랍도록 유사하다:

“그날에 여호와께서 그의 견고하고 크고 강한 칼로
날랜 뱀 리워야단 곧 꼬불꼬불한 뱀 리워야단을 벌하시며
바다에 있는 용을 죽이시리라.”

이 비교에서 ‘로단’ 또는 ‘리워야단’이 고대 근동의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었던 생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생물이 워낙 가공할 만큼 무서운 존재였기에, 당시 사람들은 그것을 더욱 기괴한 괴물로 양식화하여 바알과 대결한 신화적 존재로 만들었을 것이라 생각해볼 수 있다.

이사야 선지자는 같은 존재를 하나님께 적대적인 이방세력 또는 그들 배후에 있는 악의 세력을 가리키는 메타포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더 나아가 이사야 선지자는 당시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었던 우가릿의 신화시적(mythopoetic) 표현을 하나님께 적대적인 세상나라를 묘사하기 위한 ‘수사적 수단’으로 사용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하이델(Aexander Heidel)의 설명은 이런 관점을 잘 대변해준다.

“한편으로 전능하신 하나님과 다른 한편으로 라합, 리워야단, 그리고 이들을 가리키는 여러 가지 명칭들 사이의 싸움에 대해 이야기하는 구약 본문들에서, 관련된 용어들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에게 적대적인 강대국들에게 적용되는 상징 언어(figures of speech)일 뿐이다.”

김진수 교수(구약신학,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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