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각막이식 대기 약 2천 2백 명… 평균 8년씩 걸려

김신의 기자  sukim@chtoday.co.kr   |  

장기기증운동본부 ‘세계 눈의 날’ 맞아 관심 촉구

지난해 각막기증자 145명에 불과
사망자의 0.04%만이 각막기증
수입 각막에 의존하는 참담 현실

▲지난 2019년에 열린 각막기증 활성화를 위한 본부의 정책토론회에서 아이뱅크 시스템을 설명하는 미국의 장기구득기관 원레거시.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제공
▲지난 2019년에 열린 각막기증 활성화를 위한 본부의 정책토론회에서 아이뱅크 시스템을 설명하는 미국의 장기구득기관 원레거시.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제공

(재)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이사장 박진탁 목사, 이하 본부)가 ‘세계 눈의 날’을 맞아 각막기증 활성화를 위한 관심을 독려했다. 10월 10일은 ‘세계 눈의 날’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7년부터 실명과 시각장애를 주요 국제 공공보건 문제로 다루며, 매년 10월 두 번째 목요일을 세계 눈의 날로 지정해 눈 건강의 중요성을 알리고 있다.

눈은 가장 빠르게 노화가 진행되는 장기 중 하나로, 그 중 ‘각막’은 안구의 가장 바깥쪽에서 빛을 받아들여 시신경으로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외부로 노출된 각막은 감염, 외상, 유전성 질환 등으로 쉽게 손상될 수 있다.

2023년 말 기준 국내 각막이식 대기자는 2,190명으로, 평균 대기기간은 약 8년에 이른다. 각막이식 대기자 중에는 양안 실명으로 일상생활이 거의 불가능하거나, 심한 감염이나 외상으로 이식이 위급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국내 기증 부족으로 많은 환자가 시각장애의 불편을 감수하거나 해외에서 각막을 수입해 이식을 받는 실정이다. 수입각막의 경우 수술비 외에도 각막 보존 및 운송 등에 대한 비용이 추가된다. 이 때문에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자들은 수입각막을 통한 이식 수술을 대신 시각장애의 고통을 견디는 편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각막은 사망 후 12시간 이내에 기증할 수 있다. 생후 6개월부터 80세까지 전염성 질환이 없다면 누구나 시력에 관계없이 기증이 가능하다. 그러나 국내에서 각막기증을 실천하는 이는 많지 않다.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에 따르면, 지난해 각막기증자는 단 145명(뇌사 기증 108명, 사후 기증 37명)에 불과했으며, 각막이식 수술은 총 330건(뇌사 기증 247건, 사후 기증 83건)에 그쳤다. 같은 해 사망자가 35만 명을 넘었던 점을 감안하면, 사망자의 0.04%만이 각막기증을 실천한 셈이다. 또한 수입각막에 의한 이식은 897건으로, 국내 기증보다 2.7배 높은 수준이었다.

각막이식 대기자 ‘0’명, 미국의 ‘아이뱅크’ 시스템

국내에서 사용되는 수입각막은 미국으로부터 공급되는 경우가 많다. 미국은 ‘아이뱅크(Eye Bank)’를 통해 각막이식이 필요한 환자가 대기기간 없이 바로 각막을 이식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미국 전역에 있는 공인된 70개의 아이뱅크에는 각막적출을 전문으로 하는 테크니션이 존재해 지역, 시간에 관계없이 각막기증 희망자가 발생하면 바로 출동한다. EBAA(Eye Bank Association of America)에 따르면, 미국 내 각막기증자는 2023년 기준 69,637명에 달했다. 이는 한국의 각막기증자 수와 비교하면 무려 480배에 달하는 수치다. 이렇다 보니 미국은 각막이식 대기자보다 기증된 각막이 더 많아, 우리나라와 같이 각막기증이 저조한 국가에 각막을 수출하거나 연구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각막기증 활성화를 위한 적극적인 제도 개선 필요

우리나라의 경우 신체에서 각막만 채취하는 미국과 달리, 안구 전체를 기증한 후 안구에서 각막만 채취하는 과정을 또다시 거쳐 이식 수술에 사용하고 있다. 이에 인체조직 중 하나인 각막이 ‘인체조직 안전 및 관리 등에 관한 법률’이 아닌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로 다뤄진다. 각막기증을 위한 처치가 가능한 사람 역시 전문 테크니션이 아닌 의사로 한정된다. 이런 실정이다 보니 의료진이 출동할 수 없는 경우 기증이 무산되기도 해 각막기증 활성화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국내 각막기증 활성화를 위해서는 미국과 같은 아이뱅크 시스템을 도입하여 전문 인력에 의해 각막 적출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막을 지금의 ‘장기등 이식에 관한 법률’에서 ‘인체조직 안전 및 관리 등에 관한 법률’으로 옮겨 각막 적출을 의사가 아닌 전문 인력이 담당할 수 있도록 하는 변화가 필요하다. 실제로 미국, 영국, EU와 같은 선진국들은 각막을 인체조직으로 분류해 기증 절차를 더욱 원활하게 진행하고 있다.

한편 지난 9월 장기기증 희망등록에 참여한 시각장애인 김민범 씨(남, 62세)는 장기기증이 저조한 국내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각막기증 활성화를 촉구했다. VMK한국시각장애인마라톤회 소속 마라토너로 활동하며 시각적 제약에도 장거리를 달리고 있는 김 씨는 “망막색소변성증으로 투병하다 50대에 완전히 시력을 잃고 1급 장애인이 되었다”며 “비록 나는 시력을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이 없지만, 각막이식을 통해 시력을 회복할 수 있는 시각장애인들이 제도적 변화와 국민적 관심을 통해 다시 앞을 볼 수 있는 기적을 경험하길 바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본부 김동엽 상임이사도 “세계 눈의 날을 맞아 각막기증의 소중함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며 “정부와 국민의 관심과 지원이 뒷받침된다면, 각막기증은 더 많은 이에게 희망의 빛을 선물하는 길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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