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기독교 상황과 박해 및 이란 복음화 위한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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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페르시아 제국의 영토에 위치하고 있는 이란에서는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다니엘의 후손들이 남아 신앙을 이어갔고, 예수의 제자인 다대오가 이곳으로 건너와 전도했을 것이라고 전해진다. 하지만 기독교는 페르시아 제국의 민족 종교인 조로아스터교로 인해 크게 부흥하지 못했다.

632년 무함마드 사후에 아랍 전역으로 이슬람 제국이 확장하기 시작하면서 이란에도 이슬람이 전파됐다. 10세기 이후로 이슬람은 주류 종교로 자리잡았고, 16세기 초에 세워진 사파비 왕조는 시아파 이슬람을 국교로 삼고 강제 개종 정책을 실시했다.

▲이란 북서부의 찰디란(Chaldiran)이라는 산악 마을의 고대 아르메니아 수도원, 성다대오수도원(St. Thaddeus Monastery). ⓒWikimedia Commons
▲이란 북서부의 찰디란(Chaldiran)이라는 산악 마을의 고대 아르메니아 수도원, 성다대오수도원(St. Thaddeus Monastery). ⓒWikimedia Commons

기독교 역사와 현황

오리엔트정교회(Oriental Orthodox Church) 전통을 따르는 아르메니아사도교회(Armenian Apostolic Church)는 1세기 중엽 예수의 제자 다대오와 바돌로매의 가르침을 받아 고대 아르메니아 지역에서 시작됐다. 이란 북서부의 찰디란(Chaldiran)이라는 산악 마을에 위치한 성다대오수도원(St. Thaddeus Monastery)은 1-3세기 사이에 아르메니아 신앙공동체에 의해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로 아르메니아사도교회는 이스파한(Isfahan)을 중심으로 이란 전역에 200여 개의 수도원과 교회를 세웠다. 1915년부터 오스만 제국에 의해 이뤄졌던 아르메니아인 집단학살로 상당수의 아르메니아인이 이란으로 이주해 오면서 현재 이 교회에 소속된 신자는 10만 명 정도로 유지되고 있다.

5세기 중반 이후로 페르시아를 거쳐 당나라까지 전해진 네스토리우스파의 신앙은 중동 일대에서 동방아시리아교회(Assyrian Church of the East)로 자리잡았지만 여러 차례 학살과 핍박으로 세력을 확장하지 못했다. 1차 세계대전 중 오스만 제국의 아르메니아인 집단학살과 함께 이뤄진 아시리아인 집단학살을 피해 탈출한 아시리아인들이 이란 북서부에 위치한 우르미아(Urmia)에 정착하면서 이란 전역을 통틀어 신자는 54,500명까지 늘어났었다. 하지만 1979년 이란 혁명 이후로 많은 수가 이란을 떠나 현재는 2만 5천 명 정도가 남아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개신교 선교는 인도에서 선교 사역을 마치고 1811년 시라즈(Shiraz)에 도착한 영국 성공회 신부 헨리 마틴(Henry Martyn)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가 번역한 페르시아어 성경은 이후 교회선교협회(CMS) 소속 선교사들의 사역에 큰 보탬이 되었다. 이후 이란에서 공식적인 선교 활동은 1832년 미국외국인선교협회(ABCFM) 소속 선교사에 의해 시작됐고, 1855년에 이르러 최초의 장로교회가 세워졌다. 1869년 영국 성공회의 CMS 소속 선교사가 이란에 도착했고, 이란 최초의 페르시아인 주교는 1961년에 이르러 선출됐다. 개신교 선교 활동은 1879년까지 아르메니아인과 아시리아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우르미아와 이스파한 지역으로 제한되었는데, 미국에서 파송된 의료 선교사들의 활동이 확대되면서 점차 시라즈(Shiraz)와 야즈드(Yazd), 케르만(Kerman) 등으로 확대되었다. 1965년에는 미국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이란인에 의해 하나님의성회(AoG)의 선교가 시작됐다.

2016년 이란의 인구주택조사에 따르면, 총인구 7,990만 명 중에서 이슬람 인구는 99.6%였고, 0.4%만이 기독교를 포함한 기타 종교로 알려졌다. 그러나 2020년 네덜란드에 기반을 둔 이란 연구단체 GAMAAN이 이란에 거주하는 성인 5만 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기독교인의 분포는 1.5%로 나타났다. 이를 현재 인구로 환산해 본다면, 이란에는 최소 100만 명 이상의 기독교인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통제와 감시를 피해 지하교회 형태로 모이고 있는 무슬림 배경 신자(MBB)들이 최소 10만 명에서 1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WCE(세계기독교백과사전)는 1970년에 268,128명에 머물던 기독교인이 2015년까지 547,384명으로 증가했다고 보고 있다. 이 중에서 315,000명을 무슬림 배경 신자로 추산한다.

▲자유를 상징하는 이란의 아자디 탑. ⓒPixabay/VladoZg
▲자유를 상징하는 이란의 아자디 탑. ⓒPixabay/VladoZg

이란 혁명 이후의 기독교 상황

1925년 서구화를 내세우며 등장한 팔레비 왕조가 1979년 시아파 이슬람 혁명으로 무너지면서 이란에는 대통령보다 지위가 높은 이슬람 성직자를 최고지도자로 하는 신정 이슬람 공화국이 세워졌다. 이후 1980년부터 8년간 지속된 이라크와의 전쟁을 계기로 이란 내에서 최고지도자 호메이니(Ruhollah Khomeini)의 통치가 강화되었다. 1975년에 이란은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CCPR) 제18조에서 보장하는 “종교의 선택과 실천에 관한 자유”를 비준한 바 있지만 시아파 이슬람을 국교로 지정한 이란 혁명 헌법은 모든 법률과 규정이 이슬람 기준과 샤리아의 공식적인 해석에 기초해야 한다고 명문화했다. 2019년 이란 혁명 40주년을 맞은 기념식에서 현재 이란의 최고지도자인 하메네이(Ali Khamenei)는 미국인뿐 아니라 유럽 사람들도 신뢰하지 말라고 말했을 정도로 이란 혁명 이후 이란 사회는 서구를 배척하면서 강력한 신정 통치를 이어가고 있다.

통치 이념이 바뀌면서 이란 정부는 서구에서 들어온 기독교와 교회를 탄압하기 시작했다. 이란 교육부는 1983년에 예수에 대한 꾸란의 가르침이 반영된 새 기독교 교리서를 출간했고, 그 다음 해 모든 기독교 학교의 교장을 무슬림으로 교체했다. 서구(영국, 미국)에서 유입된 교회인 성공회와 장로교 교회들은 재산을 압류당하는 등 많은 핍박을 당했다. 현재까지도 이란에서 기독교인으로 인정받는 사람은 전통적인 ‘민족 기독교인’(아르메니아인, 아시리아인, 칼데아인)과 1979년 이란 혁명 이전에 기독교인이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소수의 사람들뿐이다. 아르메니아사도교회와 동방아시리아교회와 같이 페르시아 지역에서 태동한 전통 교회들은 고유의 언어로 설교하고 예배하는 것이 허용되지만 이란의 공용어인 페르시아어를 사용하는 무슬림들이 예배에 참석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벳-탐라즈(Dabrina Bet-Tamraz) 목사는 아시리아교회에서 목회하던 부모님이 페르시아어로 설교하고 무슬림배경신자들과 예배드렸다는 혐의로 15년형을 선고받았던 2010년에 테헤란을 떠났다. 그녀는 지금도 이란에서는 페르시아어로 예배드릴 수 없고,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은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스파이로 의심을 받는다고 말한다.

기독교 인권단체인 아티클18(Article18)의 보르지(Mansour Borji) 국장은 지난 40년 동안 이란 정부는 기독교에 대해 편협한 시각을 품어왔고, 이란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기독교인의 영향력을 제한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고 말한다. 2010년에 최고지도자 하메네이가 가짜 신비주의와 바하이교뿐 아니라 가정교회를 통해 확산하고 있는 기독교와 맞서 싸워야 한다고 말한 것도 기독교를 국가에 대한 주요 위협 요소로 간주하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계속되고 있는 기독교 핍박

이란 태생으로 미국에서 안수를 받고 1979년에 이란으로 돌아와 사역했던 스튜어트(Tat Stewart) 선교사는 600명 이상이 모였던 테헤란교회(the Community Church of Tehran)가 혁명 이후로 6명밖에 남지 않았다고 회상한다. 그리고 자신과 아내도 얼마 지나지 않아 스파이 혐의를 받고 22명의 선교사와 함께 추방됐다고 말한다. 1990년 수드만드(Hossein Soodmand) 목사는 기독교 신앙을 부인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식적으로 교수형에 처해졌다. 시아파 무슬림에서 기독교로 개종했던 디바즈(Mehdi Dibaj) 목사는 1983년에 체포되어 1994년까지 감옥에서 지내다가 석방됐지만 불과 6개월 만에 납치되어 살해당했다. 디바즈 목사의 석방과 종교 자유에 힘써 왔던 아르메니안계 하나님의성회(Jama’at-eRabbani)의 호브세피안(Haik Hovsepian) 목사는 그의 석방 소식을 들은 지 3일 만에 실종되었고 숨진 채로 발견됐다.

이란은 오픈도어즈선교회(Open Doors)가 발표한 2024년 세계감시목록(World Watch List)에서 9위에 올라 있다. 미국 국무부 산하 국제종교자유위원회(USCIRF)에서 지정하는 종교자유 특별우려국(CPC)에도 1999년 이후로 계속 이름을 올리고 있다. 퓨리서치(Pew Research)에서 조사, 발표하고 있는 종교에 대한 정부제한지수(GRI, 10점 기준) 역시 8.2점(2021년 조사 수치)으로 “매우 높음” 단계에 머물러 있다. 2018년 크리스마스 기간에 이란 정부는 기독교인으로 개종하지 말 것을 경고하기 위해 일주일 동안 114명의 기독교인을 체포했고, 2023년 한 해 동안에도 기독교인 166명을 체포하고 103명을 구금했다.

한편 중동 지역 기독교인을 위한 비영리단체(NPO)인 필로스 프로텍트(Philos Project)의 레자에이(Farhad Rezaei) 연구원은 이란이 레바논, 이라크, 시리아, 예멘 등에서 대리 민병대(proxy militias) 활동을 통해 중동 지역에서 기독교인을 몰아내기 위한 “보이지 않는 지하드”까지 수행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이러한 일들이 1979년에 최고지도자 호메이니가 이란에서 유대교와 기독교를 제거하기 위해 강압적인 이민정책을 펼쳤던 것과 같은 맥락에서 나왔다고 분석한다.

1979년 이란 혁명 당시 많은 약속들이 제시됐다. 하지만 이란에는 이슬람을 엄격히 지켜낼 때 찾아온다고 믿었던 평화와 번영 대신 극단주의로 인한 테러와 폭력이 끊이지 않았다. 경제적 불황과 사회 통제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2022년 9월에 히잡 착용 단속 과정에서 숨진 여성을 추모하며 이란 전역은 변화를 요구하는 시위로 들끓었지만 정부는 강경 진압으로 맞섰다. 또한 시아파 무슬림이 아닌 여러 소수 민족은 지금도 심한 차별을 받고 있다.

중동에서 이란의 위치

전통적으로 중동의 맹주로 군림해 온 이란은 사우디와 함께 경제적으로 가장 번성한 국가였다. 1925년 들어선 팔레비 왕조는 서구화를 통해 근대화를 시도했지만 장기집권이 부패로 이어지자 1979년 이란에는 혁명이 일어났다. 다음 해인 1980년, 이라크(당시 소수의 수니파가 다수의 시아파를 지배하고 있던 상황)가 이란을 침공해 8년 동안 전쟁에 휩싸였고, 2003년에는 미국이 이라크에서 사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렸다. 이후 이라크에도 시아파가 집권하면서 이란의 영향력은 자연스럽게 확대되었다. 암스테르담자유대학교(Vrije Universiteit Amsterdam)의 사라미파르(Younes Saramifar) 교수는 이란이 전쟁 기간 동안 시아파의 순교 신앙까지 활용하면서 국가를 더욱 공고히 세웠다고 말한다.

이란 시아파 정권은 중동 여러 나라에서 활동하고 있는 무장단체들을 재정적, 군사적으로 지원하면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영국 시사 주간지 Economist에 따르면, 현재 중동 인구의 4분의 1 이상이 무장단체를 통제하기 어려운 국가에서 살고 있다. 레바논에는 헤즈볼라가 있고, 예멘에는 시아파 세력인 후티 반군, 이라크와 리비아, 시리아에도 여러 이름의 무장단체들이 활동하고 있다. 그런데 2024년 5월, 최고지도자 하메네이(Ali Khamenei)와 함께 이란을 이슬람 강경 기조로 통치해 온 라이시(Ebrahim Raisi)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헬기 사고로 사망했다. 6월 말에 있었던 대통령 보궐선거에서 온건개혁파로 알려진 페제시키안(Masoud Pezeshkian) 후보가 당선되면서 중동 정세에 변화가 생길지 주목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높아지고 있는 변화 요구

중동연구소(MEI) 분석에 따르면, 이란 혁명 40주년이 되던 2019년에 이란의 인플레이션은 40%에 달했고, 통화 가치는 2018년보다 70% 이상 하락했으며, 대학 졸업생의 3분의 1이 실업자였다. 1977년 이란의 경제 규모(GDP)는 튀르키예보다 26% 정도 컸지만, 2017년 이란의 GDP는 튀르키예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2019년 이란 지방자치기구(IMO)의 공식 통계에 따르면, 이란 인구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1,600만 명이 슬럼가에 살고 있었다.5 현재(2023년 12월 기준) 이란의 식품 가격은 전년 대비 40% 이상 상승한 상황이고, 하루 7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는 빈곤 인구는 10년 전 19%에서 30%까지 증가했다. 2022년 7월, 미국의 여론 조사 기관인 Stasis Consulting에서 이란 거주자 1,246명을 대상으로 전화 인터뷰를 실시한 바 있다. 그 결과 이란 청년들이 미래에 번영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무려 77%에 달했다. 또한 응답자의 34%가 이란을 떠날 의향이 있다고 대답했는데, 18-29세의 젊은 청년들의 경우는 이 응답이 49%로 절반에 가까웠다. 이들이 이란을 떠나 해외로 가고 싶어하는 이유는 경제적 문제(57%)가 가장 높았고, 그다음으로 정치적, 종교적 자유(26%)로 조사되었다.

▲이란 히잡 시위는 반정부 시위로까지 진행되고 있다. ⓒUN
▲이란 히잡 시위는 반정부 시위로까지 진행되고 있다. ⓒUN

경제적 불황과 사회 통제로 이란인들의 불만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2022년 9월에 히잡 착용에 대한 과도한 규제로 인해 22세의 마흐사 아미니(Mahsa Amini)가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전국적으로 시위가 촉발됐고 라이시 정부가 강경 진압하는 과정에서 525명이 사망하고 19,000명 이상이 체포되었다. 노르웨이에 본부를 둔 이란휴먼라이츠(IHR)는 2022년 한 해 동안 이란에서 582명이 처형당한 것으로 확인했는데, 이는 아미니 사건이 발생하기 전인 2021년과 비교해 무려 75%가 증가한 수치였다. 2023년에도 이란 당국은 850명에게 사형을 집행했고, 이들 중 693명은 언론보도 없이 비밀리에 처형당했다. 그럼에도 2023년 10월, 이란 의회는 히잡 착용 의무와 복장 규정을 4회 이상 위반할 경우 최대 10년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게 하는 새 법안까지 통과시켰다. 이란인권행동(HRAI)에 따르면, 2023년 7월까지 최소 64명의 여학생이 히잡 규칙 위반으로 정학을 당했고, 3명은 퇴학까지 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미니의 죽음으로 촉발된 히잡 시위를 통해 이란인들은 정권에 대한 비판과 자유에 대한 갈망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네덜란드에 기반을 둔 이란 연구단체 GAMAAN이 2022년 12월에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이란인의 80%가 전국적으로 퍼지고 있는 히잡 시위를 지지한다고 응답했고, 76%는 변화를 위한 정권교체나 이슬람 공화국에서 벗어나는 구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이렇게 변화를 요구하는 이란인들의 목소리는 최근 대통령 보궐선거를 통해서 한층 더 높아진 듯 보인다. 보궐선거를 앞두고 지난 6월에 실시된 Stasis Consulting의 조사에서 새 대통령이 집중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로 이란인들은 청년문제(39%), 실업률(32%), 생활비와 인플레이션(각각 23%), 저렴한 주택공급(18%)을 꼽았다. 그리고 이란인의 68%가 공공장소에서 히잡을 착용하지 않는 여성에 대한 과도한 처벌에 반대한다고 응답했다.

이란 내 소수 민족에 대한 차별

시아파 정권 아래에서 수니파 무슬림인 쿠르드족(Kurd)과 발루치족(Baluch)은 오랫동안 차별받고 있다. 쿠르드족은 이란 북부를 중심으로 약 800만 명이 살고 있고, 발루치족은 파키스탄과 국경을 접하는 이란 남동부 위주에서 약 200만 명이 살고 있다. 유엔특별보고관 레흐만(Javaid Rehman)은 2022년 1월부터 6월까지 이란에서 처형된 251명 중 쿠르드족과 발루치족이 35%를 차지한다고 말하면서 이들은 사법 제도의 보호를 전혀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보고한 바 있다. 2022년 10월 이후 발생한 히잡 시위 관련해서 이란 정부군은 쿠르드족을 향해 불법적인 무력을 사용했고, 몇 명은 시위 현장에서 총에 맞아 죽기도 했다. 노르웨이에 본부를 둔 쿠르드족 인권단체인 헨가우(Hengaw)에 따르면, 2023년 이란에서 체포된 2,353명 중에서 쿠르드족은 1,029명으로 44%를 차지했고, 발루치족은 588명으로 25%를 기록했다. 쿠르드평화연구소(KPI)의 보데트(Meghan Bodette) 연구원은 2022년에 숨진 쿠르드족 여성 아미니를 추모하는 히잡 시위가 쿠르드족이 많이 거주하는 이란 북부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하면서 정부의 개발 정책에서 늘 밀려나 있었던 쿠르드 지방은 이란에서 가장 실업률이 높은 지역이고, 쿠르드어 교육이나 쿠르드식 이름 사용도 금지되어 있다고 말한다.

발루치족의 경우는 출생증명이 없는 사람이 최소 4,500명에서 최대 1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파키스탄과 인접하고 있는 시스탄-발루치스탄(Sistan and Baluchistan)주에는 파키스탄 발루치족도 많이 살고 있어 법적으로 아버지가 이란인이 아닌 경우 자녀들은 18세까지 출생 등록을 할 수 없고, 이들은 학교에도 다닐 수 없다. 또한 이란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 중 하나인 시스탄-발루치스탄주(州)에서 많은 수의 발루치족은 마땅한 생계 수단 없이 마약과 연료 밀수로 돈을 벌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불법 밀수를 단속한다는 명목으로 이란 보안군은 아무 제재 없이 총격을 가하고 있어 이들은 목숨을 걸고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이란 복음화를 위한 과제

이란 정부는 공식적으로 인구의 95%를 시아파 무슬림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2020년에 발표된 한 조사에 따르면, 설문 대상 5만 명의 이란인 중 32%만이 자신을 시아파 무슬림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47%의 응답자는 자신이 더 이상 종교적이지 않다고 밝혔다. 이로 보건대 이란인들 중 상당수는 이슬람을 기반으로 한 규제와 통제를 벗어나 자유를 갈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직까지 이란에서 복음전도와 선교는 법적으로 제한되어 있지만 이란 복음화의 소망을 가지고 다양한 차원에서 선교 사역을 지원하고 협력해 나가야 할 시점이다.

가정교회 사역자 양성과 전문화된 훈련 필요

오픈도어즈(Open Doors International)의 니콜라이(Wybo Nicolai) 연구원은 이란 정부가 2004년부터 등록된 교회에서 페르시아어 사용을 금지했고, 많은 기독교인들이 셀그룹과 가정교회 사역으로 옮겨갔다고 말한다. 22006년에 기독교 신앙을 가지게 된 나디아(Nadia)는 이해할 수 없는 고대 언어로 예배드리는 아르메니아교회나 아시리아교회에 갈 수 없었기 때문에 가정교회를 찾았다. 환상을 통해 예수를 만난 아크바(Ali Akbar)는 이란을 떠나기 전까지 10여 개 지역에서 35개의 가정교회 사역을 도왔다고 증언한다. 2012년 이란에서 가정교회 운동을 펼친 혐의로 나다르카니(Youcef Nadarkhani) 목사와 이란계 미국인 아베디니(Saeed Abedini) 목사가 체포된 이후 이란을 탈출하기로 결심했던 아프사네(Afsaneh)는 크리스마스트리를 집 밖에 세웠다가 체포된 적이 있었다. 2014년까지 이란 가정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20세의 나이로 독일로 이주한 에마누엘(Emmanuel, 서양식으로 개명)은 십대 때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였지만 공개적으로 전도를 하면서 무슬림 친척들의 반대를 받게 됐다고 말한다. 2023년 이란에서 체포된 기독교인 166명 중 3분의 1이 성경을 소지하고 있었다는 점을 주목한다면 이란 내에서 성경 배포 활동과 가정교회 사역은 여전히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최근 들어 이란을 비롯한 중동 전역으로 온라인 사역이 확장되면서 종종 이란 내 가정교회들의 사역 소식을 접할 수 있게 됐다. 2018년 4월에 시작한 페르시아공동체교회(Persian Community Church)는 이란 인구의 60%를 차지하는 페르시아인들이 모여서 예배하는 것은 제한되지만 온라인을 통해 자신들의 언어로 예배하고 교제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했다. 교인들은 대화식 온라인 미팅을 통해 중보기도와 신앙 상담도 가능해졌다. Transform Iran은 이 교회의 온라인 사역을 이해하고 2020년에 Meeting Tent라는 디지털 기도실 구축을 도왔다. 2011년에 아르메니아에서 공부 중이었던 사무엘(Samuel, 가명)은 가정교회 목회를 하던 그의 아버지가 체포당하는 순간을 온라인 예배를 드리면서 지켜봤다. 이후 그의 아버지는 몇 차례 더 체포되었고, 결국에는 이란에서 추방됐다. 지금 사무엘은 튀르키예에서 이란 난민을 대상으로 온라인 예배 인도자로 활동하고 있다.

이렇게 성장하고 있는 가정교회를 뒷받침하기 위한 훈련 기관들도 점점 더 준비되고 있다. 페르시아어로 신학을 가르치기 위해 2013년 개교한 파르스신학센터(Pars Theological Centre)는 2023년 10월에 이란 출신 졸업생 15명을 배출했다. 파르스신학센터 본부는 런던에 있지만 주로 온라인으로 교육하기 때문에 600명이 넘는 학생 가운데 절반 가량은 이란에 살고 있다. 테헤란에서 대학 공부를 하던 중 가정교회 예배를 통해 개종한 풀라디(Samira Fooladi)는 교회가 발각돼 체포된 후 추방당해 이스탄불로 왔지만 이제 다시 복음을 가지고 이란으로 돌아갈 것을 꿈꾼다고 말한다.

2020년 중동-북아프리카(MENA) 지역 13개국 출신 141명의 기독교인 지도자를 교육하는 6개 과정으로 시작한 메나리더십센터(MLC)의 대표인 머프(Jennifer Murff) 박사는 이곳에서 하나님이 여전히 일하고 계신다고 말한다. 그녀는 무슬림 배경의 신자들과 기독교 여성 지도자들이 MLC에 접근할 수 있도록 기존의 단체들과 사역자들의 협력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했다. 1996년 19세의 나이로 이란을 떠나 독일에서 공부하면서 기독교로 개종한 바즘주(Amir Bazmjou) 목사는 횃불미니스트리(Torch Ministries)를 창립하고 제자도와 리더십 훈련에 집중하고 있다. 그는 많은 수의 이란 기독교인들이 핍박과 박해로 인해 트라우마를 겪고 있기 때문에 상담과 돌봄 영역에서 전문화된 사역자가 함께 힘을 모을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전문인 선교를 통한 복음전도의 접촉점 마련

1879년 미국 성공회 출신 회른네(Edward Hoernle) 선교사를 통해 의료 선교가 문을 열면서 개신교 선교는 이란 전역으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폴란드 야기엘론대학교(Jagiellonian University)의 르제프카(Marcin Rzepka) 박사는 장로교, 침례교, 성공회 등의 개신교 선교사들이 이란에서 활동하면서 현대화된 의료 시설을 보급했고, 특히 여성 의료 선교사들을 통해 위생과 여성 건강 증진에 크게 기여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1930년 중반부터 이란 정부가 교육과 의료 분야에서 선교 활동을 제한하는 규정을 두면서 선교사들의 지위가 불안해졌고, 이란 혁명을 계기로 수많은 선교사들이 이란에서 추방됐다.

이란에서 전문인 선교사로 활동하다 추방되어 사우디와 아제르바이잔, 카타르 등에서 사역했던 데커트(Glenn Deckert) 선교사는 지금이 전문인 선교를 통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최적기라고 말한다. 글로벌 시대에 세계 각국에서 교육뿐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서 전문가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때문에 준비된 자원들이 글로벌 전문가이자 전문인 선교사로서 활동하기 가장 좋은 시간이라는 것이다. 스페인 출신의 지오다노(Christian Giordano) 박사도 이슬람 국가들 안에서 40년 넘게 교회개척 사역을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전문인 선교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그는 이슬람 세계에서 선교사들은 교사, 지역개발 종사자, 의사, 기술자 등의 이중적 신분을 가지고 활동하지만 선교사로서 분명한 소명을 가지고 사역한다면 반드시 복음의 열매들을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란에서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는 경제 불황과 코로나 팬데믹 기간 겪었던 혼란은 전문인 선교사의 필요성을 더욱 선명하게 한다. 2021년 1월까지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가 58,000명을 넘으면서 사망자와 유족을 강제로 분리하거나 적절한 종교의식도 갖지 않고 장례를 마쳐야 했던 부분들은 이슬람 문화에서 살고 있던 이란인들 사이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했다. 그리고 최근 이란의 의료 기관에서 실시됐던 연구에 따르면, 이란 내 성인들의 정신 질환 발병률은 2015년 기준으로 23.5%까지 높아졌고, 2019년 연구에서는 우울증을 경험한 비율이 29%로 나타났다. 이란 지방자치기구(IMO)의 부국장인 잔다기안(Saeed Reza Jandaghian)은 2019년 이란 인구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1,600만 명이 슬럼가에 살고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러한 점을 주목한다면 선교 활동이 제한되는 이란에서 전문인 선교는 복음전도의 접촉점을 마련할 수 있는 효과적인 선교 전략으로 보여진다.

디아스포라 이란인들의 수고와 헌신

이란은 35세 이하 인구가 50%를 넘는 젊은 나라이다. 젊은 층을 대상으로 2000년 이후부터 인터넷, 위성 방송 등을 이용한 복음 전파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SAT-7, Pars, Nejat TV, MOHABAT TV와 같은 방송국이 중동 지역에 설립되었고, 얼라이브선교회(Iran Alive Ministries), 222선교회(222 Ministries), 엘람선교회(Elam Ministries) 등은 특별히 청소년과 아동들을 위한 프로그램 제작에 힘써 왔다. 2006년 MOHABAT 위성 TV 방송국을 설립해서 이란 전역으로 방송을 송출하고 있는 Heart4Iran의 안사리(Mike Ansari) 회장은 1983년에 이란을 떠나 미국에 정착했다. 그는 위성 TV로 전해진 복음을 듣고 개종한 이란인이 2020년에 3천 명이 넘었다는 소식을 전했고,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방송 접속률도 급증하고 있다고 했다.

디아스포라 이란인들은 미디어와 방송 사역뿐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서 선교 사역에 헌신하고 있다. 2001년 이란을 떠난 골바기(Dariush Golbaghi) 목사는 이란 국내외의 청소년들에게 온라인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SafeHouse Ministries를 설립했다. 그는 십대들에게 멘토링과 상담을 제공하면서 이들이 절망에서 벗어나 자신의 은사를 발견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2001년에 미국에 설립된 이란디아스포라성서공회(IBSD)는 매년 30만 권의 페르시아어 성경을 전 세계에 배포하고 있고, Korpu 번역 에이전시를 운영하는 모호프(Feridoon Mokhof) 목사도 지금까지 이란 내 소수 민족 12개의 언어로 신약성경을 번역했다.

북미를 중심으로 교회개척 사역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미국에서 유학하던 중 복음을 접한 나바이(Kamil Navai) 목사는 1987년 당시 34세의 나이로 미국 캘리포니아주(州)에서 무슬림 배경 신자(MBB) 몇 명을 모아 이란기독교교회(ICC)를 시작했고, 2010년부터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 10년 동안 이란 가정교회를 섬기다 발각되어 튀르키예를 거쳐 미국으로 망명한 로스탐푸르(Nathan Rostampour) 목사는 현재 남침례교 국제선교위원회(IMB)의 이사로 사역하면서 중앙아시아 교회개척팀으로 활동하고 있다. 미시오 넥서스(Missio Nexus)에서 디아스포라 선교 자문을 맡고 있는 백스터(John Baxter) 박사는 세계 여러 나라로 흩어진 디아스포라를 대상으로 해 오던 선교가 지금은 디아스포라를 통해 디아스포라에게로 흘러가는 선교로 변화했고, 앞으로는 디아스포라의 한계를 뛰어넘어 지역사회와 본국에까지 복음을 심는 선교로 확장할 것이라고 말한다. 중동과 세계 전역에서 사역하고 있는 디아스포라 이란인들을 통해 이란 국내외에서 더 많은 이란인들이 복음의 증인으로 세워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한국선교연구원(kriM) 파발마 플러스 2024 Vol.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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