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기독교 미술 계몽 앞장섰던 ‘뜻밖의’ 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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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록, 한 점의 그림] 언론매체의 역할

이 시기 기독교 미술은 드물어
인재·장소·시스템 환경 조건과
신앙적 예술가 배출 시간 부족
일간지들이 밀레, 고흐, 루오,
밀레이 등 신앙 작품 계속 소개
기독교학교들 미래 인재 양성

▲장 프랑수아 밀레, 양치는 여인, 1863, 파리 오르세 미술관 소장.
▲장 프랑수아 밀레, 양치는 여인, 1863, 파리 오르세 미술관 소장.

일제 침략으로 1905년 일본제국과 보호조약을 맺고 급기야 1910년에 강제병합이 됨으로써,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라는 나락으로 굴러 떨어졌다. 이후 우리 역사는 1945년까지 언제 올지 모르는 해방의 그날을 기다리며 엄혹한 시절을 보내야 했다.

이 시기에 크리스천 예술은 꽃을 피워보기도 전에 위축 국면을 맞았다. 그런 중에서도 개신교 작가로는 김은호가 예수의 부활을 주제로 한 작품을, 청년 박수근은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한 토속적인 농촌 그림을 각각 발표한 바 있다.

이 시기에 ‘기독교’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은 작가는 있어도, ‘기독교 미술’을 작업의 본령으로 삼아 본격적으로 추진한 작가는 흔치 않다. 이는 당시 미술계가 분화될 만큼 일정한 궤도에 오르지도 못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예술 활동의 부진은 일제의 교회 탄압과 맞물려 있겠지만, 그 원인을 불충분한 제도에서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통상 미술문화가 정착하려면 ‘인재·장소·시스템’ 등 세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인재’는 전문가 양성 기관인 대학 코스 이수가 필수적이고, ‘장소’는 갤러리나 미술관 등 작품을 보여줄 물리적 공간이 전제돼야 하며, ‘시스템’은 작가를 후원해줄 개인이나 단체 또는 유통기구를 말한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에는 불행히도 우리나라는 이를 충족시킬 만한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

이 중에서도 기독교 미술이 답보 상태를 면치 못했던 요인을 든다면, 역시 인재 양성을 들 수 있다. 한 명의 미술가를 키우려면 수십년이 요구된다. 게다가 신앙을 지닌 예술가를 배출하려면 더더욱 오랜 시간이 요구된다. 작가가 되기 위해선 체계적인 훈련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국내에는 미술대학이 전무해 화가 지망생들은 일본으로 유학을 가야만 했다.

이런 와중에 언론의 역할은 막중한 것이었다. 흥미롭게 주요 일간지를 중심으로 기독교 신앙을 지닌 작가들에 관한 소개가 꾸준히 이어졌다. 근대 미술을 밝혀준 장 프랑수아 밀레(Jean-Francois Millet, 1814-1875),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983-1890), 조르주 루오(Georges Henri Rouault, 1871-1958),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 1829-1896) 같은 작가들이 그 주인공들이다.

1920년대 ‘회화에 대한 일고찰(동아일보, 1924. 11. 17)’이란 기사에는 밀레(1814-1875)를 바람직한 예술가상으로 손꼽았다. 송순일은 화환을 들고 있는 미인도를 ‘아름다운 그림’으로 부르고 길가에 쓰러진 걸인의 추태를 ‘추한 그림’이라고 속단하는 것은 예술에 대한 오해라면서, 밀레의 ‘저녁 기도’는 힘든 노동을 마치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부부의 모습을 진실하게 묘출한 작품으로 평가하며 “외형의 미가 아무리 곱다 해도 그 내면의 진리를 현출(現出)한다고는 못할 것이다. 추를 가리어 덮은 외형의 미보다는 추 그 자체에서 진이라는 미점(美點)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위인과 여성(동아일보, 1930. 9. 4)’에서는 밀레의 진실성이 어디서 왔는지 밝혀준다. “그는 경건으로 일생의 표준으로 삼았습니다. … 그는 할머니의 경건한 신앙의 감화를 받아 아름답고 순결한 그 마음을 통하여 마침내 세상의 눈을 뜨게 할 만한 대걸작을 자아내게 되었습니다.”

동경미술학교에서 수학하고 귀국한 김용준도 ‘향토색’을 논의하면서 밀레에 주목했다. “전원화가 밀레 같은 사람은 선, 색, 기교보다도 먼저 앞서는 문제는 전원의 사상, 대지의 교훈, 종교의 세계 이러한 것들을 우리에게 알리려 했다(김용준, ‘회화에 나타나는 향토색의 음미’, 동아일보, 1936. 5. 5)”며 그를 ‘위대한 전원의 사상가’로 불렀다.

밀레의 예술의 본질을 기독교 신앙에서 찾은 관점은 김주경의 ‘신인 융화의 만종(동아일보, 1937. 11. 7)’에서 발견된다. “그는 선대서부터 내려온 청백(淸白)한 교양을 받았고 동시에 전 가족이 기독교의 모범 속 신자요 또 자기도 그러하였으므로 인생은 이마에 땀을 흘림으로써 생존함이 아담의 영원한 숙명이요 순응함은 인생의 자연이라고 하는 기독교리적 자연주의를 갖게 된 것도 자연스런 일이었다.”

▲동아일보에 실린 장 프랑수아 밀레의 '양치는 여인' 도판(동아 1931. 1. 1).
▲동아일보에 실린 장 프랑수아 밀레의 '양치는 여인' 도판(동아 1931. 1. 1).

밀레에 대한 고조된 관심은 동아일보 새해 첫 호에 발간한 지면을 밀레의 ‘양치는 여인(동아일보, 1931. 1. 1)’으로 장식했던 데서도 찾아진다. 그 기사에서는 농부들의 소박한 삶에 눈길을 주었던 바르비종 화가 밀레의 ‘농인(農人) 화가로서의 순일한 화인(畫因)과 특수한 수법’에 주목하였다.

F. 밀레에 대한 팬덤 때문인지, 19세기 영국화가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의 <눈먼 소녀>를 ‘프랑스의 농촌을 그린(조선일보, 1930. 2. 20)’ 밀레의 것으로 소개하는 실수도 있었지만, <눈먼 소녀>는 영국 빅토리아 시대에 등장한 라파엘 전파(Pre-Raphaelists)의 일원인 밀레이의 것이었다.

한편 조르주 루오(1871-1958)에 대해서는 생존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특별히 국내에서 사랑을 받았고, 그를 따르는 미술인들도 목격할 수 있다. ‘근자의 루오(조선일보, 1940. 7. 5)’에서 “종교적 주제를 다루는데도 변함이 없다. 행상인, 곡마단, 기수, 댄서 등에 대한 그의 기호도 변함이 없다. … 기교가 힘차고 찬란하게 독창의 경지를 개척해가고 있다.”

국내 작가 중에는 조르주 루오를 따르는 화가가 유독 많았다. 가령 격렬한 색감과 필치로 인간의 깊은 감정을 표현한 이중섭을 ‘동방의 루오’로 불렀으며, 박고석·황염수 등도 루오 작품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선에 관심을 보였다.

그런가 하면 조선일보가 1930년 12월부터 40회에 걸쳐 구미의 작가들을 소개한 ‘근대 태서미술순례’ 연재 중 ‘반 고흐(일부 기사에서는 콜오, 고고흐 등으로 표기)’에선 고흐의 가족, 미술상이 된 이야기, 런던 교회학교 교사, 신학교 준비, 보리나쥬 탄광 선교, 화가로 전향 등 그의 생애에 관한 소개와 더불어 “아버지가 목사인 것이 그의 전생에 다대한 의미를 주었다. 그의 마음 속에는 참을 수 없는 욕구로서 … 선을 사랑하고 참됨을 구하였든 도덕적으로나 예술적으로나 미의 동경자였다”(조선일보, 1930. 12. 8)고 기술하였다.

기고자는 밀레, 렘브란트, 들라크루아, 도미에 등의 영향을 받았지만, 특히 밀레의 영향이 컸다는 진단도 잊지 않았다.

구한말 선교사들의 문서를 통한 기독교 예술의 소개가 있었다면, 일제강점기에서는 매스컴을 통한 기독교작가 소개와 기독교학교에서의 신문화 교육이 진행됐다. 힘든 환경 속에서도 일간지를 통해 명화를 소개하면서, 이를 통해 유럽의 기독교 미술이 자연스럽게 대중에게 전해졌다.

소수의 작가들의 활동을 빼놓는다면 예술적 결실은 미미했지만, 한편으로 이 시기는 내일에 대비하여 역량을 비축하는 시기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일제의 문화 말살 정책 속에서 김은호의 눈부신 활동과 후진양성, 교회나 기독교 단체를 중심으로 작품들, 그리고 언론기관을 중심으로 한 기독교 미술의 계몽 등 구한말과는 약간 다른 동향이 포착된다.

서성록 명예교수
안동대 미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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