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 사회 강타한 기독교 서적들과 그 속 삽화 8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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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록, 한 점의 그림] L. 로스와일러 『성경도셜』

기독교 서적 성경도셜, 유아와
여학생 위한 교재에 삽화 수록
번역본에 구약 48점 신약 32점
선교사들 종교 차이 느꼈을 것
민족 복음 이바지할 뿐 아니라
서양 예술과의 만남 선물 전해
모든 수준의 근대적 변동 자극
한국 사회와 문화 견인차 역할

▲어린이들을 위한 성경, 『성경도셜(1892)』의 영어판 표지.

▲어린이들을 위한 성경, 『성경도셜(1892)』의 영어판 표지.

구한말 한반도는 문명사적 대전환을 맞이하면서 변곡점에 위치해 있었다. 외국 선교사들의 내한은 우리나라가 복음을 받아들이는 데도 결정적이었지만, 그들을 통해 새로운 문화에 대해 눈을 뜨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런 점은 메리 스크랜턴(Mary F. B. Scranton)의 주도 하에 소개된 『훈아진언』(訓兒眞言)과 L. 로스와일러(Louise C. Rothweiler)의 『성경도셜』에서 두드러진다. 두 책은 기독교 서적으로 모두 유아와 여학생을 위한 교재라는 공통점 외에도, 삽화를 싣고 있어 당시 독자들에게 상당한 호기심을 일으켰을 것이다.

L. 로스와일러(1853-1921)의 『성경도셜』(1892)은 『훈아진언』(1891)보다 1년 뒤에 출간됐지만, 처음부터 그림이 실려 있어 『성경도셜』 그림이 2년 앞서 있다. 그것은 게일 선교사의 『천로역정』보다도 3년이나 일찍 발간된 것이었다.

로스와일러 선교사는 존스 선교사와 함께 찬송가의 전신인 ‘찬미가’를 발간한 장본인이기도 했다. 이화학당에서 교사와 행정 업무를 수행하면서 이 책을 번역했던 것으로 보인다.

『성경도셜』 저본은 중역본(『聖經圖說』은 푸저우(福州) 美華書局에서 1873년 발간)이며, 영어 원서 『The Children’s Bible Picture Book(1858)』은 ‘역사적 이야기(Historical Tales)’를 쓴 M. J. 로 알려져 있다.

『성경도셜』에 수록된 삽화는 모두 80점이며 구약성경에 48점, 신약성경에 32점, 그리고 나머지는 속지 등에 각각 나누어 실렸다. 애초에 어린이를 주 독자로 여겨 제작했기 때문에, 상당량의 삽화를 수록했다.

책에 그림을 그린 화가는 Steinle, Overbeck, Veit, Schnorr 등으로, 이들 중 널리 알려진 화가는 생전에 많은 성경 그림을 제작하고 유럽의 교회에 스테인드글라스를 남긴 줄리어스 쉬노르(Julius Schnorr, 1794-1872)이다.

『성경도셜』에 수록된 작품들을 소개하자면, 구약 주요 작품으로는 낙원에 있는 아담과 하와, 가인과 아벨, 노아의 번제, 롯의 아내, 야곱의 꿈, 아론의 금송아지, 발람과 노새, 여리고의 여호수아, 삼손과 사자, 욥과 세 친구 등이다. 신약의 주요 작품으로는 목동에게 나타난 천사, 이집트로 도피, 물이 포도주로 변함, 돌아온 탕자, 가시 면류관, 십자가에 달리심, 사울의 회심, 예루살렘의 바울 등이 있다.

이 중에서 ‘그리스도와 사마리아 여인(Christ and the Woman of Samaria)’은 그리스도가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영어 원서에선 이 장면을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예수께서는 여행에 지쳐 우물가에 앉아 쉬시고 제자들은 음식을 구하러 성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예수께서 거기에 앉아계실 때 한 여자가 물을 길러왔는데 예수께서 여인에게 물을 마시게 해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여인은 그가 유대인이라는 것을 알고 자신에게 물을 요구하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을 너무 싫어했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과 함께 먹지도 마시지도 앉지도 않았습니다. 여인은 예수께서도 그런 사마리아 사람인 자신에게 물을 달라고 하신 것인지 물어보았습니다(M. J., The children’s Bible picture-book, London: M.E. Mission Press, 1858, p.224).”

▲『성경도셜』 영어판(1858)에 실린 삽화. 왼쪽부터 ‘야이로의 딸을 일으키다’, ‘그리스도와 사마리아 여인’.

▲『성경도셜』 영어판(1858)에 실린 삽화. 왼쪽부터 ‘야이로의 딸을 일으키다’, ‘그리스도와 사마리아 여인’.

처음 이 삽화를 보았을 때, 사람들은 실물 같은 등장인물을 신기하게 여겼을 것이다. 당시 조선에는 원근법이나 명암법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인물 표현에 있어서도 입체감이라든지 빛의 효과같은 것을 알지 못했던 시기였다.

그런데 ‘그리스도와 사마리아 여인’을 보면 이야기를 생생하게 재현하였을 뿐만 아니라 유대 복장의 특징과 인체의 해부학적 정확성에 맞추어 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 사람들은 이렇게 기독교 문서를 통해 서양미술 접촉 기회를 가졌다.

다음으로 여인에 대한 각별한 인식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조선의 부녀자들은 봉건적 관습과 권위적 사회구조로 인해 가장 밑바닥에 놓인 계층에 속했다. 그들은 자신의 이름 대신 그저 아무개의 딸, 부인, 어머니로 불렸을 뿐이다. 양반집 처자라 할지라도 안채의 제한된 공간에서 숨죽이며 지내야 했다.

이유는 다르지만, 여성 독자들은 주위 사람들의 눈총을 받는 사마리아 여인에 크게 공감하였을 것이다. 예수님이 이 여인에게 관심을 갖는 것을 처음에는 낯설다고 느꼈을 것이나, 책을 읽는 가운데 차츰 빠져 들어갔을 것이다.

인간 존중은 ‘야이로의 딸을 일으키다’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림에서 예수께서 야이로의 딸을 치유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예수께서 아이의 손을 잡고 일어나라고 명령하자, 혈루병으로 고생하던 딸이 침상에서 일어나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회당장 아버지와 부인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는다.

예수가 여인에게 손을 댄다는 자체도 문화적 충격이었지만, 그보다 부정한 병을 앓던 여인을 살리신 것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당시 조선 풍속으로 남성이, 혹시 그가 의원(醫員)이라도 여성을 만진다는 것은 감히 생각지 못할 일이었고, 더욱이 가망이 없는 환자라면 외면을 받기 일쑤였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사람들은 예수께서 야이로의 딸을 치유하는 장면과 선교사들이 환자를 돌보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지켜보았으니, 선교사들이 믿는 종교가 무언가 다르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들이 가져온 성경과 기독교 서적은 우리 민족을 복음화하는데 이바지하였을 뿐 아니라, 또 다른 측면으로 서양 예술과의 만남이라는 선물을 가져오기도 했다.

물론 서양화가 국내에 들어온 것은 고희동이 도쿄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귀국한 1915년으로 평가되지만, 일반인들이 간접적으로나마 서양 그림을 접한 것은 그보다 좀더 거슬러 올라간다. 그 서막은 1890년대에 선교사들에 의해 『성경도셜』과 『훈아진언』 등이 소개되면서부터다.

그러므로 완고한 쇄국정책에 종지부를 찍고 근대의 서광이 비추기 시작한 것은 이 땅 선교사들이 한반도에 입국한 시기, 곧 기독교 전래 시기와 함께였다고 할 수 있다. 나라 전체가 위기에 빠져 어려웠던 시기, 한국 개신교는 사회의 모든 차원과 수준에서 근대적 변동을 자극한 사회의 원동력으로 이처럼 한국 사회와 문화를 견인해 갔다.

서성록 명예교수
안동대 미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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