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온 선교사들, 말씀과 함께 생명의 문화 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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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록, 한 점의 그림] 『명심도』 삽화

미국 윌리엄 마틴 베어드 선교사,
기독교 교육에 많은 관심 기울여
인간 삶 기독교적 조명 『명심도』
죄에 빠진 인간이 성령의 도우심
그리스도의 복음, 하나님 은혜로
죄 사함 받고 영생 얻는다는 내용
총 9점의 삽화와 해제로 구성돼
복음의 수용 관한 부분에 주안점

▲명심도 제1도.
▲명심도 제1도.

한국을 찾은 선교사 중에서도 윌리엄 마틴 베어드(William M. Baird, 한국명 배위량, 1862-1931)는 기독교교육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선교 초기 부산 지역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학교 사역, 여인들을 위한 야간학교 개설, 중반기 조선선교부 ‘우리의 교육정책(Our educational policy)’ 입안, 1897년 평양 숭실학당 건립, 1906년 한국 최초 근대 대학인 숭실대학 건립 등 한국 교육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며 선교활동을 펼쳤다.

선교 후반기에는 숭실대학 학장을 사임하고 남은 인생을 주일학교 공과교재 번역 및 출판, 성경번역 등 다양한 문서선교에 힘을 쏟았다. 그의 기독교교육과 관련해 눈길을 끄는 것은 인간의 삶을 기독교적으로 조명한 『명심도(明心圖, 1912년)』를 펴낸 것이다.

『명심도』는 1926년까지 제7판까지 발행하는 등 상당히 폭넓게 읽힌 책이었다. 책 내용도 유익하지만 당시로서는 드문 삽화까지 곁들여 있어 독자들에게 어필될 수 있었으리라 본다(이 책의 영인·해제본은 2013년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에서 『명심도』로 출간되었다).

서문에 따르면, 이 책은 19세기 중후반 중국에서 활동하였던 ‘독일교사 한사백(August Hanspach)’이 번역한 독일어 책을 라인선교회(Rhenish Missionary Society) 소속 중국 선교사 화지안(Ernst Faber)이 출간하였다고 밝히고 있는데, 화지안 선교사는 이 번역본의 가치를 알아보고 1879년 중국 양청(羊城)에서 ‘명심도’라는 제목으로 출간한 것이다.

“이 책은 본래 서양에서 지은 것이니 우리 동양에는 유익할 것이 없다하나, 그 말은 아직까지 사람마다 마음은 같은 마음마다 이치는 같은 줄을 모르는 자의 말이니 안팎을 두루 살펴보아도 서방이나 동방이나 다를 것이 없는지라(『명심도』 서문에서).”

▲명심도 제3도.
▲명심도 제3도.

전체 이야기 구조는 죄에 빠진 인간이 성령의 도우심과 그리스도의 복음, 하나님의 은혜로 죄 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는다는 내용으로, 이 책은 9점의 삽화와 해제로 구성되어 있다.

『명심도』에서 주안점을 둔 것은 복음의 수용에 관한 부분이다. 제1도에선 인물이 화면 상단에 있고, 마음을 상징하는 하트 안에는 일곱 동물들이 자리잡고 있다. 그것은 중세 앰블럼에서 볼 수 있는 칠죄종(septem peccata capitales), 즉 자기 자신의 뜻에 따라 지은 모든 죄의 근원이 되는 일곱 가지 죄악을 상징한다.

공작새는 교만을, 염소는 음란을, 돼지는 탐식을, 이리는 탐욕을, 뱀은 시기를, 호랑이는 분노를, 마지막으로 자라는 나태를 각각 나타낸다. 제1도에서 이러한 동물들이 주인공의 심중에 눌러앉아 있음을 볼 수 있다. 제목도 “세상 사람의 마음이 욕심에 빠짐을 의론함이라”고 하여 죄악의 지배를 받는 인간상을 형용하였다.

그런 죄인 됨은 다음에 펼쳐지는 장면에서 반전된다. 제3도에선 일곱 동물들이 하트 바깥으로 쫓겨나고 그 안에는 성령을 상징하는 비둘기가 날개를 활짝 펴고 있으며 주위에 밝은 빛줄기가 방사형으로 뻗어가고 불같은 것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하트 속에 눈과 별은 그리스도를 알아보는 ‘지혜’과 ‘양심’을 가리킨다. 『명심도』에서는 이 부분에 대하여 “구주 예수께서 하나님의 명을 받들어 사람의 몸을 입어 십자가에 못 박혀 사람의 죄를 대속하였는데 그 제자들이 이 복음을 기록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보고 구주를 믿어 침륜을 면하고 영생을 얻게 함이라”고 적고 있다.

화면 우편에는 십자가를 든 천사가 성경을 펼치고 주인공을 돌보고 있는데, 이는 이 같은 은혜의 역사가 사람의 공로가 아니라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의 공로임을 암시하고 있다. 참 평안과 행복은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만 얻을 수 있고 그것만이 유일한 길임을 말하는 셈이다.

▲Das Herz des Menschen, 제1도(1815).
▲Das Herz des Menschen, 제1도(1815).

보다 구체적인 사실은 독일어판 삽화 “그리스도와 복음을 믿고 성령 충만함을 받은 죄인의 내적 상태”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 삽화에선 천사가 책을 펴고 있는데, 그 안에는 독일어로 ‘에반겔리움 Evangelium’, 즉 ‘복음’이라고 쓰여 있다.

주인공이 감격하여 눈물짓는 장면은 한글본에는 찾아볼 수 없지만 그의 감격은 복음을 받아들이고 성령의 내주함에서 오는 기쁨 때문일 것이다. 각종 동물들이 겁에 질려 혼비백산 도망치는 장면 역시 독일어판 삽화에서 좀더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한국어판의 저본은 중국어판을 번역한 것이나 중국어판은 독일 요하네스 거스너(J. E. Gossner, 1773-1858)가 지은 『영적인 도덕 거울』 (Geistlicher Sittenspiegel)이란 제목으로 베를린에서 출간되었다.

거스너는 이 책이 1732년 뷔르츠부르크에서 출판된 독일어 버전 『인간의 마음: 10개의 상징적 인물도판에 나타한 하나님의 성전 또는 사탄의 일터』(Das Herz des Menschen : ein Tempel Gottes oder eine Werksätte des Satan)을 기초로 하였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피터 댈리(Peter Daly)는 『초기 근대 유럽의 엠블럼』(The Emblem in Early Modern Europe)(2014)에서 원제목을 『영적 마음 거울』(Geistlicher Seelen-Spiegel)로 삼았으며 발간년도도 1733년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독일어판 저본은 1730년경에 프랑스에서 인기를 끌었던 칼라이(P. Gallays)의 판화를 수록한 『영혼의 거울』(Miroir de l'Ame) 또는 『죄인의 거울』(Miroir de Pecheur)에 기초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정리하면 한국어판 『명심도』 저본은 동명의 중국어판(1879)이며, 그것은 거스너의 『영적인 도덕 거울』(1812), 그 저본은 뷔르츠부르크에서 출판된 독일어 버전 『인간의 마음』(1732), 나아가 프랑스의 『마음의 거울』 또는 『죄인의 거울』(1730년경)로 소급된다.

▲Das Herz des Menschen, 제3도(1815).
▲Das Herz des Menschen, 제3도(1815).

필자가 파악한 바로 『명심도』는 독일어판에 수록된 10점 중 제6도에 해당하는 “열정이 식고 세상의 사랑으로 돌아온 사람의 마음 상태” 파트가 빠져 있다. 거스너 역시 프랑스판의 12점 삽화 중에서 낙원에 있는 경건한 사람들을 보여주는 마지막 삽화와 그리스도가 마음 한가운데 앉아 있는 제5도를 생략하기도 했다.

역자의 시각에 따라 재구성되는 경향을 보였지만, 전체적으로 이 책은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 인간이 세상의 유혹을 이기고 하나님의 법을 따를 것을 권고하고 있다.

윌리엄 베어드의 『명심도』 는 기독교의 진리를 전하려는 의도에서 계획된 것이었다. 이 문서는 책머리에 공자와 맹자와 같은 동양 사상가들의 말을 인용함으로써 도의 추구에 동서양에 차이가 없음을 주지시키면서도, 오직 기독교에 ‘마음을 밝히는 보배’가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프랑스 원본이 독일과 미국, 중국 등 여러 나라를 거쳐 ‘한국이라는 항구’에 입항하는 가슴 벅찬 광경을 목격하게 되는 셈이다.

이사야 60장에서 다시스의 배들이 귀한 선물을 싣고 복된 도시에 도착했던 광경을 기술한 것처럼, 선교사들은 한국에 파송될 때 진리의 말씀과 함께 생명의 문화를 싣고 왔다. 그것은 한반도에 우렁차게 ‘희망의 팡파르’가 울려퍼지는 가슴 벅찬 순간이었다.

서성록 명예교수(안동대 미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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