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빈 자리에 자긍심과 사랑 채워요”
CCC순상담센터와 공동 개발
서울시 지원, 도너패밀리 참여
매일 7.9명 이식 기다리다 사망
“앞이 안 보여.”
2009년의 혹독한 겨울을 김경옥 씨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다정했던 남편이 시야가 흐려질 정도로 극심한 두통을 호소하다 쓰러졌기 때문. 급히 병원으로 이송했지만 결국 깨어나지 못한 남편 故 조인출 씨는 뇌사 판정을 받고 이듬해 1월 12일 장기기증을 실천해 5명의 생명을 살렸다.
생전 출석하던 교회에서 진행된 생명나눔예배를 통해 장기기증 희망등록에 참여했던 남편의 뜻을 이뤘지만, 김 씨는 갑작스러운 사별 후 깊은 상실의 슬픔을 느껴야 했다.
(재)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이하 운동본부)는 지난 5월 31일, 김경옥 씨와 같은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이하 도너패밀리)의 심리 회복과 정서 지원을 위한 ‘제3회 도너패밀리 심리지원 프로그램’을 5월 9일부터 31일까지 4주간 진행했다.
이번 심리지원 프로그램에는 배우자 사별뿐 아니라 자녀, 형제자매 사별 등을 경험한 도너패밀리가 다수 참여해 치유를 위한 여정에 함께했다.
서울시 지원으로 지난해 7월 시작돼 올해 3회째를 맞은 도너패밀리 심리지원 프로그램은 운동본부와 CCC순상담센터가 공동 개발했다.
이 프로그램은 먼저 세상을 떠난 기증인들을 향한 감정을 직면하고, 건강한 애도와 일상 회복을 돕는 ‘첫 만남’, ‘슬퍼해도 괜찮아’, ‘나를 받아줘’, ‘너의 부분들을 위한 기도’ 등 다양한 활동들이 진행돼 내면의 슬픔을 걷어내는 데 도움을 줬다.
심리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한 도너패밀리 김경옥 씨는 “남편의 빈자리가 아직도 크게 느껴지지만,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남편의 생명나눔이 얼마나 값진 일인지 깨닫게 됐다”며 “고귀한 사랑을 남긴 남편의 빈자리에 더 이상 슬픔이 아닌, 어려운 이웃들을 향한 사랑을 채우고 싶다”고 고백했다.
뇌사 장기기증인 故 이봉선 씨 아내 김춘자 씨는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묻어두고 살아왔는데, 같은 아픔을 가진 도너패밀리와 함께 시간을 보내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며 “시간이 빨리 흘러 아쉬운 마음이 들 정도로 큰 위로를 얻었다”고 전했다.
CCC순상담센터 임에리 강사는 “지난 4주 동안 심리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과거의 고통스러운 감정을 쏟아내고, 생명나눔의 자긍심을 되새긴 도너패밀리들이 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일상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며 “우리 사회가 숭고한 나눔을 실천한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들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고, 그들이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운동본부 박진탁 이사장은 “모든 도너패밀리들이 해당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의 감정과 마주하며 진정한 치유와 회복의 길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며 “저희는 다양한 예우 프로그램을 통해 도너패밀리의 자긍심을 고취시키고, 성숙한 생명나눔 문화를 조성해나갈 예정”이라고 전했다.
지난해 국내 뇌사 장기기증인은 483명이었으나 장기이식 대기자 수는 5만 1천 명으로, 매일 7.9명의 환자가 이식을 기다리다 사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장기기증 문화 정착을 위해 사회적으로 장기기증인과 유가족을 예우하고 심리 회복을 적극적으로 도와 생명나눔의 선순환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