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화해위, 80차 위원회서 결정하고 후속조치 권고
‘교인 가족’ ‘우익과 같은 교회’ 이유
대부분 인민군 퇴각기에 희생당해
19세 미만 29명, 교회학교 16명 등
국가는 북한 정권에 사과 촉구하고
피해 회복과 추모사업 지원 나서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김광동, 이하 진실화해위)는 11일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열린 제80차 위원회에서 ‘한국전쟁 전후 적대세력에 의한 종교인 희생사건(3)- 충청지역 기독교 희생사건①’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리고, 국가와 관련 부처 등에 후속 조치를 권고했다.
이번 결정은 전북지역 기독교인 희생사건과 충청지역 천주교인 희생 사건에 이어, 진실화해위가 직권 조사한 종교인 희생사건 세 번째 진실규명 결정이다.
논산 지역 병촌성결교회(이하 병촌교회)에서 발생한 집단희생 사건을 중심으로 조사를 진행한 결과, 병촌교회에서 희생된 기독교인 54명에 대해 진실 규명을 결정했다.
병촌교회 기독교인 희생사건은 1950년 7월부터 9월까지 3개월여에 걸쳐 발생했다. 특히 인민군 퇴각기인 1950년 9월 28일을 전후해 전체 진실규명 대상자 전체 54명 중 51명이 희생당했다.
희생자 54명 중에는 여성이 30명(55.6%), 남성이 24명(44.4%)으로 여성이 더 많았고, 19세 미만 희생자도 29명(53.7%)으로 절반 이상이었다. 교회 직급으로는 ‘주교생’으로 불리던 교회학교 학생이 16명(29.6%)으로 가장 많았다.
성도들은 기독교인이나 그들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우익 인사와 같은 교회에 출석하는 교인이라는 이유로 희생됐다.
가해자인 인민군과 지방 좌익은 1950년 7월 점령 초기 핵심 교인들 몇몇을 우익 인사로 분류해 끌고 가 고문 후 살해했고, 1950년 9월 후퇴기에는 성도들의 가족들까지 모두 집단 희생시켰다.
진실화해위원회는 국가에 대해 북한 정권의 사과 촉구,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한 공식 사과, 피해회복과 추모사업 지원 등 후속조치, 평화·인권 교육 강화 등을 권고했다.
병촌성결교회는 1935년 설립됐으며, 일제시대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모진 탄압을 겪고 폐쇄, 매각됐다가 광복 이후인 1948년 6월 예배당을 재건했다.
그러나 1950년 6.25 전쟁으로 더 큰 시련이 닥쳤다. 9월 27-28일 퇴각하던 공산군이 남아있던 성도 66인(남 27명, 여 39명)을 모두 처형하고 도주한 것이다. 단 이 숫자는 진실규명위 집계와는 다르다.
이후 1956년 순교기념예배당을 건축하고, 1958년 순교자기념비를 건립했다. 1986년 교단 재창립 50주년을 기념해 ‘66인 순교기념탑’이 건립돼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순교사적 제1호로 지정됐다. 1986년 5월 제2 순교자기념교회(180평)를 신축하고, 2015년 지상 2층 규모의 순교 및 안보기념관을 준공했다.
◈북한 의한 충북 지역 희생 사건도 진실규명
진실화해위는 이날 ‘충북지역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사건(1)’ 21건에 대해서도 진실규명으로 결정했다.
이는 1948년 4월부터 1951년 5월까지 충북 지역 주민 21명이 좌익에 비협조적이고 우익 활동을 했다는 이유 등으로 적대 세력에게 희생된 사건이다.
진실화해위는 신청된 사건 21건 21명에 대해 제적등본, 족보, 6·25사변 피살자명부, 6.25사변 피납치자명부, 전국순국 반공청년 운동자명부, 1기 진실화해위원회 기록, 신청인 및 참고인 진술 등을 종합 검토·분석해 이들 21명을 희생자로 판단했다.
조사 결과, 충북 충주군, 제천군, 음성군, 청주시, 청원군, 옥천군, 영동군에 거주하던 주민 21명이 군인이나 경찰 가족 또는 부유하거나 좌익에 비협조적이고 우익 활동을 했다는 이유 등으로 적대 세력에 희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