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적 금지령’ 내려
보수 성향의 정교회 국가인 그리스에서 동성결혼 합법화에 따른 진통이 계속되고 있다.
AP통신에 따르면, 그리스 서북부 코르푸섬 주교단이 동성결혼 합법화 법안에 찬성한 지역 의원들에게 종교적 금지령을 내렸다.
종교적 금지령을 받으면 주요 영성체 예식에 참여할 수 없으며, 교회 공식 행사나 본당 모임에서 예우받을 자격을 박탈당한다.
코르푸섬 주교단은 두 야당 의원에 대해 “가장 깊은 영적·도덕적 오류를 저질렀다”며 “우리는 그들에게 회개할 것을 권고한다”고 밝혔다. 반면 법안에 반대표를 던진 지역구 의원들에게는 “우리나라에 필요한 정치인”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앞서 그리스 최대 항구도시인 피레우스에서도 이 지역 주교단이 동성결혼 합법화에 힘을 보탠 지역 의원들에게 종교적 금지령을 내린 바 있다.
그리스 의회는 지난 2월 15일 정부가 제안한 동성결혼 합법화 법안을 찬성 176표 반대 76표로 통과시켰다.
중도 우파 성향 집권당인 신민주주의당(ND) 소속 의원 일부가 반대표를 던졌으나, 야당인 시리자(급진좌파연합) 등 4개 좌파 정당이 찬성해 법안이 통과됐다.
이 법은 동성결혼을 합법화하고 동성부부의 입양 등 완전한 친권을 인정했다. 다만 동성부부가 대리모를 통해 부모가 되는 것은 허용하지 않았다.
그리스는 전 세계에서 37번째로, 또 정교회 신도가 다수를 차지하는 국가 중에선 최초로 동성혼을 합법화했다. 그리스 인구의 80∼90%가 그리스정교회 신자다.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총리가 지난 1월 동성결혼 합법화 법안을 의회에 제출하겠다고 예고하자, 그리스 내에서는 찬반 양론이 뜨거웠다.
미초타키스 총리는 “이것은 유럽의 가치에 열정적으로 헌신하는 진보적이고 민주적인 국가인 오늘날의 그리스를 반영하는 인권의 이정표”라고 주장했다.
그리스정교회 수장인 이에로니모스 2세 아테네 대주교는 해당 법안에 대해 전통적인 가족의 가치를 무너뜨린다며 반대했다.
지난달 11일에는 4천여 명이 아테네에서 동성결혼 합법화 반대 집회를 열었으며, 법안이 통과된 날에도 의사당 밖에서 소규모 반대 집회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