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가 기독교 사회? 암흑 시대? 편견이자 오해죠”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중세와 그리스도교> 박흥식 교수 (上)

▲지난 2016년부터 3년 간의 &lsquo;홍성강좌&rsquo;를 통해 역사학자&middot;교회사학자들과 그리스도교의 역사 2천 년을 돌아본 박흥식 교수는 기획 의도에 대해 &ldquo;한국교회가 거듭나기 위해서는 어디서 길을 잃었는지 역사에서 묻고 답을 찾는 과정이 필요하다&rdquo;며 &ldquo;세속사를 전공하는 역사가와 교회사가가 협력해, 교회사와 세속사를 그리스도교적 안목으로 적극 통합해 이해하려는 시도&rdquo;라고 밝혔다. ⓒ이대웅 기자
▲지난 2016년부터 3년 간의 ‘홍성강좌’를 통해 역사학자·교회사학자들과 그리스도교의 역사 2천 년을 돌아본 박흥식 교수는 기획 의도에 대해 “한국교회가 거듭나기 위해서는 어디서 길을 잃었는지 역사에서 묻고 답을 찾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세속사를 전공하는 역사가와 교회사가가 협력해, 교회사와 세속사를 그리스도교적 안목으로 적극 통합해 이해하려는 시도”라고 밝혔다. ⓒ이대웅 기자

“흑사병과 종교개혁 이전 중세는 신앙이 지배한 ‘암흑 시대(saeculum obscurum)’이자 ‘그리스도교 세계(Christendom)’였는가?”

박흥식 교수(서울대 역사학부 서양사 전공)의 책 <중세와 그리스도교>는 콘스탄티누스 황제 통치기로부터 종교개혁 이전까지 천 년이 넘는 긴 시간을 네 부분으로 나눠 유럽 그리스도교 세계를 두루 여행하면서 기존 ‘중세 교회사’ 시각들을 재해석하고, 현재적 관점에서 그리스도교 역사를 비판적으로 성찰해 새로운 시각으로 조망하려는 시도다.

저자는 중세 1천 년 유럽 사회가 ‘암흑 시대’도, ‘그리스도 세계’도 아닌 복합적·다층적으로 바라봐야 할 세계임을 강조한다. “공통적 역사적 경험이 미미하고 다양한 요소들이 깃들어 있는 이 넓은 유럽 대륙과 긴 시간대를 포괄하는 중세 유럽 세계를 하나의 단편적인 성격으로 규정하는 것은 무리가 따르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책의 바탕이 된 홍성강좌는 지난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교회사와 세속사를 적극적으로 통합해 그리스도교 역사를 ‘전체사’로 다루는 것을 목표로 삼고 역사학자와 교회사학자들이 공동으로 진행했다. 이렇듯 그리스도교 역사를 통사로 서술하는 기획은 국내에서 처음 시도됐으며,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다고 한다. 다음은 이를 총괄 기획한 장본인이자 이 책의 저자인 박흥식 교수와의 일문일답.

과거 돌아보며 역사에서 길 찾기
교회사, 전체사로 서술하기 위함
기독교, 사회와 밀접한 상호 작용
당대사 서술과 긴밀히 엮어내야

-홍성강좌 기획 의도가 ‘역사가들과 교회사가들이 상호 협력해 그리스도교적 안목으로 역사를 통합적으로 서술한다’였습니다.

“홍성강좌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2017년을 기해 기획했습니다. 그 때에 비하면 요즘 한국교회 권위가 더욱 추락한 듯하여 씁쓸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작금의 한국교회를 보면 신자들은 온갖 욕망을 종교의 이름으로 포장해 추구하고, 교회도 신자들의 그런 모습을 방임하거나 오히려 북돋으면서 돈과 세속적 성공이라는 가치를 도모합니다.

물론 모든 교회가 그런 것은 아니니 확대 해석은 조심해야 할 필요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분위기가 만연해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기에, 한국 기독교는 한 마디로 요약하면 철저히 세속화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교회의 급속한 성장에 취해 교회와 교인들은 스스로를 성찰할 기회를 갖지 못했고, 결국 길을 잃었습니다. 홍성강좌는 과거를 돌아보며 역사에서 그 길을 찾아보자는 취지였습니다.

시리즈 저술 목표는 한마디로 교회사를 전체사로 서술하자는 것입니다. 기존 교회사들은 대체로 걸출한 신앙 위인들, 교리, 신앙운동 등 제한적 종교사 서술로 끝납니다. 하지만 그런 인물과 신앙운동의 배경이자 그들의 삶의 조건에 대해 충분히 다루지 않기에, 간증이나 신앙고백에 가까운 서술이 되고 맙니다.

기독교는 역사 속에서 당대 사회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상호 작용해 왔습니다. 저는 신앙 행위를 그것의 맥락을 이루는 당대사 서술과 긴밀히 엮어내야만 그 바른 의미가 살아난다고 봅니다.”

-필진이 대부분 크리스천 일반 역사가였고, 20세기만 교회사가였습니다. 기존 시리즈와 이번 <중세와 그리스도교>까지, 그 의도에 얼마나 부합했다고 보시는지요. 강의 당시는 어떠셨는지요.

“이 기획을 하면서 강의와 저술을 할 분들도 제가 선정했고, 직접 연락해 수락을 받았습니다. 비교적 잘 알고 대화도 많이 해 온 분들이라 기획 의도를 충분히 소화해 강의와 책에서 잘 구현하실 수 있으리라 기대했습니다.

이런 시도는 외국에도 거의 없기에 모두들 상당히 고생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각 권은 저자들의 시대를 보는 고유한 시각과 개성이 담겨 있는 흥미로운 책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저는 최종 결과물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으로 생각하는데, 그에 대한 최종 판단은 독자들의 몫이겠죠.

제가 강의했을 때는 직장인과 주부는 물론 신학생과 목회자 등 다양한 분들이 오셨기에, 그분들과 여러 주제에 대해 대화를 주고받는 과정이 매우 유익했습니다. 교회에서도 성경이나 교리공부 못지 않게 역사를 공부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2018년 박흥식 교수가 홍성강좌를 진행하는 모습. ⓒ크투 DB
▲지난 2018년 박흥식 교수가 홍성강좌를 진행하는 모습. ⓒ크투 DB

기존 교회사, ‘신앙 승리’만 강조
실제 결과와 부작용, 실패엔 침묵
하나님의 섭리, 이해 어려운 문제
선지자도 뜻 몰라, ‘스피커’일 뿐

-서양 중세 역사학자로서 교회의 기존 중세교회사 작품들을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저는 통상적 교회사가 ‘신앙의 승리’만 너무 강조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사는 역사 속 각종 신앙운동들을 부각시킵니다. 그러면서 그 의도와 초기 기획에 대해서는 상세히 다루지만, 그 실제 결과와 부작용, 실패에 대해서는 침묵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수도원 개혁운동’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강조하지만, 결국 이런 운동이 성직자를 특권계급으로 만들어 성직주의를 강화하고, 교황권을 절대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주목하지 않습니다. 왜 그와 같은 결과에 이르렀는지 분석하고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런 부작용이나 실패 등을 다 언급할 경우, ‘신앙’이나 ‘하나님의 섭리’가 차지할 공간이 없다는 염려 때문 아닐까요.

“예전에 ‘하나님의 섭리’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주제로 발표한 적이 몇 차례 있습니다. 저는 ‘인간은 하나님의 섭리를 알 수 없다’고 성경이 말하고 있다고 이해합니다. 일이 다 끝나고 결과가 드러났을 때에야 ‘아,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였구나’ 하고 인정할 뿐, ‘하나님의 섭리가 이것이었다’고 예측하는 것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섭리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는 굉장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러나 제가 이해하는 성경의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미리 인간에게 알게 하지 않으십니다. 선지자도 말씀대로 찾아가서 선포할 뿐, 그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선지자는 ‘스피커(speaker)’일 뿐, 미리 아는 사람이 아닙니다.

-성경도 일종의 ‘역사서’라고 하는데요.

“성경은 2천 년 혹은 그 이상 된 텍스트로 볼 수 있습니다. 거기서 우리가 하나님의 영감이나 뜻을 찾지만, 마치 ‘뽑기’처럼 여겨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오늘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을 찾기 위해 성경을 읽지만, 역사성이나 맥락을 모두 배제한 채 ‘현재성’만 강조할 때 자칫 성경 내용을 왜곡시킬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잘못 적용하면 ‘무당의 신점’처럼 오용될 수도 있고요.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신 분이시기에 그 텍스트를 통해 우리를 움직이시고 당신의 뜻을 알게 하시는 차원이 분명히 있다고 인정하지만, 그 부분을 지나치게 강조한다든지 개인을 넘어 사회적으로 적용할 경우 위험한 상황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성경의 책들 중 사사기 서술 방식은 ‘기독교적 글쓰기’의 모범적 모델로 간주되곤 합니다. 그래서 사사기를 연구한 기독교인 역사학자들이 꽤 있습니다. 저도 역사학자로서 기독교적 글쓰기의 모델로 삼을 만한 중요한 텍스트라고 생각합니다.”

▲전 세계 지도가 &lsquo;그리스도의 몸&rsquo;으로 표현된 중세 '엡스토르프 세계지도(Ebstorfer Weltkarte)'. 지도 윗부분에 예수님의 얼굴이, 아래에 발이 보인다. 이 그림은 예수님의 몸이 곧 세상을 구성한다고 볼 수도 있고, 예수님이 세상을 품고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박 교수 제공
▲전 세계 지도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표현된 중세 '엡스토르프 세계지도(Ebstorfer Weltkarte)'. 지도 윗부분에 예수님의 얼굴이, 아래에 발이 보인다. 이 그림은 예수님의 몸이 곧 세상을 구성한다고 볼 수도 있고, 예수님이 세상을 품고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박 교수 제공

기독교 빠진 서양사 못 논한다?
역사학자들, 그렇게 생각 안 해
종교인 비중 높았단 이유만으로
기독교 사회 지배했다 평가 못해
당시 유럽화된 기독교의 특징은
혼합주의, 세속화, 국가주의 등

-‘기독교를 빼고 서양사를 논할 수 있느냐’는 말도 있는데요.

“그렇게 말하는 분들도 있지만, 서양사 교수들은 세속적 관점으로만 해석하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런 시각은 신앙의 영역이지, 학문의 영역이 아니라고 보는 경향이 많죠. 과학을 신앙과 분리해서 보듯 말입니다.

우리가 아는 세계사 책이나 교과서를 봐도 종교는 아주 주변적이고 특수한 영역으로 서술되거나, 별도로 조금 기술하는 정도입니다.

저는 중세사를 통사처럼 쓰면서, 동시에 기독교사를 쓴 것입니다. 중세를 이해하려면 기독교를 배제할 수 없지만, 기독교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중세사라는 맥락을 떼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주제, 이 시대를 보는 제 시각과 생각입니다.

세속사를 연구하고 가르치지만, 중세 사회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보면서 ‘신앙’을 매우 중요한 비중을 두고 시대와 조응하는 방식으로 기술하고자 했습니다.”

-‘암흑 시대’나 ‘그리스도교 세계’란 일반화된 표현이 중세에 대한 편견 또는 오해라고 할 수 있나요.

“네, 그렇습니다. 이 부분은 책의 프롤로그에서 길게 다루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편견이자 오해죠. 서양에서 중세 외에도 기독교인 비중이 높았던 국가나 시대가 있었죠? 남미 국가들도 그러했고, 한국도 여전히 높은 편입니다. 정의하기에 따라 다를 수도 있지만, 종교인의 비중이 높았다는 점만으로 기독교가 사회를 지배했다고 평가하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중세 유럽도 통상적으로 생각하듯 교회가 신앙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던 기독교 사회는 아니었습니다. 근래 많은 연구들이 이 부분을 충분히 규명하고 있습니다.”

-중세는 무려 1천 년에 걸친 긴 기간입니다. 한 권의 책으로 담거나 한 시대로 통합해 보기엔 너무 길고 복잡하지 않을까요.

“시대 구분은 편의적으로 나눈 것입니다. 중세를 하나의 시대로 구분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40년 가까이 유럽 중세를 공부하고 있는데, 아직도 모르는 것이 더 많습니다. 제가 관심이 있고,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주제에 집중해 연구하고 공부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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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중세와 그리스도교>.

-‘한국적 신학’이라는 용어가 있듯, 기독교가 발상지인 고대 근동을 떠나 중세에는 유럽의 종교가 됩니다. 그에 따른 토착화나 변화된 항목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기독교는 콘스탄티누스 시대라 불리는 4세기를 거치며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기독교가 공인된 후 세속 권력의 보호에 안주하면서, 황제의 부당한 관여에 대해 비판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른바 제국과 교회 사이의 동맹이죠.

더불어 개종이 위로부터 아래로 진행됐기 때문에, 회개가 필요없는 종교가 되었죠. 신자들은 이전에 갖고 있던 토속종교를 버릴 이유가 없었기에, 자연스레 기독교에 이교들이 들어오며 혼합됐죠. 이 시기에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종교 의식에 참여하는 것 이상을 의미하지 않았습니다. 신앙고백도 필요 없었습니다.

그 과정을 다 설명드리기에는 시간이 필요한데, 한 마디로 혼합주의, 세속화, 국가주의 등의 성격을 띠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유럽화된 기독교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당시 로마가톨릭에는 혼합주의 요소가 굉장히 많았고, 성인 숭배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중세에는 그래도 초기 교회의 원형 또는 모범이 지금보다 훨씬 많이 보존돼 있었을 듯 한데, 콘스탄티누스 이후 제도화·정치화되면서 그 원형을 잃어버리게 된 것인가요. 남아있는 원형의 모습은 없을까요.

“기독교의 원형을 상실했다면, 더 이상 기독교도 아니겠죠. 당연히 원형은 그 가운데 남아 어느 정도 유지됐지만, 방금 말씀드린 요소들로 덧씌워져 있었으니, 복음의 본질이 잘 드러나지 않았겠죠.

종교개혁이라는 사건이 이런 본질에 속하지 않는 겉치레들과 기독교와 무관한 요소들을 겉어내려던 시도였다고 이해하시면 될 겁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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