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가무 클럽’ 전락한 영국 캔터배리 대성당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사일런트 디스코’ 이틀 간 3천 명 참석

90년대 음악 헤드폰 들으며 춤춰
주류 판매도 확인, 다른 대성당도
비신도 데려오려는 다양한 시도?
반대 청원 “강도의 소굴 만들어”

▲사일런트 디스코 현장 모습. ⓒ페이스북

▲사일런트 디스코 현장 모습. ⓒ페이스북
유럽 교회가 매각돼 ‘나이트클럽’으로 변했다는 뉴스가 심심찮게 들려오는 가운데, 영국 캔터배리 대성당에서 ‘나이트클럽’처럼 사람들이 춤추고 있는 사진과 영상이 온라인을 달구고 있다.

전 세계 성공회의 본산인 영국 캔터베리 대성당(Canterbury Cathedral)에서 수백 명이 밤늦게까지 1990년대 팝송을 들으며 야광봉을 흔들면서 춤추는 ‘사일런트 디스코(silent discos)’가 진행돼 논란이 된 것.

CNN과 BBC, 가디언 등 현지 언론들은 지난 8일과 9일(이하 현지시간) 1990년대를 주제로 한 ‘사일런트 디스코’가 기독교인들의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4차례 파티에 참석한 총 3천여 명의 사람들은 대성당 내에서 헤드폰을 낀 채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춤을 췄다. 헤드폰으로는 스파이스걸스(Spice Girls), 에미넴(Eminem), 벵가 보이스(Vengaboys) 등 주로 1990년대 인기 가수들의 노래가 흘러 나왔지만 헤드폰 밖은 조용한 가운데 춤을 추고 있어, 헤드폰을 끼지 않으면 기괴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행사 포스터. ⓒ페이스북

▲행사 포스터. ⓒ페이스북
대성당 측이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한 영상에서도 사람들은 화려한 조명 속에서 ‘클럽처럼’ 춤을 추고 있다. 대성당 측은 현장에서 주류도 판매했으며, SNS를 통해 “환상적인 분위기였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캔터배리 대성당은 1,500여 년 전인 597년 처음 세워졌으며, 전 세계 성공회 수장인 캔터베리 대주교가 사역하는 장소다.

이번 캔터베리 행사는 영국과 유럽 전역의 대성당 및 역사적 건물들에서 열리고 있는 ‘무음 디스코’ 행사의 일환이다. 이후 길퍼드(Guildford)와 일리(Ely) 등 유명 대성당에서도 몇 달간 1980년대와 1990년대 음악을 테마로 비슷한 행사가 예정돼 있다.

‘무음 디스코’ 행사를 기획한 ‘놀라운 장소(Incredible Places)’ 측은 이미 영국 내 여러 대성당들에서 비슷한 행사를 주최했으며, 인스타그램을 통해 “영국 주요 대성당들의 절반 이상과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캔터베리대성당에 최고의 존경심을 갖고 있다. 그리고 대성당에서의 행사가 부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우려를 이해하고, 그들의 신념과 의견을 존중한다”면서도 “‘사일런트 디스코’는 사람들이 멋진 환경 속에서 좋아하는 노래를 함께 부르는 순수하고 기분 좋은 행사임을 분명히 하고 싶다”고 했다.

▲대성당 측이 공개한 행사 사진. ⓒ페이스북

▲대성당 측이 공개한 행사 사진. ⓒ페이스북
대성당 측 대변인도 CNN에 “많은 사람들이 대성당에서 이런 행사를 열게 돼 너무 기쁘다고 말하는 등, 압도적으로 긍정적 반응을 얻고 있다”며 “행사 티켓 3천 장은 몇 시간 만에 매진됐다”고 말했다.

BBC와의 인터뷰에서 이 대변인은 “이번 디스코 파티는 적절하고 정중한 것이며, (회랑에서 춤추지) 회중석에서 춤추는 것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데이비드 몬테이스(David Monteith) 주임 사제도 BBC에 “대성당은 기독교인들의 예배와 선교의 중심지로서의 주요 기능보다 훨씬 더 넓은 방식으로 공동체의 일부가 돼 왔다”고 항변했다.

몬테이스 사제는 “여러 세기 동안 대성당에서는 모든 종류의 댄스가 펼쳐져 왔다. 참석자들이 그들만의 방식으로 이 ‘놀라운 장소’를 새롭게 발견하는 것을 바라볼 때마다 즐거움을 느낀다”면서도 “일부 성도들은 이런 춤과 팝 음악이 대성당 내에서 이뤄지는 것에 결코 동의하지 않을 것임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해당 파티에 반대하는 성도들은 파티가 진행되는 동안 대성당 밖에서 피켓시위를 진행했고, 반대 청원에도 11일 현재(한국시간) 1,800명 이상이 서명했다.

▲예배 중 회중석에서 찬양하는 성도들. ⓒ페이스북

▲예배 중 회중석에서 찬양하는 성도들. ⓒ페이스북
BBC에 따르면 행사 소식이 알려진 지난해 10월부터 이를 반대하며 성공회 수장인 저스틴 웰비 대주교(Justin Welby Archbishop of Canterbury)에게 청원서를 제출하고 ‘Change.org’에서 반대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는 의사 출신 카예탄 스코우론스키(Cajetan Skowronski) 박사는 “누구나 ‘사일런트 디스코’를 좋아하지만, 그 장소가 영국에서 가장 중요한 교회인 캔터베리 대성당이 아닌 나이트클럽이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스코우론스키는 “그 파티는 젊은이들을 그리스도께 더 가까이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 그것이 제공하는 모든 진리, 아름다움, 선함은 중요하지 않다는 메시지, 즉 엔터테인먼트가 하나님보다 우리에게 더 가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라는 예수님 말씀이 기록된 마태복음 21장 12-13절 말씀으로 시작하는 이 서명운동 페이지에서 “이 거룩한 장소를 모독하지 말라”며 “대성당을 다시 한 번 기도의 집으로 만들어 달라”고 호소했다.

영국성공회는 비신자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이러한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BBC에 따르면 코로나19 이전인 지난 2019년 로체스터 대성당(Rochester Cathedral)은 본당 내 성도석(nave)을 골프 코스로 개조해 방문자가 100% 늘어났고, 그해 노리치 대성당(Norwich Cathedral)에는 놀이동산 크기의 대형 나선형 미끄럼틀을 설치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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