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어게인 3’에서 우승한 홍이삭이 7일 박위의 위라클 택시 시즌2에 출연해 ‘싱어게인3’ 비하인드 스토리와 어린 시절, 그리고 미래의 계획 등에 대해 이야기했다. 박위는 홍이삭을 ‘3년 동안 제가 짝사랑했던 고막남친’으로 소개했다.
홍이삭은 “제 얘기를 솔직하게 할 수 있었고 제 얘기를 들어 주셔서, 제가 잘해서 우승했다기보다 감사하다”며 “진짜 우승 예상 안 했다. 끝까지 안 했다. 스스로 앞서서 생각하지 말자는 생각을 많이 했다. 오히려 수빈, 이젤의 노래가 어필되는 게 많다 생각했다. 둘이 우승해도 아무렇지 않았다. 3등을 해도 최선을 다해서 둘을 서포트하고 박수를 쳐줄 수 있겠단 확신이 있어서 평안했다”고 했다.
이전까지 실수가 없다가 결승에서 음이탈이 난 후 심정에 대해서는 “그렇게 돼서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한계가 있다는 생각도 했다. 음이탈이 났을 때 0.001초 안에 안일했던 순간의 장면이 하나하나 기억났다. 선곡하고 편곡하는 과정에, 어떤 음, 발음, 어떤 감정으로 해야 하는지 한끗 차이인데, 제 오만함이 들어가 있었다. 그래서 이 순간이 왔다고 깨달으면서 아직 한참 멀었고, 더 성장해야겠다고, 어떻게든 버텼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박위는 또 “부모님이 선교사신데, 한국에 와 아들의 결승전 무대를 보는데 얼마나 떨리셨겠나”라고 했고, 홍이삭은 “부담스럽고 서로 미안한 상황이 온 것이다. 부모님은 정작 내가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걸 본 경험이 많이 없다. 아버지도 제가 음악한다고 하면서, 슈퍼밴드 이후 제 라이브를 한 번밖에 못 보셨다. 보통 해외에 계시다 겨울에 오시는데, 그때는 비수기다. 하필 제일 집중해야 되고 중요한 타이밍에 오셨다”고 했다.
이어 “좋을 수도 있지만, 부모님이 이 자리에 있다고 생각하니까 어색하고 죽겠다 싶었다. 사실 6라운드 때도 제가 초대권이 있지만, 부담 돼서 아무도 오지 말라고 했다”며 “그런데 ‘이기는 순간보다 졌을 때, 가족이 옆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씀을 하셔서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오셨다. 떨렸다”고 했다.
또 몇몇 라이브 곡을 선보인 홍이삭은 “1라운드 때는 내가 있는 여기가 숲인지 바다인지 방황했다면, 이후엔 이제 숲이 될 수 있는 마음이 생겼다. 노래라는 것이 제게 황량하고 사막 같고, 제 삶도 그런 게 있었는데, 싱어게인 후 제가 있는 곳이 사막이 아닌 숲이란 것을 깨달았다”며 “처음 이 노래를 만났을 때는, ‘이게 무슨 마음일까?’ 계속 생각했다. 그런데 개인의 이야기나 마음이 들어갔을 때 채워지는 정서가 있었다”고 했다.
그는 “저는 노래를 그릇이라 생각한다. 제가 담을 수 있을 만한 그릇인가? 제가 그릇의 목소리, 인성, 깊이를 가지고 있는가? 못 부르는 노래들이 존재한다. 부를 수 있는 나이와 인성과 경험이 없다 생각하는 곡이 있다. 시간이 주는 깊이가 존재한다 생각한다”며 “어릴 때는 제가 노래를 불렀을 때 감정이 앞의 사람에게까지 전달돼야 한다 생각했다”고 했다.
또 홍이삭은 어릴 적 오세아니아에 있는 파푸아뉴기니에 살았다고 밝혔다. 그는 “부모님이 선교사시니 선교사 자녀로 있는데,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면 짧게 살아서 할 말이 없다. 3년 6개월 살았다. 파푸아뉴기니에 선교하러 가는 주된 이유는 성경 번역이다. 거기에 언어가 500개 정도 있다. 한 마을에서 한 선교사가 그 부족의 언어를 공부하고, 언어 구조를 파악하고, 글자를 만들어 주고, 그 다음에 성경을 번역해야 한다. 문명을 가져갈 수 있게 도와 주는 것이다. 짧으면 10년, 길면 20-30년씩 그 사람들과 계속 산다”고 했다.
그는 “저가 있을 때 그곳이 세계에서 제일 큰 센터였다. 150 가정 정도 있었다. 그렇게 되니 사회가 이뤄져야 한다. 의사, 은행, 전문인 선교사들이 온 것이다. 저희 부모님은 선생님으로 가르치러 갔다. 저희 반이 24명이었다. 16개국에서 온 친구들이 있었다. 문화가 초월적인 희한한 것이 있었다. 그런 문화를 경험하다 한국에 왔는데, 교복 입어야 하고 두발 자유도 없었다. 전 사춘기가 좀 일찍 왔다. 친구들이 전부 다 스타 얘기밖에 안 해서 죽겠었다. 우리나라 음악 하나도 안 듣고 빌보드만 들었었다”고 했다.
이어 “결과적으로는 다 장단점이 있고, 우리나라도 잘하고 좋은 게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초반에는 적응을 새로 해야 하니 힘들었다”며 “노래는 교회에서 어릴 때부터 불렀고, 누나가 유초등부 성가대를 하고 있었는데, 어쩌다 저도 꼈다. 전 조용하고 내향적이어서 잘했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또 한 달 만에 버클리 음대에 합격한 일에 대해 “사실”이라며 “제가 인생이 좀 가늘게 사는 게 있다. 저는 전문교육 없이 독학을 한 상태로 기타도 음악도 혼자 배운 친구라는 것을 어필하면 될 것 같았는데, 먹혔다. 저보다 제 주변 사람들이 좋아했다”고 했다.
또 홍이삭 하면 빼놓을 수 없는 ‘하나님의 세계’를 언급한 박위는 “노래를 듣다 보니 저 혼자 홍이삭이 너무 좋아졌다. 많이 들었다. 공연장에서도 들었다. 저만 좋아하는 게 아니다. 또 역주행했다. 지금 차트 1위다. 저는 스태디셀러처럼 죽을 때까지 들을 것”이라고 했고, 홍이삭은 ‘하나님의 세계’를 라이브로 선보였다.
홍이삭은 또 앞으로의 계획에 “개인으로서 음악을 더 잘하고 싶다. 좋은 음악도 더 잘 만들고 싶다. 좀 더 멀리 봤을 때는 좋은 이야기들을 만들고 싶다. 음악이든 글이든 소설이든 영화든 좋은 사람들이랑 같이 만들고 싶다. 그게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사랑하는 부모님께는 이제는 좀 든든한 아들이 되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