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 최형만, 사기와 뇌종양 겪고 목사 된 근황 전해

김신의 기자  sukim@chtoday.co.kr   |  

‘인간극장’ <형만 씨의 두 번째 출발> 5부작 출연

▲목사가 된 개그맨 최형만. ⓒ&lsquo;인간극장&rsquo; 화면 캡쳐
▲목사가 된 개그맨 최형만. ⓒ‘인간극장’ 화면 캡쳐

▲뇌종양 수술 후 찍은 최형만 목사의 사진. ⓒ&lsquo;인간극장&rsquo; 화면 캡쳐

▲뇌종양 수술 후 찍은 최형만 목사의 사진. ⓒ‘인간극장’ 화면 캡쳐

‘돌 강의’ 등으로 인기를 누렸던 개그맨 최형만이 최근 ‘인간극장’ <형만 씨의 두 번째 출발>에서 목사가 된 근황을 알렸다.

1987년 개그맨으로 데뷔한 최형만은 전성기 때 한 달에 수천만 원을 손에 쥘 만큼 잘나갔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그가 유명하고 돈 잘 버는 개그맨이 되기보다, 하나님을 섬기며 바르게 살길 바랐다. 그러다 돈을 관리하던 어머니가 사기를 당한 뒤 파킨슨병을 앓다 세상을 떠났고, 최형만도 투자 실패로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이후 친척을 통해 어머니의 유언을 듣게 된 최형만은 그것을 따라 목사가 됐다.

최형만은 늦은 나이에 신학대학원에 들어가 10년 동안 공부에 매진했고, 4년 전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리고 교회 부목사가 된 지 1년 만에 뇌종양 진단을 받고, 장장 18시간에 걸친 대수술과 재수술을 받았다. 반신마비, 언어장애 같은 후유증이 올 수 있다는 경고에 회복과 재활에 각고의 노력을 쏟았고, 왼쪽 청력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완치된 상태에 이르렀다.

<형만 씨의 두 번째 출발>에서 가족과 근황을 전한 최형만 목사는 “뇌종양 증상이 왔을 때 모든 음식이 다 쓰고 셨다. 맛을 못 느꼈다. ‘세상에 이런 병이 있구나’ 했다. 뇌종양에 대해 검색했는데, 잠깐 치료받고 하는 정도가 아니고 뇌를 열어야 한다고 해서 그때부터 불안해졌다”고 회상했다. 그는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18시간 동안 받고, 감염으로 재수술도 해야 했다. 후유증 없이 건강을 되찾은 것은 아내의 지극한 헌신 덕분이었다.

심리상담센터를 운영하는 아내 김혜진 씨에 대해 최 목사는 “고마운 마음도 미안한 마음도 있다. 남편이 외부 활동도 많이 해서 여러 가지로 가계에 보탬도 되고 그래야 하는데, 몇 년 동안 그러지 못해 그게 미안하다”고 마음을 전했다. 아내를 향해 사랑의 표현도 아끼지 않았다. 최 목사는 “수술하고 나서 진통제 맞고 눈을 딱 떴는데 아내가 옆에 있었다. 제가 ‘여보, 미안해. 좀 잘 살자, 우리’라고 했다”며 눈물을 훔쳤다.

그는 “예전에는 유머, 감각, 재치, 재능 이런 가지고 있는 걸 펼쳤는데, 지금은 내면의 얘기를 진솔하게 하는 그런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며 주일을 “제일 바쁘고 중요한 날”이라고 했다. 예배 후 “죽어서 후회하는 다섯 가지 중 1번이 ‘왜 사랑하지 못했을까?’ 2번은 ‘왜 용서하지 못했을까?’라고 한다. 죽을 때 돼야 인간이 깨닫는다”며 교회에 처음 온 사람들을 돌봤다.

또 설교를 준비하던 그는 “‘매.새.지.’ 매일 새롭게 하는 지혜의 말씀을 나누겠다”고, 언어유희로 시작한다. 목사라는 직업이 사실 성경을 읽고 영혼의 양식을 준비하는 요리사이기 때문에, 조리법은 정해져 있고 맛있게 잘 들리게 설교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그가 목회자의 길을 택한 것에는 부모의 영향이 컸다. 아버지는 가난한 개척교회 목사였다. 최형만 목사는 어머니의 사진을 보여 주며 “어머니가 신앙이 좋으셨다. 우리 집에 우리 식구만이 아니라 집 없는 사람, 동네에 거지, 노숙자 이런 사람들이 많았는데, 우리가 조그만 방을 쓰고 한 방을 내어서 거기에 15명 20명씩 집 없는 아저씨들, 넝마주이 이런 분들이 같이 살았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아버지께서 늘 믿고 계신 그 길로 나도 가야 하나보다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러다 가정이 어려워지다 보니 저에게 결핍이 생겼다. 가난에 대한 창피함이 있었다. 학교를 계속 옮기고 이전하다 보니 아이들 앞에 서는 게 그렇게 싫었다. 창피했다. 그때마다 아이들하고 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재밌는 사람, 웃기는 친구였다. 그게 계발이 됐고, 개그맨이 됐다”고 했다.

이어 “엄마가 TV에 제가 나오는 걸 보면 ‘잘한다’, ‘우리 아들 자랑스럽다’가 아니고, ‘네가 갈 길은 거기가 아닌데 왜 거기 가 있느냐’고 기도를 했다고 한다. 이모가 그런 얘기를 전해 줬을 때, ‘여기까지만 연예인으로 살고 후반의 인생은 어릴 때 내가 되고 싶었던 길을 가야 하나’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최형만 목사의 가족. ⓒ&lsquo;인간극장&rsquo; 화면 캡쳐

▲최형만 목사의 가족. ⓒ‘인간극장’ 화면 캡쳐

아들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며 “이삭(아들)이 사랑 많이 받고, 사랑 많이 주고, 저는 그게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 같다. 사랑 받고 주고 그럼 좋은 인격으로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최형만 목사의 가족, 아들과 아내 모두 연탄 배달 봉사에도 힘썼다. 최 목사는 “마음이 좋다. 그 전에 연예인으로 살 때는 대접을 받기만 했다. 어디 가면 밥 사 주고 필요한 거 다 해 주고, 지금은 이제 같이 간다”며 만개한 웃음을 보였다. 아내 김혜진 씨는 “뿌듯하다. 이건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르는 감정일 것이다. 육체는 힘들지만 마음과 정신은 너무 뿌듯하면서 행복감이 밀려오는 기분”이라고 했다.

최형만 목사는 아내에게 “개그맨이었다고 하면 그냥 웃기는 사람 됐을지 모르겠는데, 아픔을 나눌 수 있나?”라고 했고, 아내는 최형만 목사에게 “우리가 잘 여기까지 살아온 것에 대한 감사함이고 또 잘 견뎌준 것에 대한 고마움”이라고 말했다.

사기 사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최형만 목사는 “그때만 해도 서로 말도 안 했다. 신혼 때 투자를 권유받아서 하게 됐다가 나중에 그게 사기인 줄 알았다. 액수는 4년 동안 빚진 것 막느라 끝나고 결산할 때 보니까 10억 털렸다”고 했다. 김혜진 씨는 “인생에 험한 고난, 환란이 언젠가는 온다. 그럴 때 삶의 끈을 놓지 마셨으면 좋겠다. 그 기분을 저희가 다 느꼈다. 그때 심정을 누구보다도 그 아픈 마음을 다 안다. ‘생을 여기서 끝냈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이 든다. 저희도 느꼈다. 근데 그게 다가 아니다. 인생은 정말 길고, 또 그 고비를 넘어살다 보면 다른 웃을 날이 오고, 또 내가 원하던 봄은 아니지만 다른 색깔의 봄이 온다. 거기에 인생의 묘미가 있다”고 말했다.

최형만 목사는 자신의 개인 방송 채널도 운영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최 목사는 “아프고 나서 신앙생활을 더 굳건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또 내 재능과 끼가 후회없이 발휘되는 것이 하고 싶었다. 결국 후회없는 인생을 살려고 놀이터를 만들었다”며 “사람들의 평가가 있겠지만, 거기에 의식하지 않고 하다보면 제 것이 진짜 나올 것”이라고 했다.

그의 은사는 정성진 목사였다. 최형만 목사는 “제가 신학대학원을 10년 만에 졸업했는데, 진로에 대해 고민할 때 목사님이 계신 연수회에 참석하고 제 문제에 대해 얘기했더니, 교회에 와서 훈련을 받으라 하셨다”고 했고, 정성진 목사는 “신학대학원에 가르치러 갔는데 보니까 아는 얼굴이었다. 코미디언으로만 알고 있었으니까 ‘여기를 왜 왔냐?’고 했다. 아주 좋은 자질을 갖고 있었는데, 교회에 끌어 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늙은 제자를 하나 뒀다. ‘맞춤형 지도자’가 되라고, 자기를 불태우고 헌신하면서 자기 옷을 입고, 자기만의 도구를 가지라고 했었다. 목사에게 찾아오는 사람의 90%는 아픈 사람이다. 마음이든 몸이든 생활이든, 그러면 내가 아파 봐야, 과부가 과부 사정을 알고, 환자를 겪어봐야 그들의 통증을 안다. 그러니까 내가 아픈 것은 하나의 과정, 잘 넘기면 아주 좋은 도의 과정”이라고 했다.

이밖에 김학래, 윤형빈 등 크리스천 코미디언들과 교제하는 장면도 전파를 탔다.

방송 말미에 최형만 목사는 가족들과 함께 철새를 바라보며 “2024년에 우리 가정을 위해서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고 싶고, 그 다음에 저 새처럼 자유롭게 한번 창공을 날아보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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