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권에서 얻을 수 있는 뜻 넓고 깊게 알 수 있어
강요하지 않아도 소개된 책들 읽고 싶게 할 수 있어
소개한 열두 개 덕과 소설 작품 연결 힘든 것도 있어

소설 읽는 신자에게 생기는 일
소설 읽는 신자에게 생기는 일

캐런 스왈로우 프라이어 | 홍종락 역 | 무근검 | 400쪽 |

요즘 기독교 출판계에선 ‘문학비평’을 주제로 한 책들이 간간이 나오고 있습니다. 일반 쪽에선 아주 익숙한 주제이나 기독교 출판계에선 생소한 건, 문학비평 자체가 문학을 비평하는 것인데 기독교 출판계에서 문학이 잘 출간되지 않을뿐더러 다루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익숙한 기독교 문학은 존 번연의 <천로역정> 정도일 겁니다. 기독교 문학이 잘 나오지도 않는데 ‘문학비평’이란 주제로 책이 나오고 있는 건, 기독교 문학의 범위를 직접적으로 신앙을 다룬 문학에서 일반 문학에서 찾을 수 있는 신앙과 교리로 넓혔기 때문입니다.

문학비평의 구성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문학에서 기독교 주제를 찾거나, 반대로 기독교 주제를 정하고 이에 해당하는 문학작품을 찾거나 입니다. 이번에 소개하는 <소설 읽는 신자에게 생기는 일>은 문학비평을 다루고 있고, 전자보다는 후자의 방식으로 구성하고 있습니다.

1장 분별부터 12장 겸손까지 성경에서 강조하는 12가지 제재(題材, 책에서는 ‘덕(德)’이라고 표현합니다)를 가지고 이에 해당하는 문학 작품들을 소개하면서 12가지 특질들을 확장해 가는 방법을 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 책은 다른 문학비평서와의 차이점을 두고 있습니다. 하나의 주제에 해당하는 여러 권의 책을 간단히 소개하고 나열하는 식이 아니라, 하나의 주제에 맞는 한 권의 책만을 소개하다 보니 내용이 깊고 확장성이 있습니다.

단순히 ‘이 책을 읽으라’고 강요하는 게 아니라, 책 한 권에서 얻을 수 있는 뜻을 넓고 깊게 알 수 있어 강요하지 않아도 소개된 책들을 읽고 싶게 하거나 궁금증을 가지게 합니다.

이런 문학비평서의 목적은 분명합니다. 문학과 신앙과의 연결성을 강조하면서 성경과 강해서, 간증서 등으로 좁은 크리스천들의 독서 폭을 확장하여, 소설이나 시 등의 문학과 같은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게 해 성경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독려하기 위함입니다. 이 책도 당연히 이런 목적에 충실합니다.

사일런스
▲이 책이 소개하는 소설 중 한 권인 <침묵>을 영화화한 <사일런스> 중 한 장면.
문학비평서로 나쁘진 않지만, 아쉬운 점은 곳곳에 있습니다. 우선은 소개한 12권의 소설을 모르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감안하여, 장(章)에 들어가는 서두에 소설의 간단한 줄거리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게 없습니다.

저자는 이 책을 읽는 모든 이들이 이 12권의 소설을 다 알고 있을 거라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자의 주장에 빨려 들어가는데 시간이 걸리거나 ‘이런 내용이겠지’ 하고 넘어가게 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원서에 없더라도 편집자가 넣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게 가장 큰 아쉬웠습니다.

두 번째로, 12개의 교리와 이에 해당하는 소설 작품이 어떤 건 이해가 되는 반면, 어떤 건 연결이 되지 않습니다. <위대한 개츠비>와 ‘절제’라는 덕의 연결성, <로드>와 ‘소망’이라는 덕의 연결성은 이해가 되지만, <천로역정>과 ‘부지런함’이라는 덕은 잘 연결이 되지 않습니다. <천로역정>은 ‘인내’가 맞겠죠.

<허클베리 핀의 모험>도 ‘용기’라는 덕과 연결시켰는데, 그 또한 수긍하기 어렵습니다. 굳이 나누자면 소개한 12권의 소설들과 12개의 교리 중에서 반은 맞고 반은 의아하게 합니다.

세 번째로, 너무 장황합니다. 각 장에 들어갈 때 자신의 일화와 주장을 몇 쪽에 걸쳐 한 다음 소설과 교리의 연결을 설명합니다.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기 어려운데 ‘이게 맞다’고 우기는 부분들이 있고, 간단히 설명하면 될 것을 길게 늘이고 있습니다.

어떤 건 소설보다는 자신의 주장을 더 강조합니다. 문학비평서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왔으면 ‘문학’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데 ‘교리에 대한 자신의 주장’에 초점을 맞춥니다.

마지막으로 주석이 거의 대부분 영어로 채워졌다는 겁니다. 소설을 소개하니 당연히 소설 구절들을 인용한 게 많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우리나라에서 번역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영어 원서를 그대로 넣었습니다. 인용한 구절이 우리나라에서 번역한 어느 책의 어느 부분인지 알려줬다면, 소개한 책들을 사보고 싶은 욕구가 더 들었을 겁니다.

이 책의 원제는 ‘On Reading Well’, ‘잘 읽기’ 정도로 해석이 될 겁니다. 출판사에서 부제로 단 것은 ‘READ WELL, LIVE WELL’입니다. ‘잘 읽는다는 건 잘 산다는 것’입니다.

제목은 신앙과 전혀 상관없지만, 저는 공감합니다. 다양하게 많이 읽는 것은 우리의 삶을 여유있게 합니다. 이 모든 삶 구석구석은 하나님의 통치 하에 있다는 걸 상기하자면, 다양하게 많이 읽은 건 신앙적으로 하나님을 더 잘 알게 하는 방법이기도 한 겁니다.

이 책의 한글 제목처럼 ‘믿는 사람들이 성경이나 강해서, 간증서가 아닌 성경과 별개의 분야인 것 같은 소설을 읽으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요?’

그것은 성경의 교리가 일상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보여주므로 내 삶에도 적용된 소설의 이야기가 발현될 수 있고, 현실을 폭넓게 대하며, 나아가 성경과 상관없는 글과 인식하지 못했던 현상도 성경의 시각으로, 하나님의 시각으로 관찰하며 통찰하게 되는 눈을 가지게 됩니다. 이건 기독교 소설이 주는 아주 중요한 변화입니다.

아쉬움이 분명 있지만, 그럼에도 실망스럽지 않게 소개할 수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이성구(서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