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10년 전 송유근이라는 소년이 방송에 나와 화제가 되었다. 그 때부터 송유근 군에게는 ‘천재소년’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후 8살에 대학을 입학했다. ‘천재소년’이라는 말이 입증된 셈이다.

그런데 어느덧 17세가 된 ‘천재소년’이 또다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우리나라 최연소 박사학위를 취득하게 됐기 때문이다. 최근 그는 블랙홀 연구 논문을 발표했다. 그런데 국제학술지 <천체물리학저널>은 표절 문제로 그의 논문 게재를 철회했다. 2002년 박 연구위원이 학회에서 발표한 자료의 많은 부분을 인용하고도 인용 표시를 하지 않았다고, 표절 판정을 내린 게다.

사실 어릴 적 천재라는 칭찬을 받으며 방송과 신문에서 떠들썩했던 사람들이 불행한 운명을 맞이한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송 군은 그동안 비교적 잘 성장했다. 그리고 대학 과정도 잘 이수했다.

비록 논문에 대한 시비가 붙어 아픔을 당했지만, 그의 연구열이 좌절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인생을 한 수 배웠으면 좋겠다. 실패를 모르는 성공자보다, 실패를 경험하는 것이 약이 될 수도 있으니까. 학위 취득이 좀 늦으면 어떤가?

표절 정도는 잘 모르겠지만, ‘좀 더 정직함’을 배울 수 있는 기회로 삼으면 된다. 학문 세계에 거짓이 넘보지 못하도록 높은 담을 쌓아야 한다. 이번 계기를 통해 진지한 학문 연구로 장차 노벨과학상까지 내다보는 새로운 발전의 도화선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지난 7월 서울대 공대는 100쪽이 넘는, 통렬한 자기 반성을 담은 백서를 발간했다. “서울대 공대는 야구로 비유하면 배트를 짧게 잡고 번트를 친 후, 1루 진출에 만족하는 타자였다. 그러나 학문 세계에서는 만루홈런(탁월한 성과)만 기억된다.”

1991년 이후 24년 만에 내놓은 백서이다. 백서에는 교수들의 안이한 연구 태도를 스스로 반성하는 문구로 가득했다. 교수와 대학 평가 시스템에 대한 대대적 개혁을 가져와야 한다고 진단했다. 그 정도 되고 보면 대학 교수들의 연구 태도는 분명히 달라졌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통탄할 일이 벌어졌다. 소위 ‘표지 갈이’ 시비이다. 불행한 일이지만, 우리 주변 대학가에서 연구 실적 부풀리기는 허다했다. 남의 논문을 표절하는 것도 물론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남이 쓴 책을 표지만 바꿔 출판해서 자기 작품인 양 속였다. 남의 책을 표지만 갈아 자기 책으로 둔갑시키는 작자가 도대체 교수 자격이나 있는지 궁금하다.

더 기가 막힌 사실은 검찰에 적발된 교수만 50여 개 대학 200여 명이란다. 거기에는 국공립 대학과 서울 유명 사립대학도 포함돼 있다. 이공계열 학회장과 언론 등에 알려져 유명해진 교수들도 있단다. 이 정도 되니 한심스럽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더 충격적인 사실이 있다. 여기에 치밀한 사기행각이 벌어졌다는 게다. 원 저자와 허위 저자, 그리고 출판사가 서로 검은 손을 잡은 것이다. 무려 30년 동안이나 검은 거래가 이루어져 왔다. ‘지성의 전당’이라는 대학에서. 본으로 지성의 문을 열어 주어야 할 교수들에게서. 학문적 양심은 쓰레기통에 처박은 채.

물론 이들에게는 각기 나름대로 절박한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원 저자는 출판사 확보나 돈이 궁했을 것이다. 허위 저자는 연구 실적을 올려야 했을 것이고, 출판사는 잘 팔리지도 않는 전공서적의 재고를 처리하려 했을 것이다. 각자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서로 눈을 감기로 결탁한 것이다. 아주 치밀한 사기 행각이 상아탑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아무리 절박해도 할 수 있는 게 있고 해서는 안 될 게 있다. 돈 된다고 아무거나 덥석 물어서는 안 된다. 한 번 문 게 씻을 수 없는 과오를 남길 수 있다는 걸 왜 모른단 말인가? 돈이 다가 아니다. 업적이 다도 아니다. 돈도 업적도 성공도 정당한 방법과 과정을 거쳐야 한다. 아무리 절박함도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길로 안내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독과 악을 만들게 된다.

바울은 로마 교회 성도에게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라(롬 16:19)’고 충고했다. 선한 것이 무엇인지, 악한 것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대학 교수라는 최고의 지성인이 선과 악을 분별하지 못한다면, 이 사회 어느 곳에서 희망을 노래할 수 있단 말인가? 선과 악의 경계선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스스로 경계선을 그을 수도 있어야 한다. 경계선을 서성이지 않는 결단력도 필요하다. 더 이상 경계선을 넘어 악의 진영으로 가지 말아야 한다.

국세청은 지난 9월 탈세 정보를 입수했다. “양도소득세 9억 원을 내지 않은 서모 씨가 부동산 경매로 배당받은 자금을 세탁해 현금으로 숨겨 놓았다.”

국세청 조사관들은 서 씨 부인 명의로 된 전원주택 앞에서 며칠간 잠복했다. 드디어 서 씨가 나타났다. 조사관들은 집안으로 진입해 곳곳을 살폈다. 부엌으로 들어갔다. 재래식 가마솥이 놓인 부뚜막 아래 아궁이 안쪽에서 검은 물체를 발견했다. 검은 가죽 가방이 잿더미에 묻혀 있었다. 가방 속에는 우리 돈 5억 원, 외화 1억 원 어치 지폐 뭉치가 쏟아졌다. 국세청은 은닉 현금을 전액 체납세액으로 징수했다.

최근 국세청은 고액 상습 체납자 2,226명 명단을 공개했다. 5억 이상 1년 이상자 대상 체납 총액만 3조 7천억 원이 넘는다니 기막히지 않는가?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에게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한다고 경계한다(고후 4:4). 이 세상은 거짓 영으로 바람 잘 날이 없다. 정치, 경제, 문화, 스포츠 세계 곳곳에서 거짓으로 물들어 있다. 작은 것에서부터 철저하게 보호막을 쳐야 한다. 요즘 거짓 영은 이단을 통해 믿는 자들의 가정 속으로, 대학가로, 집요하게 파고들고 있다.

거짓의 아비 사단은 공동체와 조직 속에서 속이고 속는 일을 서슴지 않고 조장한다. 거기에 불신의 씨를 뿌려 서로 반목하고 다투게 한다. 어둠의 영은 스스로를 속이게 한다.

사실 남을 속이는 것도 문제지만, 자신을 속이는 것이 더 큰 문제인지 모른다. 자신을 속이는 사람은 남을 속이는 것에도 능숙하다. 그러나 자신을 속이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은 남을 속이는 게 어색하게 느껴진다. 이제 우리는 화인 맞은 양심을 포기하고, 선한 양심을 거머쥐는 훈련에 돌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