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요한 박사가 발제하고 있다. ⓒ하석수 기자

한국장로교신학회(회장 이상규 박사)가 21일 서울 서문교회에서 ‘저메인 토마스 선교사와 그의 시대’라는 주제로 제25회 학술발표회를 개최했다.

영국 웨일스 출신인 토마스 선교사는 27세 때인 1866년 조선 선교를 위해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를 타고 평양 대동강가에 올라왔으나, 외세를 배격하던 군인들에의 셔먼호는 불타고 동승했던 토마스는 목이 잘려 순교했다. 당시 그는 최후를 맞으며 한문으로 번역된 성경을 뿌렸다.

이날 ‘순교자 로버트 J. 토마스 목사의 역사적 의의’라는 주제로 발제한 서요한 박사(총신대)는 “지금부터 147년전, 당시 전 세계를 통치했던 대영제국 출신의 젊은이가, 선택할 다른 많은 길이 있음에도 당시 야만으로 취급된 극동아시아의 이름도 알 수 없는 변방 국가 조선의 선교에 헌신하였다”며 “물론 그가 선교사로서 꿈을 갖고 신학을 준비하여 멀고 먼 이방 나라로 간 것에 대해, 그가 선택한 조선은 147년의 대부흥을 경험하면서 단지 감사할 뿐”이라고 전했다.

서 박사는 “토마스의 선교 여정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기대와 열망 속에 웨일스에서 런던, 런던에서 중국 상하이, 상하이에서 조선으로 바뀌었다. 무엇보다 토마스는 죽음 직전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고 복음을 증거하였다”며 “한때 토마스의 모친은 아들을 ‘방황하는 별’로 묘사했으나, 그는 이역만리 조선에서 장렬히 순교함으로 영원히 빛나는 영광스러운 별이 되었다”고 전했다.

서 박사는 “토마스는 죽음으로 자신의 선교의 뜻, 열망을 성취하였다. 실로 그의 죽음은 안타깝고 처참한 것이었지만, 이후 조선에 생명의 꽃을 만발케 하였다”며 “저메인 토마스의 순교 후 실로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 전개되어, 오늘 한국교회는 2,000년 기독교 역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부흥하였다”고 소개했다.

서 박사는 “당시 스코트랜드 출신 중국선교사 존 로스는 윌리엄슨 목사에게서 토마스의 순교 이야기를 전해 듣고 감동을 받아 조선 복음화에 헌신했다. 1882년 최초의 우리말 성경으로 누가복음을 출간했고, 이것은 조선복음화의 강력한 촉매제가 됐다”며 “토마스를 칼로 쳐 죽인 박춘권은 그가 전해준 성경을 읽고 예수를 믿었으며, 성경을 벽지로 사용한 박영식의 집은 훗날 평양대부흥의 발원지인 장대현교회가 되었고, 많은 해외 선교사들이 조선 선교를 위해 입국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전했다.

▲한국장로교신학회 제25회 학술발표회가 진행되고 있다. ⓒ하석수 기자

서 박사는 “제너럴셔먼호 사건은 1871년 신미양요의 직접적 원인이 되었고, 1882년 한미통상조약이 체결된 후 미국의 각 교단은 조선에 선교사들을 파송하였다”며 “한 청년의 죽음이 조선의 성경 보급과 미국 선교사 입국의 계기가 되었고, 평양대부흥운동의 발원지가 되었다”고 평가했다.

서 박사는 “민경배 교수는 ‘당시 영국교회조차 개별적 선교를 했다는 이유로 그의 죽음을 평가절하하였으나, 이 사건은 조선 땅에서 복음의 문이 열리는 결정적인 사건이 되었다’고 평가하였다”며 “오늘도 주님은 토마스처럼 순교를 각오하고 복음을 전파할 소명자를 찾고 있는데, 우리 모두가 그런 주역이 되었으면 한다”고 했다.

한편 이날 학술발표회에서는 개회예배, 고무송 박사(한국교회인물연구소소장)의 주제강연, 임희국 박사(장신대)와 나동광 박사(경성대)의 발제, 종합토론이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