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칼럼
예수님은 왜 과부가 ‘두 렙돈’ 헌금하는 것을 보고 계셨을까?
이창동의 <밀양>, ‘하나님 사랑’ 전혀 알지 못하고 꾸민 이야기의 전형
여호와의 증인 ‘양심적 병역거부’는 왜 비양심적인가
목사도 평신도? 루터 ‘만인사제설’의 기원과 적용
“할로윈 데이는 왜 10월 31일, 오늘인가?”
프란치스코 교황과 중국 공산당, 그리고 북한의 교황 초청
왜 영화 ‘인랑(人狼)’은 망하고 ‘신(神)과 함께’는 흥했나
“자살하면 정말 지옥에 간다는 근거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WCC는 왜 우리에게 맞지 않는가: 그 기원과 신학
민주주의의 종말과 6·13 지방선거, 그리고 ‘자유’
불꽃페미액션과 이재명, 페미니즘의 기원과 <원더우먼>
작금의 사법 개혁은 개혁(改革)인가 개악(改惡)인가?
남·북 평화 이전에 남한 목회자가 했어야 할 일
‘탈북민 송환 요구’에도 기독교는 왜 궐기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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