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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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혁 칼럼] 방콕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부족하고 허물 많은 죄인에게 70 평생 몸과 마음과 생각의 건강을 주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리며 지금 방콕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나의 몸과 마음과 생각이 움직이는 대로 가벼운 글을 써 보려고 한다. 글의 주제는 없다. 마음과 생각이 움직이는대로 나의 …

[김명혁 칼럼] 칼빈의 생애와 사상(3)

칼빈이 바젤에 머무는 2년 동안 즉 1536년에 「기독교 강요」(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를 써서 출판했다. 칼빈이 27세 되던 해였다. 그런데 그 책은 16세기 개신교 신학에서 가장 위대한 신학 저서가 되었다.

[김명혁 칼럼] 칼빈의 생애와 사상 (2)

칼빈이 바젤에 머무는 2년 동안, 즉 1536년에 「기독교 강요」(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를 써서 출판했다. 칼빈이 27세 되던 해였다. 그런데 그 책은 16세기 개신교 신학에서 가장 위대한 신학 저서가 되었다.

[김명혁 칼럼] 칼빈의 생애와 사상 (1)

요한 칼빈(John Calvin)은 1509년 7월 10일 프랑스 북부에 있는 누아용(Noyon)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출생했다. 아버지는 누아용시 감독의 재정 비서였고 어머니는 현숙하고 경건한 여성이었다. 1523년(14세) 파리대학에 들어가 인문과학을 공부한 후 1528년(19세) 문학석사 학위…

[김명혁 칼럼] 과격(급진적) 개혁운동 (3)

칼슈타트가 빗텐베르그에서 루터의 개혁운동에 반대하며 과격 개혁운동을 일으켰던 것처럼 취리히에서도 쯔빙글리의 개혁운동에 대해 불만을 품고 과격 개혁운동을 일으킨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 가운데서 가장 과격한 자는 취리히의 그레벨(Conard Grebel)과 만츠(Fel…

[김명혁 칼럼] 과격(급진적) 개혁운동 (2)

루터의 종교개혁운동이 시간이 감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종교개혁운동들로 나타났다. 루터의 개혁운동이 중세 교회를 충분히 개혁하지 못하다고 규정하며 보다 철저한 개혁의 필요를 부르짖는 급진적인 과격파 개혁운동이 일어났다. 사람은 누구나 제한되어 있고 …

[김명혁 칼럼] 과격(급진적) 개혁운동 (1)

루터의 종교개혁운동이 독일과 유럽 각처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발전했으나 시간이 감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종교개혁운동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들 중 루터와 쯔빙글리의 개혁운동이 중세 교회를 충분히 개혁하지 못하다고 규정하며 보다 철저한 개혁의 …

[김명혁 칼럼] 쯔빙글리와 종교개혁

유럽 각처에서 일어난 다양한 종교개혁운동은 각각 독특한 주장과 특성을 지니면서 발전해 나아갔다. 쮜리히에서 일어난 쯔빙글리(Zwingli)의 개혁운동과 제네바에서 일어나 칼빈의 개혁운동을 가리켜 “개혁파”(the Reformed) 개혁운동이라고 부른다. 이는 그들이 루…

[김명혁 칼럼] 마르틴 루터와 종교개혁 (13)

루터는 세속 통치 기관에 대해 소극적인 평가를 내렸다. 세속 통치 기관인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는 타락한 인간들을 억제하고 질서와 평화를 유지하는 데 있다고 했다. 동시에 국가의 존재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법률의 ‘정치적 기능’을 통…

[김명혁 칼럼] 마르틴 루터와 종교개혁 (12)

루터에게 있어서 정치는 결코 그의 중요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의 중요 관심사는 철두철미 그리스도와 십자가와 그리스도의 말씀이었다. 그러나 루터는 개혁운동의 진행 과정에서 정치와 무관할 수는 없었다. 결국 루터는 ‘두 왕국’의 개념을 제시했는데 거기에…

[김명혁 칼럼] 마르틴 루터와 종교개혁 (11)

루터에게 있어서 정치는 결코 중요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의 중요 관심사는 철두철미 그리스도와 십자가와 그리스도의 말씀이었다. 그러나 루터는 개혁 운동의 진행 과정에서 정치와 무관할 수는 없었다

[김명혁 칼럼] 마르틴 루터와 종교개혁 (10)

루터는 종교적으로 매우 민감한 청년이었다. 지옥의 공포가 늘 그를 사로잡고 있었다. 1505년 수도원에 들어가 8, 9년 동안 수도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항상 구원의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다. 기도와 미사와 참회와 예배에 빠지지 않았고 때로는 3일씩 금식도 했다. 로…

[김명혁 칼럼] 마르틴 루터와 종교개혁 (9)

교황은 1520년 6월과 1521년 1월 두 번 루터를 파문하는 파문장을 보냈다. 결국 1521년 4월 독일 보름스(Worms)에서 루터를 심문하기 위해 신성로마제국의 의회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찰스 5세(Charles V, 1500-58)에 의해 열렸다

[김명혁 칼럼] 마르틴 루터와 종교개혁 (8)

라이프찌히 논쟁(1519년) 이후 루터는 일약 국가적 영웅으로 그리고 국제적 인물로 등장했다. 루터의 저서들이 프랑스, 스페인, 영국, 스위스 그리고 로마에까지 배포되었다. 루터의 종교개혁 운동은 당시의 인문주의(Humanism)와 국가주의(Nationalism)와 합세해 크게 확장…

[김명혁 칼럼] 마르틴 루터와 종교개혁 (7)

루터와 로마교회 사이에 벌어진 가장 큰 논쟁이 1519년 7월 4~14일까지 라이프찌히(Leipzig)에서 행해진 라이프찌히 논쟁이었다. 로마교회측에서는 잉골슈타트(Ingolstadt)대학의 교수 존 에크(John Eck)를 비롯하여 잉골슈타트 대학과 라이프찌히 대학의 교수들이 참석했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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