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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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섭

‘슬기로운 다섯 처녀’도 기름을 예비했을 뿐… 잠든 건 마찬가지

특정 예언가의 예언, 우주 폭발, 자연 재해 등을 바탕으로 내어놓는 인류 종말론들이 있습니다. 16세기 노스트라다무스(Nostradamus, Michel de Nostredame, 1503-1566)의 종말 예언, 빅뱅 이론, 로마 클럽(The Club of Rome)의 종말론들이 그것입니다. 얼마 전에도 큰 위성이 지구에 초…
이경섭

‘자아 죽임?’ 그리스도인의 ‘자아 죽음’의 진정한 의미

기독교에서 '자아 죽음(self-death)'처럼 왜곡되는 경우도 흔치 않습니다. 흔히 여기에 동원되는 성경 구절들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갈 2:20)'.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 5:24)'입니다. 수…
이경섭

이신칭의, 하나님의 분노를 풀어주는 유일한 의(義)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시 7:11)' 라는 말씀은 하나님에 대해 사실 그대로를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 때문에 날마다 분노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분노는 인격을 가지신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성품에서 …
이경섭

칭의유보자들에겐, ‘구원 상실’ 막을 특단의 조치 있는 건가요

대개 구원에 대해서는 간략하게 성경의 명백한 원리만 말하고, 세세하게 어떤 사람이 구원받을 사람이고 어떤 사람이 지옥 갈 사람이고를 규정하지 않는 것이 상례입니다. 이는 구원의 판단을 받아야 하는 인간이 구원을 판단하는 결정권자의 자리에 앉으므로, 하…
이경섭

‘이신칭의’는 ‘값싼 은혜’인가, ‘값없는 은혜’인가?

근자에 들어 한국교회 안에서 '값싼 구원(은혜)'이라는 말이 많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주로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고 주장하는 이신칭의론자들을 공격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는 듯 합니다. 원래 이 용어의 출처는, 전쟁 광분자 히틀러룰 암살하려는 단체에 속…
이경섭

교회 부패의 원인이 ‘이신칭의’? 안주하려는 인간의 본성 탓

믿음을 평가절하하고 행위를 우상처럼 떠받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계몽주의, 실존주의 기독교인들이 그들입니다. 그들의 언행을 보면 마치 선행이 지상목표인 것처럼 보여질 정도입니다. 물론 명분상으로는 자신들도 믿음을 중시한다고 말하며, 그들이 행위를 …
이경섭

의롭다 함은 받았는데, 구원은 못 받을 수도 있다구요?

상당수 사람들이 칭의와 구원에 대해 오해하는 듯합니다. 특히 '칭의'와 '구원'을 양분하여, 의롭다 함은 받지만 구원은 못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에 대한 논거로 즐겨 들고 나오는 구절 중 하나가 이 말씀입니다. "우리가 그 피를 인하…
이경섭

이신칭의 교리는 방종을 부추기지 않습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여기저기서 자성의 목소리와 함께, 한국교회의 부정적인 모습에 대해 많은 말들이 오갑니다. 근자에 한국교회의 타락에 대해 말하면서, 그 책임을 믿음(은혜)만을 강조하는 이신칭의 교리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는 듯 합니다. 이에 착안하…
이경섭

선행은 왜 칭의의 열매여야 하는가?

인간의 선행이 칭의에 기여하느냐 못하느냐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한 지금까지도 여전히 논쟁거리이며, 그 논쟁의 중심에 다음의 야고보서 말씀이 자리합니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
이경섭

믿음의 의를 부정하는 배후에는 어둠이 자리합니다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은 그리스도의 의(義)에 맞춰져 있고, 그리스도의 의의 경륜은 그의 성육신과 죽음에 맞춰져 있으며,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말미암은 의(義)의 경륜은 믿음에 맞춰져 있습니다. 이를 간파한 사단은 택자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경륜을 무너뜨리기…
이경섭

어떤 해악 없지만... ‘불신’이 가장 큰 죄악인 3가지 이유

나라, 민족, 종교에 따라 죄인식이 각기 다릅니다. 어떤 나라에서는 극악한 죄가 어떤 나라에서는 합법적이고, 어떤 나라에서는 합법적인 행위가 어떤 나라에서는 극악이 되기도 합니다. 예컨대 아프리카 식인종의 식인(食人) 이나 이슬람의 일부다처는 그들 문화에…
이경섭

진정한 신비는 이신칭의에 있습니다

16세기 종교개혁의 근간인 이신칭의(以信稱義)는, 태동 후 약 100년 어간을 풍미한 후 17세기 말에 이르러-대개 모든 개혁운동이 그랬듯이-처음 성령의 역동성 상실과 매너리즘으로 인한 화석화로 인해, 필립 슈페너(Philip Jacop Spener, 1633-1705)로 대변되는 독일의 경건주…
이경섭

‘하나님의 임재’? 이신칭의에만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유행하는 경건(영성) 훈련들이 대개 하나님의 임재를 표방하고 있으며, 임재의 방편에 관상, 거룩한 독서(Lectio Divina), 예수 기도(Jesus Prayer) 등이 단골 메뉴로 올려집니다. 기독교 서점가의 스테디 셀러 목록에는 하나…
이경섭

성경의 모든 ‘경계’는 이신칭의론자들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불택자(아직 택함받지 못한 자)들이 하나님의 자비를 남용하는 것에 대해선 괘념치 않으시지만, 택자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취해 방심에 빠지는 것에 대해선 경계심을 늦추지 않으십니다. 성경이 선지자 사도들을 짖는 개(사 56:10), 파숫군(시 130:6), 목자(겔 …
이경섭

이신칭의를 남용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맙시다

역사적으로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이신칭의 교리는 부패무능한 죄인들에게 가슴 떨리게 하는 복음 그 자체였습니다.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을 떠올릴 때마다 '하나님은 절망적인 나를 위해 이 도리를 내셨구나. 이 은혜가 없었다면 어쩔 뻔 했을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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