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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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섭

[이경섭 칼럼] 천국은 거듭난 자를 위한 것입니다

거듭난 성도들에게는 반드시 천국이 있어야 합니다. 다른 이유들은 제쳐놓고서라도, '천국'과 '거듭남'의 신학적 관계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선 천국이 없으면 거듭난 영혼이 있을 곳이 없습니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나라에 들어가지…
이경섭

[이경섭 칼럼] 더 없이 영광스러운 복음과 설교자

기독교는 복음 설교자를 존귀히 여깁니다. 특별히 청교도들이 더욱 그러했습니다. 그들이 목사직을 존귀히 여기고 설교를 세상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일로 여긴 이유는, 설교자가 복음을 말하고 전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왜 복음을 말하는 설교자가 존귀하고…
이경섭

[이경섭 칼럼] 당신은 하나님을 사랑합니까, 미워합니까?

불의한 죄인은 하나님께 나아가다 멸망당하고,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해 멸망당합니다. 이것이 죄인의 딜레마(Dilemma)입니다. 성경의 웃사(Uzza)는 성결을 받지 않고 하나님께 나아가다, 하나님의 거룩에 소멸됐습니다(대상 13:10). 심지어 하나님을 대면하도록 허락 …
이경섭

[이경섭 칼럼] 신앙의 목적은 ‘완전한 행위’가 아닙니다

기독교인들 가운데 완전한 사람이 되는 것을 신앙의 목표로 두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이는 계몽주의, 경건주의, 완전주의의 영향 때문입니다. 그들이 흔히 인용하는 본문들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창 17:1)", 산상수훈의 "하늘에 …
이경섭

[이경섭 칼럼] 믿음만이 하나님을 알게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비롯해, 모든 영적 지식을 열어주는 열쇠입니다. 신학적 표현을 빌리면 '계시의 방편으로서의 믿음'입니다. 어거스틴(Augustinus)이 기독교의 앎을 '믿음의 앎'이고, 기독교 교육을 '신앙 교육'이라고 정의한 것은 옳은 것입니다. 그런데 …
이경섭

[이경섭 칼럼] 성령, 복음의 유일한 통역자

복음은 오직 성령만이 설득하여 믿게 할 수 있습니다. 복음에 대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입을 벌려 그것을 말하는 것뿐입니다. 한글 성경이 '전도하다(행 5:42)'라고 번역한 단어는, 사실 정확한 의미는 '선포한다(preach)', '전파한다(proclaim)'입니다. 이는 전도한다…
이경섭

[이경섭 칼럼] 성도만이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당신의 유일한 성전으로 삼으셨습니다. 여기엔 선택의 여지가 없었으며, 세 가지 이유에서 그렇습니다. 첫째 인간의 '하나님 형상됨'과 '성전됨'의 관련성 때문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image)'을 지녔다 함은, '본체(substance)'인 하나님을 찾아…
이경섭

[이경섭 칼럼] 하나님의 완전한 계시, 삼위일체

기독교를 계시의 종교라 함은, 하나님은 인간의 지혜가 아닌 오직 하나님의 계시로만 알려지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죄로 하나님에 대해 무지해졌을 때만 아니라 타락 전에도, 그의 생득적 지혜로는 완전한 하나님 지식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적 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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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섭 칼럼] 당신의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인가요?

정통 교회에 속하여 하나님을 삼위일체적으로 안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오소리 다리처럼 들쭉날쭉하여 균형 잡히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 중심'을 외치는 건전한 신앙인들 중에도 적지 않게 발견됩니다. 이는 …
이경섭

성경은 개인주의를 말하는가, 공동체를 강조하는가?

인류는 두 머리를 가졌습니다. 하나는 죄(罪)의 머리 아담이고, 하나는 의(義)의 머리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인 됨과 의인 됨이 이 두 머리에 의해 결정되도록 하셨습니다. 인류는 자기 개인의 죄(罪) 때문에 죄인이거나 개인의 의(義) 때문에 의…
이경섭

영생은 타락 후에 급조된 응급처방이 아닙니다

태초의 무죄했던 아담은 '산 영(a living soul)'이었습니다.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고전 15:45, 창 2:7)." 첫 사람 아담을 '산 영'이라 했으니, 그의 생명이 완전한 것처럼 보이나, '죽음'의 가능성을 가진 '산 영'이…
이경섭

[이경섭 칼럼] 역설의 진리, 약함의 미학

"내가 약할 그때에 강함이라(고후 12:10)"는 역설적 진리입니다. 이 역설적 진리는 특히 약육강식의 동물 세계에서, 사자 호랑이 같은 맹수는 멸종하고, 맹수를 피해 굴이나 바위틈에 숨어사는 토끼 사반(잠 30:26) 같은 약한 짐승들의 번성을 통해 확인됩니다. 이는 …
이경섭

믿음을 강조하면 율법을 무너뜨리는 것일까?

누가 율법을 존중하는 자이고, 누가 율법을 멸시하는 자인가? 말마다 율법, 도덕을 앞세우며 의롭게 살아야 한다고 목청을 돋우면 율법을 존중하는 자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 입니다. 더구나 만약 그가 자신의 의로 율법을 성취하려 한다면, 이는 율법을 …
이경섭

‘이미와 아직 사이’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현재의 완전한 칭의가 종말에 불완전해질 수도 있고 현재의 불완전한 칭의가 종말에 완전해질 수 있다는 칭의 유보는, 칭의의 가변성을 전제한 데서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그 칭의의 가변성은 칭의를 '질량'과 '시간'의 영향을 받는 물질 개념으로 상정(想定)한 데…
이경섭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가치롭게 하는 믿음

그리스도의 고난을 가치 있고 영화롭게 하는 것은, 그의 죽음을 나를 위한 죽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그의 죽음이 목적을 달성하고, 하나님 아들의 죽음으로 인정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의 죽음을 나의 죽음으로(사 53:5) 받아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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