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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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섭

[이경섭 칼럼] 죽음과 영생

낯선 영생 ‘단생(單生)’의 금세(今世)에선 초월적인 ‘영생(永生)’ 개념이 제대로 인식될 수 없다. 다만 그것은 희미하게 유추될 뿐이다. 만약 ‘금세’에서 ‘영생’을 인식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영생’이 아니다. 이는 두 영역은 전혀 서로 다른 인식…
이경섭

[이경섭 칼럼] 죽지 않음과 ‘영생’

‘한시적인 죽음 없음(temporary no death)’과 ‘영생(eternal life)’은 다르다. 전자는 말 그대로 ‘한시적 생명의 이어짐’이고 후자는 ‘다함 없는 생명’이다. 전자는 아담의 범죄 전 그에게서 일시적으로 향유됐고, 후자(영생)은 그가 범죄 해 온 인류가 사망에 빠뜨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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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섭 칼럼] ‘예수 믿으면 구원 얻는다’는 말의 의미

죄인이 어떻게 믿음에 이르는가? ‘예수 믿고 구원 받으라’는 복음 전도는 어떤 의미인가? 이는 단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결단을 하여 구원을 받으라’는 뜻인가? 죄로 죽은 인간은 그리스도를 향해 그런 결단을 할 수가 없다. 이러한 인간의 실상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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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섭 칼럼] ‘스스로 구원하라’는 말의 의미

‘구원’에 관한 한 성경은 언제나 ‘피동형(passive, 被動形)’을 써서 ‘구원을 받는다(be saved)’고 표현한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 16:31, Believe in the Lord Jesus, and you will be saved--you and your household).” 그러나 “새가 그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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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섭 칼럼] 당신의 남편은 ‘율법’인가, ‘그리스도’인가?

◈전 남편 율법의 죽음 성경은 ‘그리스도인은 율법에 대해 죽임을 당했다(you died to the law)’고 말한다.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롬 7:4).” 이는 그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연합하여(갈 2:10)…
이경섭

[이경섭 칼럼] ‘구원받으라’는 말의 의미

율법에서 속량 받으라 ‘구원을 받으라’는, 사실 ‘율법에서 속량(redemption, 구원)받으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이는 죄의 심판이 율법으로 말미암았기에(롬 7:8), 죄인이 율법에서 속량을 받으면 심판에서 구원을 받기 때문이다. 율법이 없다면 죄도 없고, 죄가 …
이경섭

[이경섭 칼럼]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이란(3)

성화의 방편인 죽음 ‘죽음’은 개인이 당하는 최후의 ‘종말론적인 고난’이다. 여기서 죽음을 고난이라 했음은 ‘죽음의 찰나적인 고통’ 때문이라기보다는(세상엔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 얼마든지 있으며, 죽음이 오히려 그런 고통을 종식시킨다) 죽음을 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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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섭 칼럼] 하나님께 진심이었던 웃사는 왜 죽었을까?

하나님은 죄인에게 생명을 주는 ‘구원자’인 동시에 그를 저주에 처하는 ‘심판자’이시기도 하다. 그러나 이는 단지 하나님이 인간의 생사여탈권을 가진 주권자이심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존재론적 속성(Ontological attribute 存在論的 屬性)으로 말미암은 경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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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섭 칼럼] 언약궤 앞에서 춤춘 다윗

“여호와의 궤가 다윗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저를 업신여기니라… 다윗이 미갈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저가 네 아비와 그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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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섭 칼럼] 율법주의의 위선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네가 율법을 행한즉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한즉 네 할례가 무할례가 되었느니라(롬 2:23-25)”. 유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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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섭 칼럼] 자연신앙과 삼위일체 하나님 신앙

자연 신앙으로 이끄는 인간의 ‘상대적인 연약성’ 성경은 ‘인간의 약함’을 칭송한다. 이는 그 ‘약함’이 죄인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기 때문이다. 다음은 그것에 대한 대표적인 성경 구절들이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
이경섭

[이경섭 칼럼]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이란 (2)

잠 성경은 그리스도인의 죽음을 ‘잠(sleeping, dormancy)’에 비유했다(고전 15:20). 육체의 죽음 후, 그 ‘영혼’은 낙원으로 입성하고, ‘육체’는 잠에 든다.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리려 갈 때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요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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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섭 칼럼] 아무도 그리스도인을 정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믿는 자를 의롭다 해 주신 것은 대법원의 결심 공판 같은 최종적인 선언이며, 어떤 경우도 그것은 뒤집히지 않는다.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롬 8:33).” 이 ‘확정 판결’은 ‘행하면 살리라(갈 3:1…
이경섭

[이경섭 칼럼] 완전한 복음, 삼위일체 복음, 전할 복음

◈완전한 복음 ‘복음’이 ‘기쁜 소식’인 것은 그것의 ‘완결성’ 때문이다. 이 ‘복음의 완결성’이 죄인의 구원에 믿음 외에 아무 요구할 것이 없게 했고, 그것이 그들에게 기쁜 소식이 되게 했다. 만일 ‘복음’이 미완결 된 채로 있어 죄인에게 조금이라…
이경섭

[이경섭 칼럼] 두려움을 내어 좇는 사랑

근본 ‘사랑’과 ‘두려움’은 공존할 수 없다. ‘사랑’하든지 ‘두려워’하든지 할 뿐이다. ‘사랑’이 오면 ‘두려움’이 쫓겨나가고, ‘두려움’이 오면 ‘사랑’이 쫓겨나간다. 성경도 이를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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